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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4일 10시 19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7월 04일 10시 22분 KST

길고 길었던 유승민의 일주일 재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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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3일 오전 국회에서 원내대표단-정책위원회 연석회의를 열기 위해 원내대표실로 들어서고 있다. 그의 요즘 처지를 보여주는 듯 주변 자리가 비어 있다.

평소와 다르지 않았다. 양복 단추를 채우고 옷매무새를 만졌다. 다소 빠른 걸음을 내디디며 팔은 가볍게 흔들었다. 기자들에게는 눈인사도 건넸다. 질문에 대한 답변은 간결했다. “사퇴 이야기가 나올 것 같은데?”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지난 6월29일 오후 3시, 유승민 원내대표는 수십개의 카메라 플래시를 담담하게 받아내며 국회의 새누리당 당대표 회의실로 들어갔다. 아침에 갑자기 소집된 긴급최고위원회가 열릴 곳이었다. 유 원내대표가 들어가자, 문이 겹겹이 닫혔다. 안에는 ‘유승민 사퇴’를 별러온 최고위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8명의 최고위원만 참석한 비공개회의는 2시간20분 동안 이어졌다. 유 원내대표를 뺀 7명의 최고위원들이 돌아가며 의견을 이야기했다고 한다. 대부분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종용했다. 친박의 큰형님인 서청원 최고위원은 “국정 최고책임자와 불협화음은 결국 공멸”이라고 엄포를 놓았다. ‘박근혜 복심’으로 불리던 이정현 최고위원도 거들었다. 이인제 최고위원은 “우리에겐 시간이 많지 않다”고 압박했다. 비박계인 원유철 정책위의장과 온건파인 김을동 최고위원만 침착했다. “그래도 마무리할 시간은 줘야 하지 않겠냐.”

유 원내대표는 변명하지도, 맞받아치지도 않았다고 한다. 묵묵히 듣고 가끔씩 적었다. 이따금 담배도 피웠다. 최근 부쩍 몸이 안 좋아지면서 독한 약을 달고 사는데도 담배는 놓지 못했다. 최고위원들이 말을 할 만큼 쏟아냈을 때 유 원내대표가 입을 뗐다. “의원들이 (나를) 뽑았는데 왜 최고위원들이 (날더러) ‘사퇴해라’, ‘마라’ 하는지 모르겠다.” 성질 급한 김태호 최고위원이 책상을 탁 치며 소리쳤다.

“최고위원도 의원과 당원들이 뽑은 선출직이다. 지금 새누리당의 집단지도체제를 부정하는 거냐.” 그러곤 김무성 대표를 향해 “(최고위원이) 공동으로 책임질 방안을 고민해보라”고 쏘아붙였다. ‘유승민, 당신 때문에 지도부가 집단 사퇴해도 좋으냐’는 날이 담겨 있었다. 이미 ‘자진 사퇴’ 유도로 마음이 기운 김 대표는 “명예롭게 퇴진할 방법을 내놓으라”며 ‘출구전략’을 찾았지만 아무도 대답하지 못했다. 유 원내대표는 “생각해보겠다”고만 했다. 분명한 사퇴 거부였다.

그는 주눅 들지 않았다. 비공개회의가 끝난 뒤 서청원 최고위원은 기자들에게 “유 원내대표가 ‘최고위원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기회를 달라고 했다’”고 했다. ‘기회’를 읍소하는 유 원내대표의 모습이 그려지지 않았다. 서 최고위원의 말을 전해 들은 유 원내대표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조금이라도 ‘틀렸다’ ‘아니다’ 싶으면 불리한 상황에서도 곧바로 지적하고 바로잡아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이었다. 박근혜 대통령과 같은 원칙주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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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1일 오전 보도진의 플래시를 받으며 국회에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최고위원회에서의 ‘사퇴 거부’는 예상됐었다. 회의를 한시간 앞두고 유 원내대표는 한 행사에서 축사를 ‘웃픈’ 농담으로 시작했다. “혹시 오늘 아침 조간신문 보신 분들은 ‘저 사람이 아직 목이 붙어 있나’ 하실 텐데.” 사람들은 크게 웃지 못했다. “10년 전 야당 시절 추운 날 거리에서 사학법 장외투쟁을 하면서 명동에서 열심히 전단 돌리던 생각이 난다”고도 했다.

