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2015년 08월 23일 12시 4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8월 23일 12시 42분 KST

첫 여성 강간미수사건을 무죄로 이끈 두 명의 변호사

연합뉴스

"배심원의 판단을 존중해…본 재판부는 피고인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22일 새벽 3시10분 서울중앙지법 417호 법정. 재판장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김현정(33·변호사시험 1회) 국선전담변호사는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선고를 바로 알아듣지 못한 피고인 전모(45)씨도 그의 얼굴을 읽고 흐느끼기 시작했다.

법정 밖으로 나와서도 김 변호사의 눈물은 쉽게 멈추지 않았다. 15시간 마라톤 재판 끝에 나온 판결이었다. 무죄가 나올 거라 단정하지도 못했다. 재판을 준비한 지난 몇 달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전씨의 사건은 '여성 첫 강간미수 기소'란 꼬리표가 붙으며 재판 시작 전 이미 여론의 유죄 판결을 받았다. 언론은 '수면제', '노끈 결박', '여성의 성행위 시도'와 같은 선정성에 주목했다.

국선변호인들이 본 사건의 진짜 모습은 달랐다. "(기사만 보면) 이상하게 보일 수밖에 없죠. 그런데 하다 보니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한 게 아니구나 싶더라고요(김현정 변호사)." 그리고 배심원 9명은 만장일치로 무죄 판단을 내렸다.

계모의 학대를 견디다 못해 초등학교 중퇴 후 가족과 사회에서 버림받은 지적장애인이 누명을 벗는 순간이었다.

◇ 변호사님도 제 얼굴을 아세요?

사건은 3월 김정윤(40·사법연수원 35기) 국선전담변호사에게 왔다. '이별을 요구하는 내연남을 집으로 불러 수면유도제를 먹이고 끈으로 손발을 묶어 강간하려다 실패했다'는 죄였다. 다툼 끝에 내연남의 머리를 망치로 때린 혐의도 있었다.

김현정 변호사는 6월 합류했다. 사건이 언론에 다뤄졌다는 얘기는 전해들었다. 구속된 전씨를 처음 접견한 자리에서 전씨는 이렇게 물었다. "변호사님도 제 얼굴을 아세요? 사람들이 제가 여성 첫 강간범이라고 신문에 났다는데요…"

전씨의 사건이 구치소에 소문이 나며 동료 재소자들이 그를 따돌리고 괴롭혔다. 재소자들은 그에게 "남자를 강간한 그 여자냐"고 물었다. 전씨가 울고 있으면 "너 같은 게 울 자격이 있느냐"고 몰아세웠다.

전씨는 자신을 찾아온 변호인들에게 '재판을 해 봐야 계란으로 바위 치기 아니냐'고 했다. 다들 자신을 향해 손가락질하자 스스로 먼저 체념했다. 변호인들은 전씨의 그 말에 울컥했다. 그리고 그를 포기하지 않았다.

변호인들도 처음부터 전씨가 무죄란 판단이 선 건 아니었다. 그를 형사 고소한 내연남의 진술은 분명히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다. 그러나 강간미수를 한결같이 부인한 전씨도 구체적 정황에 대한 말이 계속 바뀌었다. 가벼운 지적장애 때문이었다.

변호인들은 시간이 날 때마다 전씨를 찾았다. 최소 1∼2주에 한 번씩은 각자 구치소 접견을 갔다. 한 달에 새로운 사건 30개를 맡는 국선변호인으로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 휴일에 가족까지 나서서 증거 수집

전씨는 내연남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폭행당하고서 찍은 사진도 집에 있다고 했다. 전씨가 망치를 휘두른 것이 정당방위였다는 증거로 확보할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의 주소를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다.

"중간에 내연남을 피하겠다고 이사하기도 했고…대략적인 길만 알아요. '어디 중학교쯤 가서 길을 걷다 보면 사각사각 소리가 난다'는 데 이건 정육점을 말하는 거고, '이걸 지나면 뭐가 있고 그 담에 큰 마트가 나오고…'"(김현정 변호사)

결국 두 변호사는 전씨의 흔적을 찾아 서울 관악구 어느 언덕 주택가를 3∼4차례나 직접 수소문했다. 휴일엔 김정윤 변호사의 가족이 동원됐다. 미용실에 들어가 초등학생 아들의 머리를 억지로 자르면서 그 시간 동안 전씨에 대해 물었다.

동네 슈퍼와 부동산을 통해 결국 전씨의 집주인과 연락이 닿았다. 그러나 집에 있던 전씨의 짐은 이미 치워진 상태였다. 구치소에 있는 그가 월세를 못 내자 보증금 100만원을 다 제한 뒤 새 사람을 들였다.

변호인들은 결국 있는 증거에 주력했다. 그리고 사건 현장 전씨의 혈흔에서 수면유도제 졸피뎀이 검출됐다는 감정 결과를 발견했다. 김현정 변호사는 그때 무죄 가능성을 직감했다. 강간할 의도였다면 스스로 수면제를 먹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또 내연남은 망치에 맞아 피가 났다고 했지만 정작 현장 혈흔 대부분은 그에게 맞은 전씨의 것이었다. 내연남의 상처도 전치 2주에 불과했다. 전씨가 성행위를 시도했다는 내연남의 진술 역시 수면제를 먹고 잠든 사람치고는 너무나 또렷했다.

◇ 누가 이 여성을 단죄할 수 있나

변호인들은 전씨의 흔적을 쫓으며 그가 철저히 혼자였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동네 사람들은 전씨가 주위에 사는 건 알았지만 아무 교류도 없었다. 변호인들이 만난 주민은 그 누구도 전씨와 직접 대화해본 일이 없었다.

키 151㎝ 몸무게 44㎏의 전씨는 계모의 폭언과 체벌에 시달리며 유년기를 보냈다. 초등학교도 중퇴했고 18세 때 홀로 상경해 식당에서 일했다. 손님과 결혼해 아들을 낳았지만 2001년 스스로 가출했다. 그에게 가족은 없었다.

내연남은 전씨가 유일하게 기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내연남의 폭력과 가학적 성행위 요구가 끔찍했지만 홀로 남는다는 생각에 그를 떠나지 못했다. 법정 증인으로 나온 의사는 이를 '양가감정'이라고 불렀다.

이는 중요한 열쇠였다. 고통을 받으면서도 관계에 집착한 전씨의 모순된 행동을 설명할 단서였기 때문이다. 검찰은 전씨가 과도한 집착 때문에 결국 수면제를 먹이고 강간을 시도했다는 논리를 폈다.

21∼22일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변호인들은 내연남 진술의 모순점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동시에 전씨를 배심원에게 이해시키려 노력했다. 지적장애를 앓는 소극적 성격의, 가족과 사회 모두와 단절된 여성의 입장에서 사건을 봐달라고 강조했다.

김현정 변호사는 최후 변론에서 전씨의 행위가 한치의 의심도 없이 증명됐느냐며 배심원들에게 말했다. "유죄가 선고되면 피고인은 한국 첫 여성 강간미수자가 됩니다…과연 내가 이 사람을 단죄할 수 있을지 생각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렇게 배심원 9명은 모두 무죄를 평결했다. 재판부도 이를 따랐다. 무죄란 사실을 깨닫자 전씨는 두 손에 얼굴을 파묻고 소리 내 울었다. 그러다 바닥에 엎드려 재판부를 향해 한참 동안 절을 했다. 전씨는 그날 아무도 없는 사회로 석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