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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21일 11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7월 21일 11시 34분 KST

집 팔고 아이들 자퇴하고 떠난 가족의 '무모한 여행'

[짬] ‘버스 몰고 세계 여행’ 펴낸 최동익씨

시베리아 평원을 버스로 몰아 횡단했다. 한달 반 동안 변하지 않는 풍경만 보며 달렸다. 아내와 3명의 자녀를 태우고 직접 미니버스를 몰며 ‘무모한 여행’을 다녀온 최동익(51·오른쪽)씨는 이야기한다. “관광은 구경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시베리아 관광은 하지 마세요. 고생만 합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만 쳐다보고 살다가 자기를 볼 기회가 없으신 분들은 시베리아를 가세요. 자기 자신을 볼 기회가 될 겁니다. 한집에 살면서도 가족을 못 보신 분들은 가족과 함께 시베리아로 가십시오. 가족을 보게 됩니다.”

최씨와 아내 박미진(47·왼쪽)씨는 살고 있던 아파트를 팔아 여비를 마련했다. 25년간 해온 일도 그만뒀다. 세간살이는 4평짜리 버스에 실을 만큼만 남기고 다 처분했다. 고3·중3·중1 재학 중이던 세남매는 진학 준비 대신 자퇴를 하고 따라 나섰다. 1년 동안 유라시아 대륙을 버스로 일주하는 여행이었다. 누구도 시도하지 않았던 위험천만한 여정이었다.

2013년 10월 유라시아 대륙 횡단 138일 만에 대서양 연안 포르투갈 호카곶에 도착해 환호하는 최동익씨 가족.

이 무모한 가족의 여행 목표는 울산 간절곶에서 출발해 유라시아 대륙의 최서단 포르투갈의 호카곶에 도착해 한반도가 유라시아 대륙의 시작임을 천명(?)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최씨의 속마음은 다른 데 있었다. 바로 ‘우리는 가족’이라는 공감이었다. 최씨 가족은 2013년 6월3일부터 2014년 5월16일까지 348일 동안 25개 나라, 163개 도시, 5만여㎞를 함께 여행한 뒤 다시 일상으로 들어왔다. 무엇이 달라졌을까?

“아이들이 세계 곳곳을 누비고 왔으니 영어는 잘하겠지요?” 최씨는 “천만에요. 그냥 놀러 갔다 왔는데요. 같은 또래보다 뒤졌어요”라고 답한다. 그 역시 1년 넘게 별다른 직업 없이 지내고 있다. 하지만 뿌듯하다. “가족끼리 끈끈한 사랑과 유대감이 깊어졌어요. 여행 내내 촬영을 담당한 큰딸 다윤(20)은 ‘유라시아 대륙을 직접 다 찍은 이 있으면 나와봐’라며 큰소리칩니다. 대학 삼수 나이에 영상 관련 학과에 도전하고 있어요. 큰아들 진영(18)은 식당 아르바이트를 하며 마필관리사의 꿈을 키우고 있어요. 막내아들 진우(17)는 고1로 복학해서 학교 다니고 있고요. 다들 맷집이 생겼어요. 느긋해요. 앞날에 대해 그리 걱정하지 않아요. 무엇보다 단란한 가정 분위기는 결코 깨질 것 같지 않아요.”

최씨는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뒤 전시 디자이너로 각종 큰 전시행사를 담당했다.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를 디자인했다. 그는 계약직 공무원이 주는 안일함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대학 입시 미술학원에 함께 다니며 눈이 맞아 결혼한 아내는 서양화를 전공했지만 전업주부로 살았다. 어느 날 “우리 함께 유라시아 대륙을 직접 운전해 횡단하자”는 남편의 제안에, 자동차 정비에는 문외한인 남편이었지만 아내는 마치 준비해온 것처럼 짐을 꾸리기 시작했다. 아이들 역시 아버지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친구가 너무 많아 문제가 될 정도로 활달한 아이들이었다.

