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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24일 14시 04분 KST

남산에서 얼차려 훈련 시키는 대학교(사진)

23일 저녁 5시55분 서울 중구 필동로 동국대 사회과학관 입구. 검은색 운동복을 입은 학생 70여명이 3명씩 줄지어 서 있다. 운동복 등에는 ‘Police(경찰)’가 적혀 있다. 이들은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2015년 신입생들로, 매주 월·목요일 저녁 5시 45분께 이곳에 모인다. 이 학과 소모임 가운데 하나인 유도학회에서 진행하는 운동 프로그램인 ‘구보’ 명목이다.

행렬 선두에는 신입생을 지휘하는 같은 학과 2학년이 한 명 서 있다. 2학년 선배 운동복은 상의 어깨 부분이 빨간색이다. 신입생은 같은 부분이 연두색이다. 신입생들은 사복을 담은 가방을 메고 있다. 저녁 6시. 이들은 오와 열을 맞춰 행군 모양새로 걷기 시작했다. 동국대 인근 장충 리틀야구장 사이에 있는 흰색 벽돌 계단을 따라 남산공원 북쪽 순환 산책로까지 걸어갔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1,2 학년 남녀 학생들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북측산책로에서 앉았다 일어나기를 하고 있다.

20분 정도 걸렸다. 이들이 다시 모인 곳은 남산 석호정 국궁장 앞. 이곳에는 2학년 60여명이 대기하고 있었다. 130여명의 1~2학년 학생들은 3열 종대를 이룬 채 입을 꼭 다물고 차렷 자세로 섰다. 학생들 주변에는 운동복이나 사복 차림의 학생회 간부 10여명이 서성거렸다.

10여분 뒤, 침묵이 깨졌다. 2학년 선배의 구호 아래 신입생이 스트레칭을 시작했다. 스트레칭을 마친 뒤 신입생과 2학년생은 섞여 40~50명씩 3개 조로 단위를 쪼갰다. 몸이 아프거나 부상을 당한 ‘열외 학생’ 10여명은 석궁장 화장실 맞은편에 갔다. 이들은 고개를 꼿꼿하게 들고 차렷 자세로 서 있었지만, 어디에도 제대로 시선을 두지 못했다. 금방이라도 눈물을 흘릴 것 같은 표정과 무거운 정적만 감돌았다.

잠시 뒤, 3개 조는 남산 북쪽 산책로 곳곳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빨간색 경광봉을 든 2학년 학생의 구령에 맞춰 신입생과 2학년이 같이 뛰고, 그 뒤로 운동복이나 사복 차림의 학생회 간부 2명이 뒤따랐다. 500m쯤 구보를 뛴 학생들이 멈추더니 양팔 벌려 뛰기를 시작했다. “마흔 둘, 마흔 셋, 마흔 넷….” 조용한 산책로에 숫자 세는 목소리만 울려 퍼졌다. 산책로를 지나가던 시민은 놀라 어깨를 움츠리거나 학생 무리를 피해 걸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1학년 학생들(연두색 체육복)과 2학년 학생들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북측산책로에서 팔벌려뛰기를 하고 있다.

양팔 벌려 뛰기는 무려 320번이나 이어졌다. 양팔 벌려 뛰기가 끝나자 학생들은 숨고를 틈도 없이 다음 운동을 했다. 두 팔을 앞으로 나란히 자세로 폈다가 왼쪽 팔꿈치에 오른손을 올리고 오른쪽 팔꿈치에 왼손을 올렸다. 그 자세로 허리를 곧게 펴고 앉았다 일어서는, 이른바 ‘스쿼트’를 150번 반복했다. 30분 정도 걸린 이 운동이 끝나자 2학년 학생들이 신입생들의 땀을 닦아줬다. 신입생들은 동시에 큰 목소리로 “감사합니다”를 외쳤다.

지나가던 시민이 혀를 찼다. 한아무개씨는 “동국대 체육학과 학생들이 훈련하는 것이냐”며 “날씨도 추운데 바들바들 떨면서 기합받는 어린 학생들이 안쓰러워 보인다”고 말했다. 옆에 있던 또 다른 시민 이아무개씨는 “이 동네에 살아서 자주 산책을 오는데, 2주 전에 학생들을 처음 봤을 때 무슨 운동을 이렇게 열심히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너무 심하게 운동하는 게 이상했다”며 “경찰이든 언론이든 연락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운동은 계속됐다. 이번에는 팔굽혀 펴기다. 차가운 바닥에 손바닥을 짚고 온몸을 땅바닥까지 내렸다가 올라서기를 반복했다. 팔굽혀 펴기가 20차례 반복되는 동안 2학년들은 “고개 똑바로 들어”라거나 “엉덩이 더 내려”라고 외쳤다. 운동은 30~40분쯤 쉼 없이 이어졌다. 팔굽혀 펴기를 마친 학생은 곧바로 줄을 맞춰 나란히 섰다. 선두에 선 2학년 학생의 지시에 따라 500m쯤 구보를 하거나 숨차게 뛰었다. 학생회 간부들은 멀찌감치 떨어져 운동하는 후배들의 모습을 지켜봤다.

