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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10일 10시 29분 KST

[르포]동해안 철조망을 넘는 해녀들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의 해녀들은 군 철조망이 바다를 막아 물질하러 가는 게 쉽지 않다. 군이 출입문을 열어주면 좋지만 주민들이 사정해야 열어줄 때가 많다. 출입문이 열리지 않으면 철조망을 타고 넘는 수밖에 없다. 6일 아침 현내면의 해녀 김아무개씨가 평소 철조망을 어떻게 넘어 다니는지 보여주고 있다. 다칠까봐 아슬아슬하다. 고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 경기도와 강원도 일대 바닷가를 걷다 보면 흔히 마주치게 되는 게 군 철조망입니다. 북한군의 침투를 막기 위해 오래전부터 설치돼온 철조망. 하지만 요즘은 주민들이 철조망 철거 요구를 많이 합니다. 폐회로텔레비전(CCTV)으로 충분히 감시할 수 있고 철조망의 북한군 침투방지 효과도 미미하다는 여론이지요. 강원도 한 어촌마을의 해녀들을 찾아가 보았습니다. 바다 출입이 철조망으로 막혀 있는 이곳 해녀들은 어떤 삶을 살고 있을까요.

새벽과 이른 아침 사이의 바다에는 안개가 자욱했다. 6일 새벽 5시 강원도 고성군 거진항. 잔잔한 바다 위 낡은 배들은 어깨를 부둣가에 기댄 채 쉬고 있고 갈매기들은 그 위를 휘이이 날아다녔다. 어두운 밤을 지새운 거진항에 다시 햇볕이 내려앉기 시작할 즈음 거진읍 거진리의 해녀들이 터벅터벅 소리를 내며 부둣가로 걸어나왔다. 잠들었던 항구는 그제야 부스스한 모습을 다듬고 잠에서 깬다.

“우리 거진 미역 홍보 좀 해줘요. 이 미역은 양식이 아니라 자연산이라니까!” 검은색 잠수복을 입은 해녀 문용선(64)씨가 항구에 정착해 있던 7톤짜리 낡은 배에 몸을 실으며 말했다. 차가운 바다에 몸을 부대끼러 나가는 길이지만 표정은 밝다. 열댓명의 해녀들이 두 척의 배에 나눠 탔다. 해녀들은 문어 대가리처럼 생긴 잠수용구 머구리와 채취한 해산물을 넣을 수 있는 그물주머니 망사리, 낫 등을 옆구리에 찼다. “부르르릉!” 해녀들을 태운 배가 요란한 소음을 뿌리며 거진항 앞바다로 나갔다. 배가 지나간 자리를 하얀 물살이 둘로 갈랐다.

“바다는 뭐든 다 줘. 친정엄마 같아”

강원도에도 해녀들이 산다. 미역도 남해에만 나는 게 아니다. 철마다 강원도 해녀들도 바다에서 미역, 성게, 양미리, 문어, 돌김 등을 수확한다. 이날은 거진읍 거진리 해녀들이 항구 앞바다의 돌미역을 따러 가는 길이었다. 미역은 2월부터 5월까지가 제철 수확이라고 한다. 강원도의 해녀들은 제주에서 건너온 사람들이 많다. 일제 때 제주 어장이 황폐해지면서 해녀들이 뭍으로 많이 건너왔다는 기록이 있다. 강원도도 주요 이주 지역이었다.

문씨는 해방 뒤 강원도로 이주해 온 해녀다. “제주가 고향인데 엄마가 해녀였더래요. 엄마 따라 댕기다 물질을 배웠지요. 40년 전 남편 만나서 고성으로 시집왔지만 여전히 해녀드래요.” 거진항을 떠난 배는 해안에서 500m쯤 떨어진 바다 위에서 화진포항 쪽으로 10분 남짓 운항했다. 시끄러운 엔진 소리를 이기려고 문씨가 소리를 질렀다. “나는 바다가 좋아요. 바다는 철마다 해삼, 멍게, 미역 다 주잖아. 뭐든지 다 해주는 친정엄마 같다오.”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씨가 바다 위로 뛰어내렸다. 그는 대상군(마을에서 가장 물질을 잘하는 사람) 구실을 한다. 다른 해녀들도 하나둘 바다로 뛰어들었다. ‘풍덩’ 하는 소리와 함께 해녀들이 무자맥질(물속에 들어가 팔다리를 놀려 떴다 잠겼다 하는 일)을 해대었다. 잔잔한 바다여도 파도는 있다. 몸이 파도에 몇번 출렁이는가 싶더니 해녀들은 금세 머리를 바닷물에 집어넣고 수심 아래로 몸을 감췄다.

