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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5일 14시 38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7월 05일 14시 58분 KST

[이진순의 열림] 다니엘 튜더 : 한국에는 철학 없는 가짜 보수와 가짜 진보가 있다

daniel tudor

[토요판]이진순의 열림

다니엘 튜더 전 이코노미스트 특파원


오래 묵혀둔 인터뷰다. 나는 그를 지난달 초 광화문에 있는 북카페에서 만났다. 다니엘 튜더(33) 전 이코노미스트 서울 특파원. 5월말부터 열흘여간 서울에 머무는 사이 그는 이미 많은 매체와 인터뷰를 한 상태였고, 그가 영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사전 녹화된 그의 인터뷰가 티브이 뉴스에 나왔다. 더 보탤 얘기가 없으면 조용히 접을 수도 있었다. 인터뷰는 따끈따끈해야 제맛이니까.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가 던진 얘기들은 이 구태의연한 한국 정치판에서 여전히 ‘핫’ 하고 신선하다. 나날이 퇴락을 거듭하는 정치판에서는 더욱 그렇다. 교보문고 집계에 따르면, 그가 쓴 한국 정치 평론서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은 요즘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1위라고 한다.


“단언컨대 난 이 책을 쓸 자격이 없었다. 나는 정치인, 정치학자도 아니다. 한국인도 아닐뿐더러 한국어를 훌륭하게 구사하지도 않는다. 내가 서양에서 온 외국인이자 기자이자 소위 ‘명문대’ 졸업생이라는 이유로 한국에서 부당한 특권을 누린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2015년 6월3일자 기자협회보, 다니엘 튜더 기고문 중에서)


다니엘 튜더는 스스로 말하듯이 국외자다. 그럼에도 한국 정치에 대한 책을 쓰게 된 이유는, 절망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에게 어떻게든 변화를 위한 토론을 촉발시키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토론거리를 위해 다니엘 튜더는 변화하는 세계의 다양한 사례를 열거하며 “꽤 다른 무언가를 제안”한다. 그의 책을 베스트셀러로 만든 한국의 독자들은 다니엘 튜더가 제안하는 “꽤 다른 무언가”에서 어떤 “불편한 희망”을 찾고 싶었을까? 30대 영국 청년의 한국 정치에 대한 진단과 제안에 많은 이들이 뜨겁게 반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나더러 ‘서양 좌파’래요

인터뷰에선 영어와 한국말이 뒤섞였다. 내가 한국말로 질문하면 그가 영어로 답하기도 하고, 내가 영어로 한 질문에 그가 한국말을 섞어 답하기도 했다. 음식점에 가면 “이모님, 여기 3인분 같은 2인분 주세요!”라고 주문할 만큼 한국말에 능숙한 그이지만, 자기 생각을 한국말로 온전히 표현하기엔 여전히 부족함이 많다고 말할 때, 그의 볼은 정말로 붉게 물들었다. 영어를 잘 못하는 한국인이 부끄러워하는 건 많이 봤지만, 한국말을 잘 못한다고 부끄러워하는 영국인은 처음 봤다. 그는 커피 대신 ‘잉글리시 블랙퍼스트’ 티를 마시면서, 세시간 반에 걸쳐 내 질문에 성실하게 응답했다. 영어로 한 그의 얘기는 내가 번역했고, 중간중간 그가 한국말을 섞어 쓴 부분은 그가 말한 그대로 옮겼다.

-이번에 쓴 책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의 부제가 ‘서양 좌파가 말하는 한국 정치’인데. 당신, 좌파예요?

“그거 아이러니죠.(웃음) 농담조로 쓴 건데, 내 트위터에 누가 내게 그렇게 썼더라고요. 내가 티브이조선을 비판했을 때….”

-뭐라고 말했는데요?

“박근혜 영국 방문 때 영국 여왕을 만나는 장면이 나왔는데, 티브이조선에서 누가 그러데요. 영국인들에게 여왕은 (한국말로) ‘무한한 존경의 대상’이라고. 그래서 그 장면을 사진으로 올리고 트위터에 썼지요. (한국말로) 티브이조선, 뻥치지 마세요!”

-푸하핫….

