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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18일 08시 29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7월 18일 08시 36분 KST

하버마스 : '독일, 나치 멍에 벗기 위한 노력 저버렸다'

ASSOCIATED PRESS
German Chancellor Angela Merkel addresses journalists during press conference in Sarajevo, Bosnia, Thursday, July 9, 2015. Merkel is on a Balkan trip to Albania, Serbia and Bosnia, which are all looking to becoming European Union members one day.(AP Photo/Amel Emric)

“독일 정부가 독일이 반세기 동안 쌓아온 정치적 자산을 하룻밤 새 탕진해버린 게 아닌지 우려된다.”

현대 유럽이 낳은 최고의 지성 가운데 한 명으로 꼽히는 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86) 독일 괴테대학(옛 프랑크푸르트대학) 명예교수가 그리스 구제금융 협상에서 시종일관 강경노선을 폈던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정면으로 비판하고 나섰다. 그는 16일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과거 독일 정권들은 “훨씬 예민한 정치 감수성과 탈국가적인 사고를 보였다”면서 독일의 전후세대가 나치의 멍에를 벗기 위해 들인 노력을 메르켈 총리가 무위로 돌렸다고 꼬집었다.

하버마스는 ‘유로존 탈퇴’를 무기로 그리스를 협박한 것은 “(독일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스스로를 유럽의 규율반장으로 내세운 것”이라며 “처음으로 유럽 내 독일의 헤게모니에 대한 공개적인 지분 요구를 했다”고 짚었다. 또 그리스와 유로존 국가들의 협상안은 이미 탈진 상태인 그리스 민중의 기를 완벽히 꺾고 성장의 싹마저 밟아 없애는 독극물 같아, 경제적 측면에서도 말이 안 되는 조처라고 평가했다. 이어 협상안이 “(그리스) 좌파 정권을 처벌하기 위한 행위였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대표 철학자인 하버마스는 공공영역의 구조적 변화 이론 등 유럽의 정치적·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연구로 유럽연합(EU) 성립에 큰 영향을 끼쳤다. <가디언>은 그가 2000년대 초 유럽헌법 구성을 이끈 주역 중 한 명이었다고 전했다. 하버마스는 과거에도 저서 <테크노크라시의 유혹> 등을 통해 메르켈의 리더십을 비판해왔는데, 동시에 독일의 좌파 사회학자 볼프강 스트리크 막스플랑크사회연구소 소장으로부터 ‘하버마스가 신봉했던 유럽연방이 결국 대륙의 위기의 뿌리가 됐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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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구제금융 협상 이후 메르켈 총리와 독일을 향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오고 있다. 트위터에는 ‘독일을 거부하자’(#Boycottgermany) 해시태그가 퍼지며 독일 제품 불매 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메르켈 총리를 영화 <양들의 침묵> 속 식인종 한니발 렉터에 빗대 유럽연합을 먹어치우는 ‘앙겔라 렉터’로 묘사한 만평도 퍼지고 있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오렌지색 죄수복을 입은 그리스를 참수하려는 이슬람국가(IS) 대원으로 묘사되기도 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잔혹한 독일’의 이미지가 한순간에 돌아왔다고 전했다. 프랑스 <르 피가로>는 그리스에 요구된 조건은 “과거 같았으면 전쟁을 불렀을 정도”라고 썼다.

독일 국내의 비판도 만만치 않다. <슈피겔> 온라인판은 독일이 주도한 협상안이 “잔인함의 카탈로그”였다며 “독일 정부는 지난 주말에 전후 140년간의 외교적 노력을 한방에 파괴했다”고 평가했다. <쥐트도이체차이퉁>도 “메르켈 총리는 사라져가기 시작했던 추악하고 무정하고 인색한 독일인의 이미지를 되살렸다”고 꼬집었다. 하지만 14일 독일 잡지 <스턴>은 55%의 독일인이 메르켈 총리의 그리스 해법을 지지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를 전했다.

관련기사(인터뷰 전문) : Jürgen Habermas’s verdict on the EU/Greece debt deal – full transcript (가디언)

Greece debt: Do ordinary Germans sympathise with Greeks? - BBC 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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