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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6일 17시 39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8월 26일 17시 42분 KST

신경숙 사태 두달 "창비의 무성의한 태도 여전"

한겨레

신경숙 사태가 불거진 지 두 달여가 지났지만, 논란의 중심에 서 있는 출판사 창비가 여전히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천문학·오늘의 문예비평·황해문화·리얼리스트 공동 주최로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열린 '한국문학, 침묵의 카르텔을 넘어서' 토론회에서는 신경숙 사태와 한국문학의 방향을 되짚어보는 자리가 마련됐다.

이 자리에서 소영현 '21세기 문학' 편집위원은 "계간지 '창작과 비평'은 가을호에서 신경숙 논란을 사과했지만 창비의 성의 있는 답변을 기대했던 독자의 한 사람으로서 씁쓸함을 금할 길이 없었다"고 비판했다.

창비는 표절 의혹이 제기된 신경숙의 소설 '전설'이 수록된 단편집 '감자 먹는 사람들'을 발간한 출판사다.

창비는 '창작과 비평' 가을호를 통해 백영서 편집주간의 사과의 글과 함께 표절 사태 직후 진행된 두 번의 토론회 토론문(정은경·김대성) 및 한국작가회의 홈페이지 게시물(윤지관)을 실었다.

소 편집위원은 그러나 "세 편의 글은 개별 글의 내용과 무관하게 창비의 무성의한 태도를 그대로 반영하는 듯하다"며 "창비의 입장이 이 글들을 통해 밝혀질 수 없으며 대변될 수도 없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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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영현 '21세기 문학' 편집위원이 26일 오후 서울 종로구 책읽는사회문화재단에서 열린 '한국문학, 침묵의 카르텔을 넘어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이어 "문학장 쇄신에 대한 요청에 어떤 방식으로 응답이 필요한 시점임에도 여전히 표절 프레임 내부에서 답을 찾으려 하는 반응에 멈춰 있다는 점에서도 창비의 이번 대응이 아쉽다"고 강조했다.

한국사회에서 문학이 가지는 위상과 의미가 변하고 있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임태훈 '말과 활' 편집위원은 "취할 것을 택하기도 전에 우리 자신이 버림받고 있다"며 "대학에선 한국문학 재생산의 한 축인 국문과와 문예창작과가 사라지고 있고 다른 한 축인 출판시장은 4∼5년 뒤 더 큰 위기를 겪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임 편집위원은 "신경숙 사태는 이 와중에 터진 것이고, 우리는 사양산업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지켜보고 있다"면서 "근대문학의 태동과 함께 정의되고 재생산된 '작가' 개념은 오래지 않아 폐기될 것"이라고 말했다.

소 편집위원은 "이번 사태는 우리가 그간 문학이라 불렸던 것의 한 시대가 끝나고 있음의 시그널로서 받아들여야 할 것"이라며 '권력의 최후 저항선'이자 '자유의 수호자', '시대정신의 상징적 사표'로서의 작가가 사라지고 있음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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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절 의혹이 제기된 신경숙의 소설 '전설'이 수록된 단편집 '감자 먹는 사람들'. 이 단편집은 창비에서 발간되었다.

신경숙의 표절 문제는 문학계는 물론 사회적으로도 큰 논란을 일으켰지만, 이제는 세간의 기억에서 많이 잊힌 상태다.

토론자들은 그러나 신경숙 사태가 작가 개인적 잘못으로 축소돼 사회적·문학적 관심에서 멀어져 흐지부지 끝나는 것을 경계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로 강조했다.

박형준 '오늘의 문예비평' 편집위원은 "신경숙 표절이라는 문제를 단순히 작가 개인의 사적 도덕률의 위반이나 특정 작가의 일탈 문제로 치부해선 안 된다"며 "본질은 자기 성찰을 누락한 작가, 출판사, 비평가가 어떻게 균형감각을 잃고 자기 내부로 침전되고 매몰될 수 있는지 보여준 문화적 증례"라고 꼬집었다.

한편 이날 발간된 문학과지성사의 '문학과사회' 가을호는 강동호 동인을 비롯해 외부에서 황호덕, 김영찬, 소영현 평론가가 참여한 '표절 사태 이후의 한국문학' 대담을 게재했다.

대담에서는 표절 논란과 관련 특히 창비가 게재한 윤지관 평론가 글에 대한 비평적 언급이 잇따랐다. 윤지관은 해당 글에서 '전설'이 우국의 일부 구절을 차용했다고 해도 문학적 성취를 이뤄냈으므로 전체적으로 표절이라고 볼 수 없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이에 대해 김영찬은 윤지관의 글이 나름 합리적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전설'은 문학적 성취에 있어서 실패한 작품에 가깝다며 '성공한 표절은 표절이 아니라는' 이상한 결론에 동의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소영현과 강동호 또한 '성공한 표절=표절 아니다'는 등식은 이상한 논리라는 데 입장을 같이하면서 "신경숙 작가에 대한 변호를 누군가 했어야 하는데 동의하지만, 이보다 지금 필요한 건 표절을 넘어선 프레임 전환적 사고와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논리를 만드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황호덕은 윤지관의 글이 대중을 경시하는 '엘리티즘'으로 비칠 가능성을 언급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