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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27일 13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7월 27일 13시 58분 KST

조치훈 "멋내다가 망했다" 조훈현 "조치훈이 고수다"

“내가 원래 멋이 없는 사람인데, 멋을 내다가 망했다.”(조치훈 9단)

“바둑은 내가 졌다. 역시 조치훈은 대가다.”(조훈현 9단)

26일 서울 홍익동 한국기원 1층 <바둑티브이> 스튜디오에서 열린 조훈현과 조치훈의 ‘전설의 대결’. 한국 현대바둑 70년을 기념해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민체육진흥공단의 후원으로 마련된 12년 만의 대국 승자는 조훈현(62)이었다. 하지만 조훈현은 “바둑은 내가 졌다. 조치훈이 고수”라고 치켜세웠고, 패배한 조치훈(59)은 “역시 조훈현은 대선배”라며 승리를 축하해주었다.

모시 한복을 입은 조훈현이나 다듬지 않은 머리카락을 사방으로 풀어낸 조치훈의 풍모에서는 강한 개성이 드러났다. 눈가의 주름과 옆으로 삐친 날카로운 눈매의 조훈현이 빠른 행마의 ‘제비’라면, 두꺼운 뿔테안경 너머의 눈과 수염마저 자유분방한 조치훈은 ‘목숨을 걸고 바둑을 두는’ 도인 같았다.

155수. 흑을 쥔 조치훈이 마지막 한 번 남은 초읽기의 “열”을 세는 소리와 함께 돌을 놓으면서 승패는 백을 쥔 조훈현의 시간승으로 끝났다. 떨리는 손으로 급하게 돌을 놓은 조치훈은 착잡한 표정이었고, 조훈현은 돌을 더 놓을지 말지 주저했다. 유창혁 해설자는 “공식 타이틀전이 아니다. 팬들을 위해서라도 대국을 재개하면 좋겠다”고 했다. 해설장의 방청객들도 끝까지 보고 싶다는 아쉬움을 토해냈다. 하지만 입회 감독관인 김인 9단은 초읽기 시간을 넘긴 조치훈의 패배를 선언했다. 각자 한 시간 제한시간을 쓴 뒤, 세 차례 40초 초읽기에서 조치훈 9단은 마지막 남은 시간을 넘겼다. 최명훈 9단은 “흑을 쥔 조치훈이 조금 유리한 상황이었다. 좀더 진행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했다.

승패를 떠나 흥미진진했다. 초반 조치훈이 하변에서 백을 압박했지만, 조훈현이 빠져나오면서 주도권을 빼앗아왔다. 상변으로 이어진 싸움에서는 엎치락뒤치락했고, 결국 중원 격전장은 난전으로 번졌다. 그래서 더 결말이 궁금한 한판이었지만 규칙은 규칙이었다.

대국 뒤 공개해설장에 나온 조치훈은 “진 사람은 말을 하면 안 된다”며 “중반에 바둑을 멋있게 두려다가 잘 안됐다. 끝까지 멋있게 둬야 하는데 마음이 약해져서 그렇게 못했다”고 설명했다. 또 “(계시원이 30초 뒤부터 하나둘 하며 셀 때) 열이라는 소리가 약간 들렸는데 착각이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유창혁 9단이 “과거에는 대국에 지면 괴로워했는데 오늘은 웃는다”고 말하자 “사람이 훌륭해졌다”고 해 방청석의 폭소를 이끌어냈다. 헝크러진 머리카락의 특징에 대해서는 “빗이 없어서 그렇다”고 소탈하게 말했다.

둘은 한국과 일본 바둑의 전설이며, 지금도 현역으로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다. 조훈현 9단은 1980년대 국내 전관왕을 세 차례나 이뤘고, 6살에 일본으로 건너간 조치훈은 1980년 명인 타이틀을 따낸 뒤 90년대 기성, 명인, 본인방을 석권하는 대삼관을 네 차례 기록했다. 역대 둘의 맞대결은 조훈현의 9승5패. 유창혁 9단이 실력을 유지하는 비결을 묻자, 조훈현은 “정신적으로는 아직도 ‘내가 일인자’라고 당당히 말했던 후지사와 슈코 선생의 말을 생각한다”고 했고, 조치훈은 “옛날보다 바둑 공부를 더 많이 한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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