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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15일 06시 30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8월 15일 06시 30분 KST

[르포]마포대교에서 순찰차를 얻어 탔다

한겨레

▶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고 노래했습니다. 누구나 힘든 시간을 보낼 때가 있으니 비바람에 쉽게 낙오하지 말라는 충고일 겁니다. 전국의 ‘흔들리는 꽃’들은 요즘 마포대교를 많이 찾습니다. 마포대교의 무엇이 이들의 발길을 끄는 걸까요. 마포대교를 찾은 이들의 이야기와 사연을 들어보았습니다. 9월 서울시가 이곳을 재단장할 예정입니다.

연인을 잃은 청년은 벤치에 누워 울먹였네

자살. 거꾸로 쓰면 ‘살자’가 된다. 동전의 앞뒷면 같은 단어다. 순간적으로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 살자는 자살이 되고, 자살은 살자가 된다. 죽고 싶을 정도로 마음속이 복잡할 때 필요한 게 그래서 누군가의 관심 혹은 위로가 아닐까. 서울 한강의 마포대교는 그런 위로의 공간이다.

11일 오후 서울 지하철 마포역 4번 출구를 나왔다. 도심 아스팔트에서 올라오는 더운 기운이 훅하고 덮친다. 이날 최고기온이 섭씨 30도를 훌쩍 넘었다. 남쪽으로 5분을 걷자 마포대교가 모습을 드러냈다. 강바람이 조금씩 후텁지근한 기운을 몰아낸다. 너른 한강이 보인다. 석양을 머금은 여의도의 63빌딩, 강 건너 시원스레 펼쳐진 한강공원이 시야에 들어온다. 마음이 바람처럼 가벼워진다.

다리가 말을 건다

‘지금부터 나를 돌아보는 시간’. 마포대교 난간으로 눈을 돌리자 독특한 문구가 눈에 띈다. 난간에 설치된 광고물이 말을 걸며 보행자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구가 적힌 판은 거울로 돼 있다. 거울 앞으로 얼굴을 들이미니 피부가 검게 탄 남성의 얼굴이 나타난다. 내 모습이다. 아니, 나인데 좀 ‘낯선 나’다.

발걸음을 옮기자 또다른 문구가 말을 건넨다. ‘눈동자는 무슨 색인가요?’, ‘입술은 어떤 모양인가요?’ 다시 거울을 본다. 거울 속 남성은 내 아버지를 닮았다. 얼굴이 큼지막하고 눈이 크다. 광대뼈가 두툼하다. 머릿속에 아버지 어머니의 얼굴이 그려진다. 발걸음을 옮기면 문구는 속삭이듯 또다른 말을 건넨다.

‘너무 우울한/ 날이 있었는데/ 하필이면 그날/ 눈에 뭐가 들어갔거든/ 너무 아파서/ 울고불고 불편했는데/ 눈에 들어간/ 무언가가 빠지는 순간/ 너무 행복한 거야/ 행복은 참/사소한 거더라구.’

마포대교의 광고물은 2012년 9월 서울시와 삼성생명이 함께 기획해 세웠다. 다리에서 투신자살하는 이들을 막으려면 어떤 방법이 좋을까 고민한 결과물이다. 뛰어내리는 것을 물리적으로 막기보다 따뜻하게 말을 거는 데 초점을 맞췄다.

“아, 무서워!” 10대 소녀 두명이 난간 위로 살짝 몸을 내밀어 아래를 살펴보다 얼른 몸을 뒤로 뺐다. 기자가 난간 아래 받침돌을 밟고 올라서는 모습을 보고 따라해봤다가 무서워서 몸을 뺀 것이다. 강가에 나온 소녀들은 마냥 즐겁다. 까르르 웃고 이내 사라진다. 다리 위에서 한강 수면까지 거리는 11m 정도라고 한다. 그간 많은 사람들이 장난처럼, 혹은 심각하게 난간 위로 몸을 내밀어봤다가 뒤로 빼곤 했을 것이다.

본디 자살하려는 이들이 많이 찾은 다리는 한강대교였다. 1917년 한강에 처음 놓인 다리다. 상징적인 장소인 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았고 자살을 하려는 이들의 발길 또한 잦았다. 과거 신문 기사를 살펴보면, 일제강점기에는 다리 한켠에 ‘일촌대기’(一寸待己·잠깐만 참으시오)라고 적힌 팻말을 세우기도 했고, 1990년대에 다리 아치 구조물 양쪽 오르막 부분에 윤활유를 발라 시민들이 못 올라가게 만들었다.

