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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16일 07시 56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4월 16일 10시 48분 KST

해경 "승객이 배 안에 있다" 세월호 교신내역 조작했다

sewol

해경수사자료 단독 입수 확인

세월호 침몰 사고의 구조 과정에 대해 감사원과 검찰에서 조사받던 해양경찰이 ‘최초의 사고 현장 보고’를 조작한 것으로 확인됐다. <한겨레21>이 감사원과 검찰에 해경이 각각 제출한 주파수공용무선통신(TRS) 녹취록을 비교 분석한 결과, 해경은 “승객이 배 안에 있다”는 교신 내용을 삭제하거나 교신자를 뒤바꿨으며, 이를 토대로 조사 과정에서 거짓 진술을 일삼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해경 수뇌부의 초동 대응 실패를 감추기 위한 조처로 풀이된다. 그러나 검찰은 이런 조작 또는 거짓 진술을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그 결과, 조작된 기록과 거짓 진술을 근거로 감사원은 해경 수뇌부에 솜방망이 징계를, 검찰은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해경이 조작한 기록은 현장 수뇌부와 세월호 사고 현장에 도착한 구조 세력이 교신한TRS 내용이다. TRS는 경찰, 소방, 응급의료기관 등에서 사용하는 다중 무선통신이다. 해경 수뇌부(본청, 서해지방해양경찰청, 목포해양경찰서)는 침몰 사고를 접수한 직후인 오전 9시2분부터 TRS로 현장 구조 세력(경비정 123정, 헬기 511·512·513호기)을 지휘했다. TRS 교신 내용은 해경 수뇌부의 구조 지휘가 적절했는지를 가늠하는 핵심 자료다.


① 해경의 조작, 검찰의 묵인 또는 무능

<한겨레21>이 입수 분석한 TRS 교신 녹취록은 모두 4가지다. 이 가운데 2가지는 녹취록 원본 형태이고, 나머지 2가지는 요약본 형태다. 그런데 해경이 원본이라며 제출한 2개의 녹취록이 서로 내용이 다르고, 2개 요약본 역시 다른 내용을 담고 있다. 원본과 요약본 모두 어느 한쪽이 조작된 셈이다.

교신 시간 뒤섞어 언뜻 알 수 없도록

<한겨레21>이 입수분석한 TRS 교신 녹취록은 4가지다. 그 내용이 다 다르다. 검찰 수사기록에 붙어 있는 녹취록에는 511호기의 첫 현장 보고(9시27분)가 삭제돼 있다. 9시27~31분 교신 내용이 통째로 없어졌다.

그 가운데 감사원에 제출한 원본 내용을 보면, 4월16일 오전 9시24분 전남 진도군 병풍도 인근 해상, 세월호 사고 현장에 처음 도착한 구조 세력인 헬기 511호기가 TRS로 “현장 도착”을 알린다. 목포 상황실은 511호기에 “현재 상태를 보고하라”(9시25분)고 지시했다. 세월호 상공을 선회하며 구조할 승객을 찾아본 뒤 9시27분에 통신한다.

헬기 511호기와 제주상황실 교신 내용

511호기: 대부분 선상과 배 안에 있음.

제주 상황실: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람은 없는지?

511호기: 해상에는 지금 인원이 없고 현재… 중간에 전부 다 있음.

이 내용을 보면, 511호기에 보고를 지시했던 목포 상황실은 아무 응답이 없다. 구조 상황을 총괄하는 본청, 서해청도 침묵했다. 10분이 지나 경비정 123정이 사고 현장에 도착할 무렵(9시35분), 본청 상황실과 목포 상황실이 다시 123정에 현장 상황 보고를 요구한다. “현재 승객이 안에 있는데 배가 기울어갔고 현재 못 나오고 있답니다.”(9시43분) 511호기의 첫 현장 보고와 똑같았다. 해경 수뇌부의 현장 파악이 늦어지면서 퇴선 명령을 내려야 할 기회가 날아가버렸다. 수뇌부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될 수도 있는 내용이다.

