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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9일 06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8월 29일 06시 56분 KST

토종 돌고래 '상괭이'가 '한강'에서 죽은 채 발견된 미스터리

부산아쿠아리움

[토요판] 커버스토리 / 한강 고래와 신곡 수중보

수도 서울을 양분하는, 대한민국 경제 발전의 신화를 표상하는 한강은 고인 물입니다. 신곡보와 잠실보가 한강을 콘크리트 어항처럼 가둬 사계절 내내 일정한 수심을 유지합니다. 고인 물은 썩게 마련입니다. 올해 한강에 ‘경보’ 수준으로 나타난 녹조는 앞으로도 해마다 발생할 가능성이 큽니다. 한강을 다시 흐르는 강으로, 자연성을 회복한 강으로 만드는 일은 우리에게 불가피한 선택인지도 모릅니다. 신곡보를 철거하면, 한강에서 상괭이와 만날 수 있을까요?

한국의 토종 돌고래 ‘상괭이’가 지난 4월과 5월 한강변에서 연이어 사체로 발견됐다. 민물에서 살지 않는 고래류의 동물이 이렇게 연달아 한강에서 발견된 건 이례적인 일이다. <한겨레>는 지난봄 한강에서 사체로 떠오른 상괭이 두마리가 숨진 원인을 추적해보았다. 발견 뒤 울산 고래연구소로 보내져 넉달 동안 냉동돼 있던 4월의 상괭이는 지난 17일 해부됐다. 18일 만난 5월의 상괭이는 아직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 냉동된 채로 보관돼 있었다.

해부된 4월의 상괭이에게서 죽음의 작은 실마리가 나왔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앞두고 유람선이 뜬 지금의 한강 경관을 만들기 위해 세워진 신곡수중보가 얽혀 있었다. 신곡보 아래로 서해 바다까지 이르는 한강 하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생태계가 살아 숨쉬는 곳이었다. 상괭이는 그 길을 따라 바다에서 강으로 거슬러 왔다. 먹이를 쫓다가, 길을 잃어서, 아니면 죽은 채 밀물에 떠밀려 온다. 고래에게 좁은 강은 그 자체로 위협일 수 있다. 살던 곳을 떠나와 길을 잃고 헤매던 고래는 결국 낯설고 막다른 곳에서 죽음에 이르렀다. 한국의 서해와 남해 연안에 주로 살며 멸종위기종으로 지정된 고래들이 한강까지 거슬러 와 전하려던 이야기는 무엇이었을까. 우리에게 한강은 어떤 의미의 공간일까. 우리는 고래와, 자연과 공존하며 살고 있는 걸까.

돌아가려는 상괭이 앞에 거대한 벽이 솟았다

“비닐에 싸인 채 냉동돼 있어서 알아보시기 어떨지 모르겠어요.”

18일 오전 서울 연희동 서대문자연사박물관. 황학빈 학예연구원을 따라 내려간 지하 2층 한쪽 구석 ‘기계실’에 음식점에서 쓰는 것 같은 커다란 냉장고가 있었다. 투명비닐에 담긴 채 얼어 있는 생체 표본들을 꺼내며 그가 말했다. “기증받거나 채집한 것들인데, 박제 처리를 해야 하는데 바로 안 한 것들이에요.” 냉장고 깊숙한 곳에서 약 1m 되는 어두운 회색 물체가 나타났다.

“상괭이예요. 여기 올 적부터 부패하고 찢어져서 그래요.”

머리 부분이 불그스름한 색으로 변해 있었다. 등 부분엔 신용카드 크기만큼 살을 도려낸 자국이 보였다. 서울대 수의학과 야생동물유전자원은행에서 종 다양성 연구를 위해 샘플을 채취해 간 것이다. 역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생선이 썩을 때 나는 비린내와 비슷한, 찌든 기름내였다. 지방질이 많은 고래류는 박제하면 원형 보존이 힘들어 대개 뼈만 전시한다고 그가 말했다. 박물관도 상괭이의 살을 분리해 뼈만 전시할 계획이다.

