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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6월 03일 11시 53분 KST

[현장] 양쯔강 침몰: 3명이 추가로 구조됐다

중국인들의 시선은 월요일(1일) 저녁에 여객선이 전복된 양쯔강을 떠날 줄 모른다. 여러 해 동안 이보다 큰 선박 사고는 없었다. 2일 저녁 기준으로, 둥팡즈싱(동방의 별) 호에 탔던 456명 중 단 14명만이 구조되었고, 시체 5구가 발견되었다. 수백 명의 가족과 친지들은 불안에 떨며 소식만 기다리는 중이다.

중국 정부는 구조선, 군경, 의사들을 사고 현장에 파견했다. 리커창 총리가 화요일(2일)에 현장에 도착했고, 관영 언론은 그가 현장 지휘를 맡았다고 보도했다.

현장 사진과 영상을 보면 구조대원들이 선체 위에 쭈그리고 앉아 금속 선체를 두드리고 반응에 귀를 기울이는 것을 볼 수 있다. 구조대원들은 반응을 들은 듯한 모습이고, 그날 생존자 세 명이 구조되었다.

2일, 양쯔강에서 전복된 여객선 탑승자 탐색 구조 활동 후 배를 둑으로 나르고 있는 중국 군인들. 중국 중부 후베이성 젠리현.

선장과 기관장은 경찰에 구류 중이나, 관영 신화통신은 둥팡즈싱 호가 과적을 했거나 구명조끼가 부족했던 것 같지는 않다고 보도했다.

승객들 대부분은 50세에서 80세 사이였다고 전해진다. 그들은 주로 중국의 비교적 부유한 지역인 동부 출신 단체 관광객들이었다. 드디어 모국을 둘러볼 시간과 여유가 생긴 은퇴한 중국인들에게 패키지 투어는 인기가 높다. 양쯔강은 길이가 6,300km에 달하는 중국에서 가장 긴 강이다. 배가 가라앉은 곳은 경치를 감상하는 크루즈 여행으로 인기가 높은 지역이다.

이 정도 규모의 참사는 과거에는 정치적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이어진 바 있다. 작년 한국에서 학생 수백 명을 태운 페리가 침몰한 사고는 대통령에게 큰 실패로 돌아왔다. 2011년 중국 저장성 원저우에서 기차 두 대가 추돌 사고를 낸 뒤, 소셜 미디어에서 무능력한 구조 작업과 은폐 노력의 증거가 돌자 여론은 중국의 정신없이 빠른 개발 속도에 의문을 품는 쪽으로 기울었다.

시진핑 주석은 자신의 행정부 이미지로 반(反)부패와 강한 중앙 리더십을 내세웠다. 그래서 구조 노력과 사고 책임 부담이 누구에게 돌아가는지가 더욱 중요해진다.

배가 침몰한 곳에서 차로 3시간 정도 거리인 후베이성의 성도 우한의 주민들은 소셜 미디어에 이 비극적인 사건과 구조 시도에 대한 포스팅을 쏟아냈다. 군대나 의료진에 친구가 있는 주민들은 자랑스레 그들이 파견되는 사진을 올렸고, 택시 기사들이 모여 그날의 사건을 이야기했다.

“정말 비극적이지만, (정부가) 대응을 빨리했어요.” 사고 지역 출신인 우한의 택시 기사 젱 웬주가 말한다. “2인자(총리 리커창)를 보냈으니,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 수 있죠. 사람보다 더 큰 건 없어요.”

하지만 근심에 빠진 가족들 중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일부 매체는 자신의 가족이 그 배에 타고 있었는지조차 알 수 없어 화가 난 사람들도 있다고 보도했다. 선전당국이 지역 매체들에게 정부 공식 발표 내용만 실으라고 지시를 내렸다는 기사도 나오기 시작했다.

원인이 즉시 밝혀지지는 않았다. 중국기상국은 12급(초속 35m)의 회오리바람 때문에 배가 전복되었다고 말했다고 한다. 월요일(1일) 밤의 기상 상황이 좋지 않아 초동 구조가 힘들었다.

화요일(2일)에는 기적적인 구조가 이루어지기는 했다. 신화통신은 배가 뒤집히는 동안 창문 밖으로 기어나올 수 있었던 43세 여행사 매니저 장 후이의 이야기를 보도했다. 장은 월요일 저녁 9시 이후 비바람이 굉장히 심해져 여러 선실에 물이 찼고, 배가 기울어지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고 한다.

“정말 많이 기울어졌어요. 45도 정도. 작은 병들이 넘어지더군요. 주워서 올려놓으면 다시 떨어졌어요.” 장이 신화통신에 한 말이다.

그 무렵 그는 동료에게 말했다. “큰일 난 것 같은데.”

그때 배가 홱 뒤집히기 시작했다. 1분도 걸리지 않았다. 그와 동료들은 구명조끼를 집어들고 기울어져 이제 머리 위에 있는 창문 쪽으로 기어올랐다. 물이 목까지 차오른 가운데 그는 탈출했다.

장은 수영을 할 줄 몰랐다. 그는 구명조끼 덕택에 물에 뜬 채 밤새 10시간 동안 하류로 떠내려갔다. 태양이 떠오르자 마침내 그는 강변으로 헤엄쳐 갈 수 있었다. 지역 병원에서 장은 드디어 아내와 아들에게 전화를 걸 수 있었다. 그의 입에서 나온 첫 마디엔 가족들이 들어야 했던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나 살아 있어.”

2일 구조 작업 지휘 본부로 가는 길을 막고 있는 중국 무장 경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