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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1일 14시 1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8월 21일 21시 45분 KST

벼랑 끝 남북, '출구전략'은 대화로 풀 수 있을까

연합뉴스

1. 남과 북 모두 '전쟁'으로의 확전을 원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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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군의 서부전선 포격 도발 사건에 대응해 한미 양국 군이 연합작전체제를 가동한 것으로 확인된 21일 긴급 지원 태세를 갖추고 있는 경기도 동두천 지역의 한 미군부대에 다양한 화기들이 대기 하고 있다.

표면적으로 드러난 것만 보면, 이번 사태로 남과 북 모두 전쟁을 당장이라도 치를 것만 같아 보인다. 뉴스전문채널을 비롯해 종편과 통신사들이 계속해서 전달하고 있는 속보를 보고 있으면 한반도는 금방이라도 '전시상황'에 돌입할 것만 같다.

북한은 지난 20일 밤 중앙군사위 비상확대회의를 소집해 준전시상태를 선포했으며, 대북 확성기 방송을 중단하지 않을 경우 군사행동에 돌입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 정부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고 있고, 박근혜 대통령 역시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대처하라는 뜻을 밝혔다.

그러나 지난 20일 오후 남북 사이에서 벌어진 포격 상황을 면밀히 살펴보면, 당시 양측 모두 확전으로 번지는 것을 경계해 조심스럽게 대응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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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인포그래픽을 보자. 경기도 연천군 중면 '야산'에 떨어진 ①북한의 고사포로 이번 포격이 시작됐다. ②국군 대포병레이더가 포탄 궤적을 탐지했고 이후 ③북한이 직사포를 여러 차례 발사했다. 모두 DMZ 인근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포가 날아오는 '원점타격'을 얘기했지만, 실제로 원점을 찾지는 못했으며 ④북한의 군사분계선(MDL) 지점에 맞춰 정확하게 발사했다. 남과 북 모두 인명피해가 없었고 대물피해도 없었다. 인명피해가 실제로 발생했던 MB정부 당시 '연평도 포격'이나 '천안함 폭침', DJ정부 당시 벌어진 '연평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준의 충돌이었다. 남과 북 모두 강경한 언어를 쏟아내고 있지만, 실제로는 남북 양측 모두 인명피해가 없었다는 게 현재까지의 사실이다.

2. 김양건이 보낸 '서한'에는 '수습'이란 단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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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건 북한 노동당 대남비서

북한이 쏟아내는 언어는 원래 강경하다. 그러나 거친 언어들을 걷어내고 나면 북한이 하고 싶은 말을 읽을 수 있다.

21일 통일부에 따르면 북한은 20일 오후 4시 50분께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겸 대남비서 명의의 서한을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앞으로 보내왔다. 김 당 비서 역시 "대북 확성기 방송은 선전포고"라며 심리전이 중단되지 않을 경우 군사행동에 나설 수 있다고 말했지만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는 말을 덧붙였다. (8월21일, 연합뉴스)

김양건 북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이 한 "현 사태를 수습하고 관계개선의 출로를 열기 위해 노력할 의사가 있다"는 말에 주목해 보면 결국 북한 역시 확전을 원치 않음을 알 수 있다. 북한이 인민군에 실탄을 지급하거나 전군에 대비태세를 명령하는 것은 현 상황에 대한 대응인 동시에 체제 결속을 위한 행위로 봐야한다. 미국 전문가들 역시 북한의 이번 도발은 ①'한국정부'②'북한군'을 시험하려는 의도라고 파악하고 있다.

리처드 부시 브루킹스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이번 도발은 대북 확성기 방송 재개에 따른 대응 차원으로서, 온건한 수준의 긴장유발 행위"라며 "북한은 한국이 과연 어느정도 긴장의 사다리에 올라갈 수 있을 것인가, 즉 한국 정부와 군의 결의를 시험해보려는 의도가 커보인다"고 말했다. (8월21일. 연합뉴스)

3. 북한이 원하는 '대북방송 중단' 과연 들어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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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2004년 6월16일 서부전선 무력부대 오두산전망대에서 군인들이 대북선전용 대형확성기를 철거하는 모습.

북한이 요구하고 있는 것은 '대북방송 중단'이다. 북한은 1인 지도체제를 택하고 있기에 체제에 대해 비판에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다. 우리와는 결이 다르다. 그럼에도 한국 정부가 '대북방송'을 당장 중단하기 어려운 이유는 이번 대북방송 재개가 북한의 '지뢰도발'로 인한 대응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북한의 요구대로 대북방송을 조건없이 중단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남과 북 모두 자존심이 상하지 않는 모양새를 갖춘 출구전략을 짜야하지만, 남과 북 모두 강경한 상태다. 북한이 22일 오후 5시로 못박아 놓은 시한 역시 이번 사태를 어렵게 만들고 있다.

4. 결국 '대화' 만이 풀 수 있는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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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광화문 주변에서 대한민국어버이연합, 보수국민연합 등 보수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북한의 포격도발에 강력히 응징하자는 내용의 집회를 열고 김정은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 사진을 붙인 상징물을 태우고 있다.

