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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08일 11시 10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8월 08일 11시 10분 KST

롯데를 나무랄 자격이 있는가

연합뉴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왼쪽)와 김정훈 정책위의장이 6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논의하고 있다.

“경제민주화를 하더라도 지금같이 경제가 어려울 때는 속도조절이 필요하다.”

2013년 6월 국회 정무위원장인 새누리당 의원이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박근혜 정부가 출범 반년도 안 돼 공약인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포기하는 신호탄이었다.

“적은 지분으로 순환출자를 통해 기업을 지배하는 것은 경제정의뿐 아니라 비정상의 정상화라는 시대적 과제에도 맞지 않는다. 적법한 규정 없이 마음대로 경영에 개입하는 황제경영은 없어져야 한다.”

새누리당의 고위 당직자가 5일 롯데의 경영권 분쟁을 비난하며 목소리를 높여 한 말이다. 내용이 정반대인 두 발언의 주인공이 모두 새누리당의 김정훈 정책위의장이라면, 국민들은 어떤 기분일까?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과 관련해 오락가락한 사람은 한둘이 아니다. 최경환 부총리는 지난해 7월 취임 이후 재정확대와 금리인하 등 손쉬운 부양책으로 군불을 지피며 대기업 중심의 경제살리기에 올인했다. 자연히 재벌개혁 등 체질 개선은 뒷전으로 밀렸다. 그런 그가 6일 기자들에게 “롯데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경영권 다툼을 벌이는 것은 매우 실망스럽다. 필요할 경우 불투명한 기업 지배구조와 자금흐름을 관계 기관이 엄밀히 살펴볼 것”이라며 정반대 얘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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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6일 오전 청와대에서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기자들과 인사하고 있다.

이에 앞서 친박계 대표 격인 서청원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3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롯데뿐 아니라 대한민국 재벌들의 (가족간 경영권) 싸움이 무엇이 문제인지 살펴볼 때”라며 재벌개혁을 강조했다. 심재철 의원도 “롯데에 대한 세무조사를 철저히 해서 세금 탈루가 있는지 분명히 가려야 한다”고 거들었다. 때맞춰 공정거래위원회, 금융감독원, 국세청이 앞다퉈 롯데 압박에 나섰다.

다수의 언론은 이를 보고 재벌개혁이 새롭게 화두로 부상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진실이 드러나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정부 여당은 6일 당정협의에서 하루 전까지 유력하게 언급하던 ‘기존 순환출자 금지’에 대해 기업활동에 부담을 준다며 꼬리를 내렸다. 대신 실효성이 의문시되는 재벌 해외 계열사에 대한 정보공개만 추진하기로 했다.

불과 얼마 전까지 경제를 살리려면 규제를 풀어야 한다며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을 용도폐기했던 사람들이 갑자기 재벌개혁을 말하는 모습은 코미디와 같다. 새누리당의 정갑윤 의원은 최근 재벌의 경영권 방어장치 강화를 위한 상법개정 추진을 선언했다. 불투명한 지배구조와 전근대적인 황제경영으로 비판받는 롯데 일가에 경영권 방어장치라는 ‘방탄복’까지 입힌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가장 큰 책임은 박근혜 대통령에게 있다. 대통령은 2012년 대선 때 “성장의 과실이 일부 계층에 집중되면서 양극화가 심화되고, 성장잠재력을 해치고 있다. 경제의 지속가능한 발전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는 경제민주화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약속이 지켜졌다면 롯데와 같은 잘못된 관행과 구조를 개선하고 경제를 살리는 계기가 됐을 것이다. 정부 여당이 롯데를 비난하지만, 실상은 롯데 사태를 일으킨 주역들이라고 한다면 지나칠까?

박 대통령은 대국민담화에서 집권 후반기 최우선 국정과제로 노동개혁을 강조했다. 정년연장에 연동된 임금피크제, 능력과 성과에 따른 채용과 임금 결정, 공정하고 유연한 노동시장 등의 방안이 제시됐다. 심각한 청년실업과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을 위해 개혁이 필요하다는 당위성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다. 하지만 노동계는 정부 여당안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라고 반발한다. 만약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해서 양극화를 개선하고 경제를 제대로 살려냈다면, 상황은 달라졌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