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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8월 04일 05시 40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8월 04일 05시 43분 KST

'성추행 고교'가 탄생한 잔혹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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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고등학교에서 교장을 포함한 여러 남자 교사가 학생·교사들을 성추행했다는 의혹에 대해 교육청이 특별감사를 벌이고 있는 가운데, 이 사건의 이면에 통제와 처벌 일변도의 권위주의적인 학교 문화라는 구조적 문제가 똬리를 틀고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당 학교에서는 지난해 한 해 동안 전국 평균보다 7배나 많은 학생이 징계성 퇴학이나 자퇴로 학교를 그만뒀다. 이번에 발생한 대규모 성폭력 사건은 ‘뒤처진 학력을 따라잡는다는 미명 아래 일부 간부 교사들이 주도한 구조적 폭력의 일부’라는 게 피해 교사들과 교육계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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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몇 년 동안 교장과 대부분 간부인 가해 교사들을 중심으로 징계와 처벌 위주로 학교를 운영해왔어요. 벌점과 징계, 퇴학과 강제전학이 일상화된 비교육적 분위기에 억눌린 아이들과 힘없는 신규 교사나 기간제 교사 등을 상대로 한 폭력이 일상화된 셈이지요.” 서울 ㄱ고등학교의 한 교사는 7월31일 <한겨레>와 만나 이렇게 말했다. 이 학교는 5명의 남자 교사가 적어도 130여명의 여학생과 동료 교사를 상대로 지속적인 성희롱과 성추행을 벌인 의혹이 제기돼 서울시교육청의 특별감사를 받고 있다.

교육계 관계자들의 설명을 들어보면, 지역의 유일한 공립고인 이 학교는 다른 일반계 고교와 마찬가지로 중학교 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들이 주로 몰린다. “10명에 8명가량은 중학교 내신 하위 20~30%인 아이들”이라고 한 관계자가 전했다. 전국적인 명성을 얻은 ‘입시 전문가’인 ㄱ교사가 이 학교에서 발언권이 컸던 배경이다. 학생주임으로 진학 상담을 맡은 ㄱ교사는 비교적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을 상대로 성추행을 벌여온 것으로 드러났다.

성적이 좋지 못한 아이들도 다른 방식으로 비인격적인 대우를 받았다. 이 학교 학생들의 학업중단율은 비정상적으로 높다. 교육부의 교육정보 공시서비스를 보면, 2014년 이 학교에서 학교를 그만둔 학생은 52명이다. 전체 학생이 525명이니 10명에 1명꼴이다. 서울(1.37%)이나 전국(1.4%) 평균보다 7배나 많다. 벌점으로 다스리고, 벌점이 쌓이면 퇴학 등 중징계가 이어진 까닭이다.

“아이들이 어느 날 ‘우리는 쓰레기예요’라고 말하는 걸 듣고 너무 큰 충격을 받았어요. 문제의 가해 교사들이 교실에서 아이들을 인격체로 보지 않고 성희롱을 일삼는 등 함부로 대해온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어요.” 이 학교 교사의 설명이다.

서울지역 교육단체들의 모임인 서울교육협의회도 3일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이번 사건은 가해자 개개인의 잘못뿐 아니라 학교의 비민주적이고 불평등한 권력과 문화에 원인이 있음을 직시하고 학교가 민주적인 시스템에서 운영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조순옥 공공운수노조 전국교육공무직본부 서울지부장은 “권위주의적으로 운영되는 어느 학교에서나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다.

교장의 묵인과 조직적인 방조가 문제를 키웠다는 지적도 있다. 이 학교의 한 교사는 “예능반 학생들을 지속적으로 성추행한 의혹을 받고 있는 ㄴ교사에 대해 지난해에도 문제 제기가 있었지만 아무런 징계·처벌이 없었어요. 교내 성고충처리위원에서도 가해 교사를 감쌌지요. 이번 사건은 통제와 억압, 경쟁으로 상처받은 학교의 말로가 어떤지 보여주는 생생한 사례예요. 아이들이 그 가장 큰 피해자가 돼 너무나 미안하고 가슴이 아파요”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