그런데 해경이 검찰에 제출한 또 다른 TRS 녹취록 원본에서는 그 내용이 달라진다. 검찰 수사기록에 붙어 있는 녹취록에는 511호기의 첫 현장 보고(9시27분)가 삭제돼 있다. 또한 9시27~31분 교신 내용이 통째로 없어졌다. 게다가 교신 시간을 마구 뒤섞어 편집해놓았다.

두 기관의 조사 내용 극과 극으로 달라져

해경은 또 TRS 녹취록 요약본인 ‘여객선(SEWOL) 시차별 상황’이라는 문건도 검찰에 제출했다. 이 문건에서는 감사원에 제출한 TRS 녹취록 원본과 달리 TRS 교신자가 ‘제주 상황실’에서 ‘목포 상황실’로 바뀌었고 교신 내용도 좀더 상세하게 기록돼 있다.

헬기 511호기와 목포 상황실 교신 내용

511호기: 현재 40도 우측으로 기울어져 있고 승객은 대부분 선상과 배 안에 있음.

목포 상황실: 밖으로 나와 있는 사람은 없는지?

511호기: 나와 있는 사람 없고 그… 중간에 접근해 있음.

그리고 목포 상황실 백아무개(57) 상황실장이 6월11일 검찰 조사를 받으며 제출한 또 다른 TRS 녹취록 요약본은 감사원에 제출한 원본 녹취록과 일치한다. 해경이 서로 다른 TRS 녹취록 원본과 요약본을 감사원과 검찰에 제출한 결과, 두 기관의 조사 내용도 극과 극으로 달라졌다.

<한겨레21>이 단독 입수한 감사원의 해경 조사자료(문답서)를 보면, 감사원은 “사고 현장에 우선적으로 도착한 511호기가 도착 즉시(9시27분) 현장 상황을 보고했는데도 (해양경찰) 본청, 서해청, 목포 상황실에서 청취하지 못했다. 그 사유가 무엇인가?”라고 질의한다. 제주 상황실은 들었는데 현장 지휘책임자였던 서해청과 목포 상황실은 왜 이 교신을 놓쳤느냐는 추궁이다.

이에 대해 김수현 서해지방청장을 비롯한 경비안전과장, 상황담당관, 상황실장 2명은 “청취는 했는데 혼선으로 음성 상태가 좋지 못해 상세히는 못 들었다”고 해명했다(6월6일과 5월27일).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과 상황담당관, 상황실장 2명도 앵무새처럼 같은 답을 내놨다(5월27일).

감사원은 “청취하지 못했으면 즉시 (재)보고하도록 계속 지시했어야 한다”며 골든타임을 놓친 것을 비판했다. 김수현 청장은 “죄송하다. 다시 보고할 줄 알았는데 시간이 너무 지난 것 같다”고(6월6일), 김문홍 서장은 “다중교신 상태라 개입하지 않으려 했다”고 조아렸다(5월30일).

TRS 녹취록 원본의 내용에 따라, 최초의 현장 보고가 있었고, 해경 수뇌부가 구조 지휘 책임을 다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사원이 이미 파악하고 있었던 셈이다. 그러나 조사 결과 보고서에서는 이상한 결론을 내렸다. “서해청장은 9시27분 최초로 현장에 도착한 511호가 현장 상황을 보고하지 않고 있으면 세월호 침몰 정도와 승객 대피 상황을 확인 보고하도록 지시해야 했다. (그런데도) 이를 내버려두었다.”(2014년 10월 감사보고서) 511호기의 보고를 해경 수뇌부가 청취하지 못했는데도, 이를 교묘하게 뒤틀어 511호기가 최초의 현장 보고를 아예 하지 않은 것처럼 설명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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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 교신자 목포 상황실이라 단언

검찰은 해경의 TRS 녹취록 조작과 거짓 진술을 몰랐을까. 여기 두 가지 힌트가 있다. 하나, 감사원은 해경 감사기록(문답서)을 검찰에 제출했다. 둘, 511호기 기장과 부기장을 조사한 검사는 동일인이다. 묵인하거나 무능하거나, 답은 둘 중 하나가 아닐까.

