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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29일 04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4월 08일 05시 27분 KST

[2015 F/W 서울패션위크] 당신이 주목해야 할 컬렉션 5

3월 20일부터 25일까지 6일간 서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렸던 2015 F/W 서울패션위크가 막을 내렸다.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의 '서울컬렉션'과 신진디자이너의 등용문 '제너레이션 넥스트'가 어울려 총 79회의 패션쇼가 진행되었다. 디자이너들은 이번 자리를 통해 6개월 뒤의 트렌드를 예측하고, 또한 트렌드를 만들어 나가는 역할을 했다. 상반기 패션위크는 끝났지만 앞으로도 두고두고 기억될 하이라이트 컬렉션 5가지를 꼽았다.

부적격의 아름다움

에이치 에스 에이치(HEICH ES HEICH)

디자이너 한상혁이 전개하는 유니섹스 브랜드 '에이치 에스 에이치'가 서울컬렉션으로 성공적인 첫 데뷔를 알렸다. 컬렉션의 테마는 '부적격 재단(INVALID TAILORING)'. 직접적인 영감은 영화 가타카(GATTACA, 1997)에서 받았다. 유전자의 조합이 가능한 미래, 우주항공 회사 가타카에서 가장 우수한 인력으로 손꼽는 제롬 머로우(에단 호크)는 사실 열성인자를 갖고 태어난 부적격자다. 원래대로라면 우주 비행사는 꿈도 꾸지 못하지만 오로지 정신력과 꿈에 대한 희망으로 스스로 개척하는 운명의 모습을 보여준다. 한상혁은 자신이 "부적격자"라고 허핑턴포스트에 말했다. 제일모직 엠비오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까지 올랐던 그가 신진 디자이너의 등용문 '제너레이션 넥스트'에 서기에는 나이나 경력 면에서 부적격이었다. 또한 기성 디자이너들로 이뤄지는 '서울컬렉션'에 서려면 브랜드 경력이 5년 이상이어야 하는데, 자신의 브랜드를 런칭한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그에게 서울컬렉션 역시 부적격이었다.

부적격이라는 주제는 옷의 디자인에도 직접적으로 드러난다. 아우터의 라펠은 전통적인 재단 방식으로 만든 것 같지만, 한 발짝 다가서서 보면 덧대진 심지, 스폰지 등 현대적인 재단이 가미됐다. 또한 컬렉션 중간 부분에 칼라를 세운 코트가 등장하는데, 몸통 패턴과 연결되어 접히지 않는다. 멀리서 보면 그냥 칼라를 세운 스타일링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전통 재단법을 빗겨나갔다. 한상혁은 "현대적인 카라의 재단방식을 보여주고 싶었다"라고 말함과 동시에 "사실 코트의 깃을 세워서 입는 걸 좋아한다"고 덧붙였다.

남성 모델들은 여성의 액세서리라고 여겨지는 작은 핸드백을 들고 런웨이를 걸었다. 여성 모델들은 남성에게도 맞을 법한 사이즈의 수트를 입고 걸었다. 어떤 모델은 흰색과 검은색, 빨간색과 검은색 구두를 짝짝이로 신고 나왔다. 젠더의 구분도, 원칙의 유무도 없는 런웨이였다. 누군가에게 이 모든 건 부적격적 요소라고 여겨질 수 있지만, 조금 달랐을 뿐 이상하진 않았다. 오히려 우아하고 아름답게 느껴졌다.

쇼의 하이라이트는 무인기 '드론'의 등장이었다. 드론이라는 아이디어는 어떻게 나오게 됐냐는 질문에, 한상혁은 가타카가 주는 미래적인 느낌과 잘 맞을 것 같았다고 대답했다. 쇼의 마지막, 세 명의 모델들은 가타카에서 우마서먼이 입었던 은색 드레스를 연상시키는 코트를 입고 나왔다. 모델들은 드론이 싣고 온 가방을 집어 들고 유유히 런웨이를 빠져나갔다. 피날레 무대가 끝나고, 한상혁은 자신에게도 드론으로 꽃을 선물했다. 오랫동안 기업과 일을 하고, 이제서야 자신의 온전한 브랜드를 시작하게 된 앞날을 축하하는 의미가 아니었을까.

