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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10월 07일 07시 21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10월 07일 07시 22분 KST

어떻게 아이폰 앱과 페이스북이 바다에서 표류하던 시리아 난민 50여 명의 목숨을 구했는가

Mohamed thought he and 50 other migrants were doomed to die -- until his phone caught a signal.
MOHAMED
Mohamed thought he and 50 other migrants were doomed to die -- until his phone caught a signal.

해가 뜨자, 소형 보트를 타고 지중해에 떠 있던 키 크고 마른 27세의 모하메드는 지독한 현실을 보았다. 사방에서 거친 파도가 치고 있었고, 육지는 보이지 않았다. 모하메드는 고국 시리아에서 온 다른 난민들 50여 명과 함께 25인승 고무 뗏목 배에 탄 채 몇 시간 째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다. 밤 동안 엔진은 꺼졌고, 그들은 표류하고 있었다.

모하메드(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쓰는 가명이다)는 전당포에 맡겨 현금을 얻으라고 제안하며 사촌이 선물한 스마트폰 두 개 중 하나를 꺼냈다. 모하메드는 방수를 위해 여러 겹의 지퍼백 속에 아이폰 5를 넣어두었다. 그는 기적을 보았다. 화면 왼쪽 위에 점이 몇 개 있었던 것이다. 파도에 휩쓸리면서도 전화는 신호를 잡고 있었다.

2015년 8월 말이었다. 배에 탄 다른 이주자들은 신호를 잡을 수 없었다. 이동 통신 사용 전략이 가져온 행운이었다. 다마스커스에 충전을 위한 작은 휴대용 배터리를 산 그는 시리아를 떠난 뒤 거쳐온 도시들 중 하나인 터키 이즈미르에서 이동 통신 회사 투르크셀의 인터넷 사용 시간을 샀다. 투르크셀 대리인은 투르크셀 전화는 바다 위라 하더라도 가까운 기지국에서 50km 거리에서도 작동한다고 허핑턴 포스트에 밝혔다.

신호를 처음 잡았을 때 모하메드는 황무지에서 떠다니는 기분이었다. 사실 그는 터키 본토에서 겨우 6.4km 거리였다.

데이터 송수신은 이주자들에겐 생명선이었다. 시리아 이주 위기를 저지하고 있는 구호원들이 아직 공식적으로 그렇게 분류하지는 않았지만, 현장에 있는 사람들에게 있어 테크놀로지는 음식과 따뜻한 옷과 맞먹는 필수품이다. 이주자들은 육지에 도착하고 나면 버스 정류장 사이의 길을 찾아가는데 전화가 필요하다고 구호원들은 말한다.

국제 구조 위원회의 언론 담당자 폴 도노호는 터키에서 그리스로 바다를 가로지르는 끔찍한 항해에서 살아남는데 있어 휴대 전화가 ‘본질적인’ 생존 도구가 되었다고 말한다. U.N. 인권 위원회에 의하면 2015년 한 해에만 3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항해 중 목숨을 잃었다(같은 연구에 의하면 약 50만 명의 이주자가 항해를 시도했다). 최근 레스보스 섬에 다녀온 도노호는 바다에서 표류하며 왓츠앱을 사용해 전화를 거는 이주자들의 전화가 그리스 해안 경비대에 쇄도한다고 한다.

카메라가 달린 전화가 있다는 것은 생사를 뒤바꿀 수 있는 일이다. 도노호가 면담한 어느 이주자는 물에서 해안 경비대에 전화를 걸었던 놀라운 이야기를 전했다. “경비대는 그에게 배에 타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게 사진을 찍어 보내 달라고 했다. 상호 교류가 가능하다고 다들 생각하고 있다.”

구출에 나선 앱들

밤을 보내고 난 모하메드는 더 용감하고 절박해졌다. 그는 오프라인으로도 작동하는 위치 확인 앱 맵스.미를 쓰자고 생각했다. 아이튠스에 이 앱의 리뷰를 쓴 사람들은 주로 신혼여행자들,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곳을 여행하는 사람들이지만, 현재 이 앱의 가장 큰 수혜자는 고국을 떠나는 시리아인들과 아프가니스탄인들일 것이다. 세계 어디에 있든 정확한 위도와 경도를 파악할 수 있는 이 앱의 기능은 모하메드가 만난 독일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난민들에게 아주 중요했다고 한다.

