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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20일 15시 08분 KST | 업데이트됨 2017년 04월 19일 16시 40분 KST

당신이 '마리화나의 날'에 대해 알아야 할 모든 것

*이 기사는 2009년 4월 20일 처음 게시되었다. 그리고 매년 4월 20일 '마리화나의 날'에 재발행되었다. 2012년에는 '420'이라는 말을 처음 이용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밝혀졌다. 칼리 슈월츠(Carly Schwartz)가 취재에 협조했다.

락밴드 올맨 브라더스 밴드(Allman Brothers Band)의 기타리스트 워렌 해인즈는 밴드 '그레이트풀 데드(Grateful Dead)'에서 살아 남은 음악인들과 함께 ‘더 데드(The Dead)’라는 밴드 이름으로 공연을 한다. 2009년 봄 워싱턴에서 더 데드가 콘서트를 막 마친 때였다. 허핑턴포스트는 워렌 해인즈에게 깜짝 질문을 했다.

'420'은 어디에서 유래한 말인가?

해인즈는 손을 옆에 놓은 채 한참을 생각하더니 "어디서 시작됐는지는 잘 모른다. 나도 전설이나 소문으로만 안다"며 "어떻게 처음 들었는지는 사실 헷갈리는데, 누가 마리화나를 피는 중이거나 그에 관련된 상황을 설명하는 경찰들의 암호였을 것이다. 그런데 진실은 무엇일까?"

시민 운동가 웨이비 그레이비(Wavy Gravy)는 자신의 이름을 딴 아이스크림이 있을 정도로 유명한 히피의 아이콘이다. 그는 그레이트풀 데드를 몇십 년 동안 쫓아다닌 사람이다. 그레이비를 ‘더 데드’ 콘서트에서 만난 허핑턴포스트는 420에 대해 질문했다. "가물가물한 옛날이야기인 것 같은데, 지금이 몇 시인가? 당신에게 이렇게 말하겠다. '영원한 시간'이라고."

누구에게 질문을 하느냐에 따라서 혹은 그 사람의 몽롱한 상태인지 아닌지에 따라 420에 대한 답변은 천차만별이다. 캘리포니아산 마리화나 종류가 수도 없이 많은 것처럼 말이다. 420이 마리화나에 포함된 화학물질 개수라고 말하는 이도 있고, 네덜란드에서 지키는 티타임 시간이라고 하는 이도 있고, 히틀러의 생일과 관련이 있다는 이도 있으며, 밥 딜런 노래 개수를 곱한 수라고 주장하는 이도 있다.

420의 기원은 매년 4월 20일 마리화나를 즐기는 이들로 인해 그 정체가 오히려 불확실해졌다.

허핑턴포스트는 끝내 420이 어떻게 유래됐는지 알아냈는데, 다름 아닌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포인트 라이스(Point Reyes) 숲에 그 답이 있었다. 그 기원도 흥미롭지만 420이라는 단어가 퍼지게 된 사례도 매우 재미있다.

우선 히피 사조의 상징 그레이트풀 데드로 시작한다.

1990년 크리스마스 캘리포니아 오클랜드. 그레이트풀 데드 콘서트 전에 히피들은 꼭 주차장(The Lot)에 모였는데, 스티브 블룸이 그들 사이를 지나가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데드헤드(Deadhead – 그레이트풀 데드의 열성팬)가 그에게 노란 전단지를 건네줬다.

"매린 카운티에 있으며 석양으로 유명한 타말파이어스 산의 볼리나스 릿지에서 4월 20일 4시 20분에 만나 420을 할 것이다"라고 적혀있었다. 허핑턴포스트 요청에 블룸은 그 전단지를 찾아서 보내줬다. 현재 마리화나 뉴스사이트 셀렙스토너닷컴(CelebStoner.com)의 발행인이자 '마리화나 문화(Pot Culture)'의 저자인 블룸은 당시 마리화나 신문 하이타임스(High Times)의 기자였는데, '420을 한다'는 말을 그때 처음 들었다고 한다.

전단지에는 420에 대한 뒷이야기도 포함되어있었다. "70년대 캘리포니아 산 라파엘 근처에서 420이라는 말이 시작됐다. 마리화나 흡연을 경고하는 경찰들의 암호였다. 그 지역에 사는 데드헤드들이 그 이야기를 듣고 마리화나 대신 420이라는 말을 쓰기 시작했다. 420을 개발한 사람. 최고!"

