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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08일 07시 33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4월 08일 07시 35분 KST

미등록 이주노동자 단속이 강압적으로 이뤄지고 있다(사진)

한겨레

3월30일 월요일

A 72라 ○○○○ 골드 25인승 버스. 71모 ○○○○ 아이보리 25인승 버스. 72거 ○○○○ 블랙 승합차. 70고 ○○○○ 실버 승합차. 목동(출입국관리사무소)은 지금 출발. 양주(출입국관리사무소)는 오전 11시에 출발한답니다. 단속 주의 바랍니다. 연락망으로 전파해주세요. (오전 10시51분)

A ○○공원 부근 단속. (오후 1시35분)

B ○○동 단속 중. (오후 1시41분)

C 차번호 알려줘. 트랙터로 받아버리게. (오후 1시53분)

A ○○동 어떤가요. (오후 2시57분)

B 떴다 하면 2시간이 고빕니다. (오후 3시)

3월31일 화요일

D 71보 ○○○○. (오전 10시15분)

E 뭐야? 오늘도? (오전 10시18분)

D 아직은 몰라요. (미심쩍어) 그냥 받아적은 거예요. (오전 10시18분)

도망갈 곳도 없는 이들에게…

문자가 휴대전화에서 휴대전화로 전류처럼 흘렀다. 문자를 수신한 사람은 지인들의 휴대전화로 메시지를 재전송했다. 농번(農繁)해야 할 농부들이 일손을 놓고 전화기를 살피고 마을 주위를 경계했다. ‘정체’가 확인된 차량번호는 눈에 띌 때마다 동선을 체크했다. 요주의 차량은 번호를 알려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케 했다.

“떴다.”

3월31일 오후 2시20분. 추위에 목 졸렸던 땅이 풀리고 여린 순이 헐거워진 흙을 비집을 시각. “비상이야.” 농부의 전화기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봄볕이 데운 따뜻한 오후가 다시 얼어붙었다. “○○ 근처래.” 농민들이 가족과 친구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 형네 덮쳤대. 다들 조심시켜.” 수도권의 한 농촌마을로 전파된 ‘위험’ 경고가 수백 동의 비닐하우스를 감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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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은 차광막을 두른 가건물 창고 앞에 승합차와 25인승 버스가 서 있었다. 창고 옆 밭에선 수확철을 맞은 굵은 봄대파들이 하늘을 치받았다. 뱀 허물처럼 벗겨진 대파 껍질들이 밭 주위로 수북했다.

창고 안은 ‘상황’이 끝난 상태였다. ‘불법체류 외국인들’을 체포한 정부 합동단속반은 고용주가 나타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이주노동자 10명이 겁먹은 얼굴로 앉아 있었다. 그들 모두의 손엔 수갑이 채워져 있었다. 두 사람의 팔 한쪽씩을 하나의 수갑에 나눠 채우는 방식으로 2~4명을 한 묶음으로 엮어놓았다. 묶음마다 단속반원들이 곁에서 지켰다. 창고에서 대파를 다듬던 이주노동자들은 ‘범법자’로 체포돼 소리도 내지 못하고 눈물만 흘렸다. 통증을 쓰다듬고 싶어도 옆 사람의 팔에 엮인 손은 다른 쪽 손목을 만질 수 없었다.

왜 수갑을 채웠나.

“잡는 사람보다 잡아야 하는 사람 수가 많아 채웠다.” 단속반 팀장이 이유를 설명했다. 체포된 노동자가 10명이었다. 그들을 체포한 단속반은 8명(여성 2명)이었다. 수갑을 찬 노동자 대부분이 여성(남성 2명)이었다. 눈앞의 장면이 단속반의 설명에 부합해 보이진 않았다. 다른 단속반원에게 물었다.

어떤 기준에 따라 수갑을 채우나.

“도주의 우려가 있을 때 채운다. 도망가는 사람은 불법체류자다.” 창고는 사방이 막힌 곳이었다. 앞문은 열쇠로 잠겨 있었다. 단속반원들은 작업장 뒤쪽 쇠파이프 골조 연결부를 힘으로 비집고 진입했다. 이주노동자들이 도망갈 방법도 그뿐이었다.

도망갈 곳이 딱히 없어 보이는데.

“단속 장소가 다 여기 같진 않다.” 법무부 사법경찰관리는 “정상적인 법 집행”임을 강조했다. 일행들에겐 “(기자의) 질문에 답하지 말라”고 지시했다. 질문과 촬영이 계속되자 단속반은 옷을 갈아입으라며 몇 명의 수갑을 풀었다. “이렇게 막힌 공간에선 안 그래도 된다고 했는데 관성이 돼 일단 수갑부터 채우고 본다. (직원들에게) 주의를 줬다.” 팀장이 말했다.

