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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5일 10시 01분 KST

인천 토박이들의 숨은 맛집, 북성포구

[매거진 esc] 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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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성포구 끝자락에는 건어물 상점들도 있다.

북성포구를 아시나요?

이성진 인천골목문화지킴이 이사장은 “그야말로 아는 사람만 찾아올 수 있는 곳”이라며 인천 토박이들의 숨겨진 맛집 포구라고 알려준다.

인천광역시 중구 월미로 50번지에 위치한 북성포구는 한때 화수부두, 만석부두와 함께 수도권의 3대 어항이었다. 만선의 깃발을 꽂은 어선이 정박하면 발 디딜 틈도 없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1970년대 말까지 수도권 최대의 포구로 어시장의 명성을 누렸던 북성포구는 1975년 연안부두 일대가 매립되고 어시장의 상점들이 하나둘 연안부두로 이전하면서 쇠락의 길을 밟았다. 그들이 떠난 자리에는 공장과 고철야적장 등이 들어섰다. 제철 생선을 맛보겠다는 관광객들은 소래포구로 몰려갔다. 쨍하고 볕 들 날 없어 보이던 이곳에 최근 몇 년 사이 변화의 기운이 감돌기 시작했다. 서해안 노을과 공장을 한 프레임에 넣겠다는 아마추어 사진가들이 하나둘 방앗간의 참새처럼 날아들더니, 좁은 골목을 비집고 들어가야 겨우 만나는 생경한 풍경에 반한 이들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지난 9일 지하철 1호선 인천역은 노란 가을 햇살로 물들고 있었다. 여행지로 인천을 고른 이들이 쏟아져 나왔다. 충청북도 청주시에 사는 고등학생 서영호군과 친구들도 그들 무리에 끼어 있었다. 서군은 “두번째 인천 여행인데 잘 알려지지 않은 곳들을 찾아서 인천의 맛을 느껴보고 싶다”고 말한다. 북성포구야말로 이들이 찾는 여행지다.

인천역에서 걸어서 15~20분 거리에 있는 북성포구는 황량한 고가도로와 을씨년스럽고 거대한 대한제분 인천공장을 지나야 만난다. 스쳐지나는 얄팍한 인연을 대하듯이 무심하게 걸으면 발견할 수 없다. 대한제분의 자회사인 대한사료공업 인천공장의 꼭대기에는 ‘곰표 대한사료’란 거대한 글자가 걸려 있다. 비릿한 바다향 대신 흙과 돌멩이, 지겨운 도시의 시멘트 냄새가 어디선가 난다. 눈을 들면 낡은 ‘북성포구’란 간판이 내려다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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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철 맞은 대하구이가 푸짐하다. 바다횟집.

간판을 지나 골목에 들어서면 성인 3명이 걷기에 벅찰 정도로 좁아 놀란다. 다시 왼쪽으로 꺾인 길을 따라 1~2분 더 걸으면 ‘만석 17회 동창회’라 적힌 나무 판때기가 툭 튀어나오고 그 위로 ‘바다횟집’이 보인다. 그곳에서 다시 왼쪽으로 들어가면 성인 한 명이 겨우 걸을 만한 골목을 사이에 두고 왼쪽에는 수족관이, 오른쪽에는 횟집들이 늘어서 있다. 모두 6곳의 횟집이 그 옛날 북성포구의 영화를 되새김질하면서 현재를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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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수간만의 차를 풍경으로 즐길 수 있는 북성포구 횟집들.

‘바다횟집’, ‘여우네횟집’, ‘강화볼음도회집’, ‘미소회집’, ‘선애네강화횟집’, ‘태호네횟집’ 등.

강화볼음도회집의 주인 강분순(74)씨는 횟집 여러 곳이 들어서기 전부터 포구에서 굴, 조개 등을 행상 소쿠리에 담아 팔았다. “이곳에서 장사한 지 이제 한 50년 되었나. 옛날에는 여길 ‘똥마당’이라고 불렀지.” 한국전쟁 이후 이곳은 고향을 등지고 남하한 실향민들로 넘쳐났다. 나무 판때기로 집을 짓고 공동화장실이 한두 개밖에 없어 주민들은 눈치껏 ‘똥’을 배설했다. 밀물이 들이닥치면 대변이 둥둥 떠다녀서 ‘똥마당’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이들 횟집 창은 바다를 향해 뚫렸다. 창밖의 풍경은 시간에 따라 달라져 이 또한 북성포구만의 매력이다. 수족관 앞 나무 판때기에는 제철 맞은 전어, 대하, 끝물인 병어 등이 얌전하게 누워 있다. 조수간만의 차로 바닷물이 꽉 찼던 갯벌은 저녁나절이 되면 제 몸뚱이를 부끄럼도 없이 드러낸다. 갯벌을 사이에 두고 공장의 불빛들이 하나둘 켜지면 술꾼들의 소란스러운 수다가 넘친다. 강화볼음도회집에서 전어회를 주문하자 종업원이 “요새 회로 먹을 만한 신선한 전어가 안 들어와요. 구이가 맛나요”라고 주문을 돕는다.

