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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7월 02일 10시 0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9월 02일 07시 22분 KST

데이트 폭력 피해자들이 SNS에 폭로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

Shutterstock / Andrew Lever

폭로가 있었다.

“저는 지난 2008년부터 2012년까지 A씨와 연애를 하였고, 그동안 여러 차례 구타당한 사람입니다.” 한 여성이 6월19일 블로그에 쓴 글을 트위터를 통해 공개했다. 멍이 들 정도로 맞은 일이 몇 차례 있었다는 내용이었다. A씨는 여러 매체에서 진보적 글쓰기를 해온 칼럼니스트다. 이후 A씨가 사실관계를 해명하고 사과하는 입장을 발표하자 이 여성은 자신의 이름을 공개하고 그 해명을 반박했다. A씨는 단서 조항을 달긴 했지만 사과하고 글쓰기 등 모든 외부 활동을 중단했다.

폭로가 이어졌다. 이틀 뒤인 6월21일 또 다른 진보 논객 B씨로부터 ‘데이트 폭력’을 당했다는 폭로가 나왔다. B씨는 “혐의 내용을 인정할 수 없”다고 전면 부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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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로 그리고 폭로

이 폭로들은 트위터 등 온라인 공간에서 여성들이 자신의 ‘데이트 폭력 경험’을 돌아보는 계기로 작용했다. 반추는 또 다른 폭로로 이어졌다. 폭로가 폭로를 낳았다. 한 여성은 웹툰 작가 C씨로부터 성추행을 당했다고 말했다. 여성이 C씨가 누구인지를 밝히기 전 C씨가 자백하고 사과했다. 여성은 C씨가 밝힌 사실관계 가운데 틀린 점을 수정한 뒤 “앞서 데이트 폭력이라든지, 여러 부조리한 문제에 대해 먼저 말씀해주시는 분들이 없었다면 얘기 꺼내지 못했을 겁니다. 그분들에게 고맙고, 또한 미안한 마음을 전합니다”라며 먼저 밝혀준 세 여성에 대한 고마움과 그들이 겪고 있을 고통에 대한 안타까움을 표했다.

남성잡지 <맥심> ‘맥심 콘테스트’에서 맥심걸로 뽑힌 D씨 역시 트위터에서 “소름 끼치게도, 나에게 데이트 폭력을 휘둘렀던 미술가 E는 멜로드라마 마니아였다. 데이트 폭력이 그 사람 머릿속에선 로맨스였을 거란 생각이 문득문득 들었다”고 데이트 폭력의 기억을 꺼냈다. E씨는 자신에게 오는 각종 성희롱 전자우편이나 메시지 등에 대해서도 가만히 있지 않고 죄다 고발하겠다고 선언했다. “메일로 팬레터를 가장한 장문의 성희롱을 받거나, (나를 보며 어떻게 자위를 했고 어쩌고 등등) SNS로 정신병자에게 협박 스토킹을 당하거나 (당)했던 일이 빈번했다. 여성으로서 사는 삶이 이래도 남성과 동등하다고 생각하나? 이제까지 그러려니 했던 이런 메시지들 이제 하나하나 신고 넣겠다”고 썼다.

꽤 많은 사람들이 트위터 공간에서의 폭로를 ‘응징’과 ‘복수’로 이해하지만 자신의 피해 경험을 모두가 알게끔 이야기하는 단계에서 폭로는 여성 본인에게는 ‘치유’ 혹은 ‘각성’이 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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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징·복수 아니라 치유·각성

C씨의 성추행을 떠올린 여성은 자신의 지난했던 20년간의 가정폭력 경험을 고백했다. 7년간 사귀며 가정폭력 사실을 유일하게 털어놓았던 남자친구에 대해서는 “내가 이런 집안 사정을 얘기하면 위로해주기보다는 고작, 그런 폭력 집안의 딸로 여겨 나를 업신여기거나 무시하기 일쑤였다”고 말했다. 그는 “오랫동안 나는 무슨 일이 생기면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끊임없는 가해자들의 폭력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모든 것은 내 잘못이 아니라고. It’s not my fault. 내겐 이렇게 말해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내 스스로 이걸 깨닫게 되기까지 나는 너무나도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다. 지금도 이렇게 일부러 생각하는 연습을 하지 않으면 자괴감이 스멀스멀 올라와 극한 생각을 하게끔도 만든다”는 고백도 했다. 그는 기본적으로는 “내가 쓴 글이, 일단은 내가 치료받고자 함을 먼저 알린다”고 말을 이어갔고 트위터 공간에서 다른 이들은 그를 다독여줬다.

그러나 이들의 폭로는 필연적으로 스스로에게 ‘2차 가해’를 불러왔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가해자의 모든 것을 공개하는 방식이 가해자에 대한 반론권 없이 ‘파렴치한 데이트 폭력범’으로 낙인찍는 폭력적인 방법이라는 비판이 꽤 있다. ‘왜 관계가 끝난 직후가 아닌 2~3년이 지나서야 폭로를 하는가’ ‘가해자를 공론장에 세워놓고 반론권도 제대로 주지 않는 것은 마녀사냥 아닌가’ ‘아예 공론장에서 사라지게 하는 것은 지나친 사적 처벌 아닌가’ ‘왜 그 관계에서 스스로 진작 빠져나오지 못했는가’ 등 대체로 피해자에게 귀책사유를 묻는 질문들이 피해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것만큼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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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미국 마이애미주 배리대학에서 300명의 여성들이 가정폭력 및 데이트폭력의 실상을 알리는 거리행진을 하고 있다.

