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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23일 05시 37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3월 23일 05시 37분 KST

'싱가포르 국부' 리콴유 전 총리는 누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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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콴유 전 싱가포르 총리가 23일 새벽 타계했다. 향년 91살.

싱가포르 총리실은 이날 성명을 통해 “리 전 총리가 오늘 오전 3시18분 싱가포르 종합병원에서 평화롭게 눈을 감았다”고 밝혔다. 리 전 총리는 지난달 5일 폐렴으로 입원한 뒤 중환자실에서 인공호흡기에 의존해왔다.

리 전 총리는 현대 싱가포르의 원형을 만든 사람으로 평가받는다. 영국 식민지의 작은 항구 도시에 불과했던 싱가포르는 그가 집권하는 동안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 가운데 한 곳이 됐다.

리 전 총리는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에서 분리독립한 1965년에 초대 총리에 올라 1990년 물러날 때까지 25년 동안 총리를 지냈다. 총리 퇴임 뒤인 2004년에도 원로장관으로 내각 각료직을 유지했고, 원로장관직에서 물러난 뒤에도 2011년까지 장관고문이 됐다.

리 전 총리는 영국이 식민지였던 싱가포르에 자치권을 부여했던 1959년부터 총리를 했으니, 반세기 이상 싱가포르를 사실상 이끌어온 셈이다. 그는 2대 총리인 고촉통 전 총리를 “나의 총리”라고 부를 만큼, 총리에서 물러난 뒤에도 싱가포르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다. 싱가포르 현 총리도 그의 아들인 리셴룽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1979년 청와대에서 리콴유 당시 싱가포르 총리와 건배를 하고 있는 모습. 박 대통령은 어머니 육영수씨가 별세한 뒤 1979년 10·26 사태 때까지 ‘퍼스트 레이디’로 활동했다.

리콴유 전 총리를 추모하고 있는 싱가포르 국민들의 모습

중국 이민자 가정의 4세로 태어난 리 전 총리는 태평양전쟁 때 동남아시아까지 침략전쟁을 확대한 일본군 밑에서 일본군 선전활동을 담당하는 부서인 홍보부에서 잠시 일했으나, 전쟁 뒤 영국으로 건너 가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가 됐다. 리 전 총리는 영어 교육을 받고 자랐으며, 독립 싱가포르에서 리 전 총리처럼 영어 교육을 받은 중국 이민자 출신들이 엘리트층을 형성했다.

리 전 총리가 처음부터 싱가포르 독립국가를 설계했던 것은 아니다. 그는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연방의 구성원으로 영국에서 독립하도록 하는 활동을 했다. 하지만 중국계가 다수인 싱가포르에서 중국계와 말레이계 사이에 인종적 갈등이 폭력사태로까지 번지자, 말레이시아는 사실상 싱가포르를 연방에서 추방해 버렸다.

싱가포르는 아시아와 유럽의 중계무역으로 번성한 곳이었고, 1965년 독립 이전에도 아시아에서 1인당 국내총생산(GDP)가 3위였던 만큼 가난한 지역은 아니었다. 하지만 싱가포르 전체 면적이 서울보다 조금 큰 수준에 지나지 않은 데다가 천연자원도 거의 없고, 식수 공급은 말레이시아에 의존해야 하는 형편이라서 국가로서 생존이 의심스러운 상태였다.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에서 분리됐을 때, “내 평생 가장 화가 나는 순간”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리 전 총리는 강력한 경제개발 정책으로 싱가포르의 생존과 발전을 도모했다. 기업에 대한 규제 완화와 세금 감면, 강력한 국가 조직을 활용한 질서 구축으로 경제개발을 추진했다. 도시국가인 싱가포르가 내수 중심 경제체제를 구축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완전한 대외 개방 경제체제를 지향했다. 2014년 기준 싱가포르 1인당 국내총생산은 5만달러가 넘으며, 스웨덴에 이어 세계 8위다. 서울시 인구보다도 적은 인구 500만 남짓한 국가지만 국내총생산 전체 규모만 놓고 봐도 이스라엘보다 앞선 세계 36위다.

어두운 면도 있다. 리 전 총리는 민주주의 가치를 중시하지 않았고, 싱가포르에서 각종 규칙을 너무 많들고 이를 어기면 국가 공식 형벌로 ‘체벌’도 불사해 시민들의 창의성을 억압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리 전 총리와 김대중 전 대통령 사이에 1994년 벌어진 아시아적 가치 논쟁은 국내에서도 유명하다.

리 전 총리는 당시 <포린 어페어스>와의 인터뷰에서 서구적 의미의 민주주의 개념은 동아시아에 적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고,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은 <포린 어페어스> 기고로 아시아의 문화가 민주주의를 존중하는 뿌리 깊은 전통을 가지고 있다고 반박한 일이 있다.

영국 <가디언>은 “리 전 총리가 싱가포르의 발전을 이뤘지만, 인권단체 등에서는 리 전 총리가 정치적 반대자들을 투옥하거나 추방하는 등 철권통치를 펼쳤다는 비판을 한다”며 “싱가포르 의회에서 지금까지 야당 인사가 의원이 된 예는 12명밖에 없었다”고 전했다.

리 전 총리는 자신의 통치로 민주화가 정체되고 자유가 억압받았다는 비판에 대해 2007년 “살아남으려면 어쩔수 없었다”며 “싱가포르 운영 자체가 우리의 이데올로기”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