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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26일 12시 53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26일 13시 10분 KST

박근혜 대통령이 격노한 이유에 대한 하나의 단서

박근혜 대표를 대할 때 ‘나는 머슴이다’라고 생각하면 가장 편하다. ‘아씨와 머슴’이라고 생각하면 나도 마음이 편하고, 박 대표도 편하게 받아들인다.

지난 2013년 동아일보가 보도한 바에 따르면, ‘친박’으로 분류되는 손범규 전 국회의원은 언젠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 보도에 따르면 자신을 ‘머슴’으로 여겼던 정치 신인 손범규는 “마치 머슴이 아씨한테 애교를 부리는 것처럼” 박근혜 당시 대표에게 공천장을 달라고 말했고, 1년 뒤 실제로 국회의원 공천을 받았다.

동아일보의 기획 시리즈 ‘비밀해제 MB 5년’ 중 하나였던 이 기사의 제목은 ‘무대와 공주’다. ‘무대’는 현재 새누리당을 이끌고 있는 김무성 대표다.

이 기사에는 한때 ‘친박 좌장’으로 불렸던 김무성 당시 한나라당 사무총장이 박근혜 당시 대표와 어떻게 갈라서게 됐는지 짐작할 수 있는 에피소드들이 담겨 있다.

2007년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을 앞둔 시점, 당시 박근혜 후보가 “제가 언제 돈 쓰라고 했어요? 돈 쓰지 마세요!”라고 벌컥 화를 냈다는 그 유명한 일화도 여기에 등장한다.

2008년 11월,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의원과 김무성 의원. ⓒ한겨레

기사에는 이런 대목도 있다.

김무성 = “너거, 박근혜가 제일 잘 쓰는 말이 뭔지 아나?”

기자들 = “원칙, 신뢰, 약속 아닌가요?”

김무성 = “하극상이다, 하극상! 박근혜가 초선으로 당 부총재를 했는데 선수(選數)도 많고 나이도 많은 의원들이 자기를 비판하니까 ‘하극상 아니냐’고 화를 내더라. 그만큼 서열에 대한 의식이 강하다. 그 다음으로 잘 쓰는 말이 ‘색출하세요!’다, 색출…. 언론에 자기 얘기가 나가면 누가 발설했는지 색출하라는 말이다. 그 다음이 근절이고…. 하여간 영애(令愛) 의식에서 아직 벗어나지 못했다.” (동아일보 2013년 5월25일)

비밀해제 MB 5년’ 시리즈에는 ‘박근혜의 레이저’라는 제목의 기사도 있다. 일부를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아, 이게 말로만 듣던 ‘박근혜 레이저’구나!”

새누리당 정치쇄신특별위원장을 맡은 안대희는 전화가 끊어지고 나서야 자기가 레이저를 맞았다는 걸 깨달았다. 2003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장으로 대선자금을 수사하며 ‘국민 검사’라는 별명까지 얻었고, 대법관을 지낸 뒤 새누리당에 영입된 안대희였다.

(중략)

친박(친박근혜) 의원들도 “권력자의 포스가 강해졌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자신의 뜻과 다르거나 분위기에 맞지 않다고 생각하면 말을 꺼낸 상대방을 무안하게 만들어버리는 ‘박근혜식 소통’ 스타일에도 권력자의 포스가 얹혀졌다. 바로 ‘레이저’였다. (동아일보 2013년 6월15일)

레이저 발사...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법에 거부권을 행사하며 "오싹"할 정도로 격한 분노를 쏟아낸 다음 날인 26일, 조선일보 최보식 선임기자는 “대다수 국민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 능력에 더 실망하고 있다”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대통령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장관은 국정 파트너가 될 수도 있고, 시종(侍從)이나 환관·주사·허수아비가 될 수도 있다. 지금 대통령은 주요 정책이나 현안이 생겨도 주무 장관을 따로 불러 의견을 구하는 것 같지 않다. 장관이 자신의 부처에서 재량권과 고위직 인사권을 갖고 있는 것 같지도 않다. 대통령의 의중을 읽는 청와대의 몇몇 비서관에게 "그렇게 진행해도 되겠느냐?"며 추인 받는다고 한다. (조선일보 6월26일)

머슴, 공주, 하극상, 색출, 영애, 레이저, 시종, 허수아비. 이 단어들 속에서 설득, 타협, 정치력, 그리고 ‘리더십’ 같은 의미를 발견하기는 쉽지 않다.

‘격노’ 발언도 혹시 비슷한 맥락에 있는 게 아닐까?

박 대통령의 국무회의 발언은 분노로 가득 차 있다. 불만족스럽더라도 차선을 택하고, 설득하고 타협하며 때로는 거래도 하는 정치력과 통 큰 리더십은 찾아보기 어렵다. 박 대통령은 초선 의원 시절인 1998년 이번 국회법개정안보다 훨씬 강력한 행정입법권 통제법안 발의에 참여했다. 그런데 지금은 생각이 180도 바뀌었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어느 위치에 있든 타협과 조정을 배제한 채 내 주장만 옳다는 인식은 독선이다. (한국일보 사설 6월26일)

박근혜 대통령이 25일 청와대에서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는 박 대통령의 ‘격노’에 대해 26일 “할 수만 있다면 국회를 해산해버리고 싶다는 태도였다”며 “행정부가 법 위에 군림하는 건 국회 입법권에 대한 정면도전이자 헌법정신의 유린”이라고 말했다.

전병헌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은 박 대통령에게서 “성난 여왕님”의 모습을 봤다고 말했다.

“입법부 수장인 국회의장과 여야가 합의하여 처리한 법에 대해서 거부권을 행사한 것도 문제지만, 그 발언과 태도는 더더욱 최악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자신을 봉건시대의 여왕쯤으로 착각하는 것 아닌지 모르겠다. 어제 모습은 봉건군주제의 성난 여왕님 모습이었다.”

“여당은 물론이고 입법부는 행정부의 시녀이고, 국민조차도 대통령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하는 복종의 대상으로 여긴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었다.” (새정치민주연합 6월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