한국 내 강경한 목소리들은 '원점타격' '강력한 응징' 등을 언급하며 북한의 요구에 굴복하지 말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실제로 '강경'과 '강경'이 맞부딪혔을 경우 타격을 입는 건 남북 모두일 수 밖에 없다. 이 시점에서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가 지난 8월17일 '한반도 신경제지도' 정책 기자회견에서 내놓은 이야기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북한의 비무장지대(DMZ) 지뢰 도발에 대해선 “용납할 수 없는 일”이라며 “그렇기 때문에 더욱 화해와 협력의 길을 찾아야 한다”면서 공식, 비공식 창구를 따지지 말고 북과 접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뢰 도발 이후 남북 화해 협력 주장이 국민 정서에 맞지 않을 수 있다’는 질문에 문 대표는 “박정희 대통령 시절 무장공비가 청와대에 들어왔지만 대화의 끈을 놓지 않고 7·4 남북공동성명을 발표했다”고 설명했다. (서울신문, 8월17일)

박근혜 대통령도 기억하고 있을 사건이다. '김신조 무장공비' 사건을 말이다. 두산백과에 따르면 1968년 1월 17일 23시 북한군 제124군 소속 김신조(金新朝)외 30명이 청와대 폭파와 요인 암살 및 주요 기관 시설을 파괴할 목적으로 남방한계선(南方限界線)을 넘어 침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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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1월, “박정희의 목을 따러 왔다”고 했던 북한 특수부대원 김신조가 투항한 뒤, 군경에 쫓기다 숨진 북 부대원 주검을 확인하고 있다. 한겨레출판 제공

박정희 전 대통령을 제거하기 위해 북한에서 내려보낸 무장공비 사건이었다. 이 사건이 실패한 후 북한은 그해 12월 울진 삼척에 또 다시 무장공비를 내려보내기도 했다. 이 사건 이후 남북은 전면전으로 갈 수도 있었지만, 박정희 정권은 그 대신 북한과의 대화를 끊임없이 시도했고 결국 1972년 '7·4남북공동성명'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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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7·4 남북공동성명 발표를 앞둔 5월31일 박성철 북한 부수상이 극비리에 방한해 박정희 前대통령을 예방한 사진이다. 박 대통령 왼편이 박 부수상, 오른편이 이후락 중앙정보부장.

72년 7월 4일 오전 10시 이후락 정보부장이 이문동 중앙정보부 강당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열었다. 7·4남북공동성명이었다. 같은 시간 북한의 박성철 부수상도 이를 발표했다. 온 국민이 충격과 감격에 휩싸였다. 이후락과 김영주가 합의한 이 성명은 7개 항으로 이뤄졌다. 핵심은 ‘자주·평화·민족대단결’이라는 조국통일의 3원칙이었다. (7월1일, 중앙일보)

이 같은 화해의 성명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8.15 경축사에서 시작됐고, 그 이후 32차례의 만남이 성사됐다.

1970년 박정희 정권은 8·15 경축사에서 “북괴가 무력에 의한 적화통일을 포기한다면, 인도적 견지와 통일기반 조성에 기여할 수 있는 현실적 방안을 제시할 용의가 있고 남과 북의 체제 중 어느 쪽이 더 국민의 복리를 증진시킬 수 있는지 선의의 경쟁을 하자”고 언급했다. 이후 남한과 북한은 1972년 8월까지 25차례에 걸친 적십자 예비회담을 개최했으며, 1972년 8월부터 1973년 7월까지 7차례의 본회담을 개최했다. 이 과정에서 7·4남북공동성명이 채택되고 정치문제를 다루기 위한 남북조절위원회가 만들어졌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

그러나 지금은 40여년 전 그때와 달리 남북간 대화가 단절돼 있다. 하용출 미국 워싱턴대 잭슨스쿨 한국학 석좌교수는 다음과 같이 지적한다.

남북간 대화는 지난 2008년 이후 사실상 중단 된 상태다. 이는 어느 모로 보나 비정상적이다. 이전 정권에서 시작된 이런 상황은 현 정권이 내세운 한반도신뢰프로세스 등 적극적 구호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큰 변화가 없다. 이런 상황의 지속은 남한은 물론 한반도 전체에 이익이 되지 않는다. 남한의 능동적 전략을 통해 이제 이런 상황을 끝낼 때가 되었다. (한국일보, 7월19일)

지금보다 더 중대한 사건들이 있었지만, 그런 위협과는 별개로 남북 사이에는 지속적인 대화가 있었다. 군사적 대응으로 '위기'를 '전쟁'으로 만들 수도 있었지만, 이를 '대화'와 '화해'로 바꾼 것이 바로 박정희 정권이었다. 정욱식 평화네트워크 대표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공교롭게도 한반도 위기는 박근혜 정부의 임기 반환점과 조우하고 있다. 동시에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도 시험대에 올랐다. 정부는 이 시점에 대북 대화 제의가 북한의 위협에 굴복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억제와 대화의 병행 전략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일촉즉발의 위기의 순간이 다가오고 있는 만큼, 이 원칙이 빛을 발할 시점인 것이다. 오히려 대화를 통해 위기 국면을 슬기롭게 수습하면 남북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오늘날의 사태에 대처해야 한다. (8월21일, 프레시안)

위기를 기회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에게서 배워야 할 시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