“사람을 그렇게 막 다뤄도 되나”

수갑이 손에서 떠난 노동자들은 손목을 붙잡고 깊은 숨을 뱉었다. 며칠 뒤면 강제추방될 ‘죄인들’은 몇 개 모르는 한국말 중에서 언제든 발화할 수 있도록 훈련해왔을 인사말을 꺼냈다. “고맙습니다.” 그들은 단속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할 때마다 “고맙습니다”를 되풀이했다. 단속반은 노동자들을 25인승 호송버스에 태웠다. 미처 챙기지 못한 옷과 소지품들이 다시 돌아오지 못할 컨테이너 숙소에 남겨져 주인과 작별했다. 창고를 가득 채운 대파향이 눈물 나게 매웠다.

창고 밖에서 연행 장면을 지켜보던 농민들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살살 좀 합시다. 우리 다 죽이려는 거요?”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체포한 단속반원이 고용주에게 고용확인서를 받고 있다.

3월9일부터 이 마을에선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합동단속반은 이주노동자 거주·작업 공간을 집중적으로 훑었다. 하루 10~20명씩(목격한 주민들의 집계)을 잡아들였다. 농민들은 비상경계를 섰다. 단속반의 움직임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며 단속에 대비했다. 농민들은 “융단폭격”이라고 표현했다. “이주노동자를 처음 고용한 2000년 이후 가장 난폭한 단속”(ㄷ)이라고 했다. 씨 뿌리고 수확하는 생동 대신 ‘불시의 습격’을 기다리는 긴장이 마을 전체에 팽배했다. “농가들 다 망하게 됐다”는 원성이 곳곳에서 터졌다. “모두 트랙터 끌고 출입국사무소로 가자”고들 했다.

강압적 단속에 대한 증언은 많았다. 3월29일 ㄱ(51)이 고용한 노동자 십수 명이 체포됐다. 그는 “단속반이 고추 지지대로 쓰는 쇠꼬챙이를 휘두르면서 들어왔다”고 했다. “우리 농장에선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저항할 틈도 없이 파 작업하던 애들의 팔을 수갑 채워 엮었다. 어떤 애들은 팔이 뒤틀려 아프다며 소리를 질렀다. 협조할 테니 애들 수갑은 풀어달라고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체포를 해도 합법인지 불법인지 확인부터 해야 하는 것 아닌가. 무조건 수갑부터 채워놓고 체류 자격은 뒤에 물었다.” 그에겐 1천만원이 넘는 벌금(고용한 미등록 노동자 1명당 200만원)이 나왔다.

“빠루(노루발못뽑이)로 그냥 뜯고 들어온다. 승용차를 타고 밀어붙이기도 한다. 아무리 불법체류자라고 해도 사람을 그렇게 막 다뤄도 되나. 다치든 말든 신경 안 쓰더라.”(ㄴ·43)

“정부 합동단속, VIP의 관심이 많다”

비명 같은 장면들이 연출되고 있었다. 사법·준사법 기관이 총동원돼 농촌의 ‘불법 일손들’을 붙잡는다. 이주노동자를 국내로 불러들이는 주무 부처도 그들을 내쫓는 데 앞장선다. 농민들이 농사일을 제쳐두고 ‘단속을 감시’하며 노동자를 피신시킨다. 먹이사슬의 최말단에 걸린 이주노동자는 추방의 공포에 떨며 고노동·저임금에 시달린다. 한국 산업정책에서 배제당한 농업인들은 수확철 노동력을 잃고 파산 위기에 처한다. 한국 농업정책과 농업노동·이주노동의 난맥이 한데 얽혀 엉망이 된 ‘봄의 세밀화’다.

5월1일까지 계속될 ‘불법체류 외국인 정부 합동단속’은 범정부적 협업이다. 법무부와 경찰청, 고용노동부에 국민안전처까지 결합해 있다. 지난 2월5일 정부서울청사에선 정홍원 당시 국무총리가 주재한 국가정책조정회의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불법체류자’ 단속을 위한 대응 방안이 마련·발표됐다. 지난해 11월 경기도 수원에서 발생한 ‘중국동포 토막살인 사건’이 계기가 됐다. “외국인 강력범죄가 잇따라 발생하여 우리 사회에 큰 충격을 주고 불법체류자 수가 2014년 말 현재 20만 명을 상회하는 등 사회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 따랐다. “연중 상시 단속체제 유지 계획”도 제시됐다. 치안 부재에 따른 국민적 비난을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향한 공포심으로 치환하는 ‘익숙한 기획’이다.