압구정에는 없는 '뉴 오렌지 보이'

비욘드 클로젯(Beyond Closet)

2008년 서울패션위크에 데뷔한 디자이너 고태용은 서울에서 강력한 팬덤을 가진 디자이너 중 한 명이다. 매 시즌 신나는 무대를 보여준 그가 선택한 주제는 '오렌지족'이었다. 비욘드 클로젯은 90년대 초 부유한 부모를 두고 외제차를 타고 명품을 소비한 20대 청년을 현대적으로 변모시켰다. 오렌지족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를 자수성가한 젊은 청년들의 화려한 삶으로 재해석했다. 쇼는 모델 김원중이 메르세데스 벤츠의 날개 문을 열고 나오는 것으로 시작했다. 호피무늬의 적극적인 활용, '뉴 키즈(NEW KIDS)'가 새겨진 디자인의 옷, 진짜 과일 '오렌지' 자수와 화폐 자수, 검은색 터틀넥셔츠에 반짝이는 은 목걸이, 돈다발이 수북히 쌓인 보스턴 백, 한 손에 무심하게 든 와인병, 한껏 치켜세운 머리, 풍성한 페이크 퍼, 바이커 재킷 등 런웨이는 모던한 오렌지족으로 넘쳤다.

컬렉션의 흥을 최고조로 올린 건 블락비 지코의 피날레 퍼포먼스. '뉴 오렌지 보이' 룩을 입고 자신의 노래 'Well Done'을 부르는 지코의 모습, 그가 내뱉는 가사들은 컬렉션에 완벽하게 녹아들었다. "꿈만 죽어라고 쫓았어", "내 소비는 사치보단 보상에 가깝지", "유명한 부자는 못 돼도 이루려고 노력해", "내가 물려받은 건 차키 아닌 키 180", "이 모든게 꿈이 아냐, 앞으로도 계속 앞으로 갈 거지만 일단 수고했어, well done"

그해 가장 클래식한 겨울

로우클래식(LOW CLASSIC)

20~30대 여성의 열렬한 지지를 받는 브랜드 로우클래식은 '겨울산'을 주제로 컬렉션을 풀어냈다. 전체적으로 포근한 느낌을 주는 펠티드 울 소재가 많이 쓰였다. 앞이 트인 울 스커트, 기본적인 장식이 배제된 깔끔한 느낌의 더플코트, 넉넉한 사이즈의 울 피케셔츠 등 기본적인 아이템이지만 모던함을 놓치지 않았다. 이에 이명신 디자이너는 "항상 클래식한 아이템을 변화시키고자 한다. 소재를 다르게 쓰는 작업을 좋아한다"고 허핑턴포스트에 전했다. 그녀는 "서브 주제인 '70년대' 감성을 불러들일 수 있는 아이템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싶었다"며 "70년대하면 생각나는 버건디, 청록색을 주조색으로 작업했고 핸드메이드로 미니멀리즘을 표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카모플라주처럼 알록달록하게 패치로 만든 스커트와 코트는 벗겨진 나무껍질을 형상화한 것이다. 대신 마냥 차가운 겨울의 색이 아닌, 따뜻한 컬러로 컬렉션을 이루고자 했다. 가슴부분에 꽃모양처럼 과감하게 뚫린 디테일에 대해서는 "70년대 이미지를 찾다가, 당시 과감한 커팅이 들어간 수영복을 발견했다. 그러한 모티브를 사용해 디자인했다"고 이명신 디자이너는 전했다.

