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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20일 16시 0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8월 20일 19시 27분 KST

그래, 딕펑스 스타일대로 하겠어

한겨레

팬으로서 오래 바라본다는 것은 어떤 걸까? 나는 딕펑스를 좋아한다. 2012년에 딕펑스가 <슈퍼스타K>에 나왔을 때 혁명이라고 생각했다. 걔들이 무슨 노래를 어떻게 불렀는지는 기억 안 난다. 내가 기억하는 건 느낌이다.

‘착한 똘끼’라고 할까? 착하다와 ‘돌아이 기질’을 나란히 쓰는 게 어색하지만, 걔들에게서 그걸 느꼈다. 밴드가 자유분방할 때 우리 사회는 주로 ‘거칠다’는 단어를 사용해왔다. 실제로 많은 밴드들이 자신들의 자유분방함을 거칠게 표현했다. 그건 옳기도 하고 그르기도 할 거다. 딕펑스는 예뻤다. 푸른 잔디 위의 공 같았다. 어디로 날아갈지 모르지만 보는 사람들을 신나게 했다. 그들에겐, 밴드란 응당 이래야 한다는 의식이 없었다.

어느 날 나는 딕펑스 보컬 김태현과 친구가 되었다. 물론 내가 더 늙었다. 케이블 채널에서 하던 프로그램에 태현이와 함께 나갔다. 8개월 정도 그렇게 같이 일했다. 태현이는 대기실에서 엄청 먹었다. 먹어도 늘 배가 고프다고 했다. “형, 좀 드실래요?” 태현이가 말할 때 먹고 싶었던 적도 있었지만 먹지 않았다. 하지만 태현이를 좋아할 수밖에 없었다. 저렇게 배고파하는 애가 음식을 건네다니.

작년에 <슈퍼스타K 6>를 보다가 태현이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너네는 어떻게 저런 데 나가서 2등 했냐?” 대단해 보였다. 태현이는 부끄럽게 웃는 이모티콘을 보냈다. 저렇게 엄청난 대회에 나가서 2등 했는데도 슈퍼스타가 되지 않은 게 한편으론 마음이 아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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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현이는 어릴 때 엄청 큰 집에 산 적이 있다고 한다. “형, 우리 집에 분수가 있었다니까요. 꼬마 아이가 오줌 싸는 분수 있잖아요.” 그래서 나는 스물아홉이나 된 성인을 애라고 부르나 보다.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닐 것이다. 태현이에겐 유약한 소년의 정서가 있다. 작년 겨울과 올봄 우리는 자주 술을 마셨다. 새벽 한시가 넘어도 태현이는 집에 가기 싫어했다.

“형, 조금 더 있다 가요. 집에 가면 너무 심심해요.” 하루는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나무가 세상을 퍽퍽 치는 것 같았다. 태현이가 탄 택시가 점점 작아지며 멀어졌다. 태현이는 그렇게 자신이 잊힐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을까? 태현이는, 딕펑스는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지는 못했다. 그들에겐 크고 작은 문제들이 있었다. 마치 내 슬픔이라도 되는 양 아팠다. 가끔 나는 태현이에게 말한다. “태현아, 나는 네가 로이 킴이나 정준영보다 멋있다고 생각해.” 로이 킴과 정준영 팬들에게는 죄송합니다. 그러나 형으로서 해줄 게 그런 말밖에 없어서….

7월, 마침내 딕펑스가 활동을 시작했다. 1년 만이다. 먼저 음원 ‘요즘 젊은것들’이 공개됐다. 2주 뒤에 음원 ‘한강에서 놀아요’가 공개됐다. 태현이가 말했다. “형, 이제야 사람 사는 것 같아요. 지난 1년은 거의 시체였어요. 아, 눈물 날 것 같아요.”

나도 그랬다. 나는 음악을 잘 모른다. 듣고 좋으면 좋아하는 정도다. ‘요즘 젊은것들’은 호불호가 갈린다. 리뷰와 댓글을 찾아보면 딕펑스 음악이 아닌 것 같다고 말한다. 일렉트로닉 사운드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랩 피처링도 있다. “밴드 연주는 달라진 게 없어요. 음원 순위를 의식하고 곡을 만든 건 사실이에요. 욕심냈어요. 딕펑스 노래가 음원 순위가 좋았던 적이 별로 없잖아요. 어떻게 해야 주목받을까, 생각을 했어요. 그런데 부정적인 반응이 많아요.”

