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2015년 07월 21일 13시 34분 KST

50년 이상 지난 대전차·대인지뢰가 무더기로 발견됐다(사진)

경기도 파주시 민간인통제구역(민통선) 마을 주변에 주한미군이 매설한 지 50년 이상 지난 대전차·대인지뢰가 무더기로 발견돼, 비무장지대(DMZ) 일원 ‘미확인 지뢰밭’을 언제까지 방치해야 하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디엠제트 일원은 수십년 동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아 ‘생태계의 보고’로 불리며 연 200만명의 안보관광객이 찾고 있다.

지난 10일 <한겨레>가 환경단체인 생태지평, 민간 지뢰전문가 등과 함께 파주시 민통선 마을 뒷산과 농원 주변을 지뢰탐지기로 조사를 해보니, 미군의 대인지뢰(M3, M2A4)와 대전차지뢰(M7, M6)가 수십발 발견됐다.

지난 10일 경기도 파주시 민통선 마을 야산을 개간한 농경지 근처에서 김기호 한국지뢰제거연구소장이 손에 든 지뢰를 정인철 생태지평 정책팀장이 가리키고 있다. 이 지뢰는 환경단체인 생태지평이 지난해 3~12월 비무장지대(DMZ) 일원을 조사하면서 땅속에서 발견해 뇌관을 제거한 것들 가운데 하나다.

지뢰가 발견된 마을 주변에는 지뢰위험지역임을 알리는 아무런 경계표지조차 없었다. 어른 키높이 이상으로 우거진 단풍잎돼지풀숲을 헤치고 100m가량 산속으로 들어가니 누가 언제 설치했는지 모를 녹슨 철조망이 나뒹굴었고 지뢰탐지기에서 금속을 탐지한 신호음이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했다.

“미군 지뢰는 대개 대인·대전차용이 1~2m 간격으로 4개씩 세트로 줄지어 묻혀 있어요. 매설한 지 50년이 지나 녹은 슬었지만 아직까지 뿔(뇌관)이 시퍼렇게 살아 있네요.” 30년 군생활을 한 김기호(61) 한국지뢰제거연구소장이 호미로 조심스럽게 흙을 파니 ‘살상반경 최대 40m’라는 M3 대인지뢰들이 묻혀 있었다. 산속 외딴 묘지 주변엔 2001년 묘 조성 당시 제거된 것으로 보이는 대전차지뢰 7개와 대인지뢰 10개가 노출돼 있었다.

야산이었다가 최근 개간된 마을 앞 조경수 농원 주변도 ‘지뢰밭’이었다. 경운기와 트랙터 바큇자국이 아슬아슬하게 비껴간 곳에서 M7 대전차지뢰가 나왔고, 농원과 인삼밭 사이 농민들의 휴식공간과 비포장 농로, 경사지 등에서도 지뢰 20여발이 쉽게 눈에 띄었다. 농원 주변에서 발견된 지뢰들은 생태지평이 지난해 3~12월 디엠제트 일원에 대한 현장조사를 하면서 땅속에서 발견해 뇌관을 제거한 것들이다. 현장조사에 참여한 김 소장은 “발견된 미군 지뢰의 30%가량이 뇌관이 살아 있었다”고 전했다.

생태지평과 심상정 국회의원실(정의당), 군 관계자의 설명을 종합하면, 민통선 지역의 미군 지뢰는 한국전쟁 기간과 쿠바사태 직후인 1960년대 초 냉전기에 집중 매설됐다. 1970년대 초 주한미군이 민통선에서 철수하면서 정보 이양이 안 돼 국군의 관리 밖에 있는 미확인 지뢰로 남았다. 생태지평은 이렇게 방치된 미확인 미군 지뢰가 파주 디엠제트 일원에만 약 10만여발, 연천과 강원도 민통선 지역까지 포함하면 60만발가량 될 것으로 추정했다. 남한에 매설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뢰가 총 100만~120만발인데, 국군이 매설한 전방 60만발과 후방 방공기지 39곳 근처 6만402발을 뺀 나머지는 미군 지뢰인 셈이다. 후방 방공기지 지뢰는 국방부가 제거작업에 나서 지난해까지 5만7314발을 제거했고 남은 3088발은 유실돼 행방을 못 찾고 있다.

관련 기사

미국 "대인지뢰 한반도에서만 사용"

농사지으려 지뢰를 '셀프 제거'했다. 그런데 '형사 고발' 당하게 생겼다.

미확인 지뢰들은 최근 민통선 개발이 늘면서 현지 주민이나 출입 영농인은 물론 디엠제트를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위협이 되고 있다. 민통선 마을의 한 주민은 “공사하다 지뢰가 나오면 귀찮은 문제가 생길까봐 신고하지 않고 땅속에 깊이 묻어버리거나 알아서 적당히 처리하는 경우가 많다. 지난해 관광객이 길가에서 지뢰를 가져와 깜짝 놀란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지난해 7월 파주 진동면에서 주민이 폐비닐을 불태우다 지뢰가 폭발해 다치는 등 최근 5년간 경기·인천지역에서 21명이 지뢰 사고로 숨지거나 다쳤다. 생태지평이 사고기록을 조사 분석한 민간인 지뢰 피해는 사망 289명, 부상 253명에 이르며, 군인과 확인되지 않은 사고까지 더하면 피해자는 1천명이 넘을 것으로 내다봤다.

정인철 생태지평 정책팀장은 “분단이라는 특수한 상황이라 하더라도 군 작전상 불필요한 후방의 생활여가공간과 민통선 지역 논밭 주변의 지뢰는 국민 안전을 위해 제거돼야 한다. 주한미군이 매설 정보를 이양했는지 안 했는지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지만 지뢰가 미군 것으로 밝혀진 만큼 원인 제공자인 미국이 책임져야 한다”고 말했다. 생태지평은 미국을 상대로 지뢰 피해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검토할 방침이다.

심상정 의원은 “분단 70년을 맞이한 시점에서 정부·국회·민간이 공동으로 민간인 지역 지뢰 분포 조사와 관리방안을 마련해야 한다. 필리핀의 경우 잔류폭발물 처리비용을 미군이 지불한 사례가 있고, 미국이 대인지뢰금지협약인 오타와 협약에 서명한 만큼 지뢰 제거 비용은 미군이 부담하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광고] 네스프레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