“정말 웃기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실제로 많은 영국인들은 왕실 사람들을 좋아하지 않아요.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의견이 엇갈리죠.”

-저도 잘 모르고 있었어요. 영국 사람들은 왕실에 대해 애정과 신뢰를 갖고 있는 줄 알았는데.

“우리 아버지 같은 사람은 그래요. 근데 우리 삼촌은 영국 왕실이 기생충 같은 존재라고 여기죠. 솔직히 나는 왕실에 대해서 별 관심도 없는 편이고요. 어쨌거나 내가 그렇게 쓰니까 트위터에서 어떤 이가 나한테 이렇게 썼어요. (한국말로) ‘대한민국을 음해하는 전형적인 서양 좌파!’ 진짜 웃기죠. 내가 티브이조선을 비판하면 이 나라를 비판하는 게 되나요? 그래서 ‘좋아, 그럼 나는 서양 좌파라는 말을 써야지’ 했어요.(웃음)”


다니엘 튜더는 영국 맨체스터 근교의 스테일리브리지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다. 중소기업 매니저로 일하던 아버지는 다니엘이 열두살 때 정리해고 되었고, 그 뒤로 여러 일자리를 전전하다가 학교 청소부로 정년퇴직했다. 동네 작은 댄스학원을 운영하는 어머니가 실질적 가장이 되어 가계를 꾸려갔다. 외아들인 다니엘은 옥스퍼드대학에 입학했고, 관료 엘리트 코스로 불리는 ‘정치, 경제, 철학’ 과정을 전공했다.

한국에 처음 온 건 2002년 월드컵 때였다. 같은 대학 한국 친구가 같이 가보지 않겠느냐고 해서 엄벙덤벙 따라나설 때까지 그가 한국에 대해서 아는 것이라곤 한국의 수도가 서울이라는 것 정도였다. 한국에 발을 들이자마자 그는 이 변화무쌍하고 역동적이며 정이 넘치는 한국 문화에 매료되었다. 그는 2004년 다시 한국을 찾았고 영어학원이나 증권회사 등에서 일했다. 2007년 영국에 돌아가 맨체스터대학에서 경영학 석사 과정을 마친 그는 스위스 취리히의 헤지펀드 회사에서 일하다가 2010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으로 다시 돌아왔다.


-올해 들어서만 두 권의 책을 출판했어요.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에 앞서, 지난 4월에 영문으로 된 '북한 콘피덴셜'(North Korea Confidential·다니엘 튜더, 제임스 피어슨 공저)이 나왔죠. 마지막 챕터가 ‘북한은 붕괴할까?’였는데, 빠른 시일 내에 북한이 망하진 않을 거라고 썼어요. 어떤 근거로 한 말이죠?

“사람들은 소련이 몰락했을 때부터 북한이 곧 망할 거라고 했는데, 벌써 3대째 이어지고 있잖아요. 북한보다, 북한이 망할 거라고 말한 사람들이 먼저 죽었죠. 북한 정부는 실질적으로 파산 상태이고 정치·경제·사회적으로 통제력을 잃어가고 있어요. 그렇지만 북한 내부에서 정부에 반대해서 일어서는 건 지극히 어려운 일이에요. 기적적으로 민주화를 이룬 한국과는 달리, 북한에선 그런 상상력을 발휘할 역사적 경험 자체가 부재하니까요. 무엇보다도 지정학적인 조건에서, 북한의 존재를 필요로 하는 강대국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려 있어요. 아베 신조에겐 북한이 유용할 거예요. 그걸로 군사력을 키우고 더 공격적인 군대를 만들 명분이 생기니까. 중국은 미국에 대항할 완충 장치로 북한을 필요로 하고, 미국은 아시아에 미군 주둔과 군사비 지출을 정당화하는 데 북한이 유용해요. 한국은… 글쎄, 한국은 기본적으로 힘이 없죠.”

-나는 사실 외국인이 쓴 한국 관련 저술에 대해서 한국 사람들이 지나치게 열광하고 과신하는 건 문제라고 생각해요. 심지어 자기가 말한 게 인용되어서 외신에 보도되었을 때도, 그 외신을 재인용해서 자기 입장을 옹호하죠. ‘뉴욕 타임스에서 이렇게 말했다.’ ‘워싱턴 포스트에서 이렇게 보도했다.’

