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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5월 01일 06시 34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5월 01일 06시 34분 KST

함바집, 패션을 입다

Common Ground

[매거진 esc] 라이프

컨테이너 활용한 건축물 증가…200개 컨테이너 쌓아올린 커먼 그라운드, 거리 감성 입혀 젊은층 관심

컨테이너. 화물을 수송하는 데 쓰이는 규격화된 금속 상자를 말한다. 처음 포장한 그대로 육로와 해상을 두루 거쳐 ‘도어 투 도어’ 수송이 가능하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1950년대 처음 등장한 컨테이너는 물류혁명의 도화선에 불을 지폈다.

컨테이너는 원래 용도와 다르게 쓰이기도 한다. 건설 현장 사무실이나 ‘함바집’이라 불리는 식당이 대표적이다. 최근 들어 컨테이너를 주택이나 카페 등으로 개조하는 컨테이너 하우스도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 2008년 광우병 쇠고기 반대 광화문 촛불집회 현장에서 컨테이너를 쌓아 세운 ‘명박산성’, 방산 비리에 연루돼 구속된 이규태 일광공영 회장이 범죄 서류를 숨긴 컨테이너 비밀 금고는 나쁜 예다.

여기 컨테이너의 색다른 변신 사례가 있다. 수십개의 컨테이너를 쌓고 이어붙여 대형 건축물을 만드는 것이다. 지난 10일 서울 광진구 자양동 건대입구역 부근에 독특한 외관의 건물이 문을 열었다. 무려 200개의 컨테이너를 쌓아올려 만든 쇼핑몰 ‘커먼 그라운드’다. 영국 런던의 컨테이너 쇼핑몰 ‘박스파크’(61개),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처치의 컨테이너 쇼핑몰 ‘리스타트’(60개), 미국 라스베이거스의 컨테이너 쇼핑몰 ‘컨테이너 파크’(160개)보다 더 크다. 연면적 900평의 3층 건물과 연면적 700평의 4층 건물로 구성돼 있다.

이동을 위해 고안된 컨테이너

활동성, 유목민, 자유로움 상징

예술가와 문화공간 이미지 어울려

재활용 가능해

환경적으로도 의미있는 건축물

최근 재개관한 복합문화공간 에스제이 쿤스트할레.

쿤스트할레 내부.

국내에 대형 컨테이너 건축물이 들어선 게 처음은 아니다. 2009년 서울 논현동에 들어선 복합문화공간 ‘플래툰 쿤스트할레’가 시초다. 컨테이너 28개를 4층으로 쌓아올려 만든 이곳은 독일의 아트 커뮤니케이션 그룹 ‘플래툰’이 지은 것이다. 하위문화를 활성화한다는 취지로 독일 베를린에 첫 플래툰 쿤스트할레를 지은 뒤 두번째로 서울에 지었다. ‘쿤스트할레’는 아트 갤러리를 뜻하는 독일어다. 예술 관련 전시회,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 여러 파티 등이 열렸고, 평소에는 술과 음료를 파는 카페로 운영됐다. 독일 플래툰은 지난해 말까지 운영하다 철수했다. 이후 국내 운영사가 ‘에스제이 쿤스트할레’라는 이름으로 지난 18일 재개관했다. 기존처럼 복합문화공간으로 운영하되 레스토랑도 새로 문열었다. 인테리어를 일부 바꾸고 카키색이었던 외관을 흰색으로 새로 칠했다.

2010년 광주광역시의 옛 전남도청 앞 광장에 ‘쿤스트할레 광주’도 들어섰다. 플래툰 쿤스트할레가 문화체육관광부 아시아문화중심도시추진단의 의뢰를 받아 거의 같은 구조로 지은 것이다. ‘아시아문화마루’라는 이름이 붙은 이곳은 아시아문화중심도시 홍보관,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쇼케이스 공간, 복합문화공간 등으로 활용되다 지난해 초 문을 닫았다. 이 장소에서 5·18민주평화광장 조성 공사가 시작됐기 때문이다. 철거돼 사라질 위기에 처했던 건물은 그대로 광주 광산구 소촌공단으로 옮겨져 새로운 복합문화공간으로 거듭났다. 이동이 가능한 컨테이너 건축물의 장점이 빛을 발한 순간이다.

복합문화공간 네모.