2013년부터 한강대교 대신 마포대교(1970년 5월 준공)가 ‘자살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서울시 소방재난본부 자료를 보면, 2012년 31개 한강 다리에서의 자살 기도 148건 중 마포대교는 15건에 그쳤으나 2013년 93건(전체 220건), 2014년 184건(전체 396건)으로 크게 늘었다. 같은 시기 한강대교는 11명(2013년), 47명(2014년)에 그쳤다.

경찰 설명으로는 2013년 7월 있었던 성재기(남성연대 대표)씨 투신 사건이 사람들이 마포대교에 주목하도록 영향을 끼쳤다고 한다. 수영을 잘한다던 성씨가 이곳에서 투신해 뜻밖에 숨지자 대중에게 마포대교는 ‘성공률 높은 자살 장소’로 인식됐다는 것이다. 마포대교만의 독특한 시설물도 입소문을 타고 퍼지며 역설적으로 사람들의 발길을 끌어왔다.

강물로 떨어진다고 죽지 않을 거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아파트 5층 높이 추락과 비슷한 충격이 신체에 가해져 심장마비로 의식을 잃거나 장기가 손상될 수 있다고 경찰은 설명한다. 수심이 얕은 펄에 몸이 빠지면 물 위로 다시 떠오르지도 못한다.

11일 오후 서울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는 분주했다. 사람들이 마포대교를 많이 찾으면서 마포경찰서 용강지구대와 영등포경찰서 여의도지구대는 수시로 마포대교를 순찰한다. 마포에서 여의도 방향의 차도 옆 인도는 용강지구대에서, 여의도에서 마포 방향은 여의도지구대에서 맡는다. 다리 길이는 총 1.4㎞다.

“정말 별별 사람들이 다 있어요. 자살시도 신고가 들어와 출동하면 저더러 같이 죽자고 달려드는 사람도 있고, 따뜻한 말을 건네 설득하면 ‘네가 뭔데!’라고 쏘아붙이고, 멱살 잡히고 주먹질당하고 그러기도 해요.”

다크서클이 눈 밑으로 깊게 내려온 김치열(36) 순경이 웃으며 말했다. 김 순경은 지난해 4월 경찰이 됐는데 지금까지 용강지구대에 근무하며 휴대전화만 네번 망가졌다고 한다. 그만큼 몸을 던져 사람을 구할 일이 많았던 탓이다. 가끔은 마포대교 차도를 넘나들며 뛰어다니는 난동자들도 붙잡아야 한다. 김 순경은 이런 때 생명의 위협도 느낀다고 한다.

전국에서 10~20대가 새벽 2시까지

대화를 나누던 중 용강지구대에 절도 사건이 접수됐다. 김 순경은 순찰차를 타고 지구대를 떠났다. 기자는 혼자 마포대교로 다시 갔다. 한강은 잔잔했다. 잠자리 하나가 유유히 강 표면 위를 헤엄치듯 날았다. 강바람이 목덜미에 앉았다 금세 어딘가로 사라졌다. 다리를 걸어다니는 사람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마음이 여유로우면 보이는 게 달라진다. 난간과 벤치 등 다리 시설물 곳곳에 남겨진 사랑의 낙서들이 그제야 눈에 띈다.

‘준미♡민환 2015.6.25’, ‘이태민 나랑 결혼하자’, ‘구름님 제발 제게 남친을 내려주세요’ 등의 글귀를 살펴보며 웃음짓다 고개를 들어보니 다리를 오고 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젊은 연인들임을 눈치챘다. 마포대교 남단 해넘이 전망대 나무 벽에 무언가를 쓰고 있는 학생 넷이 눈에 들어왔다.

“인천에서 왔어요. 페이스북에서 봤어요. 서울 오면 꼭 와봐야 하는 곳이라고 해서.” 정다현(16)양이 수줍게 입을 뗐다. 몇마디 대화를 더 나눴다. “와보니 어때요?” “쓰레기가 많네요.” 아이들은 까르르 웃었다. “생각을 많이 해보게 되는 거 같아요. 다리에 쓰인 글귀도 그렇고 바람도 불고요.” 김도현(16)군이 말했다. 사인펜으로는 뭘 썼느냐고 물으니 “비밀이에요”라며 피식 웃는다.