2005년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직전 비서실장 유 의원은 ‘동고동락’하던 사이었다. 2007년 한나라당 대선 후보 경선까지만 해도 박근혜 캠프의 정책메시지 총괄단장을 맡았던 그는 ‘원조 친박’ 중에서도 누구보다 박 대통령과 가까웠지만 이후 공개 비판과 소신 발언을 하며 서서히 멀어졌다.

이날 우스개에선 그 시절 박 대통령에 대한 그리움과 지금 자신의 처지에 대한 서글픔이 담겨 있었다. 그랬던 박 대통령이 정면으로 싸움을 걸어왔으니, 피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었을까. 당시 축사를 듣던 한 참석자는 “유 원내대표는 달관을 한 사람처럼 보였다. 여유있는 낯빛이었다. 길게 보는 느낌이 들었다”고 당시 느낌을 전했다. 기자들도 ‘장기전’을 예상하기 시작했다.

사실 나흘 전인 지난달 25일(목요일)에만 해도, 정치권에선 “유 원내대표가 이번 주말(27~28일)을 넘기기 어려울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다. 그를 향한 박 대통령이 쏟아낸 독설은 ‘저주’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박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여야가 합의 처리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며 유 원내대표를 정조준 했다.

“(선거에서) 당선된 후에 신뢰를 어기는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들께서 심판해 주셔야 한다”고 했다. 한 여권 인사는 “대통령의 ‘언어’가 아니었다”며 소름 끼쳐 했다. 유 원내대표도 기자들에게 “상당히 놀랐고 충격을 받았다”고 털어놨다.

충격을 털고 곧바로 ‘승부’를 걸었다. 날선 대통령의 발언으로 의원들이 바짝 위축된 상황에서도 의원총회를 소집한 것이다. 그에겐 2011년 11월 친박들의 만류에도 예상보다 빨리 최고위원직을 던지며 ‘홍준표 체제’를 붕괴시키고 ‘박근혜 비상대책위원장 체제’를 만든 ‘승부사’ 기질이 있다. 이 역시 박 대통령과 비슷한 면모다.

의원들은 5시간에 가까운 토론 끝에 유 원내대표에게 “책임을 물을 일이 아니다”라며 재신임을 결정했다. 의원들의 전폭적 지지라는 ‘바리케이드’를 친 것이다. 그러고는 의원들의 뜻을 받아들여 이튿날 “박 대통령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깊이 고개를 숙였다. 그러나 그와 가까운 한 의원은 “진짜 싸움은 지금부터다. 간밤에 잠을 설쳤다”고 걱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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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1일 오전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최고중진연석회의를 마친 뒤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예상은 들어맞았다. 의총(6월25일)과 긴급최고위원회(6월29일)에서 두번의 ‘기회’를 놓친 청와대와 친박들은 약이 바짝 올랐다. 이장우 의원 등은 각종 언론 인터뷰에 나와 “(국회법 개정안 재의 표결을 하는 본회의가 열리는) 7월6일이 지나면 사퇴를 해야 한다”며 또다른 데드라인을 들고나왔다. 이를 ‘명예로운 퇴진’으로 포장했다.