한강에서 상괭이들이 발견된 건 지난 4월15일과 5월3일의 일이었다. 상괭이는 바다에서 사는 쇠돌고래과의 돌고래다. 한국의 서·남해 연안에서 관찰되는데, 지난봄 18일 간격으로 두차례나 강에 나타난 것이다. 상괭이들은 발견 당시 이미 숨져 있었다. 4월15일의 상괭이는 한강 선유도 공원에서 150m 떨어진 강변에서, 5월3일의 상괭이는 성산대교 인근 강물에 떠 있는 채로 발견됐다. 21일 해양경찰 한강안전센터 관계자는 “4월15일 오전 8시께 119로 신고가 접수돼 출동했다. 인근 공사현장 직원이 검은 물체가 보여 신고했다고 들었다. 상괭이는 강변에 흙이 묻은 채 말라 있는 상태였다”고 했다. 5월의 상괭이는 발견 당시 이미 부패가 어느 정도 진행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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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한강에서 발견된 상괭이. 5월의 상괭이는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 냉동 보관 중이다.

바다에 사는 돌고래가 한강에서 잇따라 발견되자 사람들은 여러가지 추측을 해댔다. 서해안의 오염을 피해 강을 거슬러왔다는 주장에서부터 오염된 먹이를 먹은 것이란 이야기도 나왔다. 관련 법에 의해 포획이 금지된 상괭이를, 노량진수산시장에서 누군가 몰래 버린 것 아니냐는 설도 제기됐다. 고래가 사체로 발견되면 포획 흔적이 없는 자연사인 경우 최초 발견자가 소유권을 갖는다. 이들 두 상괭이는 발견자가 소유권을 포기해 서울시 한강사업본부가 사체를 넘겨받았다. 4월의 상괭이는 울산의 고래연구소로, 5월의 상괭이는 서울 서대문자연사박물관으로 보내졌다.

경성에서 개성까지 간 고래

한강에 나타난 고래에 관한 기록은 한양에 도성을 정한 조선시대부터 등장한다. 상괭이 같은 작은 돌고래부터 대형 고래까지 여러 번 나타났다. 태종실록은 조선 태종 5년인 1405년에 “비늘이 없고 색깔이 까맣고 코는 목 위에 있는 괴이한 물고기가 나타났다”고 전한다. 조선 광해군 때 이수광이 쓴 <지봉유설>에는 “가정 갑자년(1564년) 연간에 한강에 큰 물고기가 나타났다. 크기는 돼지만 하고 색상은 희며, 길이가 한 길이 넘는데 머리 뒤에 구멍이 있었다”고 돼 있다. 성체의 크기가 2m가량인, 정수리에 숨구멍이 있는 상괭이일 가능성이 높다.

1636년에는 고래 두마리가 한강에서 싸움을 벌였다. 조선의 선비 조경남(1570~1641)이 쓴 <속잡록> 4권을 보면 “고래 두마리가 서해로부터 고양의 압도(지금의 난지도)로 들어와 서로 싸웠는데, 한마리는 그 크기가 한량이 없었다. 그래서 서울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도살하여 들여와 기름을 짰다”고 쓰여 있다.

일제 때인 1922년 <동아일보>는 한강에 나타난 고래 기사를 연이어 실었다. 그해 9월18일 오전 한강철교 밑에서 발견된 고래는 길이 약 5.4m, 무게 7.5t의 대형 고래였다. 경성(서울)은 고래의 출현으로 들썩였다. 명동 등 두곳에서 돈을 받고 구경꾼을 불러모은 뒤 개성까지 옮겨가 순회 전시됐다. 고래 구경은 식민지 조선인들에게 신기한 체험이었고, 기발한 돈벌이를 성공시킨 수산회사에는 돈이 되었다. 이런 풍경이 편치 않은 이들도 있었다. 이 신문은 10월8일 “돈 버는 것도 좋기는 하지만 다 썩은 고래의 배에 소금을 섬으로 털어넣고는 길거리에 놓아 코를 찌르는 냄새는 지나가는 사람의 골칫거리”라며 일침을 가했다. 일본인 생선장사조합은 고래에 대해 ‘영혼 위령제’를 열었고 서울시장 격인 경성부윤의 대리가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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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오후 서울 한강 김포대교 북단 진입로에서 바라본 신곡수중보 고정보의 모습. 신곡보 하류의 수위가 가장 낮은 시점인 간조 때의 모습으로, 보 상류에서 하류로 떨어져 내린 물들이 하얀 포말을 일으키고 있다. 상괭이들은 하루 두번 신곡보가 물에 잠기는 밀물 때 보를 넘어 한강 상류까지 왔을 것으로 추정된다.

