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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4월 01일 07시 01분 KST

'박종철 고문' 경찰이 말하는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한겨레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고문 당사자로 지목된 경찰관 두명이 구속된 1987년 1월 경찰이 이들의 얼굴을 숨기려고 똑같은 복장을 한 경찰관 20명을 서울 서대문구치소로 함께 이동시키는 촌극이 벌어졌다.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1차 수사 때 기소됐던 전직 경찰관 강아무개씨는 <한겨레>와 만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등 당시 수사를 맡았던) 검사가 (범인이 2명뿐이라는) 우리 말만 믿고 수사했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며 “(검사들이) 제대로 수사하려고 했다면 이(박종철씨 조사 주무자)를 확인하는 것은 수사의 기초, 에이비시”라고 말했다.

당시 검찰 수사팀이던 박 후보자와 안상수 검사(현 창원시장) 등이 박씨를 고문한 주무 경찰관이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2명만 구속하는 선에서 수사(1차)를 끝낸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는 “박 후보자가 당시 공범의 존재를 알았는지는 내가 알 수 없다”면서도 “논란이 되는 사람을 왜 추천했느냐”, “(박 후보자는) 왜 자진 사퇴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박상옥 후보자

박상옥 후보자는 1987년 1월 1차 수사 당시 강씨를 두 차례 조사하고, 나중에야 공범으로 드러나 추가 기소된 황아무개 경위와 반아무개 경장을 참고인으로 직접 조사했다. 강씨의 발언은 경찰 쪽이 말을 맞추고 공범들이 적극 부인한 탓에 ‘실체적 진실’을 파악하기 어려웠다는 박 후보자 쪽 입장을 반박하는 취지다. 오는 7일 국회 인사청문회를 치르는 박 후보자는 “1987년 3월에야 추가 공범의 존재를 알았다”고 밝힌 바 있다.

강씨는 24일 <한겨레>와 1시간 동안 전화 인터뷰를 한 데 이어, 26·29일 두 차례 직접 만나 6시간30분간 단독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강씨와의 일문일답.

- 박 후보자가 당시 두 차례 당신을 조사했는데?

“그 당시 기억이 잘 안 난다. 자기가 추구하던 이념이 ‘이게 아니다’가 될 때 자포자기하는 것 아닌가. 그때 죽고 싶은 생각밖에 없었다.”

-수사기록을 보면 1987년 1월20일과 23일 조사했다.

“수사하는 입장에서 알면 병이고 모르면 약일 수 있지 않나. 자기 양심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박 후보자가 이 사건의 축소·은폐 시도를 밝혀내려고 했는지, 아니면 그런 시도에 동조했는지 궁금하다.

“박상옥 검사가 알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알고도 축소·은폐에 가담했다면) 평생 죄책감이나 양심에…. 그 사람도 굉장히 큰 고통을 받았을 거다.”

-박 후보자가 1차 수사 때 공범 3명이 더 있다는 것을 인지했을까?

“인지했다면 안상수 검사나 부장검사 등 위에 보고를 안 했겠나? 알았다면 당연히 보고하는 거 아닌가? 그럼 ‘이거 더 해봐’ 지시가 있었을 거 아닌가.”

-박 후보자가 공범 수사에 적극적이었나?

“축소·은폐 동조든 뭐든 검사는 검사다. 그 사람들은 수사·기소를 해야 하는 사람들이다. 박상옥 검사는 당시 얼마 안 된 검사였다. 나와 나이가 비슷한 걸로 안다. 자기 나름대로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중대한 사건이라고 자기들도 생각했을 거 아닌가. 만약 (공범의 존재를) 알았다면 안상수 검사, 신창언 부장검사가 더 책임이 있는 거 아닌가. 박 검사가 알았다면 그 윗분들이 더 많이 알았을 것이다.”

-박 후보자가 대법관이 되는 것에 우려하는 시각이 많다.

