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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03월 20일 12시 49분 KST | 업데이트됨 2015년 06월 01일 14시 03분 KST

[인터뷰]'세월호 구조영웅' 김동수씨

연합뉴스

"다들 쉽게 잊으라고만 한다.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면, 심지어 창문만 봐도 세월호 창 안에 갇힌 아이들이 생각나는데…"

세월호 침몰 순간까지 학생 10여명을 구조하는 데 일조한 것으로 알려진 '파란 바지의 구조 영웅' 김동수(50)씨는 20일 오전 안산정신건강트라우마센터로 출발하기 전 제주국제공항에서 씁쓸히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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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씨의 왼쪽 손목은 전날의 사건 때문에 붕대로 감겨 있었다.

19일 밤 김씨는 칼을 들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김씨는 딸에게 발견돼 인근 병원으로 옮겨졌고 응급조치를 받고 귀가했다.

다행히 생명에 지장은 없었지만 가족들은 아픈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김씨는 "모든 생활이 끊겼다. 고등학교 3학년인 딸은 학원비를 아끼려 다니던 학원을 그만두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애들 엄마도 일을 나간다"며 "이곳저곳 병원치료를 다니느라 정부에서 달마다 나오는 108만원도 모자라 대출까지 받아 생활하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제주에 있으면서 정말 괴로운 것은 주변 사람들이 세월호가 모두 해결된 것인 듯 왜 그때의 일을 못 잊느냐고 말하는 것"이라며 "지나가는 학생들이나 창문만 봐도 안에 갇혀 있던 아이들이 생각나는데 너무들 쉽게 잊으라고만 한다"고 괴로워했다.

김씨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모두 건강이 좋지 않은 상태다.

그는 "몸이 구석구석 아프고 심지어 손이 제 마음대로 움직입니다. 그런데 이걸 제가 아닌 다른 누가 알 수 있겠습니까. 병원에 가도 정신적 트라우마 때문이라는 설명 말고는 약만 먹으라고 할 뿐"이라고 호소했다.

세월호 사고 당시 학생들을 구조하다 몸 상태가 매우 나빠진 김씨는 지난 1월 보건복지부의 의사·상자 신청을 했다. 하지만 관련 서류가 복잡해 아직 심사를 받지 못하고 있다.

김씨는 "국회에도 갔고 도청에도 가서 하소연을 했지만 돌아오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며 "세월호 특별법은 생존자는 뒷전이고 유가족이 먼저가 됐다. 살아남은 우리에겐 무엇 하나도 해결된 것이 없다"며 아쉬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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