한강의 고래는 비일상적 사건이었고 장안의 화제가 되었다. 9년 전 한강 반포지구 서래섬 인근에서 상괭이의 사체가 발견된 것이 가장 최근의 일이다. 이 상괭이는 모형의 형태로 선유도 공원에 전시돼 있다. 상괭이는 어떻게 한강에 올라왔을까. 왜 바다에 돌아가지 않은 걸까.

상괭이는 전세계에서도 한국 연안에 많이 사는 토종 돌고래다. 서해와 남해에만 3만6000마리가량이 사는 것으로 추정된다. 상괭이 전문가인 박겸준 고래연구소 연구원은 18일 “상괭이는 특히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 먹이를 얻기 좋은 기수역을 좋아한다”며 “다른 강에선 이렇게 깊이 들어올 수가 없다. 한강이니까 서울에서 발견된 것”이라고 말했다. 한강 하구는 상괭이들이 선호할 만한 지역이다. 남한의 다른 강들과 달리 하굿둑이 없어 바닷물이 들어오는 유일한 강이다. 강이 바다와 만나는 하구가 북한과의 접경 지역이기 때문에 하굿둑 건설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1986년부터는 경기 고양, 김포 부근에 신곡보(신곡수중보)가 한강을 막고 있다. 즉, 한강으로 거슬러 오르는 고래는 서울의 마천루를 앞두고 나타난 거대한 ‘콘트리트 장벽’에 머리를 부딪힐 수밖에 없다. 일제 때 이후 대형 고래 출현 소식이 없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상괭이는 어떻게 서울 시내까지 올라왔을까. 왜 낯선 도심의 강 한가운데에서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숨진 걸까.

4월 죽은 상괭이는 질식사 아니었다

지난 17일 울산 고래연구소에서 해부된 한강 상괭이에서 작은 실마리가 나왔다. 올해 상반기에 그물에 걸리거나 좌초돼 죽은 상괭이 30여마리 중 가장 첫번째로 4월에 한강에 떠오른 상괭이가 검시대에 올랐다. 야생동물 부검교육차 전국의 수의과대학 학생들과 생물학과 연구원 등 30여명이 숨죽이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틀 전 냉동실에서 꺼내져 흐물흐물해진 상괭이의 사체를 이경리 건국대 수의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이 꼼꼼하게 살폈다. 몸길이는 97㎝, 외상은 없었다. “어린 새끼네요.” 이 연구원이 메스를 들고 피하지방을 벗겨내기 시작했다. 흉곽과 폐, 심장이 드러났다. 이 연구원이 폐를 만지작거렸다. 보통 그물에 걸리면 상괭이는 물밖으로 나오지 못해 질식사한다. 질식사라면 폐에 물이 차거나 출혈이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 상괭이의 폐는 깨끗했다. 간과 비장, 위, 소장과 대장을 차례로 꺼내 보았다. 위가 텅 비어 있었다. 반면 장에는 소화된 음식물이 남아 있었다. 이 연구원은 “이로 보아 죽기 하루 전부터 먹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의 해부가 말해주는 건 두가지였다. 첫째, 질식사는 아니라는 점. 이 말은 그물에 걸린 상괭이가 불법 유통되어 노량진수산시장에 갔다가 몰래 버려진 건 아니라는 뜻이다. 둘째는 죽기 하루 전부터 굶었다는 점. 이 연구원이 18일 말했다. “지금으로선 폐사 원인이 무엇이다 뚜렷이 말할 게 없을 정도로 이상 징후가 없어요. 민물인 강물에 있었다고 해서 숨졌다고 볼 근거도 없고요. 다른 원인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좌초로 인한 폐사가 아닐까요?”

한강의 상괭이들이 숨진 원인을 정확히 알 순 없었다. 확실한 건 이들이 모두 어린 개체들이고, 발견된 장소까지 스스로의 힘으로 이동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뿐이다.

그렇다면 상괭이는 어떻게 신곡보를 넘어 서울 한강까지 진입했을까? 한강은 서해의 다른 강들처럼 조수간만의 영향을 받는 감조하천이다. 서해 바닷물은 밀물 때 잠수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워커힐호텔이 있는 광장동 어귀까지 바닷물이 역류했다는 기록도 있다. 국립해양조사원에 문의해보니, 인천 앞바다의 밀물은 4시간 정도 지나면 한강의 신곡보가 있는 김포대교에 이른다고 했다. 보는 강의 수심을 일정하게 유지하기 위해 설치된 구조물인데, 강 하류에 설치된 신곡보 같은 경우 만조 때 밀려드는 밀물에 살짝 잠긴다는 것이다.

