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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9월 07일 06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9월 07일 06시 50분 KST

100년만의 부메랑? 중동 난민사태 잉태한 '사이크스-피코 협정'

middle east

중동 지도를 펼쳐보면 국경이 자를 대고 그은 것처럼 일직선인 곳이 눈에 띈다.

중동의 근현대사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국가 간 경계가 산맥이나 강과 같은 지형에 의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게 아니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수년째 내전의 늪에 헤어나지 못해 수백만 명의 난민을 배출하는 이라크와 시리아를 비롯해 레바논, 요르단 등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걸쳐진 국가의 국경이 특히 그렇다.

이런 인위적인 국경이 그어지게 된 결정적 사건이 지금부터 거의 100년 전인 1916년 5월 '사이크스-피코 협정'이다. 이 협정은 영국의 외교관 마크 사이크스와 프랑스 외교관 프랑수아 조르주 피코의 이름을 땄다.

둘은 이곳을 영토로 두었던 오스만튀르크 제국이 1차 세계대전에서 패색이 짙어지자, 연합군이 주축인 영국과 프랑스는 비밀리에 이 지역을 '나눠 먹기'하는 협상을 벌였다.

협상 결과 영국(B 구역)은 지중해와 요르단강 사이 해안 지역 일부와 지금의 이라크, 요르단을 가져가고, 프랑스(A 구역)는 이라크 북부 일부와 시리아, 레바논을 차지하기로 했다.

수니파와 시아파의 종파 갈등이나 부족성이 강한 아랍 무슬림의 역사·문화·종교적 요인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저 영국과 프랑스의 이해관계에 따라 말 그대로 국경이 '쭉 그어진' 탓이다. 비밀 협상이었던 탓에 정작 당사자인 아랍 세력은 배제됐다.

수니파가 살던 알레포가 시아파의 분파 알라위파가 지배하는 시리아와 묶였고, 수니파 중심 도시 모술도 시아파 대도시 바그다드와 한 나라가 됐다.

여기엔 1910년 중반 발견된 이라크와 쿠웨이트의 석유를 차지하려는 영국의 노림수가 크게 작용했다.

1917년 이 비밀 협정의 내용이 구소련의 볼셰비키에 의해 공개되자 "영국은 당황했고 아랍은 경악했다"고 했을 정도로 내용과 형식에 문제가 많았다.

수니파 무장조직 '이슬람국가'(IS)가 자칭 칼리파 국가 수립에 대한 지지를 모으려고 이에 근거해 나뉜 이라크와 시리아 국경을 무시하겠다고 선언한 데서 사이크스-피코 협정에 대한 아랍 민족의 역사적 반감을 읽을 수 있다.

이 협정을 전후한 영국의 '3중 플레이'가 중동을 지난 한 세기 동안 '세계의 화약고'로 만들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연합군이 오스만튀르크에 연패하던 1910년 초기, 당시 이슬람의 성지 메카를 지키던 하시미테 가문의 수장 후세인 이븐 알리에 영국 첩보장교 토머스 에드워드 로렌스가 접근한다.

영화 '아라비아의 로렌스'의 주인공이기도 한 그는 후세인에게 오스만튀르크에 맞서 내부에서 봉기한다면 과거 이슬람 제국의 영토를 되찾도록 해주겠다고 유인한다.

사이크스 피코 협정 1년 전인 1915년부터 1년간 이집트 주재 영국 고등판무관 헨리 맥마흔은 후세인에게 이런 내용의 서한을 10차례 전달하기도 했다.

영국을 철석같이 믿었던 아랍 세력이 이를 배반한 사이크스-피코 비밀 협정에 경악한 것은 당연했다.

결과적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아랍 세력을 꼬드겨 오스만튀르크를 붕괴하는 데 이용해 먹고 방대한 중동 땅은 자신들이 나눠먹기 한 셈이다.

맥마흔 서한에서 아랍민족에게 주기로 약속했던 팔레스타인 땅도 전쟁에서 유대인 자금이 필요했던 영국의 1917년 벨푸어 선언에 따라 유대인 차지가 된다.

지난해 1차 세계대전 종전 100주년 기사에 독일 슈피겔은 사이크스-피코 협정을 두고 "참으로 낯부끄럽고 뻔뻔한 땅따먹기"라면서 "현재 시리아 내전과 이라크의 극단주의 세력, 레바논의 종파·민족 충돌은 제국주의 열강이 멋대로 그은 국경선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슈피겔의 평가처럼 사이크스-피코 협약과 현재 시리아와 이라크 분쟁에 따른 난민 사태를 단순히 연결짓기엔 무리가 있다.

이들 국가는 지난 100년 가운데 상당 기간을 철권통치자가 지배해 자체 역량에 따른 정치 발전이 지체된데다 현대의 초강국 미국이 깊숙이 개입해 중동 판세를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이크스-피코 협정이 돌고 돌아 100년 뒤 현재 전유럽을 혼란에 빠뜨린 중동 난민 사태를 낳은 출발점이라는 점엔 이견을 달기 어렵다.

뉴욕타임스(NYT)는 유럽연합(EU)이 5월 추진했다가 무산된 '난민 분산수용 할당제'를 적용, 유럽 각국이 실제로 수용한 난민 수와 비교한 결과 프랑스, 영국이 기준에 못미친다고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공교롭게 중동 난민사태을 배태했다고 지목되는 사이크스-피코 협정의 두 당사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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