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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13일 14시 50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23일 17시 06분 KST

상의를 벗은 푸틴은 어떻게 러시아에서 록스타 같은 대통령이 되었는가

ASSOCIATED PRESS
In this photo taken on Monday, Aug. 3, 2009, Russian Prime Minister Vladimir Putin seen feeding a horse in the mountains of the Siberian Tyva region (also referred to as Tuva), Russia, during his short vacation. (AP Photo/ RIA Novosti, Alexei Drizhinin, Pool)

블라디미르 푸틴은 세계 지도자 중 올드 스파이스 같은 존재다. 81년 된 데오도란트 브랜드인 올드 스파이스는 2010년 바이럴 캠페인 ‘남자 냄새를 풍기라구, 맨’에 미식축구 선수 출신 배우 이사야 무스타파를 등장시켜 그의 세련된 위트와 복근으로 이미지 쇄신을 거두었다. 푸틴이 올드 스파이스인 이유는 무스타파보다 더 자주 상의를 벗고 말을 타기 때문만은 아니다. 무스타파가 샤워실에서 나오면서 “당신 남자를 봐요. 그리고 날 다시 봐요.” 라고 말하기 훨씬 전부터 러시아 여성 팝 듀오는 ‘푸틴 같은 남자’란 곡으로 러시아 차트를 석권했다. 낙오자인 자기 남자친구를 더 근사한 남자와 비교하는 내용이었다. “힘이 넘치는 푸틴 같은 남자/술에 취하지 않는 푸틴 같은 남자.” 푸틴이 등장하는 집회에는 늘 이 곡이 나오게 되었고, 인기 있는 지도자는 록 스타로 변신했다.

이런 테크노 팝 선전은 푸틴이 16년 동안이나 수상-대통령-수상-대통령직을 맡을 수 있게 한 놀라운 브랜딩 전략 캠페인 중 하나일 뿐이다. P&G가 비슷한 기간에 올드 스파이스 브랜드를 되살려냈듯 – 오리지널 제품은 ‘클래식 향’으로 다시 포장하고, 젊은 세대를 위한 새로운 향을 개발했다 – 푸틴은 러시아 대통령제를 ‘고자가 된 늙어빠진 할배’(‘푸틴 같은 남자’ 작사가의 표현이다)와 연결시키고, 궁극적인 러시아 남자가 통치하는 것으로 재해석했다. 그 결과 푸틴은 러시아의 브랜드마스터가 되었다. 브랜드 매니저이자 브랜드 그 자체가 된 것이다.

1999년에 푸틴이 부침이 심했고 만취할 때도 잦았던 보리스 옐친에 이어 지도자 자리에 올랐을 때, ‘술에 취하지 않는’ 지도자라는 것은 사실 러시아인들에게 있어 발전이었다. 몸매가 늘씬하고 술을 절제하는 푸틴은 크렘린의 2인자 자리에서 위로 올라갔다는 점에서는 옐친의 후계자였던 동시에, 1억 5천만에 가까운 인구가 아직도 소련 붕괴의 여파에 시달리는 나라에 안정과 경쟁력을 약속했다는 점에서는 반-옐친이기도 했다. 이렇게 이질적인 역할들을 연기하는 것은 16년 동안 중급 KGB 정보원으로서 다양한 가면을 쓰며 살았던 변호사에겐 익숙한 일이었다. 본질적으로 아웃사이더인 것처럼 행세하는 것도 그에겐 간단했다.

푸틴의 부모는 둘 다 공장 노동자였다. 그의 고향은 모스크바가 아닌 상트페테르부르크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 운동 기간 내내 그는 동독에 배치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부시장 자리까지만 올라가 보았을 뿐, 이렇다 할 리더십 경험은 없었다. 단점이지만, 그는 그걸 장점으로 돌려놓았다. “그는 사람들이 자기를 과소평가하도록 내버려두었어요. 사실, 적극적으로 부추기기까지 했죠.”. 책 'Mr. 푸틴: 크렘린의 정보원'에서 클리포드 개디와 피오나 힐은 이렇게 말한다. 그리고 KGB에서 익힌 교활함, 1990년대에 러시아에서 가장 부유한 올리가르히들을 수사하며 배운 것들을 이용해서 그는 옐친을 조종하는 사람들을 조종할 수 있었다.