지난 14일 오후 신곡보 하류의 수위가 가장 낮은 시점인 간조 때에 맞춰 김포대교로 나가봤다. 전체 1007m 길이인 신곡보는 883m의 고정보와 수문이 달린 124m의 가동보로 이뤄져 있다. 고정보를 넘어 상류에서 하류로 떨어져 내린 물들이 하얀 포말을 일으켰다. 보 너머 멀리 강 한가운데에 넓게 드러난 섬에 새들이 앉아 있었다. 밀물 때 바닷물과 함께 밀려온 뻘이 보에 막혀 유속이 느려지면서 이곳에 쌓인 것이다. 새 한마리가 날개를 퍼덕이며 미끄럼틀을 타듯 보를 타고 내려갔다. 물고기가 오르내리기엔 보의 높이가 꽤 높아보였다. 신곡보 관리소의 직원은 “하루 두차례 밀물 때 보가 1m 이상 물에 잠기는데 상괭이가 넘어갔다면 아마도 그때였을 것”이라고 했다.

조수간만의 차가 가장 큰 대조기인 18일 오전 김포대교로 다시 나가보았다. 놀랍게도 한강은 ‘거꾸로’ 흐르고 있었다. 하류 쪽 수위가 올라가 표고 2.4m인 신곡보의 마루를 넘어 물이 역류하고 있었다. 하루 두차례 12시간마다 찾아오는 밀물을 따라 바닷물이 강으로 흘러들고 있는 것이다. 물이 역류하면서 보에 설치된 군 초소를 꼭짓점으로 삼각형의 물살이 만들어졌다. 강물은 온통 흙색이었다. 상괭이들이 신곡보를 넘어왔다면 이 흙탕물과 함께 왔을 것이다. 대형 고래는 넘어오지 못하지만 길이 1m 안팎의 상괭이라면 충분히 헤엄치고도 남을 깊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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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하나의 유력한 시나리오가 완성된다. 나이 어린 상괭이는 어떤 이유로 밀물을 따라 신곡보를 넘어 서울에 진입했다. 밀림처럼 다양한 한강 하구의 생태계는 신곡보를 넘어가면 사막이 되어버리고 만다. 하구에 풍성했던 숭어 등 먹을거리도 없다. 난생처음 맞닥뜨린 삭막한 환경에서 상괭이는 탈진해간다. 길을 잃는다. (전문가들은 길을 곧잘 잃고 그물에 걸리거나 좌초하는 돌고래들은 어린 새끼라고 말한다. 두 상괭이도 새끼였다.) 밀물 때가 지나고 썰물이 된다.

솟아오른 신곡보는 바다로 돌아가려는 상괭이를 가로막는 벽이 된다. 상괭이에게 신곡보는 알 수 없는 때에 돌출했다가 꺼져버리는 미스터리의 장벽이다. 서울환경운동연합 등 환경단체들은 5월의 상괭이가 발견된 직후 ‘신곡보를 철거해야 한다’는 취지의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들은 당시 상괭이들이 “밀물 때 한강 하구를 타고 신곡보를 넘어 들어왔다가 썰물 때 보를 넘어 돌아가지 못하고 끝내 죽은 것”이라 주장했다.

1980년대 한강종합개발 사업이 남긴 것

보 건설은 오늘날 한강의 모습을 만든 한강종합개발사업의 핵심이었다. ‘보를 세워 물그릇을 만든다’는 기본이념을 가진 4대강 사업의 전신이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사장이었을 때 현대건설이 한강종합개발 3공구(서강대교~원효대교) 공사에 참여했다. 한강종합개발은 88올림픽 개최 확정 1년 뒤인 1982년 9월에 시작돼 아시안게임 개최 직전인 1986년 9월 마무리됐다.

정부와 서울시는 신곡보와 함께 잠실대교 바로 아래에 잠실보(잠실수중보)를 세운 뒤 강바닥을 파내고 강 양안에 콘크리트를 발라 한강의 시내 구간을 상하류와 단절된 거대한 콘크리트 어항의 형상으로 만들었다. 사계절 내내 수심을 2.5m로 유지해 유람선을 띄우고 농업용수와 취수를 확보한다는 목적이었다.

