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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21일 11시 51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9월 21일 12시 20분 KST

박근혜 대통령도 모르는 '청년희망펀드'의 미래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갑작스레 제안했던 '청년펀드' 가입 신청이 시작됐다. 박 대통령은 '1호 기부자'로 나서며 동참을 호소했지만, 여러 차원에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청와대는 박 대통령이 21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직후 "일시금 2000만원과 매월 월급의 20%를 청년희망펀드에 제1호로 기부"했다고 밝혔다.

특히 박 대통령은 펀드가입 신청서에 서명하면서 "청년 일자리 지원사업을 조속히 추진하고, 심각한 청년 일자리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서둘러 기부를 한다"며 공직사회와 일반 국민의 자발적 참여에 대한 기대감을 표시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연합뉴스 9월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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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21일 청와대에서 '청년희망펀드' 기부약정서에 서명하는 모습. ⓒ연합뉴스

박 대통령은 이날 회의 모두발언에서 "각계각층의 많은 분들이 참여해주면 감사하겠다"며 동참을 호소했다.

박 대통령은 "자승 총무원장과 이영훈 한기총 회장님을 비롯한 종교인 여러분과 박현주 회장을 비롯한 기업인 여러분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와 원유철 원내대표를 비롯한 국회의원 여러분 등" 기부를 약속한 인사들을 직접 언급하며 "진심으로 감사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추경호 국무조정실장이 이날 브리핑에서 발표한 바에 따르면, 이 청년펀드 기부를 받는 곳은 KEB하나은행, KB국민은행, 신한은행, 우리은행, 농협 등 5개 시중은행이다. KEB하나은행은 21일 정오부터 접수를 받기 시작했고, 나머지 은행들은 22일부터 신청을 받는다.


1. '자발적'이라고 쓰고 '강제적'이라고 읽는다?

청와대는 이 같은 소식을 전하며 이병기 비서실장을 비롯한 청와대 수석비서관들도 개인 자격으로 일정 금액을 펀드에 기부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국무총리실은 이날 보도자료에 담은 Q&A에서 "정부가 모금 금액 규모에 집착해서 강제적인 방법으로 진행할 계획은 결코 없다"며 "총리·장관들도 획일적인 방식으로 기부하지 않고, 자율적으로 각자 사정에 맞게 다양한 형태로 기부금을 전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정부 각 부처와 공공기관들에서는 '눈치보기'가 시작됐다는 소식이다.

정부의 '청년희망펀드'(가칭) 조성 계획 발표 이후 공직사회가 전전긍긍하고 있다. 고위 공무원과 공공기관장들은 '자발적 동참 대상'으로 공식 발표됐지만 사전에 관련 내용을 전해들은 사람을 찾기 힘들었다.

공직사회는 청년희망펀드가 사실상 강제성을 띠는 관제 모금이 될 것을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변칙적' 임금피크제라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왔다.

한 경제부처 고위 관계자는 "대통령과 총리, 장관들이 앞장서 동참하겠다는데 밑에서 어떻게 눈치를 안 볼 수 있냐"고 반문하며 "벌써 국장급 이상 공무원들은 의무적으로 동참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고 털어놨다. (머니투데이 9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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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일, 황교안 국무총리는 일시금 1000만원과 매달 월급의 10%를 '청년희망펀드'에 기부하겠다고 약속했다. ⓒ연합뉴스


2. 청년일자리 대책이 '금 모으기 운동' 이벤트인가

기부가 자발적이냐 아니냐보다 더 큰 문제는 사실 따로 있다. 정부가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일을 '기부'라는 시혜적인 방식으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을 내놓은 것 자체가 문제라는 의견들이 나온다. 정공법이 아니라는 얘기다.

언론들도 한 목소리로 이런 점들을 지적했다.

박성원 동아일보 논설위원은 18일 칼럼에서 "대통령은 자발적일지 모르지만 공무원과 기업들이 사실상 준조세 내는 격으로 팔을 비틀리다시피 해서 모은 돈을 갖고 관(官)이 시혜 베풀 듯 주물러서 무슨 일자리를 만들겠는가"라며 "지금 청년고용에 필요한 것은 이벤트 식의 전시행정이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조선일보와 경향신문, 한겨레 등도 기사와 사설에서 비슷한 점을 지적했다.

