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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12일 07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0월 12일 07시 03분 KST

'날림 교과서'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 5

연합뉴스

정부 여당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최종 결정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바람대로 그의 임기 내인 2017학년도부터 전국의 중·고교에 국정 한국사 교과서가 도입된다. 역사와 민주주의를 뒤로 돌린 ‘박근혜 교과서’는 미래세대의 다양성과 상상력을 갉아먹은 괴물로 기록될지 모른다. 그러나 이 국정 교과서는 태어나기도 전부터 ‘날림 교과서’가 될 운명에 처했다는 우려가 나온다.

① 보수편향 교과서

상당수 학자 국정화 반대…뉴라이트 대거 참여할 듯

정부 여당은 보수와 진보, 중도 성향 학자들을 모두 참여시켜 이른바 ‘통합 교과서’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이념 성향을 불문하고 대부분의 역사 전공 교수와 교사들이 ‘집필 거부’ 의사를 강하게 내비치며 국정화 반대 선언에 동참한 점을 고려하면 ‘통합’ 교과서는 ‘말장난’에 가깝다. 국정 교과서 발행의 주무를 맡게 될 국사편찬위원회(국편) 관계자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국편이 만들어놓은 집필자 명단은 희망사항이고, 그분들이 실제로 집필에 참여해줄 것 같지는 않다”고 말했을 정도다.

2013년 교학사 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전례 없는 ‘오류 사태’는 교과서 집필 경력이 거의 없는 필진이 빚어낸 촌극에 가깝다. 하일식 연세대 사학과 교수는 11일 “애초에 교학사 교과서를 진두지휘하려던 교수가 개인사정으로 집필을 할 수 없게 됐다”며 “교학사 필자 대부분이 교과서 집필 경험이 거의 없던 사람들이었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이어 “당시 교학사 교과서는 겨우 1차 검정을 통과했다. 필자들이 경험이 별로 없어서인지 최초 수정기간 넉달 동안 교과서를 고치지도 않더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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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수준미달 교과서

집필기준 확 바뀐 ‘새로쓰기’…완성도 기대 어려워

교육부는 지난달 23일 총론·각론을 고시한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 역사과 집필 기준을 대거 수정했다. 원래 ‘5 대 5’ 비율이었던 근현대사 비중을 ‘6 대 4’로 줄였다. 최근 정부 여당에서는 근현대사 비중을 다시 25~30%까지 줄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더구나 개정 집필 기준에서는 사회사·경제사를 줄이고 정치사 중심으로 역사를 다시 기술하게 했다. 현행 검정 교과서를 짜깁기해 완성도를 높이는 것마저 여의치 않은 상황이라는 얘기다.

비상교육 고교 한국사 교과서 대표집필자인 도면회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는 “검정 교과서 집필자들은 우리나라 최고의 전문가들인데도 교과서에 실을 문장 한 줄을 쓰려고 논문 10편을 보기도 한다”고 말했다. 권위를 인정받는 학자·교사들한테도 ‘역사적 사실’에 부합한 교과서 서술 방식을 찾는 게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라는 설명이다.

③ 졸속 교과서

2년 준비한 교학사 교과서도 2261건 오류 발견

교육부는 2011년 8월11일 교과서 집필 기준과 검정 기준을 누리집에 올렸다. 이후 2013년 8월30일 검정 발표 때까지 2년이 걸렸고, 교학사 교과서도 2년의 준비기간을 거쳤다. 그런데도 결국 400쪽 교과서에서 수정해야 할 오류가 2261건에 이르렀다. 한 쪽마다 5.7건의 오류가 발생했다는 얘기다.

국사편찬위원회는 내년 10월까지 국정 교과서를 완성한다는 계획이다. 박근혜 정부가 12일 당장 국정화를 행정예고한다고 해도, 남은 기간은 최대 1년이다. ‘집필진 구성→연구·개발→집필→심의→수정·보완→출판’까지 모든 과정을 1년 안에 마쳐야 한다. 이미 언급한 대로 첫 단추인 집필진 구성부터 난항이 예고돼 있다. 집필진 상당수가 교학사 교과서 필진이나 학계 주류의 공인을 받지 못한 뉴라이트 계열 학자일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에서, 정부 주장대로 ‘오류 없는 교과서’를 만들기에 1년은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YTN

④ 밀실 교과서

깜깜이 편찬과정…외부 전문가 검증 기회 막혀

다른 조건이 다 충족된다고 해도 ‘국정 교과서 시스템’은 오류가 많을 수밖에 없는 발행 방식이다. 김육훈 역사교육연구소장은 “국정 교과서 제도와 좋은 교과서는 양립할 수 없는 형용모순”이라고 지적한다. 가장 큰 이유는 국정 교과서 개발 과정이 ‘비밀주의’를 원칙으로 하는 탓이다. 각종 이해관계자들의 요구와 비판 등 잡음을 차단하려 교과서 원고가 사전 유출되는 걸 막기 때문에 외부 전문가들에 의해 오류가 발견되고 수정될 가능성이 그만큼 제한된다. 김 소장은 “국정 교과서를 국가 기밀 다루듯 하는 행태와 편찬팀 내부에서 모든 문제를 매듭지으려는 작업 시스템 탓에 많은 오류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정부 검정에서 합격해야 하는데다 채택 경쟁까지 불가피한 검정 교과서에 비해, 시장 독점 구조인 국정 교과서의 ‘밀도’가 낮아질 수밖에 없다는 분석도 있다. 조한경 전국역사교사모임 회장은 “검정은 불합격할 수도 있기 때문에 합격을 하기 위해 긴장감을 가지고 만든다”며 “반면 국정은 심의에서 떨어질 염려도 없고 경쟁할 다른 교과서도 없으니 필자들의 긴장감이 떨어진다”고 말했다.

⑤ 오류 교과서

‘황당 오류’ 초등 국정교과서가 중·고 교과서의 미래?

박근혜 정부가 내놓을 국정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의 모습을 가늠해볼 수 있는 ‘반면교사’가 있다. 이번 2학기부터 초등학교 5학년 학생들이 사용하고 있는 <초등 5-2 사회(역사)> 교과서다.

박근혜 정부 들어 처음 만들어진 국정 역사 교과서로, 지난달 7일 역사 관련 단체 모임인 ‘역사교육연대회의’가 숱한 오류를 찾아내 이를 공개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보신각’ 사진 아래 ‘보신각종’ 설명이 딸려 있는 등 초보적인 오류도 여러 건 지적됐다. 역사단체들이 고려 태조 왕건을 신하처럼 묘사한 영정사진을 문제삼자, 교육부는 해명자료까지 내가며 “정부 표준영정이라 괜찮다”고 버텼다. 이 정부 표준영정은 이후 명백하게 남아 있는 역사적 사료(태조 왕건 동상)와 다르고, 영정 화가가 상상해서 그렸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문가 감수 결과가 나왔다.

조한경 회장은 “역사단체가 오류를 지적한 이후 학교 현장에 일부 정오표를 내려보냈으나 학생들이 정오표까지 제대로 공부하긴 힘들다”며 “지금 정부가 말도 안 되는 교과서 이념 논쟁을 할 때가 아니라, 이미 드러난 국정 교과서 오류부터 해결할 때”라고 꼬집었다.

경향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