지금은 밴드의 시대가 아니다. 기계적인 사운드, 정확히 말하면 변칙적인 사운드의 시대다. 밴드가 그걸 담아내는 게 쉽지 않다. 밴드는 아날로그적이다. 악기의 정직한 소리를 연주자가 자신의 스타일로 만들어낼 수는 있다. 그런데 그것이 요즘 유행과 맞는지를 생각하면, 부정적이다.

대한민국에 밴드의 시대는 없었다. 시나위나 부활 같은 훌륭한 밴드가 있었을 뿐이다. 나는 딕펑스가 밴드로서 이른바 ‘정신’을 지켜나가기를 바란다. 욕심이다. 태현이와 딕펑스가 밴드로서 성공하는 것보다 인기 있는 뮤지션으로 성공하는 게 더 좋은 일일 거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너는 김태현이고, 너네는 딕펑스야”라고 자신 있게 말해줄 수가 없다.

‘한강에서 놀아요’는 딕펑스답다. 내가 좋아하는 딕펑스다. 밝고 흥겹고 기분 좋아진다. 음원 사이트에 적힌 댓글을 봐도 ‘요즘 젊은것들’과는 반응이 다르다. 딕펑스를 기다리던 사람들이 원하는 것은 명확하다. 유행에 휩쓸리는 게 아니라 딕펑스다운 음악을 듣고 싶어 한다. 피아노의 밝고 신나는 음색은 태현이의 미성이 섞인 목소리와 어울린다. 드럼은 발랄한 기운을 하늘로 끌어올린다. 베이스는 중심을 잡는다. ‘한강에서 놀아요’를 들으면 한강에 놀러 가고 싶어진다. 내가 무엇보다 좋은 건 태현이가 노래를 부르며 행복해하는 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태현아, 네 목소리를 네가 들어봐. 다르지. 네가 좋아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건 남자들끼리 영 낯 뜨거워서 안 했지만, 이게 딕펑스지. 그들이 즐거워하는 음악, 그들이 재밌어서 환장할 것 같은 음악.

음원 순위가 부를 축적시켜 줄 순 있다. 그건 의심할 바 없이 중요하다. 그러나 누군가 한길을 오롯이 걸어갈 때, 지켜보는 사람이 있다. 그가 그 길을 오래 걸을 때 그를 지켜보는 사람 역시 많아진다. 나는 그 걸음의 힘을 믿는다. 위대한 밴드들은 그 길을 갔다.

“<슈퍼스타 K> 나가기 전엔 우리 마음대로 음악을 했어요. 만들고 싶은 걸 만들었고. 그런데 언젠가부터 다른 사람들을 신경 쓰기 시작했죠. 어쩔 수가 없어요. 우리만 있는 게 아니라, 우리를 위해 일해주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그리고 어찌됐건 유명해졌잖아요. 더 유명해져야 한다는 강박이 생기죠. 하지만 이제 확실해졌어요. 앞으론 우리 스타일대로 할 거예요.”

태현이에게 애라도 부르지 말아야겠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1년 동안 태현이는 많은 것을 했다는 생각이 든다. 팔이 안으로 굽는다. 그래서 김태현과 딕펑스를 응원한다. 팔이 안으로 굽지 않더라도, 딕펑스를 응원할 것이다. 뜬금없이 악기 들고나와서 연주하는 척만 하면 밴드가 되는 줄 아는 프로듀서도 있다. 나는 감히 이렇게 말하고 싶다. 그래도 밴드는 건드리지 말라고. 밴드를 하는 뮤지션들은 대중음악이 지닌 상업성을 일부분 단념한 자들이다. 소리를 소리 그대로 믿고 숭배하는 자들이다. 밴드의 사운드는 컴퓨터로 만들 수 없다. 밴드를 응원할 이유는 어느 시대에나 넘쳐난다. 음악이 여전히 마음의 소리라고 믿는 이들이 이 세상에 있는 한. 그러니까 영원히 형은 너를 응원한다, 태현아. 그리고 그저 멀리서 본 게 전부인 현우, 재흥, 가람아. 존재하는 것만으로 너희들은 의미가 있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