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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03일 12시 31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4월 03일 12시 35분 KST

기자들을 웃게 한 도봉경찰서의 감정과 웃음이 담긴 '보도자료'(전문)

연합뉴스

"한 번의 실수는 있었겠지! 한 차례의 실수! 그것을 발견하느냐? 못하느냐? 사건해결의 판가름입니다!"

4월 3일,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4월 1일 도봉경찰서가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홈페이지에도 공개)는 역대 경찰서의 사건 보도자료에 큰 획을 그은 일대 사건이었다. 일반적으로 사건의 경위를 팩트 위주로 나열하는 공문형태의 보도자료와 달리, 담당형사의 1인칭 시점에서 쓰여진 논픽션 소설에 가까웠기 때문이다.

이 보도자료는 한 30대 남성이 도봉구에 소재한 게이트볼 사무실에서 회비통장과 체크카드을 훔쳐간 사건과 그를 검거하기까지의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한다.

"오늘 별일 없겠지... 그래 꼭 별일 없어야 돼."

지난 3월 3일. 강력반 당직근무를 하던 형사는 그렇게 별일이 없기를 바라고 있었지만, 60대 후반의 어르신 두 분이 사무실로 들어와 사건을 제보했다는 것이다. 보도자료는 이후에도 이 형사의 감정을 서슴없이 묘사했다.

"범인을 보고 나니, 만나고 싶은 마음이 더욱더 간절해집니다. 잠시 전 헤어졌던 애인이 다시 보고 싶어지듯이..."

"어떻게 된 거지? 왜 안 보이지? 답답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젠 잠도 오지 않습니다."

"다시 범인과의 씨름이 시작됩니다. 눈에 안약을 넣어가며 도봉구 및 노원구 일대 CCTV자료를 이 잡듯 뒤집니다."

"78번 PC! 그가 앉아있습니다. 반갑다! 정말 반갑다!! 그 사람임을 확인하고 판사가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며 체포합니다."

'한겨레'의 보도에 따르면, 이 보도자료는 "출입기자들과 도봉경찰서장과의 간담회에서 기자들이 '스토리'가 있는 사건이 좋다고 말한 것"에서 비롯됐다.

"사건 이면에 숨겨진 사연(스토리)이 있는 경우 신문이나 방송에 기사로 보도될 가능성이 크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도봉서는 스토리가 있는 사건이 아니라 ‘스토리텔링식 기법’으로 작성된 보도자료를 선호한다는 말로 받아들였을 수 있다."

보도자료를 쓴 강력반 차종규 형사는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스토리텔링식 글쓰기 수업을 따로 배운 적은 없다. 신선한 시도를 해 보자고 해서 시작했다"며 "오히려 기존 보도자료보다 쓰기 편했다. 경찰이 범인을 잡으려면 얼마나 힘든지 하소연하고 싶었는데 전엔 그걸 못 써서 안타까웠다”고 말했다.

이 보도자료의 제목은 '열 제대로 받은 형사 이야기'다. 만약 '오늘의 유머' 같은 게시판이었다면, '어느 강력계 형사의 범인 검거 후기' 같은 제목이었을 듯. 아래는 보도자료의 전문이다.

police

■ 검거경위

○ 2015. 3. 3. 강력당직날 아침!

‘오늘 별일 없겠지..., 그래 꼭 별일 없어야 돼.’ 라고 스스로 긴장감을 풀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런데, 60대 후반의 어르신 두 분이 불안한 얼굴로 사무실로 들어옵니다.

웬지 불안합니다..., 무슨일이시지 ???

자신들은 도봉구 창동문화센터에 있는 도봉구게이트볼연합회 회장과 총무인데, 주말동안 사무실을 비운 틈에 도둑이 들어 회원00명의 회비가 예금된 통장과 체크카드를 훔쳐 갔고, 더 기가 막힌 것은 예금된 돈까지 인출해 갔다는 것입니다.

어르신들은 말년에 소일거리로 운동을 즐기기 위해 한푼 두푼 모아 회비를 내셨을 텐데 그 소중한 돈을 훔쳐 가다니요? 참!

곧바로 발생현장으로 달려갔고, CSI(과학수사팀)팀도 요청해서 현장감식에 들어갔습니다.

