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2015년 09월 13일 07시 0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9월 13일 07시 18분 KST

한국 난민 신청자가 공항에서 수개월씩 갇혀 있는 이유

gettyimagesbank

한국에서 난민 지위 인정을 기다리는 난민 신청자 중에서는 불안정한 신분에서 오는 어려움에 고통받는 이들이 적지 않다.

심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열악한 공항 송환대기실에 갇혀 지급받은 빵과 햄버거, 콜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외국인보호소에 수용돼 자유를 제약받으며 길게는 몇 년씩 기다리기도 한다.

한국 정부로부터 직업·의료·교육 관련 지원 등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불법체류 신세로까지 내몰리고, 모국에 두고 온 가족 걱정에 하루하루 마음을 졸이며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이들도 있다.

◇ 하루 두 끼를 햄버거나 빵, 콜라로…공항 송환대기실의 고통

난민법에 따르면 난민 신청 희망자들은 공항으로 국내에 입국하고서 바로 난민 신청을 할 수 있다.

문제는 결과가 나오기까지 행동의 자유를 박탈당한 채 길게는 몇 달씩 공항 내 송환대기실에 갇혀 지내야 한다는 점이다.

송환대기실은 입국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외국인들이 본국으로 돌려보내지기 전에 잠시 머무르는 장소다. 정부 당국이 아닌 항공사들이 비용을 내고 관리하는 곳이어서 체류자들에 대한 처우에 한계가 있다.

류은진 난민인권센터 사업팀장은 13일 "항공사 입장에서는 승객을 태우고 왔을 뿐인데 입국 과정에 문제가 생겨 몇 달씩 숙식까지 책임지는 것은 지나치다고 생각할 것"이라며 "그러다 보니 체류자 처우가 매우 열악하다"고 말했다.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송환대기실 체류자들은 하루 두 끼를 햄버거나 빵, 콜라로 받는다. 다양한 국적을 지닌 이들의 입맛을 모두 고려하기는 어렵다는 이유에서라고 한다. 장기간 이런 음식만 먹다 보면 으레 위장병이 생긴다.

대기실은 '잠깐 머무는 곳'의 개념이라 의료지원도 없는 탓에 병이 나도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는 점 역시 큰 문제라고 난민단체들은 지적한다.

234

20일 광화문 광장에서 난민인권센터가 세계난민의 날을 맞아 "누구든 난민이 될 수 있습니다"라고 적힌 피켓을 들고 일인시위를 하고 있다. 난민인권센터는 법무부가 난민신청자에 대한 적극적인 난민인정 태도를 보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올해 초 공항으로 입국해 난민 신청을 한 외국인 A씨는 송환대기실에서 머물다 지병인 척추성 결핵이 악화했다.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다 결국 난민인권센터의 도움으로 병원을 찾았지만 수술비가 무려 3천만원이 나왔다.

센터 측이 모금을 통해 수술비를 지원했지만 앞으로 치료비와 간병비를 계속 지출해야 하는 상황이어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 '감옥 아닌 감옥'에서 생활…외국인보호소 난민신청자들

124

시리아 '꼬마 난민' 아일란 쿠르디가 숨진 채 발견된 터키 보드룸 해안가에 조화가 놓여 있다.

국내 체류 자격이 없는 외국인들이 강제출국당하기 전까지 수용되는 외국인보호소에는 난민 신청자도 있다.

보호소 내 난민 신청자들은 애초 다른 비자로 입국해서는 난민 신청제도를 잘 모른 채 지내다 체류 기간을 넘긴 뒤 당국에 붙잡혀 와 보호소에 수용된 상태에서 난민 신청을 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름은 '보호소'이지만 안에 들어가면 신체의 자유를 박탈당하므로 보호소 수용은 사실상 '구금'이라는 것이 난민 관련 단체들의 견해다.