왜 이들이 SNS를 통해 이야기할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해 여성학자들은 ‘불나방 같은 선택이었다’고 입을 모은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가해자 못지않게 피해 여성도 자신에게 찍힐 낙인을 감수하고 마치 게릴라처럼 자기 몸을 투신했다. 지금 당장 기세등등하게 보일 수 있지만 여성들도 상처 입고 지치고 힘든 방식이다. 그런데 이것밖에 방법이 없다. 다른 무슨 방법이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손희정 <여/성이론> 편집위원도 “지금 고발되고 있는 통로로 사용되는 SNS라는 경로가 파행적으로 느껴질 수 있다. 그러나 남성들이 원하는 얌전하고 순응적이고 법을 지키는 모범생의 방식으로는 이 문제를 드러낼 수 없다. 사회화되고 남성화된 법의 언어로 그 고통을 설명할 수도 없고, 법의 언어로 이해될 수도 없는 고통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지적했다.

여성의 고통과 너무 멀리 있는 법

실제 이들에 대한 가해 행위가 법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인지는 미지수다. 데이트 관계에서의 폭력을 처벌하고 규제하는 법은 현재 별도로 없다. 개별 사안들에 대해 피해 여성이 폭력이 일어났을 때 사진 등 증거를 모으고 주변에 이야기하고 일기장에 꾸준히 기록하는 등 증거를 남겨야만 폭력, 폭행, 협박, 주거침입 등 형법이 정한 여러 흩어진 범죄들 가운데 하나로 정죄할 수 있다. 그러나 ‘데이트 관계에서의 폭력’이라는 특수성이 기소를 어렵게 한다. 검사 생활을 한 금태섭 변호사는 “데이트 폭력이 대개 그렇겠지만 둘만 있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고, 심리적인 이유로 행위가 있은 직후에 신고하는 경우도 많지 않기 때문에 상대방이 부인하면 입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허용·승낙의 범위를 어디까지로 볼지도 애매해서, 이마를 치는 행위의 경우 피해자가 승낙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가해자가 승낙한 것으로 이해했다고 주장하면 ‘폭행’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비슷한 예들이 대부분이어서 실제 기소되는 경우가 많지 않다.

법의 언어는 늘 여성의 고통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한국에서 가정폭력을 처벌하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이 시행된 건 1997년이지만, 여전히 가정폭력법에서 가해자는 없다. 가정에서 폭력 행위를 저지른 이는 ‘행위자’로만 불린다. 그게 법용어다. 성폭력 피해자에게 ‘저항의 흔적’을 요구하고, 성매매 피해 여성에게는 ‘자발’과 ‘강요’의 경계를 명확하게 따진다. 김홍미리 여성주의 연구활동가는 “최근 목 졸려 죽은 15살 성매매 성폭력 여성에 대해 판사가 착취인지 자발인지를 조사해오라고 검사에게 주문했다. 그런데 이미 죽은 15살 청소년이 온라인에서 만난 20대 알선남 한 명과 친밀한 관계에 있었을 때 그걸 자발로 보느냐, 착취로 보느냐를 어떻게 판단할 수 있나”라고 물었다.

미국에서는 데이트 폭력 자체를 법의 영역에서 규제하지만 한국은 그렇지 않다. 류병관 창원대 교수는 논문 ‘데이트 폭력에 있어 피해자 보호방안’에서 “미국에서는 최근 가정폭력범에 대해서만 운영한 보호명령제도를 데이트 폭력·스토킹·성희롱·성폭력 피해자 보호를 위해서도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미국 텍사스주에서는 데이트 폭력을 법적으로 ‘누구나 데이트 관계를 가지고 그 물리적 손상, 신체 상해, 폭행, 성적 폭행이나 그 위협을 하는 개인적 행위’를 의미한다고 규정하고 데이트 폭력 피해자에게 육체적 폭력을 가하거나 위협한 경우에는 형법으로 처벌할 수 있고 신체적 폭력으로 심각한 부상을 입은 경우 중벌로 기소한다. 또 가정폭력 법령에 따라 민사적 구제를 받을 수 있도록 하고 있다.

류병관 교수는 “이에 따라 현행 가정폭력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상에서 가정폭력의 개념 범위에 데이트 관계를 추가하는 방법, 피해자 보호명령 등을 통한 경찰의 응급조치 및 긴급임시조치 등을 마련해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도 명백한 폭력임을 법적으로 규정하는 게 한국 사회에 데이트 폭력이 위법한 행위임을 일깨우는 법감정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들이 ‘가해자’에게 감정이입하는 이유는?

