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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10일 07시 52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8월 10일 08시 00분 KST

[퍼거슨 사태 1주기] 미국이 인종주의의 존재를 다시 떠올리게 된 순간들

미국 미주리 주 세인트루이스 시 외곽 퍼거슨 시에서 발생한 비무장 흑인 청년 마이클 브라운의 피격 사건이 9일(현지시간)로 1년을 맞았다.

이 사건은 미국에서 흑백 간 인종갈등이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각인시켜줬고, 미국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문화, 심지어 엔테테인먼트계까지 파장을 미쳤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는 마이클 브라운 피격 사건 1년을 맞아 흑백 갈등과 관련해 그동안 온라인에서 뜨거운 논쟁을 불러일으켰던 이슈들을 집중 조명했다.

관련기사 : 9 moments the Internet forced us to think about race (LA타임스)


◇스포츠 스타들, 인종문제에 나서다 = 지난해 12월 초 미국 프로농구협회(NBA) 로스앤젤레스(LA) 레이커스 코비 브라이언트(37)가 '숨을 쉴 수가 없어요'(I Can't Breathe)라고 적힌 유니폼을 입고 나와 화제를 낳았다.

코비가 이 유니폼을 입고 나온 것은 뉴욕 시에서 담배를 불법적으로 팔았다는 이유로 체포 과정에서 백인 경찰에게 목 졸려 숨진 흑인 남성 에릭 가너 사건에 항의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kobe bryant eric

'농구황제' 제임스 르브론(32·클리블랜드 캐벌리어스)과 중국계 제레미 린(27·샬럿 호네츠)도 여기에 가세했다. NBA뿐만 아니라 프로풋볼연맹(NFL) 소속 선수들도 대열에 동참했다.

스포츠 스타들이 인종문제에 대한 입장을 적극 개진하고 나선 것과 관련해 온라인에서는 논란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일각에서는 가뜩이나 거리 시위대들로 일상적 경제활동이 침해받는 상황에서 굳이 스포츠 스타들까지 저녁 TV 스포츠 현장에서 정치적 연대의 대열에 합류해야 하느냐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이 같은 비판은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 시에서 경찰에 체포돼 구금 중 1주일 만에 척추손상으로 사망한 25세 프레디 그레이 사건이 발생하면서 잦아들었다.

볼티모어 흑인 폭동의 여파로 미국프로야구(MLB) 사상 최초로 무관중 경기가 열렸다. 볼티모어 오리올 파크에서 열린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시카고 화이트삭스 간 경기가 관중 없이 치러진 것이다.

존 안젤로스 오리올스 부사장은 당시 트위터에서 "(흑인 폭동 사태로) 야구장에서 불편함은 미국 정부가 미국 일상생활에 쓸데없이 가하는 고통에 비춰보면 그리 큰 것이 아니다"라고 했다.


◇기성 언론에 대한 비판 대두 = 마이클 브라운이 백인 경찰의 무차별 총격에 목숨을 잃은 뒤 온라인에서는 '내가 만일 총에 맞았다면'(#IfTheyGunnedMedown)이라는 해시태그가 유행했다.

이 해시태그는 기성 언론들이 브라운을 마치 위협적인 인물로 그렸다는 비판에서 나온 것이다. 실제로 '내가 경찰의 총격에 죽었다면 미디어는 과연 어떤 사진을 쓸까'라는 의문들이 쏟아져나왔다.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BlackLivesMatter)가 인종차별에 대한 우려와 분노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것이라면 '내가 만일 총에 맞았다면'(#IfTheyGunnedMedown)은 미디어에 초점을 맞춘 구호인 셈이다.

기성 언론들이 흑인을 부정적으로 그릴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해악을 주고 있다는 인식을 흑인들에게 심어준 계기가 됐다고 신문은 전했다.


◇흑백차별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인식 = 미국 저널리스크 겸 블로거인 타너하시 코츠는 흑백 차별의 기원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미국 사회에 던져줬다.

그는 노예제와 흑백 분리라는 극심한 인종차별이 흑인에게만 전가됐고, 오늘날에도 인종별 수감과 피살 현황에서 흑인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다고 지적했다.