블룸은 이 이야기를 1991년 5월 하이타임스에 보도했는데, 허핑턴포스트가 그 기사를 받았다. 하지만 블룸의 이야기는 일부만 맞다.

산 라파엘이 시초인 것은 정확하지만 420과 경찰 암호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사실은 1971년에 산 라파엘 고등학교 학생들이 왈도스(WALDOS)라는 그룹을 만들었는데, 이들이 학교 바깥에서 만나는 시간 4시 20분이라는 뜻이다.

자기들이 발명한 단어가 세계 모든 마리화나 흡연자들이 활용하는 공통어로 바뀔 줄은 상상하지 못 했을 거다. 지금의 4월 20일은 마리화나 흡연을 제지하는 정부에 대한 시위 차원에서 반 공식 휴일처럼 기념된다. 2009년에는 소위 말하는 가장 대규모의 '스모크아웃(smokeouts-비흡연 운동)'이 있었다. 운동의 주최 측인 캘리포니아 대학 산타 크루즈 캠퍼스와 콜로라도 대학 볼더 캠퍼스는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며 스모크아웃을 지지하자고 호소했다. "4월 20일이 다시 다가오면서 작년에 벌어진 사태가 재연될 우려에 학생, 부모, 동창, 교육청, 그리고 커뮤니티는 걱정하고 있다"고 볼더 총장은 학생에게 성명으로 전달하였다. 또한 그는 "2009년 4월 20일, 학교는 물론 여러분의 학업과 학위를 저하하는 행위에 참여하지 않기를 바라며 다른 학생들에게도 자부심을 가지고 행동하고 자기가 누군지를 기억하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그런데 이러한 조치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사태로 번졌다. 학생들과 지역사람들이 4시쯤 모인 후 4:20분이 되면 일제히 마리화나를 피고 곧장 사라진 것이다. 밴드도, 연설도, 구호도 없었다. 그냥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마리화나를 즐기는 순간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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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명의 왈도들

420이라는 개념은 대중문화와 현대 사회에서도 볼 수 있다. 영화 <펄프 픽션>에 나오는 시계는 모두 4시20분에 맞춰져 있다. 또 미국의 장수프로그램이자 상품타기 프로그램 'The Price Is Right(그 가격이 맞아요)' 참가자가 모든 상품 가격을 $420이나 $1,420으로 추측하여 성공한 사례도 있다. 또 2003년 캘리포니아가 치료용 마리화나를 합법화시키면서 법안을 SB 420이라고 이름지었다.

"아마 주 의원 마크 레노(법안 스폰서)의 스태프가 그렇게 번호를 매긴 것 같다"고 법안을 로비했던 '안전한 접속을 위한 미국인( Americans for Safe Access)'이라는 단체의 스티브 셰러는 말했다.

기사를 준비하던 중 우리가 접촉한 주 의원 스탭은 법안의 이름이 420으로 지정된 이유가 정확하지는 않지만, 레노 혹은 상원의원 스폰서인 존 바스콘첼로스가 그 정도는 알만한 ‘힙’한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바스콘첼로는 420이 어떻게 정해졌는지 전혀 모르며 당시 자기에게는 420이 아무 의미 없었다고 설명했다(만약에SB 420에 대한 이야기를 안다면 나에게 이메일을 보내주기 바란다).

420이라는 암호는 미국의 커뮤니티 사이트 크랙리스트에서도 찾을 수 있는데, 420에 친화적인 룸메이트를 찾는다는 문구로 등장한다. "마리화나를 돌려서 하는 말이지만 좀 더 쿨하게 들리는 것이 사실"이라고 마리화나 전문 기자인 블룸은 말한다. "나도 그 정도는 안다는 동지의식이라고 할까? 그런데 어느새 420이 대중화되었다."라고 그는 말한다.

그런데 왈도들은 자기들이 70년대에 처음으로 이 암호를 이용했다는 증거를 가지고 있다. 2009년 인터뷰 당시 자신들의 정체를 익명으로 다뤄달라고 허핑턴포스트에 요구하면서 자신들을 왈도 스티브, 왈도 데이브, 왈도 마크 등으로만 표시했다. 그때만 해도 마리화나 사용은 불법이었고 그 대가는 상당했다.

