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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07일 15시 18분 KST

'쉬운해고'의 나라 덴마크에는 있고, 한국에는 없는 것

“여기 고용부에서도 매해 20~25% 정도 직원들이 바뀌고 있다.”

마주 앉은 크리스티안 백 덴마크 고용부 노동시장정책 특별고문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그는 “덴마크는 다른 나라와 비교했을 때 고용안정성이 매우 낮다. 덴마크 노동시장은 일자리 이동이 활발하다는 게 특징임을 알아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 가장 안정된 직업으로 꼽히는 공무원마저 20~25%가 매년 물갈이되는 사회가 덴마크다. ‘쉬운 해고’의 나라를 제대로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쉬운 해고’라기보다 적극적 ‘이직’

9월15일 한국에서는 ‘노동시장 구조개선을 위한 타협안’이 노·사·정 합의로 통과됐다. 노동조합 조직률이 10%밖에 안 되고 그나마 이들 조직 노동자의 절반을 차지하는 한국노동조합총연맹(한국노총)만이 합의했는데도, 논의 테이블을 만든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는 이를 ‘대타협’이라 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논의 장소에 들어가지도 않았다.

핵심적 합의문 가운데 하나는 일반 해고였다. 그동안 노동자의 일자리를 뺏는 것은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있을 때에만 가능했는데, 이제 “근로계약 해지 등의 기준과 절차를 명확화”하자고 합의했다.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아니면 모두 불가능했던 해고를 기준과 절차를 만들어 회사가 이를 어떻게든 충족시키면 가능하게 만든 것이다.

긴박하지 않은 나라, 오후 4시30분이면 노동자 대부분이 퇴근하는 나라, 덴마크에서 한국의 대타협 소식을 들었다. 핵심 합의 내용인 근로계약 해지 기준·절차 명확화를 두고 한국 정부는 ‘공정한 해고’라고 불렀다. 그동안의 해고는 공정하지 않았다는 걸 말하는 것인가. 노동계는 이를 ‘쉬운 해고’라고 불렀다. 누군가의 밥그릇을 쉽게 뺏는 사회라는 게 존재하는지 궁금했다.

덴마크는 이른바 유연안정성 모델을 가진 대표적인 국가다. 유연안정성 모델이란 기업이 노동자 해고를 쉽게 할 수 있는 유연함을 가지되 튼튼한 사회복지망으로 안정성을 갖춘 사회 구성 방식을 말한다. 그런데도 덴마크의 고용률은 73.1%(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한국의 고용률 65.5%)가 목표로 삼고 있는 고용률 70%를 넘어선다. 한국의 노·사·정 합의문도 노동시장을 효율적으로 작동하게 하려면 ‘쉬운 해고’가 필요하다고 했다. 덴마크는 이를 쉬운 해고로 달성하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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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티안 백 덴마크 고용부 특별고문(왼쪽)과 비베 베스트 덴마크 고용부 국장이 덴마크의 사회 모델인 ‘유연안정성’(플렉시큐리티)을 그린 종이를 놓고 설명하고 있다.

코펜하겐 시내의 고풍스러운 건물에 자리잡은 덴마크 고용부 사무실에서 지난 9월18일 만난 크리스티안 백 특별고문은 가방에서 인쇄물을 꺼냈다. 제목은 ‘덴마크 유연안정성 트라이앵글’이었다. “덴마크는 해고도 쉽고 고용도 쉽다. 덴마크 유연안정성 모델은 노동시장을 유연하게만 하는 게 아니다. 사회적으로 안정성이 보장돼야 한다.” 그는 찬찬히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을 설명했다.

해고가 쉬운 노동시장의 유연성만 한쪽 꼭짓점으로 삐죽 튀어나오는 게 아니라 삼각형이 온전히 존재하는 형태의 모델이었다. 삼각형의 다른 꼭짓점은 실업보험이다. 노동자가 해고되면 보통 2년간 이전 급여의 70%를 실업급여로 받는다. 이전 급여가 적으면 최대 90%까지 받을 수 있다. 덴마크는 실업자에게 처음엔 7년간 실업급여를 주다가 4년으로 줄였고, 3년 전에 수급 기간을 2년으로 줄였다고 한다. 한국의 실업급여는 실업자에게 평균 월급의 50% 수준으로 90~240일만 지급한다.