코츠는 케케묵은 노예문제나 소수계 우대정책(affirmative action)에서 벗어나 남북전쟁 이후 흑인들의 피탈과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주거정책, 은행규제, 흑백분리 정책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만 6천 자로 구성된 그의 블로그 '배상금을 위한 사례'(The Case for Reparations)는 인터넷에서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중화기까지 등장한 시위진압 현장 = 마이클 브라운의 피격 사건은 미주리 주 퍼거슨 시에서 흑인 시위를 촉발시켰다. 이에 백인들이 장악한 경찰국은 중화기까지 동원해 무자비한 진압작전을 펼쳤다. 이는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시위대들의 과격성과 폭력성을 거론하며 강경 시위진압이 불가피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하지만 중무장한 시위진압 경찰이주민들을 무자비하게 탄압하는 현장이었다는 게 대다수 여론이었다.

결국 미국 연방 법무부는 퍼거슨 시 경찰국의 강경 시위진압은 잘못된 것이라고 인정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 드디어 침묵을 깨다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집권 1기 동안 가급적 인종문제와 관련해 언급을 아꼈다. 흑인 출신인 자신이 인종문제를 거론하면 정치적 논란을 부추길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하지만, 2012년 10대 흑인 청년 트레이본 마틴이 히스패닉계 백인 자경단원이었던 조지 짐머맨에게 총격 살해를 당한 사건이 일어나자 오바마 대통령은 오랜 침묵을 깼다.

President Obama Speaks on Trayvon Martin

ferguson police

사건 용의자 짐머맨이 2013년 7월 무죄 평결을 받으면서 인종차별 논란과 함께 흑인사회가 크게 분노했기 때문이다. '흑인들의 생명도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는 구호도 이때 처음 나왔다.

오바마 대통령은 젊은 시절 대형 마트에서 자신이 겪은 인종차별 경험을 털어놓으며 "내가 트레이본일 수 있다"라고 밝혔다.

보수 우파들 사이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의 언급이 오히려 흑백 간 분열을 재촉할 것이라고 비판했지만, 대다수 미국 시민들은 이 사건을 불공정하다고 봤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후 인종문제에 대한 입장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시에서 열린 총기난사 희생자 장례식에서 추모연설에서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총)을 불러 감동을 안겨줬다.


◇인종차별의 상징 '남부연합기' 퇴출 = 지난 6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 찰스턴 시에서 발생한 백인 청년 딜런 로프(21)의 흑인교회 총격 사건이 발생했다.

범인 로프의 컴퓨터에서 자신이 작성한 백인 우월주의를 조장하는 내용의 2천400여 단어 분량의 웹 문서와 함께 남부연합기가 발견돼 충격을 줬다.

south carolina shooting

이 사건으로 인종차별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남부연합기에 대한 퇴출 움직임은 '인종차별 문화·역사 청산'으로까지 확산했다.

실제로 남부지역 주 정부들이 의사당 등 공공장소의 남부연합기 철거를 논의하는 것과 별개로 역사공원과 기념비, 학교 등에 남아 있는 남부연합 출신 영웅들의 이름이나 상징물을 제거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힙합 음악에서의 인종 문제 = 백인들이 흑인 음악을 전용한 것은 엘비스 프레슬리 이전부터 거슬러 올라간다. 지난해 흑백 여성 래퍼 2명 간의 불화는 젊은 세대들에게 상당한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호주 출신의 백인 여성래퍼 이기 아질리아(25)와 뉴욕 할렘에서 자린 흑인 여성래퍼 아질리아 뱅크스(24) 간 갈등은 미국 팝 음악에서까지 흑백 갈등이 뿌리내리고 있음을 확인시켜준 사례다.

iggy azalea

azealia banks

흑인 래퍼 아젤리아 뱅크스는 "힙합에는 흑인 정치와 이슈 등 반항의식이 담겨있다"면서 "이기 아질리아의 노래들이 라디오에 나오는 것은 상관없지만 이를 힙합으로 부르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블랙 위도우', '팬시' 등을 크게 히트시킨 이기 아질리아는 한번도 자신이 힙합을 하게 된 이유나 흑인들의 정치적 입장을 밝힌 적이 없다. 오히려 흑인 문화와는 다른 음악적 행보를 보여왔다.

백인 래퍼 맥클모어가 지난해 그래미상을 휩쓸면서 흑인 스타 래퍼 켄드릭 라마에게 "자신이 과분한 상을 받았다. 이 상은 켄드릭 라마에게 가야 하는 것이었다"고 사과한 것과는 대조적이다.

올해 이기 아질리아의 앨범 판매량은 급락했다. 이기 아질리아에 대한 힙합 팬들의 관심이 멀어졌기 때문이다.


Ferguson, one year later - Al Jazeera English

남부연합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