그런데 그 이후 마리화나가 기소 대상에서 거의 제외된 시점에서 마리화나 소지는 불법주차 벌금 정도로 위험한 일이 아니게 됐다. 치료용 마리화나를 파는 가게가 캘리포니아 전역에 널려있으며 문화적으로도 더 많은 사람들이 마리화나를 받아들이고 있다.

그리고 2012년 봄 왈도들은 자신들의 정체를 허핑턴포스트를 통해 공개하기로 했다.

"우린 베이비붐 세대다. 기성세대는 죽어가고 있고 우리 이후의 세대는 건장하다"고 스티브 캐퍼는 설명한다.

"미국인의 약 47%가 마리화나에 부정적인 생각이 없다는 통계를 최근에 본 것 같다"고 데이브 레딕스는 말한다(2012년 3월에 실행한 라스무센의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 47%가 마리화나 합법화를 지지했다).

마크 그래비치도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나머지 두 사람은 아직 신원을 밝힐지 결정하지 못했다.

왈도들의 이야기는 이렇다. 1971년 가을에 추수를 하던 시절이었다. 왈도들이 아는 한 해양 경찰이 자기가 포인트 라이스 해양 경찰 초소 근처에서 키워온 마리화나 밭을 돌보지 못하게 됐다며 이들에게 밭을 맡겼다. 보물 지도를 받은 왈도들은 공짜 마리화나를 따러 나섰다.

당시 운동선수들이었던 왈도들은 학교 밖에 있던 루이스 파스퇴르(생화학자) 동상 앞에서 운동 연습이 끝난 후 4:20에 만나 탐험을 시작하기로 했다.

"복도에서 마주치면 4:20이라면서 서로에게 시간을 상기시켰다. 처음에는 420 루이스라고 했었는데 나중에 루이스를 떼고 그냥 420이라고 했다"고 57세의 캐퍼는 기억했다.

첫 탐험은 아무 성과가 없었지만 왈도들은 단념하지 않고 숨은 작물을 계속 찾아 나섰다. "4:20분에 만나서 내 66년 셰비 임팔라를 타고 마리화나를 한 대 피면서 포인트 라이스까지 질주했다. 그리고 밭을 찾는 도중에도 계속 마리화나를 피웠다. 거의 매주 그렇게 반복했다"고 캐퍼는 기억한다. "그런데 마리화나 밭을 끝내 찾지 못했다."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도 그들은 매우 유익한 암호를 고안했다. "친구에게 420이라고 말하면 거의 텔레파시 같은 느낌이 들었다. '마리화나 피러 같이 갈까?' '마리화나 있어?' 또는 '지금 정신이 몽롱하니?' 같은 질문이 어떻게 묻느냐에 따라 텔레파시처럼 전달되는 느낌이었다"며 "우리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선생님들은 몰랐다. 부모님들도 당연히 몰랐다."라고 캐퍼는 말한다.

그레이트풀 데드의 도움으로…

420의 근원을 밝히는 것도 중요하지만 허핑턴포스트가 이 이야기를 처음 보도했던 2009년에는 이미 위키피디아와 어반 딕셔너리(인터넷 은어 사전)에 왈도들에 대한 이야기가 있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캘리포니아에 사는 고등학생 마리화나 흡연자로부터 420이라는 말이 어떻게 지구 끝까지 퍼지게 됐냐는 거다.

이에 기여한 것은 60년대 샌프란시스코가 히피들의 유토피아 역할을 하지 못하면서 가능했다. 샌프란시스코의 하이트-애시베리 지역을 헤로인 등 강력한 마약 중독자, 깡패와 사기꾼들이 점령하자 그레이트풀 데드는 짐을 싸서 매린 카운티 언덕으로 이전했는데 이곳은 산라파엘 고등학교에서 엎어지면 코 닿는 곳이었다.

"매린 카운티는 카운터컬처(반문화)의 시초였다"고 캐퍼는 말한다.