해녀들이 모두 바다에 뛰어들자 배가 엔진을 끄고 멈췄다. “호오이, 호오이” 바닷속 깊은 곳까지 들어갔던 해녀들이 물 위로 떠올라 참았던 숨을 내쉬는 소리(숨비소리)가 제법 크다. 이들은 아무런 산소호흡장치도 없이 납덩이 같은 것을 허리에 묶고 수심 20m까지 들어간다. 해녀들의 숨비소리가 반복될 때마다 망사리에는 까만 미역들이 한 움큼씩 채워진다. 거센 바닷바람이 귓불이 따갑도록 불어왔다.

제주 해녀들과 달리 강원도 해녀들에게는 독특한 고충이 있다. 해안에 설치된 군 철조망 탓에 자유롭게 바닷가를 드나들 수 없다. 항구로 나가 뱃삯을 치르고 바다로 나가거나, 배 없이 직접 바다에 나갈 때는 해안 철조망의 문이 열릴 때 나가야 한다. 거진항은 북방한계선(38도35분선)에서 불과 30㎞ 남짓 남쪽에 있는 항구다.

거진항에서 1㎞ 정도 북으로 올라가면 거진리 주민들이 ‘흰섬’이라고 부르는 바위섬이 있다. 오전 8시 흰섬이 바로 앞에 보이는 바닷가의 도로 한켠에서 이근옥(76)씨가 들에 자란 쑥을 캐고 있었다. 이씨도 제주에서 건너와 고성에 터를 잡았던 해녀였다. 지금은 눈이 침침해져 물질은 그만두었다. 이씨는 철조망이 원망스럽다.

“군인들이 맨날 지랄해. 철조망 타넘지 말라고. 올봄의 가(걔: 순찰하는 군인을 지칭)는, 그 ‘종자새끼’가 그렇게 우리 며느리를 못살게 굴었어. ‘상부 지시입니다’ 그래버리면 (우리가) 말을 못해. 우리 며느리는 (물질하러 가야 하는데) 애가 나(속이 타). (철조망 넘다가) 가시철망에 옷이 다 찢기고. 아이고 사는 게 뭐인지.”

이씨의 며느리는 시어머니에게서 배운 물질을 고성 앞바다에서 이어가고 있다. 이씨는 이날 오전 바다로 나간 며느리 김아무개(51)씨를 기다리며 쑥을 뜯고 있었다. 오늘은 다행히 철조망 중간중간 설치된 출입문이 열려 있었지만 평소 문은 잠겨 있는 경우가 많다. 문이 잠기면 철조망을 타넘고 바다로 나가기도 한다. 이씨는 멀미가 심해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지 않는다.

9시25분께 며느리 김씨가 바다에서 올라와 모습을 드러냈다. 물에 흠뻑 젖은 잠수복을 입고 김씨는 터벅터벅 뭍으로 걸어 올라왔다. 김씨가 캐온 미역과 톳이 소쿠리에 가득 차 풍요롭다. “오늘은 문 열어 달라고 사정하니까 군인들이 30분 정도 기다리게 하다가 출입문을 열어줬더래요. 몇 달 전에는 부탁해도 안 열어줘서 철조망을 직접 넘어야만 했습닌다(했습니다).” 김씨는 이 마을에서 가장 젊은 해녀다. 하지만 철조망을 타고 넘어 바다로 나가는 건 젊은 사람에게도 버거운 일이다. 바다로 나가기 전부터 몸이 피곤하다. 김씨는 간첩 넘어오는 것을 막으려고 군이 철조망을 세운 건 이해할 수 있지만 주민들이 바다에 일하러 나갈 때는 출입문을 잘 열어주었으면 하고 바란다.

“오늘 이거밖에 못 해 왔어?” 이씨가 며느리의 소쿠리를 보더니 타박한다. “가서 좀 더 캐와라.” 며느리는 그러나 지지 않는다. “아이고, 엄마. 오늘은 미역이 별로 없어요. 오늘은 이제 그만할려.” 이씨는 아쉬운 표정을 짓지만 며느리가 이 정도도 얼마나 고생하며 캐온 것인지 잘 안다. 해녀의 고단함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는 건 해녀뿐일 것이다. 이씨는 며느리를 더 채근하지 않았다. 함께 집으로 걸어갔다.