이곳에 수용된 난민 신청자들 역시 언제 심사 결과가 나올지 알 수 없고, 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소송을 내고 또다시 결과를 기다려야 하기 때문에 길게는 몇 년씩 장기 수용되기도 한다. 그에 따른 정신적 스트레스도 막대하다.

대한변호사협회가 2013년 말부터 작년 초까지 화성·청주외국인보호소와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보호과를 실태조사해 올 2월 발표한 보고서에는 보호소에서 생활하는 난민 신청자들이 겪는 어려움이 잘 드러나 있다.

이들 보호소 가운데는 예산이 없어 가족 단위 난민 신청자를 따로 수용할 공간조차 마련하지 못한 곳도 있었다. 가족이 함께 수용됐어도 남녀가 각기 다른 공간에서 생활해야 하고, 가족 간 면회조차 주 2회로 제한된 사례도 확인됐다.

인터넷 사용이 원칙적으로 금지돼 이메일 등으로 필요한 정보를 접할 수 없고, 모국에 있는 지인과 전화통화하려 해도 밤 10시 이후에는 규정상 공중전화를 쓸 수 없어 시차 때문에 통화하지 못하는 것도 문제라고 보고서는 지적했다.

몸이 아파 외부 병원 진료를 받으러 나갈 때는 수갑을 찰 수도 있다. 보호소 수용자들은 '도주 우려'가 있는 인물로 여겨지기에 진료 등을 이유로 외출하면 수갑이나 포승 등 보호장비를 사용할 수 있도록 관련법에 규정돼 있다.

난민 신청자 중에는 한국보다 따뜻한 나라에서 온 이들이 많아 겨울이 되면 추위에 떨어야 한다. 그러나 이들에게는 긴 팔 라운드 티셔츠와 슬리퍼 정도만 지급돼 겨울을 나기에 어려움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류은진 팀장은 "보호소에 가보면 면회실이 마치 교도소처럼 투명 유리로 막혀 있고 생활공간에는 쇠창살이 설치돼 있다"며 "난민 신청자들은 이런 환경에서 인신구속 상태를 장기간 겪으면서 우울증을 앓는 등 매우 힘들어한다"고 전했다.

◇ "쫓겨 다녀도 모국엔 절대 못 가"…불법체류 처지도 감내

124

시리아에서 건너와 인도적 체류자 자격으로 한국에 머무는 함단 알셰이크(23)씨가 13일 한국에서 난민을 보는 차가운 시선을 거둬달라며 "한국전쟁이 일어났던 1950년대를 돌이켜 봐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공항 송환대기실이나 외국인보호소 밖에 있는 이들도 많은 어려움을 겪는다. 난민 지위를 얻지 못해 결국 '국제 미아'가 된 불법체류자 신분, 모국에 두고 온 가족의 비보를 듣는 아픔, 생계 문제 등 고민은 다양하다.

난민인권센터에 따르면 아프리카 출신 B씨는 정부로부터 박해를 받다 한국으로 피신해서는 홀로 여기저기 헤맨 끝에 난민 신청을 냈다.

그러나 4년 후 법무부는 난민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통보했고, 이어 2년간 난민지위 인정 소송을 했으나 패소했다.

한국 정부로부터 출국을 명령받았지만, 고국으로 돌아가면 안전이 위태로울 게 뻔하다고 생각한 B씨는 차라리 불법체류자 신세로라도 한국에 남는 쪽이 낫겠다며 단속을 피해 이곳저곳을 옮겨 다니며 생활한다고 한다.

한국에서 일하다 모국의 상황 때문에 난민 신청자가 된 중동 출신 C씨는 고향에서 정부에 맞섰다가 고문당하고 처형되는 친구와 이웃, 가족을 생각하면 잠이 오지 않는다. 이미 그는 친구와 형, 여동생이 사망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C씨는 "이곳에서 가족의 죽음 소식을 듣는 것은 한국에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일상이 됐다"며 "이런 비참한 현실을 그저 지켜보면서 상황이 나아지기만 기다려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