“맞아요. 특히 한국 언론의 국제부가 하는 일이 그런 거죠. 한국에 대한 외신 인용하기.”

-그런데 다니엘이 한국에 대해 쓴 책에 대해선 좀 달리 생각하게 되었어요. 2013년 나온 '기적을 이룬 나라 기쁨을 잃은 나라'를 읽었는데, 외신기자의 칼럼 모음집인 줄 알았다가 한국 사회에 대한 민속지적 연구(ethnographic research)에 가까워서 깜짝 놀랐어요. 특파원으로 일한 3년을 포함해서 한국에 있던 기간이 총 7년인데 어떻게 그 기간에 그렇게 깊이있는 조사와 집필을 할 수 있었을까 신기해요.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고마워요. 그리 대단한 일은 못 되지만, 어쨌든 내가 뭔가 했다면 그건 기본적으로 ‘애정’에서 나온 걸 거예요. 난 이곳이 정말 좋아요. 처음 여기 왔을 때 ‘아, 여긴 내게 꼭 맞는 장소야’라고 생각했어요. 물론 난 영국 사람이죠. 수줍음 많고 사회성 떨어지고, 차 마시는 것 좋아하고. 아, 술도 좋아하는데 그건 영국 사람, 한국 사람 다 해당되는 거니깐.(웃음) 근데 영국 사람들은 좀 차갑고 냉소적인 데가 있어요. ‘이건 내 일, 저건 네 일, 그러니까 피차 상관하지 말자.’ 근데 한국 사람들은 안 그래요. 내가 볼 때 한국 사람은 (한국말로) ‘타고난 사회주의자’ 같아요.”

-무슨 뜻이죠?

“정치·경제적인 의미는 아니고요. 천성적으로 그렇다는 얘기예요. 한국은 정치적으론 자본주의지만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사회주의자 같은 면모가 있어요. 정치적으로 사회주의 정부를 가진 중국 사람들은 천성적으로 자본주의적인데, 한국은 그 반대죠. 네 것, 내 것 가르기보다는 ‘우리’를 강조하고, 밥상 가운데 음식을 놓고 다 같이 먹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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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웃음) 외신기자들은 극히 제한된 범위의 사람들만 만나기 십상인데, 다니엘 책을 보면 한국에서 굉장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얘길 들었구나 하는 느낌이 들어요.

“그러려고 노력했어요. 외신기자들은 영어가 되는 기업 홍보실이나 정부 대변인들, 혹은 해외유학파 출신 교수들하고 주로 얘길 나누죠. 그렇게 한 3년 근무하고 다른 지역으로 떠나는 경우가 많으니까 한국말을 배울 여유도 없고요. 내 경우는 조금 다를 거예요. 난 처음부터 한국에 관심이 있어서 온 거고, 그 뒤에 저널리스트가 된 거니까. 한국말과 문화를 배워야겠다 맘먹고 일부러 영어 잘하는 사람을 피해 다닌 적도 있어요. 그래야 한국말이 늘 것 같아서요. 사실, 영어 잘하는 비즈니스 쪽 사람들하고의 대화는 되게 지루한데, 영어를 잘 못하는 한국 사람들이랑 얘기하는 게 훨씬 재미있기도 했고요. 2011년엔가 하루는 이명박을 만나고, 다음날엔 노숙자를 인터뷰한 적도 있어요. 영어에 능통한 사람들은 우파적 성향이 강해서, 그들만 만나는 외신기자들은 한국 좌파를 정신나간 사람들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난 (만나는 이들이 다양하다 보니) 한국 진보주의자들에 대해서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의 진보에 대한 더 많은 이해, 그것은 단순한 지지와 옹호를 뜻하지 않는다. 다니엘 튜더는 한국의 진보가 근본적 사회혁신과 권력교체로 나아가지 못하는 치명적 한계와 약점을 통렬히 꼬집는다. 역사상 어느 정부도 대기업 우선주의에 메스를 댄 적이 없으며, 한국의 보수와 진보 공히 “철학이 없는 가짜 보수와 가짜 진보”라고 그는 주장한다.


