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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4일 07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0월 14일 07시 08분 KST

인터넷을 감동시킨 서울대 학생의 관악 마을버스 기사와의 대화

Shutterstock / Maryna Pleshkun

서울대학교 학생들이 익명으로 이야기를 공유하는 페이스북 서울대학교 대나무숲 페이지에 12일, 한 재학생의 훈훈한 경험담이 올라와 화제가 되고 있다.


"학생 서울대학교 다녀요?" 녹두거리 편의점 파라솔에 걸터앉아서 맥주를 마시는데 웬 낯선 아저씨가 와서 물었어요. 아마 제 과잠을 보고 아셨나 봐요.

"네."

"신림동에서 자취하나 봐요?"

"아니요. 통학합니다."

제가 여자였다면 벌써 도망가야 했을 멘트였지만 전 남자여서, 의심쩍지만 그냥 대답했어요.

"어이구, 통학하는데 이 시간에 왜 여기서 술을 마시고 있어. 힘들어요?"



(중략)



때마침 누가 말을 걸어주니 의심쩍지만 내심은 반가운 마당에, "힘들어요?" 한 마디에 스르르 마음이 풀렸어요.

"네...힘드네요. 하하.."

"왜, 공부가? 사람이?"

"그냥요. 이것저것...공부든 사람이든 다 힘들죠. 학년 먹을 수록 힘든 그런거.. "

잠깐 기다리라면서 아저씨는 편의점에 들어가서 비싼 외국맥주랑 안주를 사오셨어요. 먹으라고 하시면서 아저씨가 말했어요.

"학생 관악 02 타본적 있어요?"

"네 당연하죠."

"내가 그거 버스기사 하고 있어요."



(중략)



아저씨는 딸이 하나 있으셨어요. 공부도 엄청 잘해서 서울대학교 입학하는 걸 오래 전부터 꿈꿨대요. 집안이 넉넉질 못하고 아버지가 버스기사라 돈도 많이 못 벌어다 준다고 매번 미안해했는데도 불평 한 번 안하고, 하루 진종일 일하고 집에 녹초가 돼서 떡볶이 순대 사들고 집 들어가면 늦은 시간인데도 늘 공부하고 있었대요. 그렇게나 예쁘고 착한 아저씨 딸이 고등학교 2학년 올라간지 얼마 안 되고, 하필이면 또 버스 사고로 세상을 떴을 때, 아저씨는 모든 걸 포기할까도 생각하셨대요.

어느 날 여느 때처럼 잔뜩 취한 채로 신림동 일대를 비틀비틀 지나가다가, 딸하고 너무 닮은 학생이 서울대 과잠을 입고 친구들이랑 재잘거리면서 지나가더래요. 문득 술이 확 깨면서 '딸내미가 지금 살아 있다면 이제 대학교 입학했겠구나, 아마도 서울대에 들어갔겠지.'하는 생각이 드셨고 그 길로 다시 버스 운전대를 잡게 되셨대요. 딸이 지금쯤 제 나이쯤 되는 남자친구를 데리고 와서는 집에 자랑했을지도 모른다고, 맥주를 한 모금 꿀꺽 삼키시고는 허허 웃으셨어요.

"그때부터 버스 타는 학생들을 하나하나 뜯어봐요. 그때 우리 딸 닮은 그 학생도 탔나, 하고. 내가 가방끈이 짧아서 잠바 뒤에 적힌 말이 뭔지를 몰라. 과에다가 전화를 해보겠어, 뭘 하겠어. 그러니까 처음에는 우리 딸도 아니고, 딸 닮은 사람 하나 찾자고 이거 시작한 셈이에요. 그러다가, 처음에는 안 닮은 사람이면 그냥 넘어가고 남학생들도 넘어가고 그렇게 보다가, 나중 가니까 얘들이 우리 딸 친구 후배 선배겠구나, 싶으니까 얼굴이 하나하나 다 보여요. 어쩜 다 이뻐. 삼삼오오 모여가지고 좋다고 떠드는 것도 예쁘고, 공부하느라 힘들다고 한숨 푹푹 쉬면서 버스에 타도 웃으면서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하면 그렇게 또 이뻐. 그렇게 하루하루 하다 보니까 이제 우리 딸도 졸업 다 했겠네. 근데도 아직도 버스 몰아요. 습관이 되고 일이 돼서."

"따님 닮으신 분은 찾으셨어요?"

"아니 결국 못 찾았어. 아마 졸업했을거에요. 그럼 어때. 매년 3천명씩 아들딸이 들어오는데요."

"아."

"서울대 버스기사 몇년 귀 열고 하다 보면, 시험기간이 언젠지도 다 알아요. 유명한 수업은 이름도 외고, 어떤 교수가 얼마나 못 가르치는지도 알 수 있어요. 그럼 요즘 학생들이 얼마나 힘들게 사는지는 얼마나 잘 알겠어요. 아무튼간에.. 힘든데 무작정 힘내는 것보다, 힘들면 가끔 이렇게 맥주 먹고 쉬어. 그리고 어떤 이상한 아저씨가 응원해주고 있다고 생각도 해보고 그래요. 누구 한 사람이라도 자기 이렇게 생각해주고 있다고 느끼면 얼마나 가슴 따뜻하고 좋아."

(후략)


이 경험담은 페이스북에 게시된 지 이틀 만에 좋아요 8만6천 개, 공유 수 1만5천 개를 훌쩍 넘기며 호응을 얻고 있다. "힘들 때마다 보려고 공유했다"는 등의 댓글들도 6천여 개나 달렸다.

글쓴이는 페이지 계정으로 쓴 익명 댓글에서 "소설이나 가짜 같기도 하시겠지만 작년에 제가 겪었던 실화"라며 일기장에 적어뒀다가 공유했다고 설명했다.

아래 '더 보기'를 눌러 글쓴이의 응원이 덧붙여진 전문을 볼 수 있다.


"학생 서울대학교 다녀요?"녹두거리 편의점 파라솔에 걸터앉아서 맥주를 마시는데 웬 낯선 아저씨가 와서 물었어요. 아마 제 과잠을 보고 아셨나 봐요."네.""신림동에서 자취하나 봐요?""아니요. 통학합니다."...

Posted by SNU Bamboo Grove on Sunday, October 11, 2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