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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04일 05시 47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04일 05시 48분 KST

'한국 핵무장 시나리오' 실현 가능성은?

미국 워싱턴에서 '한국 핵무장론'이 또다시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다.

미국의 대표적인 핵군축통인 찰스 퍼거슨 미국 과학자협회(FAS) 회장이 지난주 비확산 전문가 그룹에 비공개로 회람한 보고서가 발단이 되고 있다.

그간 한국 핵무장론은 허황된 주장으로만 간주돼왔으나, 해당 분야의 전문가가 심층적으로 분석·연구한 자료를 내놓아 눈길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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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주장은 현 단계에서 실현 가능성이 거의 없는 이론상의 영역에 머물고 있다는 게 외교가의 중론이다. 그러나 미·중의 '방치' 속에서 북핵문제가 궁극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경우 전개될 동북아 안보환경의 변화와 그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볼 필요는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북한 핵능력 키우고…일본 핵무장 노리고…미국 핵억지 약화 우려"

'퍼거슨 보고서'의 핵심은 한국이 실제로 핵무장을 시도하는 정황이나 근거를 소개하는 게 아니라, 핵무장이 불가피한 상황으로 내몰릴 수도 있다는 점을 경고하는 데 있다.

무엇보다도 미국과 중국의 소극적 관망 속에서 북한이 핵능력을 계속 증강하는 상황을 한국이 마냥 지켜보고 있지는 않을 것이라는 게 보고서의 골자이다. 남한이 북한의 핵과 미사일을 독자로 억지할 수 있는 '수단'을 생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까지 한국이 절대적으로 의존하는 미국의 '핵우산'도 완벽하게 신뢰하기 어려운 상황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보고서의 주장이다. 미국의 재정압박과 그에 따른 국방예산 감축이 변수가 될 것이라는 뜻이다. 여기에 이웃 일본의 핵무장 우려가 현실화된다면 이는 한국 핵무장 촉발의 결정적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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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는 워싱턴 외교가에서 한국의 핵무장 가능성을 회의적으로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지만, 안보 상황의 변화에 따라 한국으로서도 불가피한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주요 국제교역국인 한국이 핵무장에 나설 경우 국제적 제재로 경제가 어려워질 수 있지만, 1998년 핵실험을 강행한 인도의 사례를 보면 제재가 오래가지 않는다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다. 미국은 당시 중국을 견제하는 차원에서 인도의 핵개발을 용인했다.

한국이 현재로서는 국제비확산체제의 수호자이지만, 국가안보가 심각한 위기에 놓인 상황에 놓이면 핵확산금지조약(NPT)의 틀에 머물러 있지 않을 수 있다는 보고서는 주장했다. NPT 10조(핵 문제로 인해 한 국가의 이익이 특별히 위협받거나 국가 생존이 걸렸을 때 3개월 전에 통보하고 탈퇴할 수 있는 권리 부여)를 적용해 탈퇴를 강행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이미 한국의 일부 보수 정치인들이 북핵해결이 불가능하다고 지적하면서 핵무장의 필요성을 주장하기도 했다고 소개했다.

◇"월성 가압중수로에서 핵무기용 플루토늄 추출 가능"

보고서는 일단 한국이 핵무기를 만들기로 결심한다면 단기간 내에 수십 개의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는 잠재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보고 있다.

핵무기 제조의 삼박자로 볼 수 있는 ▲핵물질 ▲핵탄두 설계 ▲운반체계를 이미 확보했거나 손쉽게 확보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미다. 특히 핵물질은 이미 가동 중인 원전에서 쓰다남은 핵연료에서 플루토늄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는 게 보고서의 설명이다.

특히 가압경수로(PWR)보다는 월성에 위치한 4개의 가압중수로(PHWR)에서 핵무기 제조에 필요한 준(準) 무기급 플루토늄을 추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원자로에서 나오는 플루토늄 혼합물은 원칙적으로 핵무기로 쓰기 어려운 '원자로급'으로 분류된다.