그렇지만, 현장은 요즘 흔한 CCTV도 설치되어 있지 않고, 게다가 어르신들이 정리하신다고 여기저기 맨손으로 만지신 상태라 지문이나 족적도 전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답답합니다....

그리고 곧장 범인이 현금을 인출한 창동에 있는 현금인출기로 달려가 현장감식을 하고, CCTV 화면도 확인했지만...,

녹화화면의 범인은 얼굴을 가려 두 눈만 보이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래도 이 정도 단서만 있어도 좋습니다. 형사는 아주 물어뜯어 놓습니다. 범인을 보고 나니, 만나고 싶은 맘이 더욱더 간절해 집니다. 잠시 전 헤어졌던 애인이 다시 보고 싶어지듯이.....

이제 추적 시작!!! 우리 강력3팀 전원이 하루라도 빨리 범인을 만나기 위해 뛰기 시작합니다. 그 순간 저희만큼 범인을 만나고 싶어 하는 사람은 이 세상에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현금인출장소 주변뿐만 아니라 창동 일대 방범용 CCTV와 사설 CCTV 200 여대를 확인해도 범인은 보이지 않습니다.

어떻게 된 거지? 왜 안보이지? 답답해지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이젠 잠도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같은 건물에 있던 다른 게이트볼 사무실에 또 도둑이 들었고, 그 범인이 사무실에서 예금 1,200만원을 앞서 훔친 통장으로 인터넷 뱅킹하여 그 중 600만원을 인출해 갔다고 합니다.

폰뱅킹으로 훔친 계좌의 잔액을 다른 계좌로 옮기기까지 했습니다.

차분히 범인에 대해 생각해봅니다. 범인은, 30대 가량의 남성으로, 도봉구 지리를 잘 알고, 지능적이며, 범행장소에서 음식을 취식한 것으로 보아 대범한 면도 있는 것으로 보였으며, 도보로 이동하였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시 범인과의 씨름이 시작됩니다. 눈에 안약을 넣어가며 도봉구 및 노원구 일대 CCTV자료를 이 잡듯 뒤집니다.

한 번의 실수는 있었겠지! 한 차례의 실수! 그것을 발견하느냐? 못하느냐? 사건해결의 판가름입니다.

“찾았다!!!” 범인은 폰뱅킹을 위해 평소 알고 지내던 사람의 휴대폰을 빌려 사용하였습니다.

당장 휴대폰 실사용자를 만나고 싶었지만, 공범인지 아니면 범인과 가까운 사람인지 판단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사용자 관련자료도 수집하고, 잠복도 합니다. 그리고 확실히 공범이 아니라고 판단하고, 실제 사용자를 만났지만 범인은 교묘하게 빌려쓴 휴대폰의 통화내역도 삭제해 버렸습니다.

그 주변 CCTV자료자료를 보여주어 드디어 범인이 도봉구에 거주했었고, 지금은 떠돌이 생활을 하는 최○○이라는 것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의 반가움이란.....

범인의 행적을 찾아 또 뛰기 시작합니다. 도봉구, 노원구, 용산구.....더디지만 조금씩 따라 잡습니다.

2015. 3. 24. 01:00경 범인이 이용했던 용산의 피씨방을 탐문하던 중, 잊지도 않습니다. 78번 PC! , 그가 앉아있습니다.

반갑다! 정말 반갑다!!! 그 사람임을 확인하고, 판사가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며 체포합니다.

“절도 혐의로 체포하고, 변명할 기회가 있으며,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추호의 망설임도 없습니다.

신고를 받고 뒤좇은 지 24일만입니다.

이제야 그 어르신들을 볼 면목이 생깁니다.

범인은 인터넷 검색으로 게이트볼 사무실 위치를 검색해서 수원, 남양주의 게이트볼 사무실 4곳, 스포츠교실 1곳을 더 침입하여 금품을 훔친 것으로 확인되었네요.

더 늦었다면 수도권뿐만 아니라 전국의 게이트볼 사무실에 피해가 생겼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당부사항

○ 스포츠 동호회사무실 내에 회비통장과 보안카드, 체크카드 등을 동시에 보관하지 말아주세요

특히 비밀번호를 통장이나 메모지에 기재하여 보관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야 하고, 일일인출한도를 소액지정하시면 도난을 당하시더라도 현금인출 등 2차 피해를 방지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