또 다른 꼭짓점은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다. 실업급여를 주는 데서 그치지 않고 지역 잡센터에 등록해 취업을 하도록 적극 지원한다. 갈 만한 회사를 적극적으로 소개할 뿐 아니라 재교육도 지원한다. 크리스티안 백 특별고문은 “다른 나라는 실업급여 자체에 중점을 두지만, 덴마크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을 더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쉬운 해고’가 아니라, 실제로는 적극적인 복지 보호막 속에 ‘일자리 이동’인 셈이다. 모두가 일자리 이동이 잦은 것도 아니다. 크리스티안 백 특별고문은 고용부에서만 20년을 일했다고 했다.


실업급여 기간 줄면 노조 권한 세져

옆에서 듣던 비베 베스트 덴마크 고용부 국장은 고용부에서 2년을 일했다고 했다. 그 역시 정부 부처를 옮겨다녔지, 해고를 당한 적은 없다며 웃었다. 비베 베스트 국장은 “고용부 직원이 매해 25%씩 바뀌는 것은 그들이 저성과를 내서 해고를 당하는 게 아니라, 덴마크 사회의 전통이 한자리에서 오래 일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해고가 아닌 자신에게 더 맞는 자리를 찾아 이직하는 것으로, 공공부문에서 해고를 하는 일은 드물다”고 설명했다.

쉬운 해고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이를 보완하는 정책뿐만 아니라 이를 받아들이는 그 나라의 역사 등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쉬운 해고를 받아들일 수 있는 정책이 준비돼 있을까. 덴마크에서는 관련 정책이 끊임없이 수정됐다. 고용부 담당자들은 10월19일 덴마크 노동정책에 대한 새로운 보고서가 나온다고 했다. 유연안정성 모델의 근간을 흔들려는 것이 아니라, 경기 악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1시간에 이르는 인터뷰를 마치고 덴마크 고용부 건물을 나서자 앞에는 운하가 흐르고 있었다. 1천 년 역사를 가진 코펜하겐은 바다에 접한 항구도시이자 운하가 발달한 곳이다. 고용부에서 통역을 도와준 안리원씨는 “모두가 재취업을 쉽게 할 수 있어 해고에 대한 불안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덴마크 친구들 역시 직장을 구하는 게 쉽지 않다”고 했다. 운하의 물이 아무런 장애물 없이 바다로 흘러가진 않을 것이다.

지난 9월22일 비가 내리는 흐린 날씨 속에 덴마크노동자동맹(LO)을 찾았다. 물 흐르듯 유연안정성 모델이 작동되고 있다는 고용부의 이야기에 대해 노사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LO는 고용부와 달리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는 현대적인 건물에 입주해 있었다. 통유리창으로 된 회의실로 안내한 스테판 요한 앵거 유럽연합과 국제관계 담당 부서장은 “이전엔 우리도 오래된 건물에 있었지만 몇 년 전 이곳에 새 건물을 지어 옮겨왔다”고 소개했다. 덴마크 내 가장 큰 노동조합 상급단체 가운데 하나인 LO는 조합원이 100만 명에 이른다.

LO는 덴마크의 유연안정성 모델을 만드는 데 오랫동안 함께한 역사가 있다. 스테판 요한 앵거 부서장은 그 과정을 설명하면서 ‘균형’(밸런스)을 자주 입에 올렸다. “덴마크의 유연안정성은 실업급여와 더불어 사용자조직 등과의 집단 협의를 통해 균형을 이루고 있다.” LO는 실업급여 기간을 줄이는 등 정책을 만들 때 한쪽이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협의를 통한 합의 과정을 거친다고 했다.

반면 한국의 노·사·정 합의문은 ‘합의’보다 ‘협의’가 더 눈에 띈다. 노·사·정은 근로계약 해지 기준 명확화에 대해 “정부는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으며 노사와 충분한 협의를 거친다”로 정리했다. 협의만 거치면 합의는 없어도 된다.

LO는 실업급여 기간이 2년으로 줄어드는 등 안정성이 낮아지면 노조가 해고에 대해 좀더 강한 권한을 갖는 등 유연성을 제한한다고 했다. 해고 뒤 안정망이 축소되니, 예전보다 기업이 해고를 쉽게 하지 못하도록 보완책을 마련해 균형을 잡는 것이다. LO는 예전보다 해고가 조심스러워지고, 노조가 해고에 대해 강력한 권한을 갖게 됐다고 평가했다. 쉬운 해고의 나라에는 역설적으로 강력한 노동조합이 버티고 있었다.

스테판 요한 앵거 부서장은 “1970년대 덴마크에서도 균형이 깨질 뻔했다. 어떤 이들은 더 많은 임금을 받았지만 전체적으로 실업률이 높아져 사회문제가 된 적이 있다. 1990년대 들어 노조 내 각성이 있었다. 더 많은 임금보다 모든 사람들이 고용돼 있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역사적으로 배웠다”고 말했다.


