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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21일 11시 43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7월 21일 11시 43분 KST

'백남준 파리 회고전' 끝내 무산됐다

한겨레

우려했던 불상사가 벌어졌다. 비디오아트 거장 고 백남준(1932~2006)의 10주기와 한-불 수교 130주년을 맞아 내년 4~8월 프랑스 파리시립근대미술관에서 한·불 공동개최로 열 예정이었던 고인의 대형회고전이 국내 미술계와 불화를 빚어온 유족의 반대로 취소됐다.

한-불상호교류의 해 조직위원회(예술감독 최준호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최근 미술관으로부터 유족을 설득하지 못해 회고전 개최가 불가능해졌다는 통보를 받았다고 20일 밝혔다.

백남준 회고전은 파리시립미술관과 경기문화재단 산하 백남준아트센터의 공동기획으로 추진해온 한불 교류행사의 핵심 사업이다. 백남준아트센터와 조직위 쪽 말을 들어보면, 전시가 무산된 배경에는 고인의 장조카이자 법적 대리인인 재미교포 켄 백 하쿠다(64·한국명 백건)의 입김이 작용했다.

최준호 예술감독은 “백남준 작품의 저작권 소유자인 켄 백이 올초부터 파리시립미술관 쪽에 한국 쪽과 전시를 공동개최하지 말라고 요구해 준비가 지체된 것이 결정적 요인이 됐다”고 밝혔다.

파리시립근대미술관에서 전시중인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 ‘매춘부들의 올림푸스’. 5개의 영상로봇으로 구성된 이 작품은 1989년 프랑스 혁명 200주년을 맞아만들어졌다.

미술관 쪽은 백남준아트센터와 유럽 각지 미술관 컬렉션까지 동원한 대규모 전시를 꾸릴 계획이었으나, 켄 백의 반대가 완강해 내년 4월 전시까지 컬렉션을 확보하기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다는 것이다. 백남준 회고전은 박만우 전임 센터장 때부터 경기문화재단이 추진해온 역점사업으로, 지난해부터 두 미술관 큐레이터들이 실무협의를 진행해왔다.

회고전 무산은 큰 악재다. 백남준 10주기를 앞두고 준비중인 여러 전시와 추모 행사에 불길한 전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켄 백은 2006년 고인의 별세 이래 경기문화재단과 백남준문화재단, 국내 화랑업자들에 대해 ‘고인을 이용하기만 했다”며 극도의 불신을 표출해왔다.

2006년 고인의 49재 당시 경기문화재단과 장례 절차를 놓고 마찰을 빚으면서 영원히 대화하지 않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후 그는 지금까지 일부 지인들을 제외하고는 국내 미술계와 연락을 끊은 상태다.

그는 올해 1월 명문화랑인 미국의 가고시안갤러리와 고인작품에 대한 전속계약을 맺은 뒤 저작권 양도 문제를 협의해왔다. 화랑 쪽을 앞세워 내년 10주기 국내외 전시에 더욱 적극적으로 저작권 행사를 압박하지 않겠느냐는 관측이 나온다.

그동안 백남준의 국외 전시 저작권은 켄 백이 행사해왔으나 국내 소장품 전시는 합법적 저작권을 취득한 백남준아트센터과 국립현대미술관의 일부 소장품 외에는 저작권 관계가 모호하다. 켄 백은 “백남준 작품의 모든 저작권 권리는 내가 행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미술계 한 관계자는 “10주기를 앞두고 유족과 국내 미술계의 불화가 계속되고 분쟁을 빚는 것 자체가 창피하다”며 “켄 백과의 화해 없이는 국외 전시나 진작도록 발간도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내년 10주기 전시도 여러 분쟁을 빚을 소지가 크다”고 우려했다.

한편, 10주기 전시를 준비중인 국내 공사립미술관과 화랑가 관계자들은 22일 오후 서울시립미술관에 모여 내년 전시의 협력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한 공립미술관 관계자는 “김홍희 서울시립미술관장의 요청으로 내년 백남준 관련 행사들의 혼선을 줄이고 공동연계를 모색하기 위해 마련된 모임”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