검찰의 수사도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아갔다. 511호기 기장과 부기장, 해경 수뇌부의 검찰 진술이 또 다른 TRS 녹취록 요약본에 맞춰 진행됐기 때문이다. <한겨레21>이 입수한 검찰 수사자료를 보면, 511호기 김아무개(47) 부기장은 검찰에서 이렇게 진술했다(7월10일).

7월10일 헬기 511호기 김아무개 부기장의 진술

검사: 세월호 침몰 현장에 도착해 목포 상황실에 어떤 내용을 보고했나.

부기장: “좌측으로 40~45도 기울어져 있고, 승객이 해상에 없다”라는 보고를 했다.

이때 해경이 작성한 여객선 시차별 상황 내역을 보여주며,

검사: 9시27분에 목포 상황실과 교신한 내역이 있는데 어떤가.

부기장: 내 교신이 맞다.

검사: “승객이 배 안에 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부기장: ‘승객이 해상에 없었고 일부 보이는 승객은 선상에 있으니까 나머지 승객은 배 안에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해서 보고했다.

검찰은 511호기의 교신자를 “목포 상황실”이라고 단언한다. 부기장도 그랬다. 하지만 목포 상황실 상황담당관은 검찰 조사에서 “511호기와 교신하지 않았다. 헬기는 서해청 소속이기에 알아서 지휘하겠거니 생각했다”고 진술했다(6월11일). 그런데도 검찰은 교신자들 간의 엇갈린 진술에 대해 더 추궁하지 않았다. 더 놀라운 것은 511호기 양아무개(48) 기장이다. 그는 검찰 진술(7월22일)에서 첫 현장 보고를 아예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3명의 진술이 모두 다른데도 검찰은 이에 대해 실체적 진실을 밝혀내지 않았다.

7월22일 헬기 511호기 양아무개 기장의 진술

검사: 세월호 사고 현장에는 진술인이 탑승한 511호기가 가장 먼저 도착했나.

양 기장: 그렇다. 123정보다 먼저 왔다. 가보니 세월호가 좌현으로 45도 정도 기울어져 있는데 주변 바다에 표류한 승객이 하나도 없고 갑판에도 나와 있지 않아 속으로 ‘이상하다, 왜 없지’라는 생각을 하며 시계방향으로 선회했다.

검사: 기장이나 부기장이 상황실에 무전(TRS)해 현재 보이는 상태가 어떤지 알려주고 그 상황실로부터 추가 지시를 받아 구조가 시급한 곳으로 가거나 가장 효율적인 방법으로 구조해야 하지 않았나.

양 기장: 진짜 그때 그렇게 했으면 좋았겠지만 제 역량이 부족해서 그런지…. 제가 더 이상 어떻게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당시 통신망이 폭주하고 있었고…. 그리고 사람들이 옥상으로 올라가는 것이 보이길래 그냥 곧바로 구조를 시작한 것이다.

“‘진짜 그때… 모르겠다’ 부분을 삭제해달라”

검찰 조사가 끝날 무렵 양 기장은 진술조서를 읽어보다가 ‘진짜 그때… 모르겠다’ 부분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했다. 자신의 실책이라고 거짓 고백하긴 싫었는지도 모른다.

검찰은 해경의 TRS 녹취록 조작과 거짓 진술을 몰랐을까. 여기 두 가지 힌트가 있다. 하나, 감사원은 해경 감사기록(문답서)을 검찰에 제출했다. 둘, 511호기 기장과 부기장을 조사한 검사는 동일인이다. 묵인하거나 무능하거나, 답은 둘 가운데 하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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② 해경 수뇌부 비켜간 검찰의 칼끝

답답했던 본청 상황실이 9시18분 김 서장이 탑승한 3009함정에 “회의실 입장 조치 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도 지휘가 없자 9시34분 본청 상황실은 다시 “목포서장 현장 복귀 지휘할 것”이라고 다그쳤다.