‘7월6일’을 기점으로 충청 친박 의원들은 집단행동 가능성도 내비쳤다. 이인제·정우택·김태흠·김현숙·이장우·정용기 의원 등 충청권 의원 10여명은 1일 모여 “유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 처리 여부가 결정되는) 6일 본회의까지 사퇴를 안 할 경우 사퇴 촉구 방안을 논의하자”는 결론을 내렸다고 한다. 충청은 박근혜 대통령 어머니(육영수)의 고향이기도 해 박 대통령에 대한 호감도가 높은 지역으로, 대부분의 의원들도 친박 성향을 띤다. 모임에 참석한 한 의원은 “이러다가는 영남권이 갈라지면서 (내년 총선에서) 충청권도 전멸할 것이라는 위기의식을 의원들이 느끼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유 원내대표는 당내 최대 세력인 티케이(TK·대구경북) 지역에서 3선을 했지만 본능적으로 ‘친박’인 이들도 ‘바람막이’가 되어주지 못했다. ‘박근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티케이 지역의 한 의원은 “하물며 (대통령 직속인) 장관도 그렇게 내쫓을 수는 없는데 1970년대도 아니고 여당 원내대표를 찍어내는 게 말이 되느냐”면서도 “지역에선 그래도 유승민이가 대통령에게 대들어선 안 된다는 정서가 강하다”고 했다. 티케이 지역 사정에 밝은 한 인사는 “(특히 대구 의원들은) 유 원내대표와 심리적으로 가깝지만 ‘박근혜냐 유승민이냐’고 줄을 세우면 (유 원내대표의 측근인) 한 의원 말고는 모두 박 대통령 편에 설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친박들이 도발할수록 유 원내대표 쪽은 “친박들이 6일을 이야기하면 더더욱 6일에는 (사퇴를) 못한다”고 맞섰다. 유 원내대표도 “원내대표는 청와대의 임명직이 아니다. 내가 나가야 할 명분이 없다”는 말로 주변을 안심시켰다고 한다. 물러날 때 물러나도, 그 시점은 자신이 정한다는 것이다. 중부담-중복지 노선, 법인세 인상 등 자신의 ‘개혁보수’ 소신이 좌절되는 등의 정치적 명분이 필요하다는 뜻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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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국회 국방위원회에서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회의에 참석해 보고 자료를 보고 있다.

여론도 ‘왕따’당하는 ‘약자’인 유승민에게로 기울었다. 대부분의 여론조사에서 유승민 사퇴에 ‘공감 안 한다’는 응답이 ‘공감한다’는 응답을 앞질렀다. 대중적으로는 ‘무명’에 가깝던 유 원내대표의 여권 내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도 상위권으로 뛰어올랐다. 친박들은 초조해졌다. 더 이상의 ‘카드’가 마땅치 않은 상황에서 ‘장기전’에 들어갈 경우 ‘되치기’ 당할 수 있다는 불안감을 느꼈다.

최악의 상황은 내년 총선에서의 공천 탈락이다. 애초에 박 대통령이 건 이 싸움도 비박계 ‘투톱’으로부터 내년 총선 공천권을 되찾아오려는 ‘목적’에서 시작됐다는 게 정설이다. 한 친박 의원은 “이 정도면 유승민이가 얻을 건 다 얻은 것 아니냐”며 “지금 물러나도 상처를 입는 건 오히려 대통령”이라고 사퇴를 ‘호소’했다.

조급해진 청와대와 친박은 ‘바닥’을 드러냈다. 노골적으로 유 원내대표의 손발을 묶기 시작했다. 1일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한 당정에서 유 원내대표를 배제시켰다. 메르스 추경 당정은 그가 각별히 신경써온 자리였다. 친박 핵심인 최경환 부총리가 회의 전날 한 친박 의원을 통해 “유 원내대표가 참석하지 않게 해달라”고 요청한 결과로 알려졌다. 강제로 ‘원내대표직 직무수행’을 정지한 것이다.

2일 청와대 결산 심사를 위한 국회운영위원회도 갑자기 무산됐다. 김무성 대표가 “유 원내대표가 위원장을 맡는 운영위원회에 청와대 참모진을 내보내기 어렵다”는 청와대의 메시지를 받아들인 결과란 이야기가 돌았다. 유 원내대표 측근들은 “손발을 자르는 것은 너무하다”며 화를 삼켰다. 한 여권 관계자는 “초등학교 6학년도 이렇게 왕따를 시키지는 않는다”며 혀를 찼다. 정상적인 업무가 어려워졌는데도 유 원내대표는 하소연하지 않았다. 측근들과 소주 한잔 하는 자리에서도 자신의 이야기는 아꼈다. 한 당직자는 “표정이 나쁘지 않았고 담담했다. 거취 문제, 여의도 정치는 이야기하지 않고 농담도 하고 그런 분위기였다”고 했다. 결국 여론 악화와 야당 반발에 떠밀려 국회 운영위는 3일에야 열렸다.

