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2015년 08월 09일 10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8월 09일 10시 34분 KST

1994년 7월과 2012년 8월이 만나면 '폭염겟돈' 온다

한겨레

1994년은 가장 더운 여름으로 꼽힌다. 전국 기상관측 45개 지점의 평균 폭염 일수가 31.1일에 이르고, 열대야 일수도 14.4일이나 됐다. 최근 더웠던 해로 꼽히는 2012년의 폭염 일수(15일)나 열대야(8.8일)에 견주면 갑절 수준이다. 폭염은 일 최고기온이 33도를 넘은 때를 말한다.

1994년의 폭염이 얼마나 기록적이었는지는 역대 7월 최고기온 기록을 그해 거의 대부분 경신한 데서도 알 수 있다. 전국에 산재한 기상관측 지점 68곳에서 지금까지 측정된 7월 ‘최고기온 1~5위’(극값)는 1994년에만 203회로 기록됐다. 모두 340건 가운데 60%가 1994년 날짜로 채워진 것이다. 그런데 8월 최고기온 1~5위를 보면 의아해진다. 1994년으로 기록된 경우는 단 4회에 불과하다. 이유는 간단했다. 한증막 같던 7월이 끝나자마자 태풍 3개(브렌던·더그·엘리)가 잇따라 한반도에 영향을 끼쳐 8월 더위를 피했기 때문이다. 반면 2012년에는 전형적인 7월말~8월초의 혹서기를 맞았다. 특히 8월에 폭염이 집중돼 8월 극값 순위가 2012년으로 기록된 횟수는 86회(25.3%)에 이른다.

default

통계청이 집계하는 사망자 통계에서 열사병이 원인으로 분류된 수치를 보면, 1994년에는 93명이나 된다. 2012년에는 59명이다. 김두우 국립재난안전연구원 기상연구사는 “1994년 7월의 기상 상황과 2012년 8월의 기상 상황이 겹치는 것으로 모사(시뮬레이션)해보면 열사병 사망자가 최소 120명 이상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나온다”고 말했다.

폭염은 ‘침묵의 살인자’라 불린다. 피해를 당하는 사람이 의식하지도 못한 채 치명적 상태에 이르기 때문이다. 열사병은 하품·두통·피로·현기증 등 가벼운 증세로 시작하지만 체온조절 중추가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으면 의식장애가 일어나고 혼수상태에 빠질 수 있다. 땀을 많이 배출하면 땀에 포함된 염분과 수분이 빠져나가 혈액의 농도가 짙어지는데다 피부 쪽 혈액량은 늘고 심부의 혈액량이 줄어 부종·실신·근육경련·탈진 등 각종 증세가 발생하기 쉽다.

폭염도 태풍이나 호우 등 재해 때처럼 집 안으로 대피하면 나을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지만 그렇지 않다. 미국 기상청이 1995년 폭염 관련 사망자가 머문 장소를 분석한 결과, 1021명 가운데 913명(92%)이 집 안에서 숨졌다. 폭염을 예방하는 방법은 되도록 야외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박종길 인제대 건설환경공학부 교수 연구팀이 운동선수들을 대상으로 실험해보니, 폭염 속에서 보통 속도로 30분 정도 걸었을 때의 심박수와 30대 남자가 상온에서 100m를 43초에 달렸을 때의 심박수가 똑같았다. 박 교수는 “또다른 모형실험에서는 33도의 폭염 속에 밭에서 일을 하면 45도의 고온에 머무는 것과 같은 효과가 나왔다. 우리 몸은 더우면 열을 방출해 정상체온을 유지하려 하지만 고온 환경에 장시간 노출돼 체열 방출 능력이 제기능을 못하면 열사병 등이 발생한다”고 말했다.

성균관대와 한국건강증진재단이 공동연구해 지난해 발표한 ‘기후변화로 인한 건강피해 부담 및 사회경제적 영향 평가 관련 연구’ 보고서를 보면, 폭염으로 인한 건강피해 부담은 전체의 78%를 차지한다. 최근 건강 부담을 측정하는 방법으로는 ‘장애보정 손실 수명연수’(DALY)가 쓰인다. 어떤 질병이나 재해로 기대수명보다 줄어든 연수와 질병으로 투병한 기간을 장애의 정도에 따라 계산한 연수를 더한 값이다. 기대수명이 80살인 60대가 폭염에 의한 심혈관질환으로 10년을 고생하다 사망했다면, 장애보정 손실 수명연수는 15년(장애 정도를 50%로 봤을 때 5년+남은 기대수명 10년)이 된다.

연구팀이 2011년 통계로 건강피해 부담을 계산해보니, 폭염으로 인한 사망·심혈관질환·온열질환 등의 건강피해 부담이 전체의 77.4%를 차지했다. 폭염으로 인구 1000명당 기대수명이 0.49년이 줄어들고, 심혈관질환으로 조기 사망하거나 질환으로 고생해 인구 1000명당 1.24년의 장애보정 손실 수명연수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왔다. 또 2011년 폭염으로 인한 건강영향 비용은 7075억원으로 추산돼 전체 기후변화 건강영향 비용의 78%를 차지했다. 연구팀의 계산으로는, 온실가스 감축이 이뤄지지 않을 경우(대표농도경로 RCP 8.5) 폭염으로 인한 건강피해 부담은 2050년에 3배 정도 증가하는 것으로 나왔다. 김호 서울대 보건대학원 교수(보건통계학)는 “기후변화에 의한 건강 영향은 미래에 더 커질 것이며 재앙 수준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기후변화로 폭염과 열대야는 증가 추세에 있다. 전국 기상관측 45개 지점의 폭염 일수는 1981년부터 2010년까지 30년 동안 연간 평균 11.2일이었는데, 최근 5년(2010~2014년)에는 12.7일로 늘었다. 전국 기상관측 시스템이 갖춰진 1973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고기온은 연평균 0.021도씩 오른 데 비해 최저기온은 연평균 0.028도씩 올랐다. 그만큼 열대야 일수 증가율이 커지고 있다는 얘기다.

현재 기상청은 33도와 35도를 기준으로 폭염주의보와 경보를 발령한다. 그러나 지역별 최고기온 분포가 다름에도 이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건 합리적이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나득균 기상청 예보정책과장은 “더위에 대한 체감은 국가별·지역별로 차이가 난다. 폭염특보의 기준인 33도와 35도는 미국 기준을 준용한 것이어서 우리나라 사람들한테 맞는 더위기준값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지역별로 특보 기준값을 달리 적용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