“그런 게 없는 사람보다 그런 게 있는 사람이 더 조심하지 않을까. 자기 양심이 있을 거 아닌가. 박 검사도 자신이 알고 그렇게 했다면 양심에 굉장한 짐을 지고 가는 거니, 다음엔 그렇게 안 하려고 더 신경 써서 잘할 게 아닌가 (생각한다).”

-박 후보자 스스로 잘못을 고백할 수 있는 거 아닌가?

“당시 검찰은 우리보다 더 알 수 있었다. 조사하다 나오는 걸 자기들끼리 다 얘기했다.”

-박 후보자가 대법관이 되는 것에 어떻게 생각하나?

“내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나. 내가 잘못한 것은 틀림없다. 그래서 두 번 다시 그런 과오를 범하지 않기 위해 굉장히 신중하게 생각한다. 그분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모르지만, 기자나 다른 사람들이 더 몰아치면 그 사람은 결국 ‘그때는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다’고…. 아니면 ‘정말 몰랐다’고 할 수도 있다. 내가 그분이 그런 흠이 있는지 없는지 알 수 없다. 그렇지만 자기 양심은 알지 않겠나. 누가 알든 모르든 자기 양심은 아는 거다. 자기 자신은….”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 회원들이 2월 12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앞에서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제청 철회를 촉구 하고 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민원실에 제청철회요구서를 제출했다.

-사건 당시는 어땠나?

“굉장히 추웠다. 집이 상도동에 있었다. 아침에 보고를 하러 갔더니 위에서 지원을 가라고 해서 갔다. 내가 서울대 민추위(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 등을 많이 알아서….”

-그때 박종철씨 조사 주무가 누구였나?

“반○○ 경장이었다. 주무관이라고 하지 않나. 담당자가 제일 많이 안다. 미행도 하고…. 난 지원을 하라고 해서 갔다. (만약) 큰 사건을 조사했다, 그럼 공은 누구에게 있겠나? 상을 준다면 누구에게 주겠나?”

-경찰에서 공범 3명을 제외하고 2명만 처벌하기로 결정하지 않았나?

“경찰 차원에서 그랬겠나? 안기부, 청와대….”

-반 경장이 주무였다는 것을 박상옥 검사가 알았을 것 아닌가?

“우리만 조사했다면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런데 이 큰 사건에서 우리만 딱 조사하고, 우리 말만 믿고 하진 않았을 거 아닌가.”

-항소심 공판기록을 보면, 박상옥 검사가 1차 수사 때 ‘반○○이 주범인데 왜 당신이 주범으로 돼 있느냐’고 물었다고 당신이 진술한 것으로 나온다. 당시 그 질문에 답을 안 했다던데?

“당시에는 다 ‘오더’가 있던 거 아닌가. 박처원 치안감이 ‘너희가 안고 가라’고 했으니까. 그 사람이 대부, 최고, 대공에서는 최고였다.”

-수사받을 때 박상옥 검사와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기억하나?

“기억이 없다. 나는 박상옥 검사뿐만 아니라 당시 (다른) 판검사까지 다 책임이 있다고 본다. 공안사건 영장 치면 많이 발부해주고, 돌아서면 다 깨끗한 척하고…. 박상옥 검사가 참고인 조사할 때 어떻게 됐는지 자세히 한번 봐라.”

-검찰이 수사기록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고 있다.

“그때 (박종철씨를 주로 수사했던) 담당자가 있었을 거 아닌가. 담당자가 왜 빠졌냐는 거다. 반○○ 경장이 주무였다.”

-1차 수사 때 박상옥 검사가 그 사실을 몰랐을 수 있나?

“알았다고 하면 보고를 안 할 수 있었겠나. 안상수 검사나 신창언 검사, 위에까지 다…. 알았는데 박상옥 검사가 혼자 덮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지금 보면 정말 참 못된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누가?

“그때 당시 있었던 판검사들 다….”