피해자를 향하는 비난은 대부분 피해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고 가해자 입장에서 생각하는 데서 비롯된다. 어느 유명 페이스북 이용자가 “허구한 날 자기를 팬 남자와 헤어진 지 3년 만에 그걸 공론화하며 겨우 한다는 소리가 ‘나 말고 다른 여자는 안 때렸길 바랍니다’인 어느 ‘급진적 페미니스트’의 뒤늦은 선택에 박수를 보내고픈 마음도 전혀 없다”라는 식으로 비판한 것이 대표적이다. 한국성폭력상담소 상담활동가 하루는 “연인 관계 등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난 폭력일수록 피해자는 자신이 당한 일이 폭력인지 강간인지 추행인지, 뭐라고 불러야 하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다. 피해자가 관계가 끝난 뒤 3년이 지나서야 폭로한 게 아니라, 3년 동안 끊임없이 폭력의 고통과 기억과 싸우다 폭로했다고 보는 게 맞다”고 설명했다. 늦은 폭로는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 피해자가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성이다. 따라서 ‘늦게 폭로했다’는 지적은 피해자에게는 계속되는 가해의 기억과 공포를 가해자 입장에서 ‘이미 지나간 것’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피해자에게 가해지는 비난, 혹은 가해자로 지목된 사람들의 해명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폭력을 정당화하는 인식, 데이트 관계에 대한 잘못된 신념이다. 이명신 경상대 사회복지학과 교수팀이 ‘대학생의 폭력 인식이 데이트 폭력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측정하기 위해 만든 ‘대학생 폭력 인식’ 측정 문항을 보면 ‘데이트 관계에 대한 잘못된 신화’에 대한 인식을 측정하는 문항은 다음과 같다. △연인 간의 폭력은 사적인 일이므로 제3자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 △연인 간에 성폭력이 일어난 경우 강간으로 보기 어렵다 △연인 간의 폭력은 사소한 것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이번 폭로를 두고 ‘연인 간의 사적인 일이다’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데이트 관계에 대한 잘못된 신화’를 내면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데이트 폭력은 ‘너와 나’ 둘만의 일이 아니다. 2011~2013년 3년간 데이트 폭력으로 입건된 사람은 2만1449명이다. 지난 3년간 애인에게 살해된 피해자는 모두 177명이다. 데이트 폭력으로 인한 살해 위협은 과대망상이 아닌 현실이다. 이명신 교수 연구팀에 따르면 “‘연인 간의 폭력은 사적인 일이므로 제3자가 개입할 필요가 없다’ 등 폭력 인식이 높을수록 데이트 폭력 가해 행동을 더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데이트 폭력을 줄이려면 잘못된 폭력 인식을 교정하는 일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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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해 백악관에서 대학생들을 성폭력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전담팀을 구성하는 대통령 각서에 서명하고 있다.

이번 일을 좀더 발전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왜 한국에서는 성폭력 피해 여성을 비난하는 보수언론을 비판하며 거리를 행진하는 남성을 볼 수 없는가, 왜 ‘성폭력 방지 책임은 우리에게 있다’고 이야기하는 남성 정치인을 볼 수 없는가”라고 질문했다. 올해 초 터키 남성들이 성폭행범에 맞서다 잔인하게 살해된 여대생 사건에 공분해 여성 인권을 지지하며 미니스커트를 입고 거리행진을 한 것,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캠퍼스 성폭력을 줄이기 위해 ‘책임은 우리에게’(It’s on us) 캠페인에 직접 나서는 모습 등을 한국 남성에게서도 보고 싶다는 얘기다.

‘우리 함께 살자’는 말 걸기

이번에 A씨의 데이트 폭력을 폭로한 여성은 폭로 말미에 다음과 같이 적었다. “그 어떤 여성도 데이트 폭력에 희생당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또 다른 여성의 글 말미에도 “이런 결심을 하게 된 것은 앞으로 이런 일이 다시는 발생하지 않아야 하고, 데이트 폭력으로 피해를 당하고 있을 많은 여성들이 더 이상 숨지 말고 용기를 가졌으면 하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앞선 두 분의 발언으로 용기를 얻게 되었습니다. 저 역시 두 분과 같은 바람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와 같은 피해자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라는 문구가 있다.

여성들의 발화는 ‘함께 죽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함께 살자’는 말이다. ‘함께 잘 살자’는 말 걸기다. 그들이 말을 거는 대상에는 다른 여성뿐만 아니라 다른 남성도 포함된다. 당신이 하고 있는 지금 그 일이 ‘폭력’임을 일깨우기 위한 ‘법 바깥의 파문’이다.

* 데이트 폭력으로 상담을 받고 싶다면?

02-2263-6465(한국 성폭력/데이트폭력 상담소)로 전화하자. △전화 상담, △면접 상담, △법률 상담 등의 전문적인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성폭력 상담소로 걸려오는 전화의 약 30%가 '데이트 폭력'과 관련한 것일 정도로 '데이트 폭력' 상담 비중이 높아지고 있다.

상담 전화 운영 시간: 평일 오전 10시~오후 5시(점심시간: 오후 1~2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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