구조 활동을 현장 지휘한 김문홍 목포해양경찰서장은 123정장과 다를 바 없는 업무상 과실을 저지른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검찰은 123정장만 기소하고 김 서장에게는 면죄부를 줬다. 또 <한겨레21>이 전해철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세월호 참사 관련 공직자 징계 현황을 보면, 감사원이 김 서장의 해임을 권고했음에도 해경은 강등으로 징계 처분을 낮춘 것으로 드러났다.

사고 당일, 김 서장은 수난구호법에 따라 현장 지휘 임무를 부여받았다. 그는 헬기 512호기를 타고 세월호 사고 현장으로 이동해 현장을 지휘해야 할 상황이었다. 123정장은 대형 사고 처리 경험이 적고 교육·훈련을 제대로 받지 않았기에 현장 지휘자로 부족했다. 그러나 김 서장은 오전 9시10분 512호기만 사고 현장으로 보내고 자신은 3009함정에 남았다. 그는 감사원 조사에서 “가기 싫어서 안 간 것이 아니”라며 “헬기의 인명 구조 활동에 방해가 될까봐”서 출동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김 서장은 또 3009함정이 헬기보다는 느리지만 TRS와 문자 상황 시스템, 상황실과의 경비전화 등 통신시설을 갖춰 현장 지휘에 더 유리하다고 판단했다고 했다. 순간의 선택이 운명을 뒤바꿨다. 김 서장 대신 현장 지휘관으로 임명된 123정장은 업무상 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돼 1심에서 유죄(4년)를 받았다.

통신시설로 현장 구조를 지휘하려 했다는 주장과 달리 김 서장은 TRS(9시3분)와 문자 시스템(8시57분)이 가동된 이후 40분 이상 아무런 지시도 하지 않았다. 답답했던 본청 상황실이 9시18분 김 서장이 탑승한 3009함정에 “회의실 입장 조치 하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그래도 지휘가 없자 9시34분 본청 상황실은 다시 “목포서장 현장 복귀 지휘할 것”이라고 다그쳤다. 김 서장은 그 문자메시지를 받고도 침묵하다가 9시47분에 123정이 “(세월호) 경사가 심해 사람이 하강을 못하고 있다. 침몰할 것으로 보인다”고 보고하자 “힘을 내봐”라고 첫 지시를 내린다. 김 서장은 감사원 조사에서 “현장 지휘관(123정)이 현장을 잘 알고 또한 긴박한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믿고 개입하지 않고 있었다”고 말했다.

구조대·상황실 배치되는 진술 알고도

사고 현장으로 이동하면서도 김 서장은 구조 임무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세월호와의 교신 시도,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의 세월호 교신 보고 지시도 없었다. 사고 현장에 먼저 도착한 511호기에도 현장 보고를 명령하지 않았다. 구조 계획에 필요한 세월호의 침몰 진행 정도, 승객의 대피 현황 등을 전혀 파악하지 않은 것이다. 감사원이 김 서장이 “자리를 비우거나 다른 업무를 본 건 아닌가” 의심했을 정도다. 김 서장은 “(목포) 상황실에서 잘하는 것 같아서 별도로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당시 상황에서 지휘·감독을 잘못한 점은 인정한다. 최선을 다했지만 역량이 많이 부족했다. 단지 신속한 출동만을 염두에 뒀다.”

김 서장이 감사원에서 진술한 내용을 보면, 그가 구조 지휘를 했다며 내세우는 것은 목포 상황실과의 구내전화 통화가 유일하다. “9시14분께 3009함 조타실에서 구내전화로 목포 상황실로 전화했다. 123정이 도착하면 여객선에 직접 승선해 구명벌을 투하하고 선장을 지휘해 여객선 선내방송으로 퇴선 명령을 하도록 지시했다. 또한 목포 122구조대 현장 즉시 투입하고 123정장은 대공마이크를 이용해 즉시 퇴선 방송하도록 했다.”(5월30일 감사원 문답서)

그런데 이런 주장에 대해 목포 상황실에서는 당시 김 서장의 지시가 원론적 수준이라서 123정장에게 아예 전달하지 않았다고 했다. 더욱이 검찰 조사가 시작되자 김 서장이 통화했다고 지목한 목포 상황실장은 “그런 지시를 들은 적이 없다”고 말을 바꿨다. 이렇게 김 서장의 주장과 배치되는 진술이 쏟아졌지만 검찰은 사실관계를 더 캐묻지 않았다.

