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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21일 12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21일 12시 56분 KST

'비현실·칸막이' 매뉴얼 탓에 날린 메르스 골든타임

ASSOCIATED PRESS
An official wearing a mask as a precaution against the MERS virus works with a South Korean national flag in the background at Dongdaemun District Office in Seoul, South Korea, Thursday, June 18, 2015. The head of the World Health Organization on Thursday praised beleaguered South Korean officials and exhausted health workers, saying their efforts to contain a deadly MERS virus outbreak have put the country on good footing and lowered the public risk. (AP Photo/Ahn Young-joon)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대응에 적용된 정부의 감염병 매뉴얼이 방역 현실과 맞지 않아 감염병의 특성을 고려해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감염병·재난대응 전문가들은 감염병 위기 대응 매뉴얼이 '지역사회감염'의 의학적 정의에 묻혀 방역 행정 최일선과 괴리가 크다고 진단했다.

질병관리본부장을 지내며 신종인플루엔자 방역을 이끈 이종구 서울대글로벌의학센터장은 21일 연합뉴스와 통화에서 "유행 초기부터 자치단체 역량을 최대한 동원해 보호자와 방문객 등 환자 외 노출자를 철저히 추적하고 관리했다면 이렇게까지 사태가 확산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현행 매뉴얼를 고수하느라 자치단체를 아우르는 범정부 대응이 미흡했던 점이 아쉽다"고 지적했다.

18일 국회 중동호흡기증후군 대책 특별위원회에서 진행된 한국-WHO 메르스 합동평가단 평가 결과 논의에서 서울대 의과대학 이종욱글로벌의학센터 이종구 소장이 모두발언하고 있다. 이 소장, 성균관대 예방의학과 정해관 교수, 질병관리본부 지영미 면역병리센터장

접촉자 파악과 격리자 관리를 하느라 메르스의 영향권이 전국 곳곳으로 확대됐는데도 의학(역학)적으로 '지역사회감염'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태가 커질 때까지 범정부 대응체계가 가동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현행 매뉴얼에 따르면 지역사회감염이 일어나지 않으면 감염병 매뉴얼의 위기경보단계가 '주의'에서 '경계'로 올라가지 않는다. 주의단계에서는 법적인 범정부 재난대응기구인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중대본)도 구성되지 않는다.

예방의학 분야의 한 전문가는 "보건당국이 국민의 불안감 확산이나 사태수습 주도권 상실 등을 우려해 경보를 유지하려고 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메르스 확산 초기 방역 행정이 감염병 매뉴얼을 고수하느라 부처간 '칸막이'를 넘지 못한 것이다.

정부는 사태가 평택성모병원과 삼성서울병원으로 확대되자 이달 4일에야 9개 부처로 구성된 범정부 메르스 대책 지원본부를 국민안전처에 구성했다. 그러나 이 지원본부는 중대본과 달리 법적 근거가 없는 조직이어서 권한과 추진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어 '컨트롤타워'(사령탑) 논란을 일으켰다.

전문가들은 사태 초기대응이 중요한 감염병의 특수성을 고려해 초기부터 재난대응의 부처간 칸막이를 없애는 쪽으로 매뉴얼을 손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종구 센터장은 "지역사회감염이 일어나지 않았지만, 범정부 대응이 필요했기 때문에 결국 실질적인 대응수위는 경계에 상응하게 올렸다"면서 "경보단계를 올리지 않더라도 범정부 대응체계가 조기에 가동되도록 매뉴얼을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재난대응체계 전문가인 정지범 한국행정연구원 연구위원도 "감염력·치명률이 높은 질병이 이미 지역사회에 퍼지고서 범정부 대응체계가 가동된다면 무슨 의미가 있느냐"면서 "감염병 초기에 지자체 인력과 특별교부세 자원을 적극적으로 동원할 수 있도록 재난대응체계를 개선하는 방안을 검토할 만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