육지가 고립된 섬처럼 돼버렸다

철조망. 긴 철사를 꼬아가며 엮은 망이다. 철조망의 기원은 1874년 미국 일리노이주의 어린 목동이 양들을 지키려고 머리를 짜낸 것에서 비롯됐다고 알려져 있다. 양들이 장미 넝쿨을 피해 달아나는 모습에서 착안했다고 한다. 1차 세계대전 때부터는 국경선을 지키는 용도로, 전쟁터에서는 적을 막기 위해 철조망이 쓰였다. 철조망은 땅을 둘로 가르는 기능이 탁월하다.

남북한은 비무장지대에 서로 철조망을 치고 왕래를 통제한다. 비무장지대를 넘어 바닷가에까지 철조망이 자리한 것은 1968년 북한군 31명이 서울까지 침투해 청와대를 기습하려 했던 ‘1·21사태’가 계기다. 휴전선 인근의 동해안과 서해안 곳곳에 철조망이 쳐졌고 북에서 내려오는 사람들과 북으로 넘어갈 수 있는 사람들을 모두 막아왔다. 철조망은 분단과 안보의 상징이다. 그런 철조망이 이제는 지역에서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굳이 바다를 이용하지 않아도 탈북자 등으로 위장해 남으로 올 수 있는 경로가 많아졌고 폐회로텔레비전(CCTV) 등이 해안가 곳곳에 설치된 마당에 굳이 지금도 철조망으로 계속 해변가를 통제해야 하느냐는 지역 여론이 커졌다.

지난 5일 강원도와 국방부는 주민들이 철거를 요청하고 있는 동해안 군 경계철책 41개 구간(총 26.4㎞) 중 26개 구간을 철거하기로 합의했다. 경제자유구역으로 개발될 예정인 동해시 노봉해변과 고성군·속초시·강릉시 등 주요 해변에 흉측하게 존재했던 철조망이 철거될 예정이다.

오전 11시. 문용선씨가 집 앞마당에서 미역을 말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바다를 친정어머니처럼 아낀다고 하는 해녀 문씨다. 어느새 물질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 마을 해녀들의 물질은 새벽 일찍 시작해 대개 오전 9시께 끝난다. 채취해 온 미역을 오전 오후 내내 볕에 잘 말려야 하기에 하루의 노동을 일찍 시작하는 것이다.

“어이야.” 문씨가 사람 키만큼 높이 자란 미역을 손에 들고 흐뭇한 표정으로 웃었다. “내가 40년 해녀생활 했는데 요즘만큼 미역이 잘된 걸 못 봤더래요.” 미역은 평평한 틀에 놓고 하루이틀 바람에 말린다. 북쪽 금강산의 해금강 물을 먹은 바람일 수도 있고, 남쪽 설악산의 강물을 먹은 바람일 수도 있다. 촉촉했던 미역은 남과 북의 바람을 품고 서서히 제 몸을 딱딱하게 만들어갈 것이다.

“그나저나 이번에는 좀 없어지갠? 철조망이요. 도청이랑 국방부가 협의를 했다던데…. 해녀들이 배 타고 물질 나갔다가도 일찍 오고 싶으면 올 수 있어야 하잖아요. 철조망 때문에 하는 수 없이 배 시간 맞춰서 돌아와야 한다니까. 나이 많은 해녀들이 돈도 많이 들고 너무 힘들드래요.”

문씨와 같은 고성군 현내면 일대의 해녀들은 앞으로도 철조망과의 실랑이를 계속해야 한다. 5일 국방부는 강원도와의 협의에서 현내면 남북을 잇는 해안가의 철책선에 대해 철거가 불가하다고 밝혔다. 조건부로 철거에 동의한 지역에 대해서도 군은 지방자치단체가 폐회로텔레비전을 설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날 오후 2시부터 거진항에서 화진포 해수욕장까지 5.7㎞ 구간을 걸었다. 철조망은 한치의 틈도 없이 해안 진입을 막았다. 바위를 타고 바다로 넘나들기 쉬운 조건을 가진 곳에는 날카로운 가시철조망이 치렁치렁 감겨 있기도 했다. 아름다운 바닷가와 녹슨 철조망은 그렇게 공존한다. 듬성듬성 보이는 출입문은 자물쇠로 굳게 닫혔다. 육지이지만 섬 같은 곳이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이다.