하지만 러시아인들이 21세기를 맞이하려면 마키아벨리적인 공무원만으로는 부족했다. 그들은 여전히 초강대국이 되고 싶어했고, 강력한 대국의 화신 같은 지도자가 필요했다. 소련이 제품 브랜딩을 잘 하는 나라는 아닐지 몰라도, 러시아의 과거에는 푸틴이 참조로 삼을 만한 레닌과 스탈린처럼 신격화된 지도자들이 있었다. 그리고 그 밑그림을 현실화시켜 줄 기업가들이 있었다. “지금 존재하는 푸틴 브랜드를 만들어낸 캠페인을 만든 사람은 푸틴이 아니에요. 개디가 OZY에게 한 말이다. “그건 KGB가 만든 게 아니고, 아이러닉하게도, 러시아 올리가르히들의 작품이죠…… 1990년대에 서방의 마케팅을 러시아에 도입한 사람들요.”

기업가 미하일 호도르코프스키 같은 올리가르히에게 자본주의 이미지를 덧씌운 바 있는 골초 블라디슬라프 수르코프 부실장의 도움으로 푸틴은 아이콘이 되었다. 그의 무표정한 얼굴이 초콜릿부터 석탄까지 모든 물건에 찍혔다. 그의 인기가 치솟았고, 그가 전략적으로 찍은 사진들이 마구 재생산되었으며, 푸틴이라는 브랜드는 새로이 안정을 찾고 번영해가는 러시아와 더불어 번창해갔다. 석유와 가스에서 오는 막대한 수익을 이용해 푸틴은 경제를 키웠고, 예산 균형을 맞췄고 연금을 댔다. 유례없는 수준의 개인 소득에 수백만 명의 러시아인들이 즐거워했고, 크렘린에 권력이 집중되는 것에는 대부분 개의치 않았다., 상의를 벗은 차르에게 어마어마한 특전 - 집 스무 채, 요트 네 척, 비행기 43대 – 이 바쳐졌다는 것에도 말이다.

엄청난 혜택을 누리는, 미스터리에 감싼 푸틴이지만, 원맨 브랜드로서의 그의 일상 생활은 어찌 보면 시시해 보인다. 이혼한 그에겐 장성한 두 딸이 있고, 그는 수영, 웨이트 리프팅, 브리핑, 공식 석상 출연, 미리 써둔 연설문 읽기로 채워진 엄격히 관리된 생활을 한다. 보호막에 둘러싸인 삶이다. 그 안에서는 다른 사람들은 소리 죽여 대화하고, 그의 앞에서는 절대로 웃지 않고, 독살을 방지하기 위해 그가 먹는 모든 음식의 그의 요리사들이 만든다. 62세의 푸틴은 아이스 하키와 동물을 무척 좋아하지만 보통은 거리를 둔다. 펜타곤의 애널리스트들은 그가 자폐증의 일종인 아스퍼거 신드롬을 앓고 있다고 생각한다. 어쩌면 그저 싫증이 났거나 피곤한 건지도 모른다. “그는 감정이 없는 모습이에요. 마치 그에게 진정으로 와닿는 게 아무것도 없는 것 같아요.” 전에 통역사로 일했던 사람이 뉴스위크에 한 말이다. “마치 지칠 대로 지친 것처럼…… 그리고 그는 너무나 오랫동안 아이콘 역을 해와서, 자기 마음 안에 누군가가 들어오는 것에 익숙하지가 않아요.”

푸틴이 4년 동안 수상직을 맡았다가 2012년에 대통령직으로 돌아왔을 때, 상당수의 러시아인들 역시 지쳐가기 시작했다. 소련 붕괴 이후의 부진에서 탈출시켜준 푸틴에 대한 고마움은 고마움대로 간직하되, 이제 러시아 사회를 개방하고, 국가의 권력은 느슨하게 하는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하지만 푸틴은 그들을 무시했다. 석유에 의존하던 러시아의 경제가 흔들리며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이 높아지자, 한때 스와로브스키 크리스탈에 새겨지던 얼굴은 화장실 두루마리 휴지에 등장하기 시작했다. 최강의 브랜드 – 강철처럼 차가운 눈빛, 미스터리의 남자 – 마저도 파괴될 수 있다. 하지만 푸틴은 브랜드 로열티가 위협받을 때의 평범한 브랜드 매니저보다는 더 많은 카드를 지니고 있다. 독재자니까. 최근 우크라이나에서의 무력 과시 이후, 애국심이 갑자기 높아지고 말을 탄, 상의를 벗은 백기사의 인기가 최고 수준을 기록하지 않았던가.

푸틴은 2024년까지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다. 그는 자신의 액션 피겨 같은 브랜드를 끝까지 유지할 것인가? 서방이 계속 제재를 걸어오고, 러시아와 러시아 경제가 안에서부터 썩어들어간다 해도? 대다수의 러시아인들이 원하는 러시아의 모습을 의인화한 존재로 있을 수 있는 한, 블라디미르 푸틴은 늘 남자 냄새를 풍길 것이다. 그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악취를 풍긴다 해도 말이다.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US의 How Shirtless Putin Became A Rock Star President In Russia를 번역, 가공한 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