주초에만 해도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다수의 비박계 의원들은 유 원내대표의 버팀목이 되어 줄 것처럼 보였다. 새누리당 의원 160명 가운데 비박이 110~120명으로 분류될 정도로, 압도적으로 많다.

실제 6월29일 긴급최고위원회가 열리기 직전에는, 비박계 재선 20명이 긴급 성명을 내어 “민주적 절차를 통해 결정된 것을 의원들의 총의를 묻지 않은 채 최고위원회가 일방적으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고 반기를 들었다. 기율이 강한 새누리당에선 좀체 보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중진인 이재오·정병국 의원도 “유 원내대표 사퇴는 말이 안 된다”고 공개 발언했다. 대통령이 여당 원내대표를 ‘해임’하려는 것은 정당민주주의와 의회민주주의에 정면 배치된다고 봤다.

유 원내대표가 내건 개혁 보수 노선이 내년 총선에 유리할 것이라는 기대도 작용했다. 한 재선 의원은 “지역 민심이 너무 나쁘다. 보수적인 주민들도 ‘박 대통령이 왜 그러느냐’고 나에게 따진다. 유승민이 물러나면 내년 수도권은 망한다”고 했다”고 했다. 그러나 다수에겐 구심점이 없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사방으로 흩어졌다. 장기전으로 인한 여권 전체 대한 ‘피로감’을 걱정하는 분위기였다. 앞서 재선 서명을 주도했던 의원은 “지금은 싸울 때가 아니다. 지켜보자”며 관망세로 돌아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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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에서 김무성 대표가 갑자기 회의 종료를 선언하고 회의장을 떠난 뒤 유승민 원내대표가 심각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서고 있다.

상황은 나빠져만 갔다. 2일 오전 최고위원회에선, 그동안 줄기차게 ‘유승민 자진 사퇴’를 요구해온 김태호 최고위원이 “콩가루 집안이 잘되는 것 못 봤다”며 ‘레퍼토리’를 꺼내들었다. 비박계인 원유철 정책위의장이 “해도 너무한다”고 성토했다. 평소 온화한 원 의장의 흥분된 목소리에, 기자들도 멈칫했다.

김 최고위원이 다시 반박하려던 순간. 일그러진 얼굴로 김무성 대표가 “그만해. 회의 끝내겠다”며 일어서 회의장을 나갔다. 김 최고위원은 김 대표 등에 대고 “무슨 이런 회의가 있어!”라고 소리쳤다. 이런 김 대표를 향해선 김무성 대표의 비서실장 김학용 의원이 “에이, ××야, 그만해라!”고 거친 말을 쏟아냈다. 한가운데 앉아 있던 유 원내대표는 그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입을 꼭 다문 채 정면만 응시했다. 그가 모욕을 견디는 방식이었다. 자신의 거취 문제로 난장판이 된 회의장을 유 원내대표가 말없이 빠져나갔다.

기자들의 잔인한 질문이 쏟아졌다. “회의가 파행됐는데 기분이 어떤가?” “입장에는 변화가 없는가?” 평소 기자의 질문을 피하는 법이 없던 유 원내대표도, 이날에는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 대신 측근이 “(아침 회의 상황이) 너무 추악스러워 입에 담기도 힘들다”고 느낌을 전했다. 평소 가장 강경하게 ‘유승민 사수’를 외치던 그도 “(6일까지) 어떤 바람이 불지 기다려봐야겠다”며 한풀 꺾여 있었다. 처음으로, 흔들리는 유 원내대표가 보였다.

한 중진 의원은 “유승민이 물러나더라도 ‘유승민 사태’는 끝나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유 원내대표의 거취 문제를 계기로 폭발한 당-청 간, 당-계파 간 갈등이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이란 걱정이었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덧붙였다. “유승민 사태가 끝나더라도 ‘정치인 유승민’은 남을 것 같다.” 자신이 의도한 ‘유승민 사태’에서 박 대통령이 얻는 건 무엇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