그 목요일 아침, 모하메드는 브라우저를 열었다. 그의 주위에서는 온통 사람들이 자고 있었고, 파도는 배의 벽을 때렸고 토사물 냄새가 진동했다. 모하메드는 어지러워지기 시작했다. 자신의 형을 제외하고는 배 안에 있었던 유일한 친구인 시리아인 소아과 의사 칼레드 앗이 그에게 주었던 멀미약의 약효가 떨어지고 있었다. 독일에서 허핑턴 포스트와 통화한 칼레드 앗은 모두가 심한 배멀미에 시달렸으며 대부분의 탑승객들이 탈수 현상으로 쓰러졌다고 말했다. 앗 자신도 심한 배멀미에 시달렸다. 그는 부모님과 자매들을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며 몇 번 울었던 것 외에는 이 항해를 자세하게 기억하지 못했다.

아래는 모하메드가 보내준 스크린샷을 이용해 허핑턴포스트가 당시의 대화를 재현한 GIF다.

geyser 1

 

모하메드의 계획은 극단적이었다.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고 그리스 경찰에 도움을 요청하고, 그게 안 되면 터키 경찰에 항복하자는 것이었다. 그는 감옥이 죽음보다는 낫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전화 번호를 찾으려고 브라우저를 켜자 로딩이 되지 않았다. 페이스북을 열어보니 다마스커스에 있을 때처럼 피드가 정상적으로 보였다. 그는 자기 담벼락에 자신이 터키와 그리스 사이 어딘가에서 오도가도 못하고 있다는 글만 올렸다. 다음 8분 동안 그는 맵스.미로 찾아낸 자기 위치를 회원 수가 약 18,000명인 시리아 이주자들만을 위한 개인 페이스북 그룹 담벼락에 끈질기게 공유했다. 그는 1분에 한 번씩 자기 담벼락에 SOS를 올렸다.

다마스커스에서 디제이였던 모하메드는 전세계에 친구들이 있었고, 그 중 일부는 잠에서 깨어 있었다. 몇 명은 그의 상태에 좋아요를 눌렀다. 곧 몇십 명이 댓글을 달기 시작했다. 주로 아랍어로 ‘알라 유술막’, 즉 ‘신이 당신의 평화를 지켜주시기를’이었다. 모하메드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원했다. 그는 자기가 현재 위치를 알릴 수 있으니, 제 3자가 그리스나 터키 당국에 전화를 걸면 구조가 이뤄질 거라 생각했다. 아침 8시 8분에 그는 미국에 사는 사촌 셋에게 개인 메시지를 보냈다. 현재 위치와 영어로 쓴 ‘Help’였다. 1분 후 그는 실제로 만난 적은 한 번 밖에 없지만 친절함에 깊은 인상을 받았던 다른 사촌에게 따로 메시지를 보냈다. 하와이에 사는 시리아 혼혈인 다냐 캐슬린이었다.

그는 페이스북의 전화 툴을 써보았는데, 연결음이 들려 깜짝 놀랐다. 다냐는 받지 않았다. 그때 하와이의 시간은 13시간 전인 목요일 저녁 7시였다. 그는 다냐와 워싱턴 D.C.에 사는 다냐의 오빠 오마르 야신을 포함한 사촌들에게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이 글에서 두 사촌의 이름은 가족의 신원을 보호하기 위해 이름과 가운데 이름만 사용했다.

“Heeeeeeeeeelp.” 모하메드가 그들에게 보낸 메시지였다. E가 10개 들어갔다.