자살을 연구한 국내 자료들을 보면, 자살률이 높은 집단은 70살 이상의 남성 노인이다. 70~79살 이상 남성은 인구 10만명당 자살률이 110.4명에 달한다. 40~49살이 47.2명인 것에 비해 크게 높다. 한데 마포대교에 찾아와 자살을 고민하는 이들은 주로 10대와 20대다.

용강지구대는 올해 1월부터 7월까지 271건의 마포대교 자살관련 사건을 처리했는데, 이 중 119건이 20대였고 59건이 10대였다. 60대 이상은 6명에 그쳤다. 주로 연애 문제나 학업 문제 등으로 자살기도를 한다는 게 용강지구대의 설명이다. 밤 12시부터 새벽 2시 사이에 자살기도가 가장 많다.

“부모님께 말하면 오히려 더 혼날 거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마포대교에 오면 더 관심을 끌 수 있고요. 저희도 나름 스트레스가 많다는 것을 어른들이 좀 알아주세요.” 다현양 옆에 조용히 서 있던 박윤진(16)양이 말했다. 아이들은 노을빛에 붉게 물들어가는 한강변을 바라보았다.

다시 용강지구대로 돌아왔다. 장재근 용강지구대 3팀장의 컴퓨터 화면에 사건일지가 빼곡히 떠 있다. 장 팀장은 출동했던 사건 하나하나의 내용들을 적어두었다. 그는 지난 4월 아침 경기도 수원의 고등학교 1학년 학생이 마포대교를 걸어다니는 것을 보았다. 모의고사를 봤는데 성적이 생각보다 안 나와 상심에 빠진 학생이었다.

“선생님이 ‘고1 때 성적이 고3 끝날 때까지 이어진다’고 그랬다는 거예요. 인터넷에 자살을 치면 마포대교가 바로 나와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다고 하는 거예요. 전국에서 자살하러 마포대교를 찾아와요.” 장 팀장은 학생의 부모에게 연락해 학생을 집으로 돌려보냈다.

장 팀장이 기록한 사연은 60건이 넘는다. 직장 선배의 괴롭힘에 시달려 자살을 생각한 간호사, 병환을 앓고 있는 아버지와 남동생의 뒷바라지를 하다 지쳐 자살을 생각한 30대 남성, 취업한 자식의 양복 한벌 마련해줄 수 없는 형편이 되어버린 어느 중년 남성의 자살기도 등 가슴 아픈 이야기들은 끝이 없다.

자살은 권리일까, 일탈일까. 쉽게 정리될 수 없는 질문이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인간은 신이 소환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고, 독일의 철학자 니체는 ‘자살을 생각하는 일은 커다란 위안이 된다’고 했다. 자살에 대해 어떤 입장에 서건, 다만 죽겠다는 사람에게 한번쯤은 그것이 정말 최선의 선택인지 묻도록 하는 게 필요하지 않을까.

마포대교의 ‘생명의 다리’ 설치물을 두고 혹자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비난한다. 자살을 막으려면 아예 자살을 못 하게 난간 높이를 더 키워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서울시는 다음달 기존 시설물들을 철거하고 난간의 높이를 현행 1.6m에서 2m까지 높일 예정이다. 삼성생명 쪽도 예산 문제 탓에 ‘생명의 다리’ 사업을 더이상 추진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마포대교에서 자살기도자가 많아진 것은 통계의 착시일 수 있다. ‘마포대교 자살 신고’가 모두 ‘자살기도자 수’로 분류돼 통계에 잡히지만, 실제 신고 대상자가 실제 자살을 위한 구체적인 행동을 했는지 아니면 주변 사람들에게 이상한 행동이 눈에 띄어 신고만 된 것인지 불분명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마포대교 자살기도자 184명 중 5명이 실제 숨졌고 올해(1~7월)에는 271명 중 2명이 숨졌다. 투신까지 한 사람은 16명에 그쳤다.