-한국의 보수는 보수가 아니고 한국의 진보도 진보가 아니라고 책에 썼어요. 어떤 의미죠?

“한국에서 보수는 기본적으로 ‘박정희주의’입니다. 숫자에만 집착하는 개발주의죠. 지디피(GDP) 성장률, 수출액, 그리고 랭킹 숫자들. ‘우리는 아시아에서 두번째로 높은 빌딩을 갖고 있다’, ‘싸이가 미국 팝 시장에서 넘버원 히트를 기록했다’ 그런 것들이요. 보수정당이라면 자유시장 원리에 대한 확고한 기본원칙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한국의 보수는 자유시장 질서에 반하는 ‘대기업주의’를 신봉합니다. 전경련 같은 그룹이 자유시장에 대해서 말할 때 보면, 완전히 가짜예요. 대기업들은 국민의 세금으로 전기세를 감면받고 역사적으로 정부에서 많은 혜택을 받아왔어요. 그래 놓고 기업에 대한 증세를 얘기하면 자유시장 원리를 주장합니다. 위선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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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주의 대 반박정희주의

-한국의 진보는요?

“그냥 반박정희주의? 그들도 보수와 마찬가지로 대기업주의를 버린 적이 없어요. 가장 친시장적인 대통령(most free-market President)은 김대중이었다고 난 생각해요. 노무현은 인간적으로 정말 다른 느낌을 주는 사람이지만, 불법을 저지른 대기업 회장님들을 사면해줬지요. 새누리당은 숫자 이외엔 아무 철학이 없고, 새정치민주연합은 (한국말로) ‘새누리당의 그림자’로만 존재하는 것 같아요. 진보라면 사회적 약자들, 가난한 사람들, 여성과 게이들을 보호한다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하는데, 이게 뚜렷하지 않아요. 이런 양당이 한국의 정치판을 장악하고 있어요.”


이런 양당체제가 새로운 정치세력의 부상을 가로막고 있지만, 절망에 익숙해진 한국인들은 틀을 벗어난 변화를 꿈꾸기 두려워한다고 그는 말한다. 그가 책에 쓴 문장 한 구절이 따끔하게 가슴에 와 닿았다.

“나쁜 정치인에게 정치에 무관심한 대중은 최고의 선물이다.”


-이번 책에서 근본적으로 발상을 달리하는 새로운 정당모델을 제안했지요? 이탈리아의 ‘오성운동’(Five Star Movement)을 예로 들었어요.

“이탈리아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총리는 욕을 많이 먹는 정치인이지만 선거 때마다 이겨요. 미디어를 거의 장악하고 있고요. 야당은 지리멸렬하고 인기가 없지요. 사람들은 베를루스코니 말고 다른 누군가가 이기기를 바라지만, 야권은 믿지 못해요. 한국이랑 비슷하지 않나요? 근데 거기서 전직 코미디언이자 인기 블로거인 베페 그릴로가 제안을 해요. ‘우리 각 지역이나 도시에서 작은 단위로 모여서 정치토론을 하고 사안별로 찬반 여부를 투표로 정해보자!’ 하고요. 모든 참가자는 2~3분간 발언 기회를 갖게 되고, 주어진 사안에 대해서 투표를 하죠. 그 작은 풀뿌리 모임들이 바탕이 돼서 국가적 운동으로 전개된 거예요.”