또다른 사례로 서울 한남동 공연장 블루스퀘어 안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네모’가 있다. 블루스퀘어 개관 6개월 뒤인 2012년 5월 컨테이너 18개를 이어붙인 3층짜리 공간으로 완성됐다. 5개월의 사전 제작 기간과 1개월의 현장 조립 기간 등 모두 6개월이 걸렸다고 한다. 이곳을 설계한 건축가이자 설치미술가인 한원석 작가는 “구조물을 미리 만들고 현장으로 옮겨 조립하는 방식을 모듈러 건축이라고 한다. 컨테이너 건축물은 모듈러 건축 방식 가운데 하나”라고 설명했다.

한 작가가 건축 자재로 컨테이너를 고른 것은 현실적 이유에서다. 공연장 옥상에 해당하는 공간에 지어야 했는데, 우선 차량이 현장으로 들어갈 수 없었고, 아래가 기둥이 없는 공연장 객석이어서 건물의 하중을 줄여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콘크리트보다 가벼운 컨테이너 구조물을 미리 제작한 뒤 이를 크레인으로 옮겨 현장에서 조립하는 방식을 택했다. 한 작가는 “이동을 위해 고안된 컨테이너는 활동성, 유목민, 자유로움 등을 상징하는데, 이런 것들이 예술가와 복합문화공간의 이미지와 잘 맞는 것 같다. 실제로 건물의 이동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지금의 디지털 유목민 시대에 적합하고, 재료의 재활용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환경적으로도 의미 있는 건축 기법”이라고 말했다.

컨테이너 쇼핑몰 커먼 그라운드를 만든 이들도 이런 특징에 주목했다. 커먼 그라운드를 운영하는 코오롱인더스트리에프엔시(FnC)는 이번에 유통업에 처음 진출했다. 커먼 그라운드 건설을 담당한 코오롱글로벌의 김주환 과장은 “기존 대기업 백화점들이 서울의 요지에 자리잡고 있는 상황에서 새로운 유통시장을 개척하려면 틈새시장을 파고들어야 한다고 봤다.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이동 가능한 팝업 쇼핑몰이었다”고 설명했다. 30년 넘게 택시 차고지로 쓰였던 땅을 빌려 컨테이너 쇼핑몰을 세운 이유다. 임시로 운영하고 철거하는 ‘팝업 스토어’처럼 커먼 그라운드도 이곳에서 8년간 운영한 뒤 철거할 예정이다. 이후 서울의 다른 장소나 수도권 또는 지방으로 이전할 계획이라고 한다.

커먼 그라운드 내부.

몸집을 가볍게 했다는 특징은 내부 상점 구성 콘셉트와도 맞닿는다. 코오롱인더스트리에프엔시는 백화점 등에서 판매되는 자사 브랜드를 이곳에 입점시키지 않았다. 대신 스트리트 패션,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편집 의류매장, 액세서리 가게 등을 들였다. 식음료점도 서울 가로수길의 유명 베이커리 ‘도레도레’, 경리단길의 수제맥줏집 ‘더 부스’, 김치를 이용한 요리로 유명한 푸드트럭 ‘김치버스’ 등 색다른 곳이 대부분이다. 스트리트 컬처 전시공간 ‘토이 리퍼블릭’도 있다. 주말이면 마당에서 벼룩시장과 인디밴드 공연도 열린다. 백화점과 홍대 앞 거리장터의 중간 어디쯤 되는 셈이다.

안전 문제는 괜찮을까? 코오롱글로벌의 김 과장은 “세월호 참사도 있고 해서 안전 이슈에 특히 더 신경 썼다. 소방안전 등에 있어 일반 건축물의 기준을 통과했다”고 말했다. 보통 컨테이너는 네 모서리에 기둥이 있고 그 사이의 구불구불 주름진 면이 힘을 지탱하는 구조다. 커먼 그라운드를 지을 때 컨테이너의 일부 면을 없애기도 했는데, 이를 위해 기둥이 6~8개인 특수 컨테이너를 제작했다고 김 과장은 전했다. 그는 “단열재를 넣고 냉난방 시스템을 갖추는 데도 많은 비용과 노력을 들였다”고 덧붙였다.

커먼 그라운드의 건축 비용은 일반 콘크리트 건물보다 20~30% 싼 수준이라고 한다. 생각보다 비용절감 폭이 크지 않다. 자재보다 안전시설, 냉난방·환기 시스템 등에 드는 비용의 비중이 크기 때문일 터다. 컨테이너 건물이라 해서 싸게 막 지은 것이라는 인식은 이제 옛말이다. 레고 블록과도 같은 컨테이너의 무한한 변신 가능성에 주목하고 활용도를 고민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