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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25일 10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9월 25일 10시 37분 KST

15살 은주 "저는 탈북자도 못되는 무국적자예요"

한겨레

“학교 다니는 게 소원이에요.”

24일 서울 노원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만난 은주(가명·15)가 말했다. 은주는 또래들이 모두 입는 교복을 자기만 입지 못하는 게 부끄럽다고 했다. 그런 손녀를 박현순(가명·70) 할머니가 안쓰러운 표정으로 쳐다봤다.

한창 배울 나이에 은주는 학교를 다니지 못한다. 통장도 만들지 못하고 아이돌 가수 콘서트 인터넷 예매도 못한다. 아파도 끙끙 앓을 뿐 병원 갈 엄두를 내지 못한다. 무국적 상태의 ‘불법체류자’이기 때문이다.

은주는 탈북자인 할머니와 단둘이 산다. 할머니는 먼저 북한을 탈출한 여섯 딸을 따라서 2000년 중국으로 탈북했다. 큰딸이 조선족과 결혼해 낳은 아이가 은주다. 은주 엄마는 2006년 자신의 두 동생과 함께 한국행을 시도하다 행방불명됐다. 아빠는 이듬해 사고로 숨졌다.

중국에서 어린 손녀를 맡아 키우던 할머니는 다른 두 딸마저 북한으로 잡혀가거나 행방불명되고, 한국행에 성공한 막내딸마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는 2012년 자신도 한국행을 결심했다.

은주를 남의 집에 맡겨놓고 라오스와 타이를 거쳐 어렵게 한국에 왔다. 박 할머니는 “핏덩이 같은 애를 남겨두고 한국으로 오는 내내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고 했다.

할머니는 지난해 7월 은주를 데려왔다. 탈북민 정착 교육시설인 하나원에서 받은 정착금 400만원 중 300만원을 브로커에게 줬다. 생때같은 손녀를 시커먼 배 밑바닥에 숨겨 밀입국시켰다.

일주일 항해 끝에 만난 두 사람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그때 울지 않으려고 최대한 밝게 웃기만 했어요.” 은주는 그때만 해도 할머니와 함께 웃으며 살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러나 지금, 은주의 ‘존재’는 한국 땅 어디에서도 인정받지 못한다. 탈북자도 아니고 중국인도 아닌 무국적자일 뿐이다. 할머니는 은주에게 한국 국적을 만들어주려고 구청과 경찰서, 출입국관리사무소까지 쫓아다녔지만 “부모가 모두 사망하거나 행방불명인 상태에서 조모만 있기 때문에 현행법상 국적 취득이 불가능하다”는 얘기만 들어야 했다. “내 손녀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려고 유전자검사까지 했어요. 그런데도 아무 소용이 없네요.”

은주는 최근 감기에 걸렸는지 열이 나고 말을 제대로 못 할 정도로 목이 아팠다. 약국에서는 꼭 병원에 가보랬지만, 주민등록이 돼 있지 않아 그저 앓고 있을 뿐이다. “지난봄에도 3주나 앓아누울 정도로 심하게 아팠지만 집에 누워만 있었다”고 했다.

스튜어디스도 되고 싶고 배우도 되고 싶다는 꿈 많은 은주는 정말 학교에 다니고 싶다. 서울북부하나센터의 도움으로 대안학교에서 공부하지만 검정고시를 볼 자격조차 없다. 은주는 “다른 아이들이 부럽기도 하고 나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하다”고 담담히 말했지만, 할머니는 “은주만큼은 꼭 잘 가르쳐서 행복하게 살게 해주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장복희 선문대 교수(법학)는 “탈북민 부모가 행방불명되거나 숨져 무국적 상태인 자녀를 조부모 등 친인척이 거두는 사례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했다.

은주는 곧 한국에서 두 번째 추석을 맞는다. 앞으로 한국 국민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지조차 알 수 없지만, 두 사람의 표정은 어둡지만은 않다.

“중국에 있을 때는 명절에 주인집 눈치가 보여서 더 싫었는데, 지금은 할머니와 같이 있는 것만으로도 정말 행복해요.” 은주가 웃었다. 그런 손녀를 보며 할머니가 말했다. “은주 없이 명절을 쇨 때는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어요. 다 잘될 거라고 믿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