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2015년 06월 23일 13시 33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23일 13시 57분 KST

"통일 에너지" 강조한 박근혜 대통령이 말하지 않은 통일정책의 현실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7기 민주평통 간부위원 임명장 수여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박근혜 대통령이 23일 “통일 에너지”에 대해 말했다. “철저한 계획과 적극적인 준비로 통일 에너지를 모아나갈 때 통일의 그날을 하루라도 앞당길 수 있다고 믿는다”고 언급한 것.

박 대통령은 이날 제17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민주평통) 간부 자문위원들을 청와대로 초청해 임명장을 수여한 뒤 격려사를 통해 이렇게 밝혔다.

박 대통령은 이날 통일에 대해 여러 가지 말을 했다. 연합뉴스가 전한 박 대통령의 발언 중 몇몇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70년 분단의 역사는 남북 간의 깊은 골을 만들어 놓았고 우리 사회 내부에도 사회 갈등과 안보 불안이 증폭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지금 우리가 통일을 앞당기기 위해 해야 할 중요한 일은 우리 사회 내부의 통일 논의를 둘러싼 갈등과 반목의 벽을 없애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남북 간 교류와 소통을 확대하는 노력 못지않게 통일에 대한 국민의 마음을 하나로 모으는 것이 매우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

“우리가 통일을 준비해 나가는 데 있어 ‘언젠가’, ‘아마도’, ‘만약에’ 같은 이런 불확실한 구호와 가정을 반복한다면 우리가 꿈꾸는 평화통일을 결코 이룰 수 없을 것.”

“우리 내부에 있는 마음의 장벽을 극복하고 남과 북의 민간 차원 교류와 왕래를 확대해서 국민 마음을 하나로 모아 통일역량을 성숙시켜 나가야 하겠다.”

2014년 3월28일, 박근혜 대통령이 독일 드레스덴공대를 방문해 '통일 프로세스'를 밝히고 있다. ⓒ연합뉴스

다 좋은 말들이다. 특히 “통일 에너지”를 언급하며 “철저한 계획과 적극적인 준비”를 강조한 것도 인상적이다.

그러나 현실은 말을 따라가지 못한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대북정책에 대한 평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 ‘통일대박’이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드레스덴 선언’ 같은 구호만 넘쳐날 뿐, 실제로는 알맹이가 없거나 제대로 실천되지 않고 있다는 것.

일례로 ‘통일은 대박’이라는 말만 있을 뿐, 통일이 왜 대박인지, 통일을 ‘대박’으로 만드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이 없었다는 얘기다.

박근혜 정부가 펴고 있는 외교적 노력의 상당부분이 궁극적으로는 북한의 비핵화와 이를 통한 남북관계 개선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정작 북핵문제와 남북관계는 2년 내내 제자리 걸음을 면치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CBS 노컷뉴스 2월23일)

이 가운데 가장 기본이 되는 남북 관계와 관련한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라는 것이 정부 안팎의 공통된 평가다. 물론 지난 2년간 한반도 정세가 교착 상태를 면치 못하게 된 1차적 책임은 북한에 있지만 정부 역시 수세적 자세로 일관했다. (매일경제 1월18일)

류길재 통일부 장관은 최근 한 강연에서 “2년 동안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알다시피 크게 진전이 안 됐다”고 사실상 실패를 자인했다. 통일·외교 분야 핵심 공약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가 가동이 안 되니, ‘동북아 평화구상’과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의 관련 구상도 효과를 보지 못하고 있다. (한겨레 2월26일)

많은 전문가들은 박근혜 정부 대북정책의 ‘원칙주의’, ‘일방주의’가 문제라고 지적해왔다.

‘박근혜 패러독스’는 남북관계에도 적용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박근혜 정부의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는 남북 간 작은 부분부터 신뢰를 쌓는 것이 핵심인데, 정부는 여기서도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이 우선이라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북한 입장에선 움직일 동인이 별로 없다”고 말했다. (중앙일보 5월8일)

