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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14일 03시 01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14일 03시 06분 KST

40개 직업·1000장 이력서·50살 주부

한겨레

“제발 나이만 보고 서류심사에서 탈락시키지 말아주세요. 면접만이라도 허락해 주세요. 실제로 보면 훨씬 젊어 보여요.”

간절하게 부탁했다. 다행히 구직광고에 채용담당자의 전화번호가 있었다. 네차례 전화를 했다. 덕분인지 면접을 볼 수 있었다. 면접을 마치고 일어서면서, 마치 법정에서 최후진술하듯 말했다. “만약 저를 뽑아주신다면 목숨을 바쳐 일하겠습니다.” 순간 눈물이 흘렀다. 면접관들도 당황한 눈치였다. 얼른 고개를 돌려 빠져나왔다. 이번엔 통할 수 있을까?

그동안 거친 직업이 40가지가 넘는다. 제출한 이력서만 천통이 넘는다. “아마도 누구보다 많은 직업을 경험했을 겁니다.” 지난 30년간 다국적기업 비서, 은행원, 대출상담사, 텔레마케터, 영업마케터, 의류회사 머천다이저, 방송 모니터 요원, 바텐더, 경리, 벤처회사 구매 담당, 무역회사 해외영업 담당, 보험설계사, 학습지 교사, 봉제공장 직공, 호텔 청소원, 백화점 점원 등등을 거쳤다. 학비와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했다. 올해 50살, 주부 이지윤(사진)씨에게 현실은 냉혹했다.

그의 목소리는 정겹고 차분하다. 원래는 낮은 톤에 빨랐다. 텔레마케팅 매니저는 쉬지 않고 지적을 했다. 전화 상담 내용을 녹음해 교육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의 부드럽고 다정한 ‘솔솔솔’ 톤의 목소리가 자리잡았다. 육체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직업은 호텔 청소원이었다. 손님이 빈 잠깐 사이 방을 청소해야 했다.

몸은 고댔지만 스트레스는 덜했다. 정신적으로 가장 힘든 일은 텔리마케터였다. 한정된 공간에서 감정, 정서적인 고통도 심했다. 하루 2~3시간의 ‘콜타임’(상담한 유효시간의 합계)을 채우기 쉽지 않았다. 욕도 많이 들었다. 몇시간씩 통화를 하고 나면 모든 에너지는 다 빠져나가고 빈껍데기만 남은 것 같았다. 육체적·정신적으로 가장 강도가 쎈 직업은 영업마케터였다.

새벽 5시에 출근해 밤 10시가 넘어서야 퇴근하는 날이 많았다. 실적을 위해선 영업 현장의 천장에 풍선을 메달기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했고, 무거운 기계를 들고 다니며 하루종일 팝콘을 튀겨야 했다. 매일, 매주, 매달 실적을 비교 당할 때는 숨이 막힐 정도의 압박감을 견뎌야 했다.

그는 서울 중량천 판자촌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는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올라왔다. 한때는 판자집에서도 쫓겨나 천막생활을 해야 했다. 동사무소에서 임시로 제공해준 군용 천막에서 여덟 식구가 살았다. 자려고 누우면 튀어나온 돌부리가 등을 마구 찔렀다.

육성회비 내는 날은 다섯 남매가 서로 학교를 안가려고 억지를 부렸다. 담임에게 혼나는 것이 싫어서였다. 열심히 공부해 명문 여상에 입학했다. 어느날 담임이 불렀다. “너 때문에 반 평균 아이큐(IQ)가 떨어졌어”라고 나무랬다. 충격이었다. 혼자만 두 자리수(97)라니. 그뒤로는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았다.

뭘해도 머리가 나빠서 어려울 것이라는 터무니없는 확신 때문이었다. 스스로를 작은 방에 가둔 것이다. 하지만 사회로 나오니 이 작은 방의 문은 저절로 열렸다. 세상은 머리가 좋고 똑똑하다고 해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이 아니였다.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에 벌떡 일어나 출근할 수 있는 체력이 필요했다. 직장상사의 모진 소리에도 버틸 수 있는 내공이 필요했다. 고객의 온갖 불평을 참고 응대할 수 있는 인내심이 필요했다. 어느 순간 약점은 강점으로 변해 있었다. 체험과 적응이 무기가 됐다.

“사회에서 대접받기 위해선 대학 졸업장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뒤늦게 대학에 들어갔죠. 물론 등록금을 벌기 위해 온갖 아르바이트를 다했어요.” 바텐더, 행사도우미, 봉제공장 시다, 백화점 임시 판매원 등 닥치는대로 일했다. 그렇게 대학을 졸업했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37살, 늦은 나이에 결혼했다. 아들을 키우기 위해서 다시 돈을 벌어야 했다. 폐지를 줍기도 했고, 전단지도 돌렸다. 정규직이 되고자 새벽 일찍 출근해 목이 터져라 전화 영업을 하며 비굴해져야 했다. 하지만 회사가 어려워지자 그의 책상은 하루아침에 사라졌다. 한번은 강원도 외진 지역의 금융영업직에 지원했다. 서류 지원자가 혼자 뿐이었다. 당연히 서류엔 합격했다. 하지만 나이 먹은 주부라는 이유로 결국 떨어졌다. 심한 우울증에 시달려야 했다.

그는 자신의 구직 투쟁기를 책으로 쓰기로 맘을 먹었다. 젊은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었다. “대기업만 바라보는 청년들이 안타까웠어요. 몇번 대기업에 지원하다가 취업을 포기해요. 중소기업엔 문이 많아요. 포기하지 말라는 얘기를 해주고 싶었어요.”

한페이지를 쓰는 데 한달반이 걸리기도 했다. 1년을 거쳐 완성된 원고를 100여 곳의 출판사에 보냈다. 마침내 답이 왔다. 출판사 사장은 “지은이가 직접 경험한 이야기라 실감이 난다”며 <천번의 이력서>(북포스 펴냄)라는 제목을 붙였다.

그는 스스로를 동기부여가, 자기계발 작가, 커리어 메신저라고 부른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직접 겪은 수많은 시행착오와 좌절, 실패에 대한 진솔한 이야기가 취업과 진로를 고민하는 많은 이들에게 현실감 있는 조언을 해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씨는 최근 모교에 가서 생활기록부를 확인해 보았다. 자신의 아이큐가 97이 아닌 107로 기록돼 있었다. “아마도 그때 잘못 들었나봐요. 아무튼 아이큐는 세상을 살아가는 데 큰 변수는 아닌 것이 분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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