2013년 현재 사법 당국에 검거(전체 범죄의 경우)된 한국인이 171만6318명(98.6%)일 때 외국인은 2만4968명(1.4%)이다(안기희 수원이주민센터 대표 활동가·‘수원시의 외국인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성찰 방안’). 5대 강력범죄(살인·강도·강간·절도·폭력)의 경우는 48만5770명(97.8%)과 1만757명(2.2%)이었다. 미등록 외국인의 범죄발생률은 등록 외국인보다도 낮다. 미등록 외국인의 증가가 사회불안의 크기와 비례한다면 한국인이 일으키는 사회불안은 최소 45배 크다. 과업이 떨어진 이상 실무자들은 숙제를 해야 한다. 이주노동자가 농업 생산의 ‘결정적 존재’가 된 농번기 농촌은 미등록 외국인 단속반에겐 ‘털면 무조건 털리는’ 마르지 않는 샘물이다.

정부 합동단속반에 체포된 여성 이주노동자들이 수갑을 찬 채 대파 사이에 앉아 소리 없이 울고 있다.

서울 근교에서 시설채소를 재배하는 이 마을은 단속반의 집중 타깃이 되고 있었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로부터 차로 10여 분이면 닿는 곳이다. 서울사무소 쪽은 “해당 마을 단속은 3월31일까지 2차례뿐”이라고 밝혔다. 농민들은 발끈했다. “단속반이 처음 들이친 3월9일 이후 거의 날마다 들어와 잡아갔다”고 전했다.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산하 수도권사무소엔 5개(서울·서울남부·인천·수원·양주) 사무소가 있다. 최소 2개 이상의 사무소에서 ‘중복 단속’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농민들 사정 어려운 건 알지만 제보가 들어오면 단속 안 할 수 없다”는 단속반의 말을 농민들은 믿지 않았다. “우리 마을은 서울·수도권 식탁에 오르는 엽채류의 주요 생산지 중 한 곳이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도 가깝다. 뒤지는 족족 단속 실적을 올릴 수 있는 곳 아닌가.” (ㄹ·43)

‘실적 2만 명 달성 지시가 합동단속반에 내려졌다’는 소문이 농민들 사이에 돌았다. 한 단속반원은 “불법체류자가 20만명을 넘어가니까 그 밑으로 떨어뜨리자는 것”이라고 합동단속의 취지를 말했다. “정부 합동단속은 VIP(박근혜 대통령)에게도 보고된 사안으로 VIP의 관심이 많다.” 서울출입국관리사무소 관계자는 밝혔다. 그는 “단속이 강화되면 우리 직원들도 힘들다”며 “우리도 애로 사항이 많다”고 했다.

잇단 단속을 겪으면서 농민들은 단속반의 노하우까지 간파하고 있었다. 비닐하우스가 즐비한 방죽 위에서 아래를 지켜보다 외국인이 보이면 내려가 덮친다(ㅁ·40). 비닐하우스 중간에 차광막(일하는 장소 위에 막을 쳐서 빛 차단)이 펼쳐져 있으면 그 밑에서 누군가 일을 하고 있다는 뜻이다. 그곳을 찍어 단속한다(ㄷ). 보통 야외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모자와 수건으로 얼굴을 싼다. 길을 물어보는 척하면서 얼굴과 발음을 확인한다(ㅂ).

“정부가 쥐새끼를 코너에 몰아 죽이는 격”

잡혀가지 않은 이주노동자들도 불안에 떨었다. 타이인 F(33)는 같은 농장에서 일하던 부인(26)이 붙잡혀 출국당했다. 당시 다른 비닐하우스에 있던 그는 단속을 피할 수 있었다. F는 “아직 충격 속에 있다”고 했다. “단속반이 언제 올지 모르기 때문에 겁난다. 한국에서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무섭다.” 3월 초부터 이 마을에선 겁에 질린 이주노동자들이 날마다 짐을 싸고 있다. ㅈ(35)은 전했다. “상황이 이러니 도망간다고 말릴 수도 없다. 외국인들도 커뮤니티가 있으니까 전화나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로 연락하며 몸을 피한다.”

투두두두두두두.

트랙터가 지나가는 곳마다 푸른 피가 튀었다. 파랗게 물오른 열무가 땅에서 뽑히거나 잘려나갔다. ㅅ은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다”며 트랙터로 열무 하우스를 갈아엎었다. 그가 고용한 미등록 이주노동자 3명이 최근 체포됐다. 남은 8명은 단속을 두려워하며 떠났다. 날이 따뜻해지면서 생장 속도가 빨라지는 엽채류는 하루이틀만 수확 시기를 놓쳐도 상품가치가 급락한다.