서해청 상황실도 안이한 대응으로 세월호의 비상탈출을 제대로 유도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세월호가 9시24분 진도 VTS에 묻는다. “본선에(서) 승객들을 탈출시키면 옆에서 구조를 할 수 있겠는가?” 진도 VTS는 “그쪽 상황을 모르기 때문에 세월호 선장이 최종적으로 판단해 승객 탈출을 시킬지 빨리 결정하라”고 답변했다. 여론의 비판이 쏟아졌던 VTS의 답변은 서해청 상황실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VTS가 구내전화를 걸어 “세월호에서 승객 비상탈출 여부를 물어오는데 어떻게 하나”라고 묻자 유아무개 상황담당관(총경)은 “비상탈출 여부는 현지 상황을 잘 아는 선장이 판단할 사항”이라고 원론적으로 답했다. 상황담당관은 “123정이 현장 도착한 뒤 현지 상황을 상세히 피악해 선장에게 퇴선 권고할 생각이었다”고 주장했다(5월27일 감사원 문답서). 감사원이 “승객 비상집결이라도 지시했다면 인명 피해를 줄일 수 있었다”고 지적하자 상황담당관은 “그렇다. 여객선 선장이 그렇게 무지한 지휘자일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목포해경서장과 정장 기자회견 전 22분 통화

지난해 10월 검찰은 수사 결과 발표 뒤 언론 브리핑에서 “목포서장이나 해경청장은 현장 상황을 잘 몰라서 추상적인 지시만 할 수밖에 없고 모든 것은 123정장의 판단에 따라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나 여러 자료를 종합해보면, 검찰은 해경 수뇌부의 구조 업무 태만과 관련한 단서를 이미 확보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고구마 줄기처럼 그 윗선까지 수사가 확대될까봐 의도적으로 이를 배제한 것은 아닌지 의문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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③ 해경 수뇌부의 여론 전환 기획

해경 수뇌부는 ‘여론 조작’도 기획한 것으로 드러났다. <한겨레21>이 입수한 검찰 수사기록을 보면, 해경 대변인실은 4월23일, 수색 작업이 한창이던 해경 123정 승조원 이아무개 경사에게 언론 인터뷰를 지시했다. 이 경사는 4월16일 사고 당일 세월호에 진입해 구명벌을 터뜨리는 시도를 했다. 당시 123정이 배 위에 오르지 않고 배 주변을 돌면서 소극적으로 구조 활동을 벌인 것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은 시점이었다. 이 경사는 검찰 조사에서 “본청 대변인실에서 구명벌을 터뜨린 것으로 해경에 대한 지탄 분위기를 전환하기 위해 지시한 것”이라고 해당 인터뷰 지시의 목적에 대해 말했다.

해경은 또 검경합동수사본부의 목포 상황실에 대한 압수수색이 진행된 4월28일에는 국면 전환용으로 급히 123정장과 승조원들에게 기자회견을 하도록 지시했다. 김경일 정장은 이 기자회견에서 실제 퇴선 방송을 하지 않았지만 퇴선 방송을 했다고 거짓 인터뷰를 했다. 기자회견이 열리기 2시간 전부터 김경일 정장은 김문홍 목포해경서장과 6차례에 걸쳐 22분 동안 통화한 것으로 확인됐다. 김 정장이 이날 인터뷰에서 “세월호 해역에 도착해 현장 도착과 동시에 단정을 내렸고 함내 방송장비를 이용해서 ‘승객 총원 퇴선하라’는, ‘바다로 뛰어내리라’는 방송을 수회 실시했다. 30분부터 35분까지 수차례 방송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7월 국정조사에서 해경청장은 123정이 왜 퇴선 방송 명령을 하지 않았는지에 대한 책임 추궁을 피할 수 있었다. 김 정장의 거짓말은 검찰 수사 과정에서 뒤늦게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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