3개 조로 흩어진 학생들은 남산 북쪽 산책로 4㎞ 구간을 오가며 구보나 달리기를 반복했다. 운동 순서는 대체로 ‘구보-양팔 벌려 뛰기-앉았다 일어서기-팔굽혀펴기-구보 혹은 전력질주’ 차례였다. 어둠이 깔린 남산 산책로 곳곳에서 학생들 기합 소리가 울렸다. 빨간색 형광봉을 들고 선두에 선 2학년은 뜀뛰기를 할 때마다 시민에게 “죄송합니다”라고 외쳤다. 구보 활동이 1시간30분 넘게 반복되자 뒤따르는 학생들은 거친 숨을 내쉬고 밭은 기침을 토했다.

다리가 풀려 뒤처진 학생은 산책로 인근에 나무 난간을 붙잡고 잠시 섰다가 눈치를 보고 다시 뛰었다. 다리를 절뚝절뚝 거리는 학생도 있었지만 다시 걷거나 뛰었다. 밤 8시께. 처음 출발한 석궁장에 다시 도착했을 때 10여명의 열외된 학생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해가 지기 전 차렷 자세로 서 있던 열외 학생은 무릎을 꿇고 팔굽혀 펴기를 하거나 두 팔을 감싸 안고 앉았다 일어서기를 반복했다. 무릎을 꿇은 팔굽혀펴기를 하고 있는 한 여학생의 팔은 운동이 200여 차례 반복되자 심하게 흔들렸다. 이를 지켜보던 한 2학년은 “너희들이 이럴 때 동기들은 뛰고 있다”고 말했다.

운동은 2시간30분 정도 이어졌다. 130여명의 1~2학년과 학생회 간부 10여명이 출발 지점에 다시 모인 시간은 밤 8시46분께였다. 이들은 다시 3열 종대로 섰다. 동국대 건물 쪽을 향해서였다. 한참 침묵이 이어지다 학생회 간부의 지시가 떨어지자 신입생들이 석궁장 건물 앞쪽으로 일사불란하게 달려가 가방을 급히 챙겨 다시 3열 종대 대열을 맞췄다.

운동을 끝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1학년 학생들(연두색 체육복)과 2학년 학생들이 23일 오후 서울 중구 남산북측산책로에서 부동자세로 대기를 하고 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학생은 왜 수업시간도 아닌 늦은 밤에 이런 얼차려식 체력 훈련을 하고 있을까. <한겨레>가 훈련 현장에 다가가 묻자 학생회 간부들은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행정학과 학생회장 ㅅ씨는 “신입생의 기초 체력을 키워주기 위해 3월 한 달 동안만 같이 운동을 하는 것”이라며 “경찰행정학과에서 십수년 동안 해온 전통”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과 안에 있는 유도학회 모임에 신청서를 낸 학생들이 자율적으로 참여하는 것이고 학과장님과 조교 동의 아래 진행하는 운동”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학생회 간부는 “보도를 할 거면 우리와 협의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겨레>가 만난 신입생들의 이야기는 달랐다. 한 신입생은 “유도학회 모임 신청서를 제출할 때 구보 활동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며 “학부 소모임 중 하나인데 필수로 들어야 하는 분위기라 어쩔 수 없이 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신입생은 “구보 활동에 제대로 참여하지 않으면 과에서 아웃사이더가 될 수 있어서 그냥 참고 버티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동국대 경찰행정학과의 얼차려식 체력 훈련 파문은 이번만 있었던 게 아니었다. <한겨레>는 2006년 3월15일치 “경찰양성 학교에서 폭력부터 배워야 하나”라는 기사(▶ 관련 링크 )에서 경찰행정학과 신입생을 대상으로 하는 ‘단체 얼차려’를 보도한 적이 있다. 9년이 지났지만, 악습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창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장은 <한겨레>와의 통화에서 “학과장은 행정책임자로서 통상적으로 학생회 활동을 허락해야 한다. 학생회 활동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규제할 수는 없다”며 “학생들이 운동하는 것은 알고 있지만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운동은 경찰행정학과가 경찰 공무원을 양성하는 기관으로 기초 체력이 필요한 1~2학년 학생들에게 필요한 과정”이라고 설명했다.

이 학과장은 또 “예전에도 학생들이 남산을 뛰거나 운동을 했는데 시절이 바뀌었으니 남산에서는 하지 말라고 학생에게 당부했던 적도 있었다”며 “학생들이 운동할 수 있는 체육관이 3월 중에 완공될 예정”이라고 말했다. 기초체력을 키우는 활동이라고 보기에는 운동의 강도와 참여를 강제하는 폭력성에서 문제점이 보인다는 지적에 대해 이 학과장은 “바뀌어 가는 과정이고 직접 만나서 설명하겠다”는 말만 반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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