왈도들은 지역적으로만 그리이트풀 데드와 가깝지 않았다. 마크 그래비치의 아버지가 그레이트풀 데드의 부동산 업무를 중개했다. 또 데이브 레딕스의 형 패트릭은 그레이트풀 데드의 보조 밴드를 맡았으며 데드의 베이스 기타리스트 필 레시와 친한 사이였다. 레시와 마리화나를 핀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고 패트릭은 허핑턴포스트에 밝혔다. 레시와 함께 있을 때 420이라는 말을 이용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그랬을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57세인 데이브 레딕스는 그레이트풀 데드가 "캘리포니아 산 라파엘의 프런트 스트리트에서 데드가 리허설을 하고 연습을 했다. 그래서 그들이 연습하는 모습을 구경하며 마리화나를 피우곤 했다. 그런데 아마 형 패트릭이 레시를 통해 420이란 말을 퍼트렸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 나도 물론 그랬을 수도 있다. 왜냐면 그해 여름 형이 보조 밴드를 맡았는데 나도 그들을 쫓아다니며 레시와 접촉할 기회가 자주 있었다."라고 말한다.

패트릭이 운영한 보조 밴드는 ‘투 루즈 투 트럭 앤 시 스톤즈(Too Loose to Truck and Sea Stones)’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레시뿐 아니라 로큰롤의 전설 데이비드 크로스비와 유명 기타 연주자 테리 해거티도 있었다.

왈도들은 또 데드 파티와 리허설을 자유자재로 들락거렸다. "우린 당시 매우 ‘힙’했던 마크의 아버지를 많이 쫓아다녔다."라고 캐퍼는 기억했다. "윈터랜드라는 곳이 있었는데, 우린 백스테이지를 왔다 갔다 하며 당연히 420이라는 말을 이용했다. 누가 마리화나를 하나 건네주면 '야, 420이네'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면서 420이라는 말이 점차 퍼진 것 같다."

2009년에 콘서트를 마치고 무대를 나오는 레시에게 420에 대해 묻자 패트릭이 친구가 맞으며 왈도들이 420이라는 말을 시작했다는 사실이 맞다면 그리 '놀라울 일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근느 420이라는 마을 정확히 언제 처음 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미안하지만 기억이 잘 안 난다. 기억이 났으면 좋겠지만."

그레이트풀 데드가 70~80년대에 매년 수백 번의 공연을 하며 420이라는 말은 언더그라운드를 통해 퍼져갔다. 그리고 그 사연을 알아차린 하이타임스는 420을 세계로 퍼트리는데 기여했다.

"모든 분야에 420을 접목시켰다"고 하이타임스의 에디터인 스티브 해이거는 2009년에 허핑턴포스트에 말했었다. "세계 마리화나 엑스포 또는 마리화나 컵 같은 대형 행사를 할 때도 420을 주축으로 계획했다. 하이타임스가 420을 홍보하면서 세계적으로 알려진 거다. 그때까지 420은 그레이트풀 데드의 하위문화 일부로만 존재했었다. 그런데 우리가 국제적으로 확장시킨 거다.”

그리고 90년 대 들어와서 하이 타임스는 매우 현명한 투자를 했다. 즉, 420.com이라는 도메인 주소를 산 것이다.

왈도들은 420이라는 말이 산라파엘에 퍼지고 캘리포니아의 다른 지역에서 사용될 때까지는 몇 년이 걸렸다고 한다. 그런데 90년대가 되면서 전혀 예상치 못한 곳(오하이오, 플로리다, 캐나다)에서도 420이라는 말이 공유된다는 것을 캐퍼와 레딕스는 깨달았다. 또 사인이나 공원 벤치에 420이 칠해져 있는 것을 보기 시작했다.

왈도들은 1998년에 하이타임스와 접촉하여 진실규명에 나섰다.

블룸은 "'캘리포니아에는 420이라는 경찰 암호가 없다. 한 번이라도 조사를 해봤는가?’라고 왈도들이 묻는 거였다"고 말했다. 그런 확인 절차가 없었다는 것을 블룸은 시인했다. 해이거는 왈도들을 만나러 곧바로 산라파엘행 비행기를 탔다. 그리고 왈도들과의 대화와 지역 정보를 통해 그들의 주장이 사실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됐다.

"왈도들이 420을 시작했다는 사실을 번복할 1971년 이전의 사례를 아무도 제시하지 못했다. 그러니 이들 이야기를 반박할 증거가 나오지 않는다면 누구든 420에 대한 주장을 하기 힘들다"고 해이거는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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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420

왈도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샌프란시스코의 한 금고에 보관해 놓았다. 레딕스, 캐퍼, 그래비치와 또 다른 고등학교 동창인 패티 영이 이 금고를 허핑턴포스트에 공개했는데, 420 자수가 놓인 깃발에 편지와 뉴스 기사 등 다양한 추억거리가 달려있다.

