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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14일 07시 08분 KST

히로시마의 생존자들 : 무슨 일이 있었는지 더 많은 사람이 알아야 한다

히로시마 원폭 70주년 기념일을 하루 앞둔 8월 5일, 나는 뜨거운 햇살을 받으며 원폭 생존자 사치코 마스노를 만나러 줄을 지어 늘어선 히로시마 시립 아파트 단지로 갔다.

벨을 누르자 우아한 여성이 문을 열고 미소로 나를 맞았다. “어서 오세요!” 마스노 본인이었다. 에너지가 넘치는 그녀가 86세라고 믿기 힘들었다. 아파트에 들어가 나는 그녀에게 자세한 이야기를 들었다.

마스노는 히로시마 현의 아와야무라 출신이다. 아와야무라는 이제 미요시 시로 이름이 바뀌었다. 폭격이 있었던 1945년에 그녀는 열다섯 살이었고 히로시마 덴테츠 가정학 여학교 학생이었다. 남성 지상철 기사들이 상당수 참전했기 때문에, 이 학교는 여성 기사들을 양성하려고 만들어졌다. 어렸을 때부터 기사가 되고 싶어했던 마스노는 사촌 토요코와 함께 이 학교에 들어갔다. 그녀는 차장으로 시작했고, 일손 부족 덕분에 다음 해에는 기사의 꿈을 이룰 수 있었다.

“나 혼자 전차를 운전하는 건 정말 재미있었어요. 온 세상이 내 것 같았죠.” 그녀가 추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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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4년 14세이던 사치코 마스노. 히로시마 덴테츠 가정학 여학교에 입학하기 직전.

전쟁이 끝나기 직전 그녀는 학교에 나가지 않고 밤낮으로 전차를 몰았다. 8월 6일에는 공습 때문에 정전이 되어서 마스노는 평소보다 늦은 시각인 새벽 2시에 일을 마쳤다. 잠이 오지 않아 그녀는 새벽 5시에 일어나 일하러 갈 준비를 하려던 차에 갑자기 복통을 느꼈다(그녀는 후에 맹장염 진단을 받았다). 그녀는 처음으로 일을 쉬기로 하고 다시 잠들었다.

세 시간 후인 아침 8시 15분, 마스노의 발바닥에서 타는 듯한 열기가 느껴졌다. 자며 뒤척이는 그녀 주위에 온갖 물건들이 다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직 잠이 덜 깬 그녀가 눈을 뜨자 기숙사 천장이 사라진 것이 보였다. 그녀의 위로 잔해들이 칠흑 같은 하늘을 날아다녔다. 그녀가 속옷차림으로 공공광장으로 가보자, 사람들이 폭탄이 떨어졌다고 외치는 것이 들렸다.

갑자기 발에서 열기가 느껴졌던 것이 다시 생각나 내려다 보니 그녀의 발바닥에 화상과 물집이 있었다. 패닉에 빠진 그녀는 발을 식히려고 쿄바시 강 쪽으로 걸어갔다. 근처의 길에 갔을 때 보인 광경에 그녀는 공포에 사로잡혔다.

“’괴물들이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는 폭탄이 사람을 그렇게 만들 수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들은 사람 같아 보이지 않았어요. 얼굴은 완전히 새까맸고, 손에서 피부가 벗겨지고 있었어요. ‘뜨거워, 뜨거워.’라고 하더군요.” 그녀가 회상한다.

충격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강까지 가서 발을 식혔다. 그녀 주위엔 온통 검은 연기가 자욱했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폭탄 투하 현장에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서 하늘의 버섯 구름을 보지는 못했다. 그녀가 연기 너머로 알아볼 수 있었던 유일한 것은 번져가는 불길이었다. 그녀는 심한 화상을 입은 사람들이 강으로 걸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 중 상당수는 강에서 다시 나오지 못했다.

어느 때인가 마스노는 등에 뜨뜻한 액체가 흐르는 느낌이 나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녀는 근처에 있는 사람에게 봐달라고 했다. “맙소사, 네 등이 피투성이야!” 그녀는 그 사람이 이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한다. 기숙사 유리창이 깨진 조각 114개가 등에 박혔다는 걸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등 속에 박혀 있는 조각들이 아직도 남아 있어서, 그녀는 지금까지도 침대에서 돌아누울 때 통증을 느낀다.

몸에 피가 철철 흘러 마스노의 발은 피투성이가 되었다. 그녀는 겁이 나서 제정신이 아니게 되었다. 고향 쪽으로 달리며 “엄마, 도와줘요!” 라고 비명을 질렀다.

마스노는 파괴된 기숙사로 돌아와 어리둥절한 채 바라보았다. 그녀는 교사가 “코니시 양, 그런 차림으로는 아무데도 못 가! 옷을 입어야지.”라고 했다고 회상한다. 마스노는 교복을 찾으러 달려갔다. 하지만 등이 너무 아파 셔츠를 입을 수 없었다. 그리고 대피하는 삼사십 명 틈에 끼었다. 그때 마스노는 막 기숙사로 돌아온 사촌 토요코를 다시 만났다. 토요코는 전차를 몰다가 폭격을 당해 머리에 상처가 나서 얼굴이 피투성이였다.