덕분에 강변은 강물과 완전히 분리돼 생태적 연계성이 없는 배수로가 됐다. 잠실, 뚝섬, 신사·반포, 난지도 같은 하중도들은 모두 육지화되거나 골채 채취로 사라졌다. 물고기가 알을 낳는 모래톱과 물살이 빨라지는 여울, 시민들이 강수욕을 하던 백사장도 없어졌다. 강을 메워 만든 땅에 아파트를 지었고 강변에 쌓은 제방 위에는 올림픽대로를 놓았다.

한강종합개발사업에 9560억원이 쓰였다. 요즘 화폐 가치로 따지면 3조원이다. 예산의 3분의 2가량이 하수처리시설 건설에 쓰였지만, 모습이 바뀐 한강의 강물은 여전히 오염돼 있다. 시민들은 강변도로 밑으로 띄엄띄엄 뚫어놓은 ‘토끼굴’을 통해 강변 둔치의 공원을 드나든다. 한강의 접근성이 떨어졌다. 강수욕을 즐기던 시민들은 공원에서 강을 바라만 볼 뿐, 아무도 강물에 들어가려 하지 않는다. 강물엔 유람선만 떠다닌다. 한강은 두개의 수중보로 단절된 강이 됐다.

과거의 한강은 다채로운 모습이었다. 부산 해운대 해변에나 있는 드넓은 백사장이 있었고, 크고 작은 섬들 중에는 잠실섬, 밤섬처럼 사람이 사는 섬도 있었다. 한강 백사장은 지금의 동부이촌동에 있었는데, 30만명의 군중이 모일 정도로 광활했다. 당시엔 용산~성북 전철이 다니는 경원선 철길에서부터 한강 이남의 흑석동까지가 전부 백사장이었다. 강물은 흑석동과 노량진 쪽의 언덕에 붙어 가늘게 흘렀다. 1970~80년대 서울 도시계획에 관여했던 손정목 서울시립대 명예교수의 <서울 도시계획 이야기>를 보면 1956년 5월3일 한강 백사장에서 열린 야당의 정·부통령 후보 정견 발표에 청중이 30만명이 모였다고 쓰여 있다. 당시 서울 인구가 160만명이었고 유권자는 70만3000명이었으니, 전체 유권자의 절반에 가까운 인파가 모여든 것이다.

옛날 한강은 강폭도 들쭉날쭉했다. 한강 제방도로가 축조되기 전 한강은 홍수 때 강 너비가 1800~2000m에 이르렀다. 잠실은 섬이었고 석촌호수가 한강이었다. 이곳의 한강 너비는 3500m가 넘었다. 반면 갈수기엔 강폭이 50~100m 정도로 좁아졌다. 한강의 자연적인 모습은 원래 이런 형상이었다.

과거 한강엔 지금보다 더 많은 섬이 있었다. 뚝섬과 잠실도, 여의도, 난지도 같은 큰 섬을 비롯해 석도, 부리도, 저자도, 선유도 같은 10여개의 섬들이 있었다. 밤섬엔 60가구가 넘는 이들이 배 만드는 마을을 형성해 살고 있었다. 1968년 여의도 매립을 위한 자갈과 모래 등을 얻기 위해 폭파돼 해체됐지만 한때 한강의 해금강이라 불릴 만큼 백사장과 기암괴석의 절경이 아름다웠다. 지금의 밤섬은 시간이 지나며 스스로 복원된 것이다. 사람이 살던 밤섬의 마을이 지금도 남아 관광지가 됐더라면 어땠을까. 한강개발사업으로 셀 수 없는 경제적 가치가 사라진 것인지도 모른다.

물은 줄어들고 뻘은 쌓이고

신곡보와 잠실보는 한강 하구 모습도 바꿔 놓았다. 강은 하류로 갈수록 수위가 깊고 강물이 많아야 한다. 조석간만의 운동 속에서 바닷물과 강물이 원활히 섞여야 한다. 한강 하구인 김포시 하성면 전류리포구에서 어업을 하는 백성덕(55) 김포어촌계장은 “신곡보가 없을 땐 여름 홍수 때 쌓인 뻘들이 다 쓸려가곤 했다. 신곡보가 생긴 이후로는 보 바로 아래부터 차례로 뻘이 메워져서 지금은 강화도 앞바다까지 온통 뻘이다. 하구는 사실상 강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라고 했다. 신곡보가 상류의 물만 가둔 게 아니라 밀물의 흐름도 끊어놔 강물과 바닷물이 모두 제대로 흐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이런 한강의 다양한 모습을 복원하기 위해 신곡보 철거를 출발점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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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류를 앞둔 2014년 씨라이프 부산 아쿠아리움의 상괭이 바다와 동해의 모습.

