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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2일 10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0월 12일 10시 12분 KST

등굣길에 주먹밥 나눠 준 충암고 학부모들(사진)

12일 아침, 서울 은평구 충암중·고교 정문. 여느 등굣길에선 보기 힘든 낯선 풍경이 펼쳐졌다. 수은주가 8도까지 내려간 쌀쌀한 날씨 속에 어머니들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주먹밥을 들고 등교하는 학생들을 맞았다. 어머니들은 한 아이라도 놓칠세라 “아들들, 주먹밥 가져가”라고 소리쳤다. 중간고사가 시작된 이 학교 학생들은 한 손에는 책, 한 손에는 ‘엄마표 주먹밥’을 들고 교실로 향했다.

이날 충암중·고교 정문과 후문 앞에 모여 주먹밥을 건넨 10여명의 학부모들이 알음알음 모이기 시작한 건 지난주부터였다. 충암고 2학년 자녀를 둔 이아무개(45)씨는 “엄마들끼리 평소 연락이 거의 없었는데 교육청의 급식비리 발표가 나고 너무 화가 나 부랴부랴 모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충암고 1학년 아이를 두고 있는 강아무개(46)씨는 “주먹밥이나마 아이들에게 제대로 된 밥을 먹이고 싶어서 나오게 됐다”며 주먹밥을 뭉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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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주먹밥 만들기에 나선 학부모들은 전날 장을 보고 새벽 4시부터 밥을 지었다고 한다. 쌀 60㎏, 김가루 6㎏, 참기름 2통, 볶음김치를 재료로 준비한 학부모들은 아침 7시부터 학교 앞에 나와 주먹밥 800인분을 만들었다. 이들은 주먹밥을 건네며 “지금 막 만들었어. 따뜻해”, “주먹밥 먹고 화이팅”을 외치며 학생들을 격려했다. 교문 기둥 앞에는 ‘충암엄마들’ 이름으로 쓰인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이거 먹고 힘내자~~~’라는 팻말도 세웠다.

“급식비 안 냈으면 밥 먹지 말라”는 이 학교 교감의 발언이 알려진 뒤, 교육청 감사결과로 급식 회계부정까지 드러난 충암중·고교 급식 파문을 바라보는 학부모들의 심정은 착잡하다. 이씨는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든다. 아이가 학교에서 나오는 떡갈비 맛이 이상하다고 해서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도 학교에 항의했지만 교감 선생님은 책임을 영양사한테만 미루거나 ‘교육청에 신고하려면 신고해보라’는 식으로 나왔다”고 했다.

소식이 전해진 뒤, 총동문회와 학부모들은 지난 8일 ‘충암고교정상화비상대책위원회(충암고비대위)’를 꾸리고 학교 쪽의 급식 비위 조사에 직접 나섰다.

학부모들은 급식 파문 뒤 학교 쪽의 대응에 여전히 화를 가라앉히지 못하고 있다. 강씨는 “지난 토요일에도 학교가 학부모들에게 ‘충암학원 급식비 횡령, 좌파세력 교육청 감사관이 지어낸 소설이다’라는 내용의 단체 문자를 보냈다. 사과하고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모습이 아닌, 정치적으로 핑계대고 싸우려고만 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연 아이들이 뭘 배울지 답답하다”고 했다.

충암중·고교의 급식 파문은 전체 학교에 대한 급식비리 점검으로 이어지고 있다. 경찰청은 올해 말까지 전국적으로 학교 급식비리를 특별 단속하겠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은 “각 지방경찰청 지능범죄수사대의 ‘불량식품 전문수사반’과 일선 경찰서의 ‘불량 식품 상설 합동단속반’을 중심으로 교육당국과 협력해 급식비리 단속에 나서겠다”고 했다. 단속에 걸린 학교법인과 교직원에 대해서는 구속 수사를 원칙으로 엄정 대응하겠다는 뜻도 밝혔다.

노컷V