깊은 보조개와 모랫빛 머리칼을 지닌 28세의 호리호리한 다냐는 하와이에서 사는 좋은 인생의 광고 모델 같은 모습이다. 모하메드가 메시지를 보내는 동안 그녀는 와이키키 중심가의 립 컬 부티크에서 비키니를 입어보고 있었다. 탈의실에서 문득 전화를 본 그녀는 갑자기 엄청나게 먼 곳에 있는 기분이 들었다.

refugies facebook

몇 분 후 그녀는 전화를 귀에 대고 번화한 사거리에 섰다. 모하메드가 받았다. 그의 목소리는 멀게 들렸다. 다냐는 나중에 ‘마치 영화에서 나오는 소리 같았다’고 술회했다. 그는 도와달라고 사정했다. 그녀는 최대한 많은 질문을 했다. 너 어디 있어? 배 가라앉고 있어? 도와달라고 내가 누구한테 전화하면 돼? 그녀는 모든 게 다 잘될 거라고 안심시켜주려 했다. 그들이 구해줄 것이다, 강해져라, 배에 타 있어라, 라고 그녀는 말했다. 어찌 해야 할지 몰랐지만 시간이 많지 않다는 걸 알았던 그녀는 최대한 빨리 전화를 끊었다.

모하메드는 계속해서 가장 좋은 방법이 무엇일지 고민했다. 그가 동원할 수 있는 것은 페이스북 친구들뿐인 것 같았다. 친구들이 자기가 장난을 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그때까지 그가 페이스북에 올린 것은 거의 웃긴 동영상이나 과장된 포즈를 취하고 찍은 자기 사진들이었다. 그는 자기가 진지하다는 걸 친구들에게 알려야 했다.

오전 8시 18분에 모하메드는 파도 치는 푸른 바다를 배경으로 얼굴 셀카를 찍어 페이스북에 올렸다. 모하메드는 자기와 마찬가지로 쫓기는 듯한 표정을 한 남녀들이 가득 타고 있는 배 사진도 올렸다. 이제 배의 난민들 중 상당수가 일어나 있었고,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그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그는 바샤르 아사드 대통령의 군대에 징병되는 위험한 운명을 피하기 위해 형과 함께 피난을 떠났다. 그는 어지럽고 정신이 몽롱했고, 자신의 운명은 어쨌거나 끝이라고 믿기 시작했다. 그가 사진과 함께 올린, 아랍어에서 번역된 메시지는 희망을 거의 담고 있지 않았다. “내가 물에 빠져 죽는다면 용서해줘.”

엄마라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아실 거야

3분 후, IMF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다 은퇴한 메리 베스 켈리는 ‘그 어떤 어머니도 받고 싶지 않은 문자’를 받았다. 이탈리아 포시타노의 집에서 허핑턴 포스트에 전화로 이야기한 내용이다. 시차 때문에 사촌들과 오빠는 도움이 되지 못했고, 다냐는 모하메드의 또래들로는 안 되겠다고 판단했다. 다냐는 “엄마!!! 도와줘요 전화해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IMF에서 31년 동안 건설을 감독했던 켈리는 러시아의 대규모 화재부터 10억 달러 부동산 프로젝트까지 전세계 규모의 위기를 관리해 왔다. 겁에 질린 목소리의 다냐와 통화하는 동안 불확실성에 대처하는 그녀의 기술이 고개를 들었다. 켈리와 남편 밥 – 다냐의 양아버지 – 은 구글을 써서 모하메드의 위치로 보았을 때 그리스의 치오스 섬이 가장 가까운 곳이라는 것을 찾아냈다. 그들이 작업하는 동안 다냐는 다시 모하메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까와는 목소리가 달라져 있었다. ‘마치 포기하려는 것처럼’ 단념한 듯한 먼 목소리였다. 아까에 비해 조리없이 이야기했다. 도와달라고 사정하긴 하지만, 마치 문자를 소리내어 읽는 것처럼 “도오오오오와줘어어, 제에에에바아알.”하고 말을 질질 끌었다. 다냐는 아직 방법은 모르지만 구해주겠다고 말했다. 그는 통화 후 그녀에게 새 위치를 보냈다.

밥은 몇 분 만에 치오스 해안 경비대 전화번호를 찾아냈다. 기적처럼 영어로 쓰여 있었다. 켈리가 건 전화를 받은 여성도 영어를 했다. 모하메드의 위치를 받아적은 그녀는 비슷한 요청을 받아본 사람만의 자신감을 가지고 켈리에게 치오스 경비대가 뗏목을 찾아낼 거라고 안심시켰다.