강씨처럼 강화도가 고향인 이들이 또 있다. 25년 된 선애네강화횟집의 주인 조금군(67)씨와 태호네횟집의 차경림(53)씨다. 조씨는 “지금은 전어가 귀해 비싼 편”이라며 “이 골목 횟집은 다 비슷한 상황”이라고 말한다. 지난 13일 기준 노량진수산시장의 활전어 시세는 1㎏당 2만5000원으로 전날보다 4500원이나 올랐다.

국립수산과학원 남동해수산연구소 이정훈 박사는 “7~8월 전어 어획량은 지난해와 비슷하지만 9월부터는 지난해와 비교해 급격히 줄어들고 있다”며 수온이 낮은 점을 이유의 하나로 꼽았다. 전어는 수온이 높은 곳에서 사는 어종이다. 활어로 유통되는 전어는 연안에서 주로 잡는데, 올해 수온이 낮아지면서 개체수가 줄었다는 것이다. 이 박사는 “이런 상황이 나아질 기미가 없어 올해는 활전어를 회로 먹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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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볼음도회집의 전어구이.

12년 전에 문 연 여우네횟집은 전라도 김제가 고향인 주인 송순희(60)씨가 솜씨를 발휘한 ‘곁들이 안주’(쓰키다시)가 푸짐하다. 이 골목의 막내는 바다횟집의 주인 김양희(48)씨다. 그는 모친 이정숙(84)씨와 언니 양순(56)씨가 운영하던 횟집을 지난 5월에 맡았다. 미소회집 주인 김봉애(65)씨와 그는 인천 토박이다. 김양희씨는 “어릴 때 나무 판때기로 뗏목을 만들어 놀았다”며 이 일대의 70년대 풍경을 추억한다. 그는 이어 “20여년 전 언니(양순씨)가 자동차 타이어 안의 쇠붙이를 뜯어 조개구이용 화로로 만들어서 장사를 시작했다”고 말한다. 그는 “대하(새우)가 제철을 맞아 신선하다”고 권한다.

이곳 횟집들의 차림표는 거의 비슷하다. 제철 생선이 주메뉴이고 반찬 맛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이곳 횟집들의 주인 6명은 친구처럼 가족처럼 정을 나누며 골목을 지킨다.

인천 북성포구는 한국 근현대사를 담고 있다. 1890년 서울에서 인천으로 온 정흥택 형제는 소규모 생선 행상판매 구조를 상설 어시장 형태로 탈바꿈시켜 돈을 벌었다. 일제침략 이후 일본인들도 어시장 운영에 뛰어들었다. 일제는 어시장을 ‘제1공설시장’으로 합병하고 인천부가 직영하도록 바꿨다. 1929년부터 1931년까지 북성동 해안 일대를 매립해 수산물공판장과 어시장, 어업용 제빙고장을 설립했다. 북성포구의 역사다.

인천 부두 여행지

북성포구만 고즈넉한 제철 생선 여행지가 아니다. 소래포구보다 찾는 관광객 수가 적은 화수부두나 만석부두도 최근 들어 입소문이 나고 있다.

화수부두 한국전쟁 이후 북쪽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이 터를 잡은 부두로, 1970년대만 해도 100척이 넘는 배가 인근 해역에서 잡은 생선을 가득 싣고 들어온 곳이었다고 한다. 새우젓 시장으로도 유명했던 이 부두는 어부가 직접 생선을 판매하는 직매장도 있어 요즘 찾는 이들이 많아졌다. 종종 이곳을 찾는 고급 레스토랑 ‘밍글스’의 강민구 셰프는 “회가 신선하고 예스럽고 정감 있는 풍경이 좋다”고 한다. 인천광역시 동구 중봉대로 63.

만석부두 서울로 향하는 곡물을 1만석이나 쌓아놓았던 곳이라 해서 ‘만석’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 부두는 낚시꾼들의 명소로도 유명하다. 1970년대까지 인천의 유일한 수산물 공판장이 있던 곳으로, 새우젓이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했다. 창작동화 <괭이부리말 아이들>의 배경지로, 고즈넉한 분위기에서 생선회를 즐길 수 있는 부두다. 인천 동구 만석부두로 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