한 땀 한 땀 정성스레 자수 스티치를 놓은 울 담요는 이번 시즌의 키 아이템으로 손색이 없었다. 이명신 디자이너는 "겨울산에 더해, 70년대 감성을 불러일으킬 만한 아이템이 '손자수'라고 생각했다"며 디자인을 설명했다. 이밖에도 복숭아뼈 위로 올라오는 부츠,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오프숄더 니트 드레스, 사선으로 달린 프린지 니트, 사각형 토트백, 무릎 길이의 와이드 투피스 등 다양한 제품이 선보여졌다.

미니멀한 레터링을 주로 선보였던 이전 쇼와는 달리, 15 F/W에서는 최대한 절제된 패턴과 장식을 선보였다. 이에 이명신 디자이너는 "개인적으로 항상 시즌 작업을 하면서 바쁘게 쫓겼다. 그래서 주제를 너무 확실히 보여주고 싶은 마음에 옷에 글씨나 자수를 자주 활용했다"며 "이번에는 그런 작업들을 조금 더 세련된 느낌으로 풀고자 했다. 그래서 부피감, 핸드메이드, 텍스처 등의 요소로 디자이너만의 자연스러운 감성을 느낄 수 있도록 이미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했다."라고 전했다.

누구보다 세련된 옷장을 가진 너드(nerd)

87mm

87년생 톱모델 김원중, 박지운의 브랜드 '87mm'는 어느새 두 번째 제너레이션 넥스트 컬렉션을 가졌다. 그 누구보다 멋있는 옷을 많이 입어봤을 두 사람은 어떤 옷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너드(nerd, 괴짜)'라는 단어가 새겨진 티셔츠, 뺑뺑이 안경, 캔버스 운동화는 별다를 게 없는 아이템이지만 분홍색 스웨이드 재킷, 베레모, 시접이 밖으로 드러난 아우터, 뒷부분이 시원하게 갈라진 하운드투스 무늬 코트 등으로 유쾌한 변화를 감지할 수 있었다. 박지운은 이번 컬렉션은 "밀리터리를 베이스로 만들었다"며 "퀼팅 재킷도 군복의 내피에서 착안하여 만든 옷이고, 그렇다 보니 자연스레 베레모가 키 아이템인 스타일링이 됐다"고 허핑턴포스트에 전했다.

87mm는 첫 번째 시즌과 비교해서 확실히 구조적으로도 탄탄한 디자인을 선보였다. 박지운은 "다들 저번 시즌보다 좀 더 디자이너스러워 졌고 안정적으로 변했다고 말해준다. 발전했다는 말은 물론 기분 좋은 말이지만 사실 저번 컬렉션 옷들 또한 구조적으로 훌륭했다고 생각한다."라고 이번 컬렉션에 대한 소감을 전했다. 또한 그는 "확실히 처음과 두 번째는 많이 다르다"며 "처음을 지나며 여유가 생겼고, 우리의 부족한점과 또 남들이 우리에게 기대하는 점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게 됐다. 스토리텔링의 중요성도 깨달았다."라고 말했다.

극적인 요소보다 현실세계에서 볼법한 디자인으로 채워진 87mm의 옷을 보고 놈코어(normcore: 노멀normal과 하드코어hardcore의 합성어로 '평범함'을 추구하는 패션)라고들 말한다. 옷은 평범하지만 자신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또한 평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람들이 추구하는 패션이 놈코어다. 87mm가 표현하고자 하는 너드도, 너드처럼 보이지만 자신은 결코 너드가 아닌 이들을 위한 옷이라는 점에서 개념적으로 일치한다.

모델들의 아이돌급 인기에 일부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제너레이션 넥스트 쇼가 열리는 야외 무대 S3은 87mm의 컬렉션이 끝난 후 모델 사진을 찍으려는 팬들로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으니까. 하지만 입고 싶은 게 하나도 없는 지루한 쇼보다 사고 싶은 것들로 가득한 쇼가 백번 나은 건 부정할 수 없는 진리다.