흰섬 근처에서 순찰을 돌던 사병들을 마주쳤다. “어차피 폐회로텔레비전으로 감시가 되는데 낮에는 출입문을 개방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사병이 곤란한 표정을 짓는다. “안 됩니다. 북한군이 철조망을 넘는 것을 발견해도 저희가 출동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그사이에 도망가버리면 곤란하거든요.” 사병은 인심이 좋았다. 그는 10분만 바닷가에 나갔다 오라며 잠시 출입문을 열어주었다. 관광객을 위한 배려다. 출입문 안으로 들어서 바다 쪽으로 걷자 바위섬에 서서 파도를 넋 놓고 바라보고 있던 갈매기가 후드득 소리를 내며 날아갔다.

6일 해녀 김아무개씨가 채취해 온 미역을 철조망 너머로 건네주고 있다. 고성/강재훈 선임기자 khan@hani.co.kr

“우리가 철창에 갇힌 동물도 아니고”

짧은 바다 구경을 마치고 다시 출입문 안으로 들어왔다. 산책을 계속했다. 현내면의 한 백사장 옆을 지나는데 남성이 찢어진 그물을 손질하느라 분주하다. 남성은 철조망을 끼고 있는 마을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주민 김춘배(64)씨다. 철조망으로 애가 다는 건 해녀만이 아니다. “이곳은 아름다운 해변인데 철조망 때문에 오는 손님이 없더래요. 군이 여름에만 잠깐 철조망을 개방하거든요. 제가 여기가 고향이니까 살지만 살고 싶은 욕망이 안 생겨요.”

인근에서 슈퍼를 운영하는 정태완(64)씨도 불만이 많다. “바닷가에 미역이 밀려왔길래 미역 좀 가지러 가겠다고 군인한테 그렇게 사정을 해도 안 보내줘요. 그냥 철조망을 넘어서 가려 하니까 내 이름을 적어 가드래요. 간첩은 안 잡고 주민들 감시만 하라니? 우리가 철창 안에 갇힌 동물들도 아니고.”

어쩌면 이곳에서 철조망을 둘러싼 갈등은 안보의 문제가 아니라 융통성의 문제일 수도 있다. 주민들은 낮에 이 지역 주민등록증을 가진 사람에 한해서 바다에 나갈 수 있도록 철조망 출입문을 개방해줬으면 하고 바라는데 군은 묵묵부답이다. 군이 어떤 기준으로 출입문을 개폐하는지에 대해서도 주민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지휘관의 성격에 따라 출입문 개폐 여부가 달라진다고 추측할 뿐이다. <한겨레>가 7일 관할 구역인 육군 22사단에 군 철조망 개방에 관한 매뉴얼이 있느냐고 문의하니 “국방부에 물어보라”고 했고, 국방부는 자신들의 답변 사항이 아니라고 답했다. 주민들은 군에 사정하느라 바쁘다.

이튿날 아침 6시. 거진리 해녀 이근옥씨의 며느리 김씨가 다시 바다로 나갈 채비를 했다. 자전거를 타고 10여분을 달린 그가 ‘무당바우(바위)’라고 불리는 바위 근처 철조망 앞에 멈췄다. “이곳이 제가 미역 캐는 구간이래요. 어제 저희 남편이 빨리 출입문 안 열어준다고 군에 화를 냈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이러(이렇게) 일찍 열려 있다오.”

오늘은 운수 좋은 날이다. 바다 앞에 다다르자 김씨는 망사리를 척 던지고 성큼성큼 바닷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오늘은 뭘 건져올 건지 묻자 “미역! 운 좋으면 문어!”라고 김씨가 소리쳤다. “일한 만큼 정직하게 나눠주는 곳이 바다래요. 이 맛에 도시에선 못 산다오!”

김씨가 몸을 숙여 몸을 물에 담갔다. 바다 한가운데로 헤엄치며 사라져가는 김씨를 철조망 너머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으니 어느새 해가 떠 있다. 바다의 얼굴은 서서히 황금빛으로 물들어갔다. 파도는 해녀들이 일하기 좋게끔 잔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