그러나 중수로에서 나오는 혼합물에는 폭발력을 높이는 PU-239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 '무기급'과 거의 같다는 게 보고서의 주장이다. 보고서는 이미 월성 원전의 사용후 핵연료시설에 4천330개의 핵폭탄 분량인 2만6천㎏(작년말 기준)의 원자로급 플루토늄이 보관돼 있다고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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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에 원자력 전문가인 토머스 코크란과 매튜 매카시는 이 4개의 가압중수로가 매년 416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는 준 무기급 플루토늄 2천500㎏을 생산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연료공급 능력을 감안해 생산능력을 낮춰잡더라도 최저 150㎏(핵폭탄 25∼50개)에서 최고 500㎏(100개)의 핵폭탄을 만들 수 있다고 보고서는 추정했다.

이런 맥락에서 한국이 당장 핵무기 제조에 나설 경우 4개의 가압중수로에서 5년 이내에 수십 개의 핵탄두를 만들 수 있다고 보고서는 전망했다.

중수로 이외에도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운영 중인 30메가와트급 다목적 연구용 원자로인 '하나로'(HANARO)도 매년 11㎏의 무기급 플루토늄을 만들 수 있는 수준이라고 보고서는 주장했다.

보고서는 한국이 핵폭탄을 터뜨리는 기폭장치에 필요한 '크라이트론'에 대한 기술적 접근이 이미 가능한 상태이고 핵탄두 내 플루토늄 주변을 에워쌀 고성능 폭약 제조 능력도 세계적 수준이라고 밝혔다.

한국은 나이키-허큘리스 대공 미사일과 탄도·순항미사일인 '현무', 공군 주력 전투기인 F-15와 F-16 등 핵폭탄을 운반하는 최첨단 무기체계도 충분히 확보하고 있다고 보고서는 강조했다.

◇초기엔 '외교적 폭탄'…핵능력 증강일로 가능성

한국은 이 같은 핵능력을 미국과 중국이 북한 핵문제를 진지하게 다루도록 압박하는 '외교적 폭탄'(Diplomatic Bomb)으로 이용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서는 분석했다.

그러나 이 같은 전략이 통하지 않을 경우, 자체적인 핵억지와 대응 차원에서 본격적으로 핵무기 재고를 늘려나갈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일본이 핵무장에 나설 경우 한국은 주변 핵무장국들에 둘러싸이는 사실상의 '포위구도'에 갇히게 되는 만큼 이를 타파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적 핵능력 증강에 나설 것이라고 보고서는 밝혔다.

보고서는 특히 상호 억지력 확보를 목표로 핵잠수함 개발과 장거리 탄도·순항미사일 개발을 통해 '세컨드 스트라이크'(핵공격을 받으면 즉각 핵으로 응징 보복하는 것) 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북한은 물론 중국, 인도, 파키스탄, 러시아 등의 핵무기 경쟁을 촉발하고 다시 미국의 핵정책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다만, 주목할 대목은 미국이 밀실에서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화를 용인할 가능성이 있다는 게 보고서의 내용이다. 비확산 체제에 타격을 주기는 하지만, 북한과 중국이 핵능력을 진전시켜나가고 미국이 확실한 핵억지력을 보장하지 못하는 상황이 초래된다면 미국으로서도 '대안이 없다'는 쪽으로 입장을 정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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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현가능성은 없어…'북핵해결 압박용'?

'퍼거슨 보고서'의 지적대로 한국이 핵무장의 길에 나설 가능성은 현실적으로 제로에 가깝다는 게 외교소식통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한국은 1992년 한반도 비핵화 선언에 따른 의무를 충실히 이행하면서 북한으로 하여금 비핵화에 나서도록 압박하는 위치에 서있기 때문이다.

특히 국제비확산체제의 핵심 일원인데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핵없는 세상' 이니셔티브에 부응해 2012년 서울 핵안보정상회의까지 개최했을 정도로 핵문제에 대해서 만큼은 강경한 원칙론을 견지하고 있다.

또 핵무기 제조에 쓰일 수 있는 농축·재처리 기술은 한미원자력협정에 의해 강력히 금지돼있다. 여기에 한국의 핵무장을 부추길 요인의 하나인 일본의 핵무장은 동맹인 미국의 반대로 불가능하다는 게 외교가의 시각이다.

한 외교소식통은 "이론상으로는 가능하지만, 현실적으로는 불가능하다고 봐야 한다"며 "다만 퍼거슨 보고서는 북핵이 해결되지 않을 경우 동북아에 새로운 '핵경쟁' 시대가 열리는 최악의 시나리오에도 대비해야 한다는 메시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