다냐가 마지막으로 요청한지 30분도 채 지나지 않아 치오스 해안 경비대는 켈리에게 뗏목을 발견했다고 연락했다. 기뻐하며 다냐는 사촌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네가 보인대 / 너를 찾았대. 널 구해줄 거래.” 모하메드의 페이스북 페이지에 그녀는 명확한 요청을 남겼다. “그리스 해안 경비대가 널 구조했대. 확인해 줘.” 모하메드는 대답이 없었다. 그는 배에서 구역질이 나서 잠에 들었다 깼다 하고 있었다.

다냐는 계속 메시지를 보냈다. 그리스 시간으로 아침 9시 40분에 모하메드는 다냐의 마지막 질문에 그녀가 듣고 싶지 않았던 답을 보냈다. “너 괜찮아?” “아니.” 그녀는 뭐가 잘못됐는지 알아내려 했지만 그가 예전에 했던 부탁만이 자꾸 다시 돌아왔다. “Heeelp.”

제정신이 아니게 된 다냐는 자기들이 전화할 때까지 기다리라는 해안 경비대 직원의 지시를 무시하고 직접 치오스에 전화를 걸었다. 직원은 다냐에게 경비대가 자신들의 배로는 파도를 감당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들은 귀환하는 중이었고, 더 튼튼한 새 배를 타고 나가 모하메드의 뗏목을 찾을 생각이었다.

그때쯤엔 모하메드는 육지를 볼 수 있었다. 희망이 있었다. 그는 수영하며 배를 육지로 끌고 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배에서 뛰어내렸다. 다른 승객들 몇 명도 그를 도우려 물에 뛰어들었다. 뗏목에 남은 사람들은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는 사람들이었다. 태어난 지 40일 된 아기, 모하메드의 친구인 의사 칼레드 앗 등이었다.

모하메드는 해안 경비대에게 육지에서 기다리라고 말했다고 한다. 모하메드는 경비대는 자신들이 죽어가는 것을 지켜 볼 사람들이라고 느꼈는데, 그들에게 도움을 청하기에는 그는 너무 자존심이 셌다. 육지가 가까워서 성공하리라는 확신이 들기도 했다. 한때 그들을 고문하던 파도와 바람은 이제 그들을 해안 쪽으로 밀며 도움을 주었다. 배에 탔던 사람들은 모두 모래를 밟았다.

상륙한 모하메드는 해안 경비대로부터 들어 그들이 치오스 북쪽으로 밀려 올라갔다는 걸 알게 되었다. 앗이 이 사실을 확인해 주었고, 모하메드가 송신한 마지막 위치와도 일치한다. 그들은 총 모양의 작은 무인도 파사스 섬에 도착한 것이었다. 이 때문에 치오스 해안 경비대 사무실은 허핑턴 포스트에 상륙에 대한 문서를 제공해줄 수 없었으나, 당시 근무 중이던 직원은 갓난아기 때문에 이들이 도착했던 이야기를 기억한다고 주장했다.

해안 경비대는 바꿔 타고 온 배로 모두를 치오스로 옮겨주었다고 모하메드는 말한다. 치오스에 도착한 그는 모텔 방을 잡았다. 비닐 속으로 스며든 물에 젖은 아이폰을 헤어드라이어로 말렸다. 금요일 저녁에 그는 다시 페이스북 메신저를 쓸 수 있었다. 그의 첫 난민 캠프에서 땅에 놓인 임시 매트리스에 누워 다냐에게 새 소식을 전했다. 그는 신기루처럼 보이는 해안을 향해 자신과 다른 승객들이 온 힘을 다해 갔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들은 팔을 노처럼 휘두르다 결국 온몸을 동원해 헤엄쳐 갔다. 모하메드는 페이스북이 그들을 살 수 있다는 희망과 연결해주어 그들을 살려준 것처럼 느껴진다. “우리는 손을 썼어. 지금 우리가 있는 곳 사진을 좀 보내줄게.” 모하메드가 보낸 메시지다.

시리아 난민들을 돕는 법: 국제 구조 위원회 홈페이지에서 기부, 자원 봉사 등으로 난민, 이주자, 구호 단체를 직접 돕는 법을 알아보세요

이주자와 난민들에게 유용한 앱들의 목록은 허핑턴 포스트의 가이드를 참조.

허핑턴포스트US의 Lost At Sea And Texting For Help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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