오성운동은 전통적인 좌파-우파 프레임을 거부하며 반부패와 직접민주주의, 지속 가능한 성장과 생태주의, 비폭력 평화를 주장한다. 정치는 “일시적인 서비스”(temporary service)라는 모토로, 어떤 단위에서든 두번 연속 당선된 사람은 다시 입후보할 수 없고 원래의 생업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규정도 두고 있다. 정치인이 기득권자가 되는 걸 막기 위해서다. 오성운동은 창당 2년 만에 이탈리아 각지에 650개의 풀뿌리 모임을 가진 전국 조직으로 성장했고 2013년 첫 도전한 총선에서 하원 109석, 상원 54석을 석권했으며 지난해 유럽의회에서는 17석을 확보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런데 이런 오성운동 같은 시도가 순수한 시민들의 열의만으로 성공할 수 있을까요? 정치를 하려면, 특히 선거에서 이기려면 돈과 조직, 인맥이 있어야 한다는 게 통설입니다.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 같은 사례를 보면 그런 통설이 틀렸다는 걸 알 겁니다. 포데모스는 지난해 결성된 스페인의 좌파정당인데요. 패기만만한 30대 정치학 강사가 만들었어요. 포데모스는 네트워크 형태의 정당인데, 어떤 정책을 만들지 온라인으로 투표합니다. 지금은 스페인에서 제일 인기있는 정당이 되었지요. 아마 다음번 선거에서는 그들이 이길 거예요. 포데모스의 예산은 10만유로(약 1억2500만원)였어요. 그것도 온라인·오프라인 캠페인을 통해서 모금한 거예요. 정말 필요한 건 돈이 아니에요. 자발적으로 일할 사람들이지.”


스페인의 기성 정당이 200만유로를 가지고도 허덕대는 선거에서 포데모스는 시민들의 소액기부로 모은 단돈 10만유로로 충분했다. 올해 2월 포데모스를 지지하는 10만명의 시민들은 마드리드 중앙광장에서 거리행진을 벌였는데, 전국에서 군중 모금으로 260대의 버스를 마련했고 마드리드에 사는 수백가구는 이들에게 무료로 잠자리를 지원했다. 시민에 의한, 시민을 위한, 시민의 정치 축제였다. 포데모스는 스페인어로 ‘우리는 할 수 있다’라는 뜻이다.


-우리도…할 수 있을까요?

“한국에는 진보적이면서 전문성을 갖춘 사람들이 굉장히 많아요. 슬픈 일은, 이렇게 똑똑하고 진보적인 친구들이 새누리당을 비판하거나 반대하고 반박하는 데는 능하지만 (정치 변화를 위해) 새로운 뭔가를, 적절한 조직 같은 걸 만들 줄은 모른다는 거예요. 이런 사람들을 더 많이 정치에 참여하도록 격려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오성운동이나 포데모스 같은 방식은 그런 사람들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한 방법이 될 거예요. 그들은 이런 게 자기들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걸 몰라요.”


이상주의자의 또다른 도전

-7년을 한국에 머물렀던 당신은 한국 정치가 어떤 근본적 문제를 갖고 있는지, 재벌 위주의 왜곡된 시장경제가 어떻게 사회를 병들게 하는지 얘길 한단 말이에요. 근데 왜 우린 그런 얘기를 당신한테서 들어야 하는 걸까요? 한국에서 수십년간 기자생활 하는 사람들 놔두고.

“개인보다는 그 소속기관의 문제겠죠. 내 친구 중에는 한국의 기자들도 많이 있어요. 내 생각에 동의하는 이가 있다 하더라도 아마 그들이 자기 매체에서 그렇게 말하는 건 허락되지 않을 거예요. 게다가 한국에선 개인적 커넥션에 좌우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영국 미디어는 적어도 그 점에선 분명한 데가 있어요. ‘내가 누군가의 감정을 건드리거나 애를 먹이거나, 그로 인해 내가 곤란에 빠진다 하더라도, 어쨌든 할 말은 해야 한다.’ 그게 미디어 정신이죠.”

-한국에선 언론인으로 이름을 알린 이들이 정치권에 발탁되는 일들이 비일비재해요.

“영국에선 그런 경우가 거의 없어요. 영국에서 언론인은 대부분 좌파거나 비판적 성향인 경우가 많습니다. 고학력에 똑똑한 사람들인데 그들이 원했다면 처음부터 금융권이나 정계나 뭐 그런 쪽으로 나갔겠죠. 언론계로 온 사람들은 스스로를 저항군(rebel)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어요. 그들의 일은, 싸우거나 시스템을 폭로하는 것이죠. 자신에 대해서 그런 프라이드를 갖고 있으면 그런 쪽(권력층)으로 나가는 걸 원하지 않겠죠.”

-한국에서 진보-보수 간 진영논리가 자리잡게 된 데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한편에는 조·중·동, 다른 쪽에는 한겨레·경향 식으로 딱 나뉘어서 똑같은 팩트를 두고도 상반되게 보도를 하니 여론이 늘 두 동강 난다고요. 언론의 편향성(Bias)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세요?