왈도들은 세계의 하위문화에 자신들의 영향이 미친 사실에 매우 기뻐한다. "신사 숙녀 여러분, 왈도들이 등장합니다."라고 레딕스는 샌프란시스코 웰스파고 은행 밖에서 소리 지른다. 바닥에 놓인 '미끄러움' 간판을 확성기 대신 들고 "여러분은 역사를 보고 계십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 증거를 난 보았다. 1970년 산 라파엘 고등학교 신문에는 어느 학생이 졸업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간단하게 '4-20'이라는 기사가 실려있다. 또 1975년에 왈도 데이브가 왈도 스티브에게 보낸 편지에도 420에 대한 내용이 가득 담겨있다. 공식 420 깃발은 패티 영이 미술 수업 중에 색을 칠한 거다.

왈도들이 420에 대한 추억거리를 뽐내는 것을 은행원이 지켜본다. "420이 무슨 뜻인지 아세요?"라며 캐퍼가 은행원에 묻는다.

잠깐 생각하더니 은행원은 약간 부끄러운 듯 "네. 알아요."라고 대답한다.

다음 단계로 뭘 해야 할지 왈도들 사이에 의견이 분분하다. 레딕스는 420에 대한 이야기를 널리 모두에게 알리자고 한다. 캐퍼는 너무 많이 공개하면 상업적 가치가 소모될 수 있다며 주의한다.

왈도들은 다큐멘터리와 다른 속어를 포함한 사전, 또 420이라는 말을 처음 개발한 남자 5인이 개발할 수 있는 여러 가지를 고려하고 있다.

"친구들 중에 자기 친구가 420이란 말을 시작했다고 우쭐해하는 이들이 아직도 있는데, 약간은 연예인이 된 기분이다. 2년 전에 암스테르담에서 개최된 마리화나 컵 행사에도 참여했었다. 하이타임스가 비용을 대줬다"고 레딕스는 말한다.

그러나 그는 "아직 420으로 한 푼도 못 벌었다"며 반은 자랑, 반은 후회처럼 들리는 말을 한다.

레딕스의 직업은 신용분석가인데 '루츠 뮤직 아메리카나(Roots Music Americana)'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에도 참여했었다. 그는 역사적인 금융 사기꾼 버니 매도프에게 사기당한 적이 있는 캐퍼의 대출업체에서 일한다. 2009년에 캐퍼와 마지막 대화했을 때는 마리화나로 정신이 몽롱한 시간보다는 증권 거래 위원회에 분노의 성명을 내느라 더 바빴다.

다른 세 명의 왈도들도 모두 성공했다고 캐퍼는 말하면서 모두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자랑스러워했다. 한 사람은 나파 밸리 와이너리의 마케팅 담당이며 또 한 사람은 인쇄/그래픽 회사를 운영한다고 한다. 그래비치는 건설회사의 현장 책임자다.

"난 회사 운영에 전념해야 한다. 따라서 늘 정신이 맑아야 한다"며 왜 마리화나를 잘 피지 않는지에 대해 캐퍼는 설명한다. "내가 아는 사람들 중에 매일 또는 주 단위로 마리화나를 피는 사람치고 잘 된 걸 못 봤다. 그게 커리어 차원에서든 부부 차원에서든 경제적 차원에서든 말이다. 재미있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너무 지나치게 피우면 운명적으로 손해가 생기는 것 같다."

반면에 레딕스는 "마리화나 사용을 권장한 적은 없다. 하지만 나 같은 경우엔 그 결과가 좋았다"며 "내 비석에는 이런 말이 적힐 거다. '420'을 고안한 사람 중 하나.'라고 말이다"

라이언 그림은 '마약을 복용하는 당신의 국가: 미국의 비밀스러운 마약 역사'의 저자이며 이 책은 아마존과 여러 독립서점에서 찾을 수 있다.

*이 기사는 허핑턴포스트US 'Here's Everything You Need To Know About Why We Celebrate Weed On 4/20'를 번역, 편집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