박근혜 정부는 신뢰를 대화의 결과가 아니라 대화의 조건으로 생각한다. 정부 관계자들은 북한과 대화를 시작하기도 전에 믿지 못하겠다고 말한다. 믿어야 대화할 수 있는가? 그런 생각은 현실적이지 않고, 동시에 역사적 근거도 없다. 예를 들어 박정희 정부가 7·4 공동성명을 채택할 때 과연 북한을 신뢰했을까? 아니다. 냉전시대 미-소 관계나 분쟁 해결을 위한 다양한 대화와 협상에서 신뢰를 전제조건으로 내세운 적이 있는가? (김연철 인제대 교수, 한겨레 2013년 5월30일)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세현 원광대 총장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에 방법론이 없다고 평가했다. 정 총장은 박근혜 정부 집권 2년차임에도 남북관계가 경색을 벗어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한반도신뢰프로세스와 동북아평화협력구상, 유라시아이니셔티브처럼 좋은 이야기는 많이 하지만, 일에는 순서가 있다. 말만 화려하게 하면서 진정성이나 선행동 등의 조건을 내걸면 아무것도 안 된다”고 지적했다. (한겨레 2014년 11월20일)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대북정책으로 내세운 것은 잘했다.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나 드레스덴 구상도 좋은 제안이다. 문제는 실천이다. 북한이 먼저 보여줘야 우리가 하겠다고 기다리고 있는데 그런 접근 방법은 빵점이다. 6·15 공동선언(4항)에서 합의한 대로 남과 북이 경협을 비롯한 다방면의 교류, 협력 실천을 통해 상호 신뢰를 다져나가야 한다.

작년에 개성에서 북한 김양건을 만났는데 '남북의 (기존) 합의를 실천하는 것이 가장 쉬운데 그런 것은 할 생각을 안 하고 다른 것만 하자는 이야기냐. 진심이 있는 것이냐'고 하더라. 일리 있는 이야기라고 본다. (임동원 한반도평화포럼 이사장, 연합뉴스 6월11일)

2014년 10월13일, 박근혜 대통령이 '제2차 통일준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청와대사진기자단

올해 초, 한국일보에는 흥미로운 칼럼이 실렸다. 박근혜 정부가 ‘열심히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도록 하는’ 이른바 ‘통일 준비주의’에 빠져 있다는 내용이다.

시험공부를 위해 맘껏 ‘준비’해 본 사람은 알 것이다. 밤새 공부 ‘준비’하면서 이것저것 찾고 매만지다가 정작 공부는 못한 채 시험은 망친 경험 말이다. 공부한다는 알리바이는 완성되었는데 받은 점수는 냉혹하다, 그것은 일종의 자아도취적 기제고 폐쇄적 자가 상승 동력이다. 현실과 실천에 근거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행하는 일은 없기 때문에 계속 무엇을 할 것인지 궁리하게 되고, 현실적 실천에서 멀어지기 때문에 오히려 멋진 계획이 마구 떠오른다. 그런 메커니즘을 ‘준비주의’라고 불러도 될 듯하다. (이동기 강릉원주대 교수, 한국일보 2월27일)

조선일보에 따르면, 올해 초 통일부와 외교부, 국방부, 국가보훈처는 ‘통일준비’ 분야 업무보고에서 다음과 같은 계획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잔뜩 보고한 바 있다.

  • 한반도 종단 대륙철도 시험운행사업
  • 유라시아 친선 특급열차 운행
  • 한반도 국토 개발 마스터플랜’ 수립 (두만강 다국적도시, DMFZ 세계평화공원 개발 등)
  • 개성공단 국제화
  • 서울과 평양에 각각 ‘남북겨레문화원(가칭)’ 설치 추진
  • 각 부처에 통일담당 공무원 신설
  • 탈북 대학생 지원 프로그램 ‘메르켈 프로젝트’ 및 ‘WEST 프로그램’ 시행
  • 남북 간 산림 협력 및 공유하천 공동 관리
  • 북한 결핵치료 지원
  • 백두대간 보호 및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 등재 추진
  • 광복70주년 남북공동기념위원회(가칭)’ 구성
  • 비전코리아 프로젝트’ 본격 가동 (북한 인프라 확충, 국제금융기구 가입, 외자유치 지원 등)
  • 통일박람회 2015’ 등 문화행사 개최
  • 통일 문화 스페이스’ 조성 및 관련 조형물 설치, 전시·공연 개최

관련기사 :

1월19일, 통일 분야 업무보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청와대사진기자단

2014년 8월7일 열린 통일준비위원회 제1차 회의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청와대사진기자단

2월16일, 통일준비위원회 위원장단 집중토론회의를 주재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청와대사진기자단

2014년 2월6일, '통일기반구축 분야' 업무보고에서 박근혜 대통령이 발언하고 있다. ⓒ한겨레/청와대사진기자단

하지만 다른 새로운 아이디어들은 놀랍다. 서울에서 신의주를 거쳐 더 멀리까지 달리는 평화열차? 평양과 서울에 문화원 설치? 한반도 문화와 생활에 대한 공동 책자 발간? 북한이 이런 제안에 설득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성사된다고 해도 얻을 건 뭔가? (월스트리트저널 1월2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