강의 단절은 오염을 불러왔다. 지난 6월30일 잠실보 하류인 잠실대교~행주대교 구간에 조류경보가 발령됐다. 한강 서울 구간에 조류경보제가 시행된 2000년 이후 녹조경보가 발령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녹조경보가 발령되면서 한강의 지천 중 하나인 굴포천 인근 물고기들이 집단 폐사했다. 이달 18일엔 한강 전 구간에 녹조주의보가 발령됐다.

녹조가 발생한 데에는 여러 오염원과 적은 강수량 등의 원인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수중보가 한강 유속을 느리게 한 것이 중요한 원인으로 제기된다. 실제 잠실보 하류에 녹조경보가 발령됐던 지난 6월말 신곡보 하류엔 녹조가 발생하지 않았다. 신곡보가 서울시내에서 강으로 유입된 오염물질을 서해로 흘러가는 것을 막아 녹조에 영양분을 제공한 것이다. 이러다 보니 신곡보 하류로는 녹조가 번지지 않지만 상류로 거슬러 번지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물이 흐르면 녹조가 생길 수 없지만 흐르지 않는 물에 한번 자리잡은 녹조는 해마다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지난해 이후 한강의 유량이 줄어든 것도 영향을 미쳤다. 식수 등을 공급하기 위해 초당 124t의 물을 하류로 내려보내게 돼 있는 팔당댐은 지난 6월 중순 이후 방류량이 80t 안팎으로 떨어져 있다. 가뭄의 영향도 있고 팽창한 수도권에서 끌어쓰는 용수가 늘어난 탓도 있다. 상류에서 충분한 양의 물이 공급되지 못하면 한강에선 앞으로 여름마다 녹조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 잠실보의 상류와 하류 구간의 수질은 큰 차이가 있다. 대한하천학회의 ‘신곡수중보 철거 영향분석’ 보고서를 보면, 잠실보 상류의 구의(광진교) 지점과 잠실(잠실대교) 지점, 잠실보 하류인 뚝도(성수대교) 지점의 최근 20년간 연평균 수질을 비교한 결과 잠실보 하류지역이 상류보다 전 항목에서 수질이 나쁜 것으로 나타났다. 생물화학적 산소요구량(BOD) 역시 잠실보 상류가 하류에 견줘 기준 등급이 높게 나타나며 대부분 좋은 등급 이상을 보였다.

템스강에 나타난 북방병코고래

신곡보를 철거하면 한강으로 거슬러 온 상괭이가 건강하게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한강에 대형 고래가 헤엄쳐 온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2006년 1월 영국 런던 템스강에 고래가 출현한 사건이 있었다. 길이 약 5.8m에 무게 7t가량인 ‘북방병코고래’였다. 1913년 이후 처음으로 템스강에 나타난 고래는 웨스트민스터 대성당과 런던교 등 런던의 명소를 배경으로 헤엄쳐 다녔다. 썰물이 되자 수위가 낮아졌고 길을 잃은 고래는 강가에 여러번 좌초됐다. 정부는 결국 고래를 바다로 돌려보내기로 결정했고 집과 일터를 빠져나온 런던 시민 수천명이 템스강가로 몰려들었다. 전국으로 생중계되는 가운데 고래는 바지선에 실려 바다를 향해 나아갔지만 사흘 동안 아무것도 먹지 못한 상태였다. 고래는 런던 시민들에게 템스강과 자신들이 자연과 연결돼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고 결국 배 위에서 세상을 떠났다. 현재 이 고래의 골격은 영국 자연사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우리가 바라보는 한강은 과거의 한강이 아니다. 고래가 올라오고 백사장이 펼쳐지고 강수욕을 하던 곳이었다. 한강은 지금 신곡보와 잠실보 장벽에 둘러싸여 외부와 단절되어 있다. 한강 하구에서 어업을 하는 한 어부는 “이곳에선 철갑상어나 황복어 같은 물고기들이 잡힌다. 몸길이 1m가 넘는 고래도 종종 나타난다”고 했다. 상괭이들은 지금도 신곡보 하류까지 헤엄쳐 들어왔다 다시 바다로 돌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보를 없애고 한강의 자연성을 회복하는 일은 서울 시민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템스강에서 고래를 만난 런던 시민들이 기뻐하고 흥분하고 안타까워했던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즐거울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