마포대교를 찾는 이들은 대체로 자살을 결단한 사람이라기보다 뭔가 하소연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라고 일선 경찰들은 말한다. “나 죽을 만큼 힘들어”라고 외마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이들에게 마포대교는 그 하소연을 받아주는 공간이다. 어딘가서 소리 없이 죽어버릴 수도 있는 사람들이 마포대교로 모이고 경찰은 이들을 발견하고 우리 사회는 대화를 건넨다.

“제가 죽든 말든 무슨 상관이에요?”

12일 밤 9시. 김 순경이 동료와 함께 마포대교 순찰을 나갔다. 순찰차에 기자도 얻어 탔다. 김 순경은 차를 시속 20㎞로 몰며 다리를 건너는 사람들을 유심히 지켜봤다. “둘이 붙었다.” “셋이네. 저 사람들은 아니야.” 김 순경이 동료와 바삐 대화를 주고받는다. 다리를 여럿이서 함께 건너는 이들은 자살을 하려는 이들과는 거리가 멀다고 한다. “혼자서 뭔가 목적 없이 걸어가는 듯한 사람들이 있어요. 그런 사람들은 위험해요.”

한 20대 여성이 혼자 터벅터벅 걸어가다 마포대교 중간에 놓인 ‘생명의 전화’ 부스 인근을 서성인다. 김 순경이 차에서 내려 여성에게 다가갔다. “그냥 왔어요.” 여성은 고개를 푹 숙였다. 표정이 어둡다. 김 순경은 여성에게 인근 역까지 차로 데려다주겠다고 제안했다. “짜증나요!” 여성은 거절했다. 하는 수 없이 김 순경은 여성으로부터 5m 남짓 뒤떨어져 여성이 다리를 온전히 건널 때까지 함께 산책하는 길을 택했다.

김 순경이 지구대로 돌아간 뒤, 기자만 마포대교에 남았다. 슬리퍼 한 짝만 신은 한 중년 남성이 맥주 한 캔을 들고 다리를 걸어가고 있었다. “어디 가냐”고 말을 건네자 남성은 “안 죽어요!”라고 쏘아붙인 뒤 사라졌다. 한 20대 초반의 남성이 벤치에 누워 있었다. 9개의 찌그러진 맥주캔이 벤치에 함께 누워 있었다. 그는 휴대전화로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그의 옆에 넌지시 앉았다.

“내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울먹) 살아서 뭐해. ×발. 희망고문 좀 하지 마요. 나 취했을 때 뛰어들면 즉사할 거예요.(울먹) 이렇게 몸도 못 가누는데 날 데리러 오는 사람도 없어.”

들릴 듯 말 듯한 어떤 이의 목소리를 겨우 전파를 잡아 전달하는 라디오처럼 청년의 말은 알아듣기 어려웠다. 한참 누군가와 웅얼거리는 목소리로 대화하던 청년이 기자의 존재를 눈치챘다.

“가세요!” 그가 소리쳤다. “도움이 필요한 게 있을까봐….” 청년은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을 것처럼 슬픈 눈으로 노려보았다. “제가 죽을까봐 그래요? 절 알아요? 제가 죽든 말든 댁이 무슨 상관이에요?”

청년이 왼팔 손목을 감추고 있던 소매를 걷어올렸다. 셀 수 없이 많은 자해의 흔적이 거미줄처럼 그어져 있었다. “저기, 상담이 필요하시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청년은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제가 상담을 안 받아봤을 거 같아요?”

결국 경찰이 출동했다. 청년의 삼촌이 자신의 조카가 마포대교에 있는 것 같다며 경찰에 신고했다고 한다. 청년은 경찰과 10여분간 실랑이를 벌이다가 경찰차에 탔다. 청년은 최근 여자친구로부터 이별을 통보받고 2개월 뒤 군대에 가야 하는 처지였다고 한다.

한 20대 청년이 슬프게 울었던 벤치는 얼마 안 가 스물한살 동갑내기 연인의 차지가 되었다. 젊은 연인은 두 손을 잡고 빛의 옷을 입은 한강의 야경을 한참 살펴보았다. 멀리 한강공원에서 누군가의 노랫소리가 바람을 타고 날아왔다. 아름다운 달빛 아래 누군가는 사랑의 꽃을 피우고 누군가는 외로움을 느꼈다. 마포대교의 무더운 여름밤이 깊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