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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12일 17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8월 12일 17시 31분 KST

광복 70돌을 맞이하는 세종대로 고층건물의 난처한 입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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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중구 세종대로에 있는 15층짜리 건물. 관리직원 ㄱ씨는 광복절을 앞두고 태극기 게시 협조 공문을 여러 통 받았다. ㄱ씨는 “건물 위치가 서울 중심가이다 보니 태극기 게시를 강제로 하라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ㄱ씨의 애국심이 남보다 못해서 그런 건 아니다. 이 건물은 이달 초부터 6~9층을 덮는 대형 태극기를 건물 벽면에 내걸었다. ㄱ씨는 “건물 입주자들이 ‘태극기가 창을 모두 가린다’며 싫어한다. 광복절이 지나면 바로 뗄 계획”이라고 했다. 이 건물 7층에서 일하는 ㄴ씨는 12일 “광복절의 의미를 생각해 참을 수는 있지만, 솔직히 태극기가 열흘 넘게 창문 전체를 가려 어둡고 밖을 볼 수 없어 답답하다. 환기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했다.

광복 70돌에 맞춰 기업 등이 입주한 도심 대형 건물마다 ‘나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기자며 대형 태극기가 게시됐지만, 공문 한 장으로 애국심을 ‘강제’하는 건 지나치다는 지적이 나온다. 100만~3000만원까지 나가는 대형 태극기 제작비 역시 고스란히 건물주나 기업의 몫이다.

광복절을 사흘 앞둔 12일 세종대로 주변 30개 고층건물 중 24개에 대형 태극기가 걸렸다. 시민들의 반응은 좋은 편이지만, 앞서 이들 30개 빌딩은 지난달 14일 서울시 자치행정과로부터 ‘국가상징거리 대형 태극기 게시 협조 요청’ 공문을 받았다. 8월1~15일 광화문~숭례문 구간 15층 이상 대형 건물들은 대형 태극기를 게시해 광복 70돌 경축 분위기를 조성해 달라는 내용이었다. ‘태극기 사랑 70일 운동’(<한겨레> 6월5일치 10면)을 하는 행정자치부도 지난 7일 전국 90여개 공공기관에 공문을 보내 ‘태극기 게양 모범거리 조성 및 대형 태극기 설치 현황’을 8월13일까지 보고하라고 지시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우리나라는 프랑스 파리나 미국 워싱턴처럼 국가를 상징하는 대표 거리가 없다. 국가상징거리를 조성하자는 차원에서 건물 외벽에 태극기 달기를 요청했다. 다행히 많은 기관들이 협조해줬다. 다소 불편하더라도 참아달라”고 했다.

‘협조 요청’이지만 기업 입장에서는 거절하기가 쉽지 않다. ‘광복절 사면’을 앞두고 눈치를 봐야 하는 곳들도 있다. 한 건물 관리인은 “대형 태극기 제작비는 전혀 보조해주지 않고 게시만 요청해 왔다”고 했다. 서울시 쪽은 “자발적 참여 요청이라 비용 지원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공문이 예시한 대형 태극기(가로 12m, 세로 8m) 제작 주문을 여러 건 받았다는 한 업체는 “외벽용 대형 태극기는 두꺼운 재질의 천을 쓰기 때문에 90만원 정도 한다”고 했다. 일부 대기업들은 건물 유리창에 대형 태극기를 ‘래핑’했다. 래핑업체는 “기업 3곳에 2000만~3000만원씩을 받고 대형 태극기 래핑을 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