아내와 3명의 자녀를 태우고 직접 미니 버스를 몰며 ‘무모한 여행’을 한 최동익(사진 오른쪽)씨. 왼쪽은 아내 박미진 씨다.

그날부터 3년간 그들은 여행을 준비했다. 살던 50평짜리 아파트를 팔아 고향 울산에 20평짜리 집을 지었다. 여행 뒤 살 집이었다. 세간살이를 줄이고 줄였다. 중고 미니버스를 장만했다. 아이들은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준비해 통과했다.

출발할 때는 각자 사과상자 한개 분량의 사물을 챙겼다. 1년간 입을 옷가지와 개인용품이다. 최씨는 가족에게 “이 여행은 출발하면 성공이고, 무사히 돌아오면 행운이다”라고 말했다. 그만큼 앞을 내다보기 어려웠다. 북한 지역을 육로로 통과할 수 없으니 대신 배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크까지 버스를 싣고 가서 출발했다. 제발 고장이 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무탈이’라고 이름을 붙인 버스를 타고 시베리아 벌판을 가로지르기 시작했다. 하루 200㎞ 이상 운전해야 하고, 밤마다 어디에서 묵을지도 모르는 여행이었다. 관광객이 살해되고, 도로가 유실된 곳이 많은 시베리아 벌판을 버스로 횡단한다는 이야기에 현지 영사관은 위험한 여행이라며 만류했다. 러시아 총영사관에서는 말려도 소용이 없자 검문이나 위험한 상황에서 요긴하게 쓰일 여행증명서를 발급해주었다. 막상 출발을 하니 ‘무탈이’는 주저앉기 일쑤였고, 25개 나라 국경을 넘나들면서 비자와 차량 통행 조건 때문에 수백㎞를 우회하기 예사였다.

하루하루 고생의 연속이었다. 시베리아 벌판을 지나 핀란드~스웨덴~덴마크~프랑스~스페인을 거쳐 138일 만에 1만9696㎞를 달려, 최씨 가족은 마침내 대서양의 호카곶에 도착했다. “그곳에 보물상자가 있는 것도, 아이들의 진학이나 돈을 보상해주는 판도라의 상자가 있는 것도 아니었어요. 우리 다섯은 서로 부둥켜안은 채 많은 눈물을 흘렸어요. 함께 이곳까지 오며 가족의 추억이 담긴 판도라의 상자를 얻은 셈이죠.”

그런데 최대 위기는 돌아오는 길에 닥쳤다. 프랑스의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밤을 지내고 일어나 보니 여권과 현금, 신용카드, 국제운전면허증, 노트북, 그리고 자동차 관련 서류가 든 배낭 4개를 도둑맞은 것이다. 황망했다. 경찰에 신고하고 한국에 연락해 돈을 보내달라고 요청하고, 자동차 관련 서류를 대사관을 통해 다시 발급받는 등 난리를 피우는 가운데 무탈이마저 고장이 났다. 당황해하는 아버지를 향해 아이들이 말했다. “아버지, 우리는 시베리아도 지나왔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일단 밥이나 먹고 시작해요.” 든든했다.

터키·카자흐스탄·몽골·중국을 거쳐 다시 러시아에서 뱃길로 ‘무사히’ 귀국하는 데 성공한 순간 아이들은 말했다. “아버지, 이제 명함 직함에 아버지라고 새기세요.” 하지만 아이들은 더 이상 부모와 함께 여행하고 싶지는 않다고 한다. “아빠, 이젠 따로따로 여행해요. 우린 너무 잘 알잖아요.”

부부도 마르고, 아이들도 말라 스스로 ‘빼빼가족’이라고 자처하는 이들은 최근<빼빼가족, 버스 몰고 세계여행>(북로그컴퍼니)이란 책을 펴냈다. “생활비요? 이 책이 잘 팔리면 되죠”라며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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