청년 일자리 문제의 근본 해결책은 경제 살리기에 있다. 경제가 회복되면 누가 시키지 않아도 기업들이 스스로 투자를 늘리고 인재 채용을 위해 동분서주하게 된다. 정부 예산이나 관제(官製) 펀드를 활용해 만들어내는 일자리는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지도 않을뿐더러 얼마나 지속될지도 의문이다. 정부 일자리 정책은 성장률을 높이는 데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춰야 한다. (조선일보 사설 9월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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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여당은 청년희망펀드가 제2의 ‘금모으기 운동’이 되기를 바라는 눈치인데, 이런 발상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시각도 있다.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때 금모으기 운동이 국가 위기 극복을 위한 국민 캠페인으로 부상한 것처럼 청년희망펀드에 대한 국민들 기부가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 여권의 기대인데, 일자리 창출이라는 정부의 기본적·일상적 책무는 이행하지 못한 채 국민의 땀과 노력만 이용해 일자리 대란을 넘기는 이벤트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경향신문 9월17일)

더욱 큰 문제는 펀드 조성 방식에 있다. 대통령부터 나서 월급을 떼어내야 할 만큼 청년실업 문제가 심각하다면, 응당 재정으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는 게 백번 옳다. (중략) 헌법이 ‘국가가 근로자의 고용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해야’ 한다고 못박은 건 정부의 의무와 책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청년희망펀드는 응당 ‘권리’로 존중돼야 할 청년고용을 사회지도층의 양보와 선의, 지원과 시혜로 왜곡·호도할 소지가 다분하다. (한겨레 사설 9월17일)

여기에 대한 정부의 대답은 두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1. 자율적으로 좋은 뜻을 모아보자는 취지일 뿐이다. 2. 정부는 최선을 다해 정책도 마련하고 있다.

  • 이번 제안은 노사정대타협을 계기로 사회지도층 등 각계가 청년일자리 문제 해결을 위해 뜻과 정성을 함께 모아보자는 취지이며, 기부는 희망하는 국민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것임.
  • 이와 별개로, 정부는 청년일자리 문제 해결을 국정의 최우선 과제로 두고 모든 정책수단(재정지원 일자리 사업, 노동개혁, 서비스산업 활성화 등)을 강구하여 총력을 기울여 나가고 있고, 앞으로도 이러한 정책적 노력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임. (국무총리실 보도자료 9월21일)


3. 돈을 어디에 어떻게 쓸지는 대통령도 모른다

대통령이 아무런 사전 논의 없이 이 같은 방안을 '깜짝 제안'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설령 기부금이 모인다 하더라도 이 돈을 누가 어디에 얼만큼, 또 어떻게 쓸 지에 대한 계획이 전혀 준비되어 있지 않은 상태다. 대통령이 선심 쓰듯 발표한 구상을 정부가 서둘러 수습하느라 바쁜 모양새다.

정부는 21일 "국민들의 기부금은 조만간 설립될 (가칭)‘청년희망재단’의 청년일자리 사업 지원에 사용될 예정"이라며 다음과 같은 구상을 밝혔다. 정부 스스로도 "사업계획은 재단설립 과정에서 좀 더 구체화될 예정"이라고 밝히고 있는 상황에서 일단 기부 신청부터 받는다는 얘기다.

  • 취업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구직자 및 불완전취업(아르바이트 등 비정규직으로 1년 이상 취업하고 있는) 청년, 학교 졸업 후 1년 이상 취업을 하고 있지 못한 자를 우선 지원
  • 청년의 취업 기회를 최대한 확대하는 방향으로 지원하되, 구직애로원인 해소, 민간일자리 창출 지원사업 등을 추진할 계획
  • 아울러, ‘청년지원사업 아이디어’ 공모를 통해, 실질적으로 청년이필요로 하는 사업을 발굴‧지원하면서, 사업계획은 재단설립 과정에서 좀 더 구체화될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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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의 '청년희망펀드' 기부 약정서. ⓒ연합뉴스

채지은 한국일보 기자는 18일 칼럼에서 "정부기관을 움직여 정책으로 큰 그림을 제시해야 할 대통령이 참모들과 사전 논의도 없이 깜짝쇼를 펼친 것부터 문제"라며 이렇게 지적했다.

대통령이 운을 뗀 마당이라 거국적 국민운동으로 확산될 조짐인데 아직 구체안이 나오지도 않은 데다 이렇게 모은 돈이 얼마나 효율적으로 쓰일지 의문이다. 청년 취업과 창업 시범사업과 청년을 고용한 기업에 대한 지원에 쓰일 예정이라지만 지금 있는 정부부처 산하 교육기관도 넘쳐난다. 청년들이 교육이 부족해서 취업을 못 하는가. 과연 기업들이 지원금을 받기 위해 고용을 늘릴까.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지도층의 의무)’ 실천이라는 용비어천가도 들리지만, 오히려 정부가 더 내놓을 대책은 없다고 시인한 것 아닌가 싶어 절망감마저 든다. (한국일보 9월18일)

연합뉴스에 따르면, '깜짝 제안'을 내놓은 당사자인 박근혜 대통령은 21일 참모들에게 이렇게 '주문'했다.


"청년 일자리 창출은 단순히 돈을 지원하는 것을 벗어나서

청년기술교육과 자격증 취득, 해외파견 근무 등 다양한 범위에서 논의되고 해결해나갈 수 있도록

후속조치를 논의해주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