노동력을 잃은 농민들은 극단의 선택을 하고 있었다. “3만5천 평을 빌려 농사를 짓는데 가족끼리 관리할 수 있는 면적은 5천 평 정도다. 수확할 사람이 없으니까 갈아엎을 수밖에 없다. 그냥 두면 잡초가 생기고 벌레가 끓어 땅까지 못 쓰게 된다.” ㅅ은 200평 비닐하우스 150동을 갈아엎을 처지에 놓였다. “정부가 쥐새끼를 코너에 몰아 죽이는 격이다. 대책은 세워주고 단속해야 하는 것 아닌가.”

지난해 노동자들이 강제추방된 ㅇ의 비닐하우스는 이미 폐허였다. 사람의 손길이 끊긴 비닐하우스는 군데군데 찢겨 너덜거렸다. 지난겨울에 심은 시금치는 뻣뻣하게 쇠어 꽃이 피고 있었다. 살갗에 마른버짐 피듯 말라 죽은 열무밭은 자갈밭이나 잡초밭을 닮았다. 씨앗을 새로 심은 열무는 싹만 틔운 뒤 성장을 멈췄다. 일할 사람을 잃은 ㅇ은 삶의 의욕마저 잃고 연락을 끊은 뒤 사라졌다고 했다. “이 집도 다 망했어. 어휴, 불쌍한 놈.” ㅇ의 황량한 비닐하우스를 바라보던 이웃 농부가 한탄했다.

이주노동자 단속은 농가에 지진을 몰고 왔다. 농민들이 미등록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한국 농촌(특히 시설채소 농가)에 한국인 노동력의 씨가 마른 지 오래다. 이주노동자(상시 고용노동의 경우 전체의 36.7% 차지·한국농촌경제연구원 김정섭 박사 연구) 없인 농사가 불가능한 시대(제1038호 ‘나쁜 사장님은 어떻게 만들어지나’ 참조)에 한국은 이미 와 있다. 이주노동자가 한국에서 농사일을 하지 않으면 한국인이 먹는 일상의 밥상은 차려지지 않는다.

이주노동자 합법 고용도 올해부턴 농업경영체로 등록(농업인에게 농업경영에 관한 정보를 등록토록 해 세제·재정 지원 등의 자료로 활용)한 사람에게만 허용되고 있다. 농민들은 지주인 경우보다 지주에게 땅을 빌려 농사짓는 경우가 많다.

“농업경영체 등록을 하면 각종 세금 감면과 직불금 혜택 등을 얻을 수 있다. 땅을 소유한 외지인 지주들이 농사를 짓지도 않으면서 농업인으로 등록한다. 정작 농사를 짓는 임차농들은 농업경영체가 못 된다. 우리한테 좀 양보해달라고 하면 ‘하우스 뽑으라’고 한다.”

ㅊ(51)의 하소연은 낙담이었다. “우리 마을이 속해 있는 시는 임차농이 90%는 될 거다. 우리는 너무 서럽다.”

농업경영체가 합법적으로 고용할 수 있는 이주노동자(고용허가제 할당 쿼터) 자체도 너무 적다(2015년 전 분야 5만5천 명 중 농·축산업 분야는 6천 명+α)고 농민들은 호소했다. “농업에 배정된 인원이 부족한데다 임차농은 고용 자체를 못하니까 불법 상태인 외국인들을 쓸 수밖에 없다. 대책도 대안도 없이 무조건 잡아가버리면 우린 다 죽는다. 두고 봐라. 머지않아 제초제 마시고 죽는 사람 나올 거다.”(ㄷ)

“갈아엎으려 해도 갈아엎을 인력이 없다”

마을에선 이미 “3년 전 이주노동자 단속 여파로 자살한 사람이 있었다”고 ㅊ은 전했다. “수확할 사람은 없고 빚은 쌓이는데 죽을 수밖에 더 있나. 알 사람은 다 알지만 쉬쉬하고 덮었다. 죽은 사람만 억울하지.”

3월 중순 단속으로 일손을 모두 잃은 ㅈ은 “수습이 안 된다”고 했다. 겨우내 키운 농산물은 출하 시기를 놓쳤고, 미등록 노동자 고용 벌금은 1천만원 이상 나왔다. 땅주인에게 임대료를 낼 시기도 다가오고 있다. “갈아엎으려 해도 갈아엎을 인력이 없다”고 했다. “파산 직전이다. 아버지가 삶의 의욕을 잃었다. 걱정된다.”

농민들은 악에 받쳐 있었다. “농자천하지대본? 웃기지 말라. FTA(자유무역협정)로 휴대폰 팔겠다고 농업 버리는 나라 아닌가. 농산물 가격 폭등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뭔지 아나. 지금처럼 외국인 노동자들 싹쓸이해서 잡아가면 (농산물 생산이 안 되니까) 가격이 막 뛸 거다. 그 전에 우린 노숙인 되거나 죽을 거고.”

ㄷ이 손날로 목 긋는 시늉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