“난 언론의 편향성은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그게 양쪽으로 존재하는 한.”

-편향성이 괜찮다고요?

“이코노미스트를 보세요. 굉장히 편향적이에요. 하지만 사람들은 그걸 좋아하고 존중하죠. 거짓말을 하지 않는 이상 편향적인 건 문제가 안 된다고 생각해요. 언론이 중립적이거나 객관적이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미국 언론이죠. 편향성은 자연스러운 거예요. 누구든 편향되지 않은 척하는 게 거짓이라고 난 생각합니다.”

-우리는 항상 ‘선진국 언론’은 우리랑 달리 공정하고 불편부당하다고 배워왔어요.(웃음)

“아니에요. 영국 언론은 완전 편향되어(super-biased) 있고요, 논설에서 정직하게 말해요. 우리는 보수지다. 우리는 진보지다….”


언론의 편향성은 자연스러운 것

편향성이 문제가 아니라, 언론이 갈수록 독립성과 다양성을 잃어가는 게 진짜 문제라고 그는 강조한다. 돈벌이에 급급한 신문엔 쓰레기 같은 기사가 넘쳐나고, 역량 있는 언론인들은 직장에서 떨려나고 있다. 지난해 말 다니엘 튜더는 서울 생활을 접고 런던으로 돌아가, 옥스퍼드 동문인 이승윤과 함께 새로운 형식의 뉴스플랫폼 ‘바이라인’(Byline)을 창간했다. 기자가 자신이 보도할 기사에 대한 기획안을 온라인에 올리면 뜻있는 독자들이 기자를 후원하는 크라우드펀딩 방식이다. 문 연 지 얼마 되지 않았지만 루퍼트 머독의 전화 해킹 사건을 다시 쟁점화하면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자본에 종속된 언론사라면 결코 건드리지 못했을 이슈를 그는 이번에도 일반 시민과 네트워크의 힘으로 해결해보려 한다.

Byline's Alex AndreouHOW EUROPE PLAYED GREECE: Do these things, they said, for all our sakes and you will return to prosperity with our help. They lied.https://www.byline.com/column/11/article/135

Posted by Byline on Friday, 3 July 2015


-한국에 처음 왔던 십여년 전과 비교해보면 지금 다니엘은 어떻게 변한 것 같아요?

“그때보다 좀 살이 빠졌죠.(웃음) 옛날엔 되게 뚱뚱했어요. 술은 조금 늘었고, 예전보다 난 더 ‘이상주의자’가 된 것 같아요. 남들은 나이 들수록 보수적으로 변한다는데, 난 반대예요. 금융회사에서 돈만 벌 때는 잘 몰랐던 걸, 기자 되고서 깨달은 게 많아요. 내가 뭘 원하는지, 내가 뭘 잘하는지, 어떻게 사는 게 쓸모있게 사는 건지…. 옛날에 알던 친구들 보면 돈은 많이 버는데 스트레스에 찌들어서 사는 게 아주 처참해요. 거기 비하면 난 정말 행운아죠.”


우리도 나이 들수록 장대한 꿈을 품는 이상주의자가 되어볼 순 없을까? 다니엘 튜더의 지적처럼 지금 우리에게 결핍된 것은, 막대한 자금과 조직과 위대한 영웅이 아니라, 발칙한 상상력과 그 상상력을 행동으로 옮겨보는 작은 용기인지도 모른다. 포데모스 코리아!

녹취 차민태(연세대학교 대학원 사학과)

이진순 언론학 박사. 전직 교수. 살림하고 애 키우는 오십대 아줌마이자 공부하고 글 쓰는 열혈시민이다. 서울대 사회학과와 럿거스대 커뮤니케이션스쿨을 졸업했다. 미국 올드도미니언대학 조교수로 인터넷 기반의 시민운동을 강의했고 그 전에는 <이제는 말할 수 있다> 등 다큐멘터리 작가로 다양한 인물을 취재했다. 세상의 새 지평을 여는 ‘열린 사람들과의 어울림’(열림)을 격주로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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