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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11일 09시 41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8월 11일 09시 41분 KST

[안철수 기고] 국정원 해킹 의혹 사건의 시사점

연합뉴스

세월호 참사와 메르스 사태는 우리가 위험사회에 살고 있음을 깨닫게 했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잊고 있었던 국가의 역할과 책임에 대해 돌아보게 했다. 국가정보원 불법해킹 의혹 사건은 또 다른 위험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이번 사건은 민주주의와 현대 국가사회의 지향점에 대해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민주주의와 국가안보의 관계이다. 현대전에서 사이버 안보는 군사력만큼 중요하다. 그러나 사이버 안보는 국민 사생활과 인권보호라는 민주주의 가치와 조화롭게 병립되어야 한다. 남북 대치와 급변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사이버 안보의 중요성을 부정하거나 반대할 국민은 없지만, 안보와 대테러 방지라는 명분으로 인권이 침해된다면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안보와 인권 사이에는 긴장과 균형이 필요하다. 정보기관의 특수활동은 보장하지만 넘어서는 안 될 분명한 선과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

둘째, 국가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인 통제이다. 우리 국민들은 정보기관의 일탈을 수없이 지켜봐왔다. 1997년 ‘북풍’공작 사건, 2005년 미림팀 ‘엑스파일’ 사건, 2012년 대통령선거 인터넷 댓글 조작 사건 등에서 보듯이 강력한 감시와 통제가 필요하다.

미국 의회는 정보위원회를 두고 예결산 심의, 정보기관 책임자 인준, 조사 및 보고, 청문회 개최, 비밀공작에 대한 사전 의회 통보 등을 통해 정보기관을 통제한다. 미국 중앙정보국(CIA)은 의회 외에도 대통령 직속 국가안보회의(NSC)의 통제도 받는다. 독일 연방하원은 의회통제위원회(PKD), 기본법10조 위원회(G-10 Board), 특별예산위원회(SGB)를 통해 정보기관의 업무 전반과 예결산은 물론 우편검열과 통신감청 업무까지 통제한다.

우리나라도 정보기관을 대통령이 독점하는 구조에서 벗어나 정치개입과 일탈을 막고 본연의 역할을 다하도록 하는 감시통제 체계가 필요하다. 그동안 국정원은 국회 정보위원회에 구체적인 내용을 배제하거나 국정원에 유리한 내용을 선별적으로 보고함으로써 의회 감시를 무력화했다.

정보위원회의 실질적인 통제를 위해서는 정보기관에 대한 상시감독 업무를 지원할 부서를 설치해야 한다. 기밀 누설에 대한 정치적 제재와 처벌은 강화하되, 정보위원의 기밀접근권을 보장하고 국정원의 자료제출이나 답변증언에 대한 거부 요건을 엄격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인사청문회법을 개정하여 국정원장에 대한 국회 임명동의를 받게 하는 것은 국정원의 전문성 강화와 함께 정치개입 차단에 도움이 될 것이다. 국정원에 대한 예산회계특례를 폐지하여 실질적인 예결산 심사를 받도록 하고, 정보 및 보안에 대한 기획조정권도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 이관하여 정부 내 국정원의 독점적 권력을 분산시켜야 한다.

셋째, 디지털 위험사회에 대비하는 시민의 자각이다. 개인정보 유출과 허위사실 유포, 사이버 폭력, 해킹 등은 현대사회의 민주적 질서와 안전을 위협하며 신뢰사회를 가로막는다. 특히 국가권력이 정치적 필요에 의해 정보기술을 악용한다면 공동체와 민주주의 모두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시민들 스스로 자각하고 경계에 나서야 한다.

국정원 불법해킹 의혹 사건의 본질은 국가안보 뒤에 숨어 있는 국정원의 무능과 불법을 밝혀내는 것이다. 국정원 스스로 국회 조사에 문을 닫아걸려고만 한다면 불법사찰 의혹에 대한 국민의 합리적 의구심은 증폭될 수밖에 없다.

적극적으로 자료를 제출하고 증언함으로써 정보기관 활동에 대한 국민의 이해를 구하는 지혜가 아쉽다. 이번 국정원 의혹 사건을 풀어가는 정치권의 자세는 아직도 우리 사회가 87년 민주화 이후 합리적 견제와 균형이 작동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진실규명과 별개로 헌법이 추구하는 가치와 정신을 재확인하고, 부족한 부분을 제도개혁과 시민의 자각으로 채워나가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