한탕주의에 날리는 한방

카이(KYE)

2012년 글로벌 패션프로젝트 '콘셉트코리아'를 통해 뉴욕에도 진출한 '카이'. 지난 2월 뉴욕에서의 네 번째 쇼를 마치고 한국에서도 '잭팟(JACKPOT)'이라는 같은 주제로 컬렉션을 풀어냈다. 처음 어떻게 주제를 떠올리게 됐냐는 질문에, 계한희 디자이너는 "평소에 미술작품, 잡지, 영화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도 영감을 받아요"라고 대답했다. 이어 "저도 젊은 축에 속하지만, 점점 사회 초년생들과 나이 차가 벌어지면서 노력 대비 쉽게 얻으려고 하는 한탕주의를 느꼈어요."라며 "추상적인 주제를 비주얼적으로 풀기 위해 슬롯머신, 트럼프, 체리, 럭키7과 같은 도박의 이미지, 라스 베가스, 가짜 카우보이, 서부의 금을 캐러가는 골드러시 등의 이미지를 접목했다"고 허핑턴포스트에 전했다.

하지만 단지 젊은 패배자의 모습을 그린 건 아니었다. 슬롯머신에 넣는 쇠구슬로 하트 모양을 만들어 발랄함을 부각했고, 레버를 돌리면 'KYE'라는 글자가 릴(reel)에 뜨는 것을 연상할 수 있도록 유머를 더했다. 런웨이의 밝은 분위기는 뉴욕을 기반으로 하는 유명 DJ 그룹 더 미스햅스(The Misshapes)가 책임졌는데, KYE의 의상에 영감을 받아 믹싱한 곡들로 구성됐다. 시오필러스 런던(Theophilus London)의 'Girls Girls $', 'Tribe'와 같은 노래는 카이의 전체적인 스타일링과 더없이 잘 어울렸다.

같은 주제로 전개한 뉴욕 컬렉션과 비교했을 때 서울컬렉션에서는 5~6벌 늘어난 31착장으로 진행됐다. 뉴욕에서는 애슐리 올슨, 리한나 등 셀러브리티 스타일리스트로 유명한 리사 쿠퍼(Lysa Cooper)가 스타일링에 참여했으며 서울컬렉션의 스타일링은 한국모델에 어울리도록 재정비를 했다. 뉴욕에서는 닥터마틴 신발을 전반적으로 사용했지만, 서울에서는 룩북과 런웨이 모두 팀버랜드 신발을 착용했다. 힙합 패션의 상징이라고도 여겨지는 팀버랜드에 큼지막한 포켓의 워크웨어 느낌을 가미했으며, 양 갈래로 땋은 브레이드 머리와 발랄한 프린지 장식 등이 눈에 띄었다.

DDP에서 열린 세 번째 서울패션위크, 이전보다 나아진 점이나 앞으로 개선되어야 할 부분들이 궁금했다. 뉴욕과 서울에서 동시에 쇼를 진행하는 계한희 디자이너가 몇가지 코멘트를 남겼다. 우선 지금의 패션위크는 빨리빨리 진행되어야 하는 점때문에 무대나 분위기 연출에서 아쉬운 부분이 있다고 전했다. 현재 같은 공간에서 쇼와 쇼 사이 간격은 2시간. 좌석을 배정하고, 무대를 바꾸고, 다시 세팅하고, 관객이 들어왔다 나가는 시간, 런웨이 시간을 고려하면 결코 넉넉한 건 아니다. 다음으로 지정좌석제로 혼잡이 많이 나아지긴 했으나 인기 많은 남성 모델이 대거 등장하는 쇼에서는 객석이 술렁이는 느낌이 있다고 지적했다. 계한희씨는 쇼장 앞에서 모델을 기다리는 현상은 한국에만 있는 재밌는 현상이긴 하지만, 실질적으로 쇼를 관람해야 하는 업계 사람에게 지장을 준다면 몇 개월 동안 준비한 쇼가 아쉽게 끝날 수도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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