-검사가 누가 박씨 조사 주무인지 모를 수가 있나? 정말 몰랐다면 무능한 것 아닌가?

“안상수 검사는 (자신이 조사를 담당한) 조○○ 경위가 반장이었으니, 누가 주무였는지 물었어야 한다. 당연히 물어야 하는 거다.”

-만약 박 후보자가 알고도 넘어갔다면 위에서 답을 정해 왔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을 것이라는 취지인가?

“지금 보면 그렇다.”

-1987년 2월27일 조 경위가 안상수 검사에게 공범의 존재를 알렸다. 이후에 왜 검찰이 수사를 안 했다고 생각하나?

“이거는 정권 문제 아닌가. 의정부교도소로 이감된 뒤 1, 2층 사동을 다 비우고 1층엔 나, 2층엔 조 경위…. 출입이 극히 통제돼 있었는데 (우리가) 죽어도 모르는 거 아닌가. 거기서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나.”

-구속 기소 뒤 박상옥 검사나 안상수 검사가 면회를 온 적이 있나?

“만난 기억이 없다. 5월에 사제단(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 (공범들의 존재를) 폭로한 뒤, 2차 수사 때 왔다.”

-검찰이 공범들의 존재를 알았다면 즉시 수사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조 경위가 그걸 검사에게 말했을 때는 조사를 하라고 알려준 거다. 왜 알렸겠나. 그거 알렸다고 우리를 의정부교도소에 딱 둘만 가둬놨다. 불이익을 감수하고 조 경위가 얘기한 것은 어느 정도 나와 교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얘기를 왜 했겠나? 그런데도 수사를 안 한다? 그러면 우리는 그 안에 앉아서 뭘 느꼈겠나. 위협을 느꼈다.”

-검찰이 수사를 제대로 안 한다는 느낌이 있었나?

“청와대 등 정권 차원에서 하는 거였기 때문에…. 수사할 때 (누가 박종철씨를 조사했는지) 담당자를 아는 건 에이비시다. (우리가) 담당자도 없이 했겠나. 그런데 (검찰 수사가) 안 됐다는 건 이미 위에서 하는 대로…. 뻘밭에서 자꾸 움직이면 더 내려가는 거다. 우리가 아니라고 하면 더 어려움에 처했을 것이다. 그 심정을 아는가? 지금까지도 그 멍에를 지고….”

-그래서 ‘검사들도 어쩔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했다는 것인가?

“그렇다. 그러면서 내가 왜 이리 살았는지…. 집에도 안 들어가고 일하며 자식들, 아내 고생시키고…. 자괴감이 들었다.”

-검사가 적극적으로 수사를 했다면?

“당시에는 검사도 그냥 형식적인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까놓고 서슬이 시퍼런 상황에서 검사가 무슨 힘이 있나? 안기부에서 공안사건, 대공사건은 다 조종했다.”

-하려고만 했다면 검사도 역할을 할 수 있었지 않나?

“자기 직분과 보장된 권한이 있는데 양식 있는 검사라면…. 박상옥 검사가 만약 알면서도 그렇게 했다면 평생 죄인으로 사는 거다. 조금 더 적극적으로 했어야 했다? 누구도 모르는 거다. 자기 혼자만 아는 거지. 그런데 참고인 조사도 했다면 누가 담당자인지, 그걸 조사하는 건 기초 아닌가. 당시 제대로 (수사를) 하려면 검사들에게 그건 에이비시 아닌가. 당시 나는 하나의 도구에 불과했다. 하라면 하고….”

-박상옥 검사가 대법관이 되려고 한다.

“전에 어느 자리까지 했나? 검사장까지 했다면 나름대로 검증했을 거 아닌가? 검증해서 시킨 사람은 뭔가? (논란이 되고 있다면) 자기가 그만 안 두나? 자진 사퇴 안 하나? 왜 여러 사람이 있는데 그런 사람을 추천했는지…. 나는 죄인이다. 지금도 못 벗어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