“토요코는 ’살아있었구나. 기뻐.’라고 했어요. 우린 껴안고 같이 울었어요. ‘하지만 많이 다쳤네. 버텨. 안전한 데로 데리고 가줄게.’라고 했어요. 내가 지금 살아있는 건 토요코 덕분이에요.”

그들은 마스노의 응급 치료를 받으려고 병원에 들렀다. 의료진은 핀셋으로 유리 조각을 제거하고 상처에 삼각 거즈를 댔다. 그들은 그 날 저녁까지 히로시마 시 남부의 칸다 신사에 있었다. 그 후에는 자매 학교인 지센 여학교로 옮겼다. 10km 떨어진 곳이었다. 교사 하나가 신사는 너무 가까워서 여기 머무르면 위험하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지센까지는 보통은 걸어서 두 시간 거리지만, 불탄 벌판을 맨발로 걷느라 그녀와 토요코는 여덟 시간 걸려 도착했다.

“나는 토요코의 어깨에 기대 한 발로 걸었어요. 화상을 입어 발이 아팠고, 등이 따끔따끔했어요. 5분 걸으니 더는 못 걷겠더군요, 난 토요코한테 계속 외쳤어요. ‘토요, 난 더 못 가겠어. 난 죽어도 괜찮지만, 너는 살아야지!’ 그리고 거리의 시체 더미 옆에 쓰러졌어요. 하지만 토요는 나를 야단쳤어요. ‘기운차려! 계속 노력해야지.’ 그러면서 계속 나를 끌었어요. 토요코가 없었으면 나는 못 살았을 거예요. 나는 쓰러졌을 때 아직 살아있던 사람들이 ‘제발 물을 줘.’라고 했던 게 기억나요. 나는 ‘나도 없어요.’라고 대답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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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치코 마스노, 2015년 8월 5일

그들은 한밤중에 지센 여학교에 도착했다. 그들은 마스노를 강당에 눕혔다. 그녀는 쇠약했고 통증을 느끼고 있었다. 8월 14일에 그녀의 가족이 와서 그녀를 고향으로 데려갔다. 다음 날 일본은 항복했다. 마스노의 가족은 전쟁이 끝났다는 기쁨과 안도감이 눈물을 흘렸다.

마스노는 집에서 두 달 동안 지내며 계속된 치료와 어머니의 세심한 간호 덕택에 꾸준히 회복했다. 10월에 그녀는 다시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기대에 히로시마로 돌아갔다. 그러나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학교가 9월에 문을 닫았다는 소식이었다. 알아보고 다닌 결과 그녀는 히로시마에서 차장 자리를 구할 수 있었다.

마스노는 다시 일하게 되었지만, 그녀로선 다친 것을 받아들이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종전 3년 후에 지금은 토요보라 불리는 토요보세키 공장에서 일했던 것을 떠올린다. 여성 기숙사에 사는 시골에서 온 여성들이 1천 명이 넘었다. 그들 중 아무도 히로시마에서 일어난 일을 자세하게는 몰랐지만, 그녀를 수상쩍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기숙사 목욕탕에 가면 내 등의 흉터가 시선을 끌었어요. 그들은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라고 물었죠.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다쳤다고 대답했더니, 내 옆에 있던 사람이 ‘원자폭탄? 서둘러, 저리 가, 쟤한테서 방사능 옮을 거야!’라고 하더군요. 목욕탕 안에 있던 스무 명이 순식간에 다 나갔어요. 난 혼자 목욕탕에 남아 울기 시작했죠. 나중에 탈의실에 서서 내 흉터투성이 등을 보면서 나는 진지하게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내 등이 이런 건 내 잘못이 아니야. 나는 원자폭탄 때문에 다쳤지만, 난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어.’”

그간 겪었던 감정적, 육체적 흉터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자신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싶어한다. 나는 그녀에게 과거의 힘들었던 경험을 이야기하는 게 조금이라도 꺼려지는지 물었다.

“옛날 이야기하는 건 아무 문제 없어요. 나는 이걸 아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더 좋다고 생각해요. 나는 토요코의 재능있는 손주가 이 이야기를 만화로 만들고 있어서 기뻐요.” 그녀는 미소지으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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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라이노 카나분의 웹툰 ‘히로시마를 살아낸 소녀’

사수라이노 카나분(돌아다니는 딱정벌레)라는 이름으로 활동하는 토요코의 손녀는 히로시마 원폭 때 자기 할머니가 겪었던 일을 ‘원자폭탄에서 살아남은 소녀’라는 만화로 되살렸다. 그녀는 현재 마스노를 주인공으로 한 ‘히로시마를 살아낸 소녀’라는 후속작을 작업하는 중이다.

“작년 11월에 남편이 죽었지만, 그때까지는 우리는 토요코를 1년에 두 번 초대해서 미요시 시에 있는 키미타 온천에 같이 가곤 했죠. 내 남편이 ‘당신은 토요코에게 목숨을 빚졌잖아.’라고 말하며 초대했죠.”

“토요코와 나는 폭격 때 이야기는 많이 하지 않아요. 좋은 기억이 아니니까요. 우리는 그저 오랜만에 만나는 게 신나서, ‘어떻게 지냈어?’, ‘이런 일들이 있었어.’ 같은 이야기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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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수라이노 카나분의 웹툰 ‘히로시마를 살아낸 소녀’

허핑턴포스트JP의 「ピカドンの毒が移る」と言われ、浴場で泣いた。被爆70年の増野幸子さん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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