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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31일 07시 09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8월 31일 07시 09분 KST

"안익태, 일본 명절 '기미가요' 연주" 기록 공개

"1942년 나는 공무로 루마니아 부카레스트에 있었다. 명치절 아침 일본공사관 의식에 참석했다. 그곳에 기미가요 제창 때 피아노를 연주하는 흰 넥타이를 맨 청년이 있었다.…그가 당시 유럽 유학 중인 지휘자 겸 작곡가 안익태 군이라는 소개를 받았다."

일본 외교관 에하라 고이치가 1952년 일본의 음악잡지 '레코드 예술'에 기고한 글 '안익태 군의 편모'의 일부분이다.

안익태(1906~1965)의 행적을 두고 그동안 수차례 친일 논란이 있었지만, 그가 일본 명절에 기미가요를 연주했다는 내용을 담은 기록이 처음 공개됐다.

이 자료를 발굴한 이해영 한신대 국제관계학부 교수는 "안익태와 그의 후원자로 알려진 에하라와의 인연이 이때 시작된 것으로 보인다"며 "국제적으로 혼란스럽던 시기 안익태의 행적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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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문에는 "조선에서 태어난 안군이 월천악을 교향곡화한 것에 대해 약간 기이한 감이 없지 않았지만…"이라는 문구도 있다.

이는 안익태가 이날 일본의 대표적인 궁중아악인 월천악을 연주했다는 사실도 보여준다.

이 교수는 "다만, 기록 중 1942년이라는 연도는 에하라의 착오로, 전체적인 맥락으로 볼 때 안익태의 연주는 1941년 명치절(11월 3일)에 이뤄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에하라는 도쿄제국대 법대를 졸업하고 베를린 주재 만주국 공사관 참사관 등을 역임했다.

그는 또 안익태가 작곡한 '오케스트라와 혼성합창을 위한 교향적 환상곡 '만주국'을 작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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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익태 군의 편모'에는 안익태와 독일 근대음악의 거장이자 나치 정권에 협조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관계에 대한 언급도 들어가 있다.

"안군은 당시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지도를 받고 있었는데, 범접하기 어려운 노대가의 환심을 산 그의 수완에 우리도 놀랐다.…안군의 연주회장에도 슈트라우스 자신이 직접 참석해 곡의 영광된 출발을 기뻐해 줬다."

이 교수는 "슈트라우스가 나치 정권에 협력해 선전음악을 보급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익태가 나치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었을 수 있다"고 추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