덴마크 기업협회 2층에 놓인 ‘균형 벤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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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크리스텐센 덴마크기업인협회 수석 컨설턴트가 협회 건물 내 2층 상징물 ‘벤치’ 옆에 섰다. 2층의 이름은 ‘균형’이다. 덴마크기업인협회는 노사 간의 균형을 중요하게 여겨 이 벤치를 건물 내로 옮겨왔다.

코펜하겐에서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코펜하겐 중앙역 근처에 위치한 덴마크 최대 기업인협회(DI)였다. DI에는 1100여 개의 덴마크 기업이 가입해 있다. 기업인협회라면 ‘쉬운 해고’의 장점에 대해 설명을 들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국의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항상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말이다.

예상은 빗나갔다. DI 1층 로비에서 만난 토마스 크리스텐센 DI 수석 컨설턴트는 건물 2층 회의실로 이끌었다. 2층에 올라서자 눈에 띄는 것은 복도 한가운데에 설치된 벤치였다. 마치 시소처럼 균형을 잡거나 양쪽이 오르락내리락 움직일 수 있게 설치된 벤치였다. 토마스 크리스텐센 수석 컨설턴트는 실제 코펜하겐시에서 사용된 벤치를 뜯어온 것으로 2층의 이름을 상징하는 조형물이라고 했다. 2층의 이름은 ‘밸런스’(균형)였다.

“덴마크 기업에도 저성과자가 있겠지만 저성과를 이유로 쉽게 해고하지는 않는다. 신뢰를 기반으로 대화를 시작한다. 노조와도 좋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노동자와 노조, 기업 간의 관계를 무시한 채 해고하지 않는다. 우리는 서로에 대해 책임을 가지고 있다.”

책임과 신뢰는 그냥 나오지 않는다. 균형을 통해 유지된다. 노동자와 기업은 힘이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경계한다. 토마스 크리스텐센 수석 컨설턴트도 기업 내 저성과자는 해고돼야 한다는 자극적인 말은 한마디도 꺼내지 않았다. 이른바 ‘쉬운 해고’가 가능한 나라지만 경영계가 해고를 쉽게 해야 한다는 날선 요구안을 내놓지 않는 것이다.

그게 가능한 것은 힘의 균형을 가져온 법과 노동조합 때문이었다. 토마스 크리스텐센 수석 컨설턴트는 “회사가 함부로 해고할 수 없는 것은 노조가 이 문제를 노동법원으로 끌고 가면 기업이 벌금을 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노조가 세서 파업을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한다”고 했다.

반면 한국은 이미 한쪽으로 기울어진 벤치가 아닐까. 이번에 합의한 노·사·정 대화만 봐도, 10명의 참석자 가운데 노동계 대표는 한국노총뿐이었다. 경영계 쪽을 대표하는 이는 2명이었고, 정부 쪽에서만 3명이 나왔다. 노사정위원회 공익위원과 상임위원이 나머지 네 자리를 차지했다. 한국 노동계는 정부나 노사정위원회가 공정한 중재자라고 여기지 않는다. 이번 노·사·정 합의문에서도 쉬운 해고의 가능성은 열었지만, 기업이 부담해야 할 고용에 대한 책임은 자율에 맡겼다.

직원들의 이른 은퇴와 청년실업률의 관계에 대한 토마스 크리스텐센 수석 컨설턴트의 이야기도 솔깃했다. 1970년대 덴마크에서도 이른 은퇴가 많아지면 청년실업률이 낮아질 거라 기대한 적이 있는데, 몇 년간 지켜보고 분석한 결과 둘 사이에는 아무 관계가 없음을 알게 됐다는 것이다.


“유연성 하나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

한국의 한가위 명절, 부모와 자식 앞에 놓인 텔레비전에서 정부의 광고가 계속 흘러나왔다. 청년실업 해결을 위해 임금피크제, 쉬운 해고 등 노동시장 구조 개선에 장년 세대가 동참할 것을 요구하는 광고였다. 씁쓸한 이 광고는 크리스티안 백 특별고문의 당연한 말을 전하지 않는다. “덴마크에서도 유연안정성 모델을 개발하고 적용하는 데 많은 시간이 걸렸다. 유연한 노동시장으로 청년실업을 해결할 수 없고, 실업급여 등 사회복지 시스템과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이 뒷받침돼야 한다. 유연성 하나로 해결되는 것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